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정서와는 상관없이, 주식•부동산 투자(투기) 수준이 매우 높은 사람은 전략가일 확률이 높습니다. 그 이유는 확실한 고급정보를 취득했다 할지라도 전략적인 분석없이 주식•부동산에 과감하게 투자(투기)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법률적(法律的) 판단(判斷)이 요구(要求)될 때, 입증(立證)보다는 방증(傍證)이 더 중요하게 취급된다는 점을 모르는 법조인은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과거에는 입증자료가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뒷받침하기 위한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고문이라는 악행을 저지르기도 했지요. 그렇게 방증은 입증보다 훨씬 더 중요할 수 밖에 없었지요. 방증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그 입증자료는 신뢰할 수 없다는 초심으로 돌아가 주셨으면 합니다.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한 결과, 방증을 외면하고 입증자료에만 연연한다면 저는 그런 행위를 사법농단(司法壟斷)이라고 정의(定義)해 봅니다.
'항전', '항쟁'은 민간인이 사용하는 단어이고, 군 과 관에서는 '작전', '안건', '사건' 또는 '건'이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연습'은 민간인이 학습을 완성하기 위해 사용하는 단어이고, 군 과 관에서는 '훈련'이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만약에 군 과 관에서 '훈련' 대신에 '연습'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면 명예 훼손에 해당합니다. '운동'이라는 단어도 분별없이 무분별하게 사용하면 안됩니다. '3•1운동'은 '3•1항쟁'으로 바꿔야 하며, '5•18광주민주화운동'은 '5•18민주항쟁'으로 바꿔서 표현해야 합니다.
성과를 내 줘야 합니다. 성과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시키는 대로만 처리해야 하는 정형화된 조직운용체계에서는 좋은 성과를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단순하게 늘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일(job)이라 할지라도 프로젝트화(project化)해서 프로젝트 성격으로 처리해야 합니다. 이때 '프로젝트화(project化)'의 정의(正義)는 매일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단순한 일(job)이라 할지라도 어제 일어난 일과 오늘 일어난 일이 다르다고 여기면서 한번 더 곰곰히 생각하고 궁리(窮理)하는 것을 말합니다.
해병대사령관을 해병대 중장에서 대장으로 승격하고, 해병대교육사령부(해병 중장) 및 해병대군수사령부(해병 소장)를 창설해야 합니다.
가정집에서는 현관문(대문)을 단단히 걸어 잠가야지만 도둑 과 강도의 출몰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습니다. 국가안보는 가정집의 현관문(대문)처럼 그렇게 매우 중요합니다.
지정학적인 측면에서도 보면, 3면이 바다로 둘러싸여있는 대한민국은 국토방위에 매우 취약한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해안방어 임무에 가장 최적화된 6개해병사단 + 1개해병기갑여단 창설은 불가피합니다. 그 중에 2개해병사단 + 1개해병기갑여단은 강원도 동해안지역을 방어하고 있는 육군 8군단을 대신하여 교체 투입하고, 3개해병사단은 경기도/인천 서해안지역을 방어하고 있는 육군 수도군단을 대신하여 교체 투입한 후 물샐틈없이 방어해야 합니다. 그리고 육군 53보병사단이 방어하고 있는 부산/울산지역은 해병대가 방어하기에 가장 적합한 해안방어지역이므로 나머지 1개해병사단은 부산/울산지역에 교체 투입한 후 효율적으로 방어해야 합니다.
미국의 정예화 된 육군 32,800명. 즉, 1개보병사단: 13,500명(미군 기준) + 1개보병사단: 13,500명 + 군단본부: 400명 + 1개보병여단: 5,400명(미군 기준)을 한국에 추가 주둔시킨다면 주한 미군 방위비 분담금 9,451억원을 증액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보여집니다.
현재의 방위비 분담금을 약 10,389억원으로 계상(計上)하고, 정예화된 병력을 기준으로
한국주둔 미군병력을 28,500명으로 추산(推算)하여 환산(換算)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산식 : 10389 ÷ 28500 × (13500 + 13500 + (400 + 5400) × 0.05) × (1 - 0.05) = 9451억원.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한국군 6개해병사단 + 1개해병기갑여단을 창설하여 육군사단의 해안방어지역에 교체 투입하고, 주한미군
32,800명 증원에 따른 방위비 분담금 9,451억원을 증액시킨다면 대북한 경제제재 와 북한의 비핵화를 단계적으로 추진할 수 있다고 사료됩니다.
// ( KaKaoStory ID : vvcdw1962 ) // // ( v v c d w 1 9 6 2 ) //
[펀글] 이두아 "이제 '낙하산' 소리 듣지 않아 행복" - 매일신문 박상전 기자 (2020. 05. 31)
경북 의성이 본적인 이두아 변호사는 대구 달서구에서 태어났다. 신흥초, 경화여중·고를 다닌 대구 토박이다. 아버지는 김천여고 등에서 교사를 지냈고, 삼촌 두 명도 지역에서 공직에 있었다. 누가 봐도 대구 출신인 그녀지만 이번 선거 기간 꼬리표처럼 따라붙은 수식어는 '낙하산'이었다.
이 같은 수식어는 그녀가 서울대 법대에 합격하고 나서부터로 보인다. 그녀는 경화여고 설립이래 처음으로 서울대 법대에 합격했다. 입학 당시 적지 않은 선생님들은 '여자의 신분으로는 공무원이 맞다. 거기(서울 법대) 가지 말고 여성에게 적합한 다른 데로 진학해 지역에서 공무원이나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회유(?)도 받았다. 실제로 당시 서울법대 여대생 18명 가운데 대구 출신이 그녀를 포함해 3명이었으나, 나머지 2명은 사시에 응시하지 않았다. '남성 법관' 이미지가 지배했던 일부 지역 정서 때문이다.
그녀는 "머리 똑똑한 대구 여자애가 생소한 중앙 법조계에 들어가 고생할 것 같아 선생님들이 걱정스러운 마음에 그런 말을 한 것 같다"며 "하지만, 그때 제가 도전하지 않았더라면 여전히 서울 서초동 법조계에는 대구 출신 여성들을 위한 자리를 많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우려와 달리 그녀의 법조 생활은 순탄했다. 탄탄한 인맥과 깔끔한 일 처리 덕분에 사건 의뢰자들이 줄을 이었다. 서초동 전체에서도 수임료 상위에 랭크되는 인기 변호사였다. 그녀의 명성은 방송계까지 알려져 시사프로의 패널로 이어졌고, 일부 식당 주인들은 그녀가 올 때면 사인을 받아 입구에 걸어둘 정도였다. 그런 그의 위상은 18대 비례대표 국회의원 입성까지 탄탄질주였다.
그녀는 서울에서 경험을 쌓으면 곧바로 대구에 내려올 생각이었다. 그런데 국회에 입성하다 보니 중앙당 업무에 치여 대구로의 이사 예정이 다소 미뤄졌다. 19대 국회 불출마한 뒤엔 내구 계획을 제대로 실행하려 했으나, 이번엔 어머니의 암 투병이 발목을 잡았다. 서울 삼성병원에서 수 차례나 수술을 받은 어머니를 그녀가 서울에서 모시며 병시중을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21대 총선에서도 낙천 후 곧바로 대구에 둥지를 틀지 못했던 이유도 어머니의 투병이었다. 미래통합당 경선에서 떨어진 그녀는 어머니에게 마지막 수술을 권하면서 잠시 서울에 머물렀다. 하지만 이미 노환으로 쇠약해진 어머니는 수술을 포기했다. 긴 설득이 소용없게 돼서야, 그녀는 지체없이 어머니를 모시고 대구로 내려왔다.
달서구 법조타운에서 변호사 활동을 시작했으나 아직 변변한 간판을 달지 못했다. '길일을 받아 제대로 개소식을 해야 한다'는 어머니의 요청 때문에 '길일'을 기다리고 있다.
수입은 서울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줄었다. 수임료 자체도 그렇지만 일면식 있는 주민 간 수임이면 '면이 받쳐서' 맡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제가 비례대표에 입성한 것만 봐도 여성으로서, 또 대구경북 출신으로서 일종의 특혜를 받은 것입니다. 이제는 제가 받은 혜택에 보은할 차례입니다. 항상 그리던 대구 생활이 이제야 실현돼서 너무나 기분 좋습니다. 더이상 낙하산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는 현실은 더욱 기쁘게 합니다."
psj@imaeil.com
(사진 설명) 4·15 총선에서 낙천한 이두아 변호사는 고향인 대구에 뿌리를 박은 뒤 "더이상 낙하산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는 현실이 기쁘다"고 말했다. 매일신문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