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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취업후 10년이후...

123123 |2020.07.21 01:45
조회 384 |추천 0
내 우여곡절 인생 이야기를 꺼내볼까 한다.
2001년 새내기. 대학때 디아블로와 와우에 빠져서 미친나는 입대를 미루고 미루다가 23살 늦깎이로 군대 입대하여 철원 최전방에서 개고생하게 된다. 전역하니 25세. 막상 졸업을 하니 내 나이 27세...
친구들이랑 짬뽕에 술이나 먹을줄만 알았던 나는 취직을 하려니 중요한 자격증도 거의 없었다. 기본적인 자격증이라도 취득하고자 학원을 다니자니 모아둔 돈이 없어서 잉여 거지같았다. 철이 들었는지 막상 엄마한테 돈을 받을라니 쪽팔릴것 같았고 지대로 욕먹을것 같았다. "그래 취직전에 알바라도 하자"해서 가산동에 있는 중견기업의 계약직 인턴으로 취직을 하게 된다. 가산동은 높은 타워들이 수 없이 많았고 마치 내가 뉴욕에 증권가 직원이 된것 같은 마음으로 새로운 기대를 하며 출근하게 되는데, 이건 진짜 형언 할수도 없는 리얼 노예생활 시작이었고 생각도 못한 잡일이랑 주차 심부름, 담배 심부름, 업체에 문서 배달까지 시키더라....이건 뭐 개보다도 못한 처우에 정말 사람이 할 노릇이 아니였다. 진짜 우울증 걸릴정도로 암울하고 빡세길래. 일단 정직원을 목표로 다른 업체에 취직하자 라는 마음을 먹었고 그동안 학원에서 배운 일러스트, 포토샵등을 내세워서 웹디자인쪽으로 면접을 수 없이 보았다. 그렇게 어찌어찌 해서 강남의 한 굵직한 중소기업에 정직원으로 취직하게 되었다. 이제 노예생활 드디어 청산이다! 라는 기쁨으로 들어온 회사는 사실상 큰 변화가 없는 일상이었다. 그나마 처우는 사람 다워졌으나 내 위에 선배인 여상사가 나이는 나랑 동갑인데 갑질에 꼰대짓까지.....아 여기도 내가 있을 곳은 아닌가보다 하고 이직을 마음 먹고 우울해 있는데 친해진 영업부 부장님이 그걸 눈치를 챘는지 회식때 나를 불렀다. 그리곤 나지막한 목소리로 "마 니 영업해볼래?" 라고 말씀 하셨고 난 무엇에 홀린듯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오케이 했다. 그다음날 부장님은 대표님께 설득을 했고 대표가 흔쾌히 컨펌해주었다. 정말 웃기게도 바로 영업부로 발령이 났는데 그당시는 일단 배운다는 명목하에 연봉도 동결시키며 난 바보처럼 영업부의 노예가 된다...그렇게 노예 생활도 2년이 지나니 어느덧 나도 주임을 거쳐 대리가 되었고 밑에는 2명정도 들어오게 된다. 그 당시 난 연매출을 혼자서 약 40억 정도 달성했고 나름 대표에게 인정을 받기 시작 했다. 업계 짬밥이 2년차가 되니 영업도 나름 할만해졌다. 그렇게 업계 인맥들 만나서 가끔 술자리도 가지다 보니 형동생 하는 꽤 친한 사람도 제법 생겼고 그렇게 사회 인맥들이 점점 생기다 보니 어릴적 동네 친구들은 아무도 만나지 않게 되었다. 사실상 매일 야근할 정도로 일이 너무나 바빠서 술친구들은 거의 못만났고 그걸 서운해 하는 놈들도 반 있더라. 그러다가 어느날 친구 아들 돌잔치에서 난 첫눈에 반해버린 여자를 보게된다. 심장이 뛰는게 느껴졌고 등에 땀이 났다. 뭔가 부끄러웠고 마음이 급해졌다. 그날 말도 못걸고 헤어진게 너무 안타깝다고 생각한 나는 수소문 끝에 나는 내친구 와이프의 친구였다는 제보를 받고 연락처를 악착같이 얻어내서 주말에 전화를 했다. 마치 뭐에 미친놈 처럼 그녀에게 친한척을 했고 그런 내가 궁금했던지 약속을 잡고 만나게 되었다. 내눈에 그녀는 정말 여배우처럼 아름 다웠고 첫 데이트를 뮤지컬 관람을 하며 우리의 인연을 시작했다. 그날 좋은 감정은 아직도 잊을수가 없다. 우리는 그 후 친구처럼...때로는 연인처럼 아슬아슬 헷갈리는 메시지를 주고 받으며 만남을 이어 나갔고 역시나 그녀를 노리는 늑대들이 많아 걱정이 더 많아 지게 된다. 도저히 기다릴수 없었던 난 용기를 내서 헤어질 각오로 사랑한다고 고백했고 정식으로 사귀며 열애를 시작했다. 그리곤 우리는 1년도 안가 결혼을 약속 한다. 많은 축복속에 결혼을 하고 하와이로 신혼여행을 다녀왔다. 우린 부모님께 지원 받은 1억이 조금 넘는 돈을 가지고 대출을 받아 전세집을 마련했고 꿈만 같은 행복한 신혼생활을 시작 하였다. 하지만 와이프랑 비슷한 내 연봉은 한 집안의 가장이 되기에는 보잘것 없었고 설상가상 와이프가 임신해서 출산휴가를 내게 된다. 아이를 낳을 때가 되자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가게 된다. 와이프는 출산 후 아이 키우는 것에 집중하기 위해 퇴직을 결심했고 난 기꺼이 받아 들였다. 그 이후 혼자 돈을 벌게되면서 점점 사는게 힘들었다. 매년 전세시세는 계속 올라가고 2년이 지나자 6천이나 오른 전세값에 앞이 깜깜해진다. 이건 진짜 아니다 싶어서 우린 내집 마련을 계획 했다. 경기권 한구석탱이에 25평 아파트를 보금자리 대출을 받아 2억 초중반에 구입했고 우린 인테리어까지 싹다 새로할 정도로 애정을 가졌으며 너무너무 행복했다. 그시기 운이 따랐는지 난 대기업으로 이직을 하게 되었다. 나름 내가 원하는 연봉 5천에 직급은 과장 타이틀을 당당히 얻어냈다. 그 후 난 뒤쳐지면 안된다는 마음으로 정말 미쳐서 일했고 여러 성과를 이루었다. 그렇게 5년정도 빡세게 일하다 보니 난 직원들에게도 인정 받았고 그 계통에선 나름 전문가 수준에 도달했다. 그리고 드디어 만년 과장을 탈출하게 된다. 상사의 부름으로 주말 밤낮 할거 없이 불려다니다 보니 어느순간 이사님과 대표님께 잘보인 나는 그들 눈에 띄게 되었고 운좋게 상위 부서인 온라인 사업본부 영업팀 팀장으로 승진했다. 어느덧 내 연봉은 6천이 훌쩍 넘게 되었고 내 바로 밑에는 팀원들이 10명 정도가 되었다. 난 아랫 사람들 내사람으로 만들랴, 윗사람들 눈치 보랴 점점 지독한 정치질 빠지면서 어깨가 무거워 졌다. 그당시 자주 만나는 거래처 사회친구들과 형님들 따라 다니다 보니 자연스럽게 골프나 차에도 관심이 생겼다. 내 생애 첫 중형세단 외제차도 구입하게 된다. 하지만 사실 관심이 생긴건 차뿐만이 아니었다. 친한 직장 형님이 부동산으로 구구절절 지 자랑을 하길래 무식하던 나는 그걸 받아쳐주기 위해 부동산시장을 유투브와 뉴스등을 보며 점점 공부해 나아갔다. 문정권 3년차가 되자 14년도에 2억3천에 구입한 내 아파트는 풍선효과로 인해 3억5천 정도의 시세로 올랐고 난 이때다 싶어서 시세보다 2천 높은 3억 7천에 집을 내어놨다. 허나 투자자들이 들어온 그곳은 생각보다 빠르게 팔려 버렸고 급한마음에 찜해놓은 아파트로 갈아 타기 위해 들어두던 보험이랑 적금 다 털어서 영혼까지 끌어 모아 5억 짜리 찜해둔 급매물 아파트로 고민할 겨를 없이 계약했다. 난 그동안 꼬박꼬박 대출을 갚아 나갔었기에 신용이 충만하였고 손쉽게 제1금융권 대출을 70% 받아 그동안 모아둔 돈을 합쳐 겨우겨우 매수를 했다. 그 후 아파트호가는 계속 상승하더니 5억6천 시세까지 도달했고 그 후 617대책이 발표되면서 어이없게도 투기과열 지구로 묶여 버리게 되었다.
난 지금도 차근 차근 내 앞날을 위해 무엇인가 계획 중이고, 사실상 난 이미 너무 많이 변해버렸다. 친구들은 인연이 끊어져 버렸고 남은건 사회 인맥 뿐..사회초년생때 좌파였던 내 정치색은 이미 보수로 변했으며 주변에 그런 사상을 가진 사람들만 모이게 되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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