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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 생긴일(20)

정현정 |2004.02.17 16:21
조회 503 |추천 0

 

상혁과 현정은 부드러운 바람을 맞으며 공원을 거닐었다.


“저...현정씨!”


“네?”


“흠...흠...아닙니다.”


“네? 뭐가요?”


상혁이 멈칫멈칫 무언가를 말하려다 말자 현정이 상혁을 궁금하다는 듯 쳐다봤다.


“에...이 아무것도 아니예요. 그냥 어색해서 그런겁니다.”


“아...그랬군요. 전 또 저한테 뭐 하실말씀이 있나했죠.”


<하고 싶은 말이야 너무 많지! 널 붙잡고 쏟아내고 싶은 말이 내 가슴 가득한데...>


“저...상혁씨!”


“네?”


“그거 알아요? 상혁씨 눈 참 슬퍼 보인다는거. 입은 웃고 있는데, 눈은 울어요. 무슨 사연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상혁씨 눈...그 슬퍼보이는 눈이 제겐 낯설게 느껴지지가 않네요. 제가 왜 그런 생각이 드는지 저도 알 수는 없지만 말이예요.”


낯설지 않다는 현정의 말에 상혁은 순간 흠칫 놀랐다.


“그래요? 제 눈이 그렇게 슬퍼 보였어요? 사실...현정씨한테 분위기 있어보이게 우수에 찬 눈 보여주려고 일부러 힘줘서 눈물 고이게 한건데...현정씨가 그렇게 봤다면 성공했네요.”


상혁이 그렇게 말하며 웃고 있었지만, 현정은 꼭 그런것만은 아닐거라고 생각했다.

역시나 상혁의 눈은 슬퍼 보였기 때문이다.


“현정씨 우리 저기 저 나무까지 누가 빨리 달리나 내기해요. 지는 사람이 점심사기.”


“좋아요.”


현정은 상혁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달리며


“시작.”이라고 소리쳤다.


“어...그런게 어딨어요.”


헉...헉헉...상혁은 가쁜숨을 몰아쉬고 있었고, 현정은 나무에 기대 여유롭게 휘파람을 불고 있었다.


“현정씨...반칙이예요.”


“반칙은 무슨 전 시작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뛰었다구요.”

“늦은 사람 잘못이죠.”


“하하하하...”


이 얼마만에 들어 보는 현정의 맑은 웃음소리인가?

상혁은 현정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잠시나마 행복감에 젖어들었다.


“상혁씨가 진거예요. 점심 뭐 먹을까요? 아주 비싼 걸로 먹을껀데...”


“저...이젠 가난하다구요. 적당한 걸로 골라 주세요. 아가씨~”


“쩝. 오랜만에 비싼음식 먹어보나 했더니만...”

“그래. 내가 봐 줬다. 담엔 안봐줄꺼예요.”


“ 하하”


“농담입니다. 오늘 아주 거하게 제게 한턱 쏘죠.”



“비싼 것 드시고 싶다고 그랬잖아요.”


“전 이거면 충분해요. 오늘 라면이 무척이나 먹고 싶었거든요.”


현정은 오랜만에 맛보는 라면이라 맛있었고, 상혁은 현정과 함께 먹는 라면이라 더욱 맛있었다.


“상혁씨...잘 먹었어요. 다음엔 제가 맛있는 점심 대접할께요.”


“별말씀을요. 제가 내기에서 진거라 사건데요. 뭘”



“어디 갔다와?”


“어...일찍 들어왔네? 왜 이렇게 일찍 들어왔어?”


“당연히 너 심심할까봐 놀아주려고 정신없이 일하고 들어온거지.”


민서는 현정이 혼자 심심할까봐 중요한 일만 대충 처리해 놓고 집에 들어온 것이다.


“오늘 심심하지 않았어? 어딜 혼자 돌아다니다 온거야?”


“그냥...여기저기...돌아다녔어. 산책도 하고 점심도 먹고.”


“그래? 잘했어. 괜히 걱정했나보다. 혼자 집에 그냥 있을까봐 온건데...”


“고마워 민서야.”


쪽~


“요건 고마움의 표시야.”

현정은 민서의 볼에 수줍은 소녀가 뽀뽀하듯 입술을 살짝 댔다가 뗐다.


“에게...이게 뭐야 할려면 좀 찐하게 해주라.”


“안돼요. 아저씨...또 응큼한 생각한다. 나 오늘은 정말 쉬고 싶어. 접근 금지야”


“정말? 피..알았다. 모.”


민서는 네살박이 어린아이가 투정하듯 귀엽게 입을 삐쭉거렸다.


“으...이구...우리 아가 삐졌어? 올해 몇 살이야? 어디 가서 올해로 제 나이 서른입니다. 라고 말하면 안돼. 알았찌?”


현정은 어린아이 달래듯 민서의 엉덩이를 토닥였다.


이렇게 일상적인 행복이 이들에게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될까?


민서는 현정과 보내는 시간들이 즐겁고 행복하기는 했지만, 한편으론 현정의 기억이 돌아와 자신을 왜 속였냐고 물을까봐 한시도 편안하게 지낸적이 없었다.


민서는 늘 기도했다.


하나님을 믿지 않았던 민서였는데...종교적인 힘이라도 빌어 현정을 붙잡아 두고 싶었던 민서는 현정을 영국으로 데려온 첫날 처음으로 기도라는 것을 했었다.


<하나님 제가 나쁘다는 건 압니다. 그렇지만, 제가 사랑하는 한 여자를 지키고자 이렇게 당신께 도움의 손길을 보냅니다. 도와주십시오. 저는 이미 한 여자에게 죄인입니다. 그녀를 속이고 그녀를 제 것으로 만들었지만, 전 두렵습니다. 그녀가 제 곁을 떠날까봐 두렵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저 혼자 남겨질까봐 두렵습니다. 도와주십시오. 당신이 내리는 어떤 벌도 다 받겠습니다. 그녀만 제 곁에 있게 해 주십시오. 압니다. 저의 이기심 이라는거... 하지만, 이젠 정말 그녀 없이 저도 살수 없습니다. 나중에 죽어서 지옥에 떨어지라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그녀만은 빼앗지 말아 주십시오.>



“가...지 말아요.”

“가지 말아요. 날 두고 가지 말아요.”

한동안 꾸지 않았던 그 꿈을 다시 꾸나보다.


민서는 가지 말라고 소리치는 현정을 흔들어 깨웠다.


“현정아! 현정아!”


“헉!”


“또 그 꿈 꾼 거야?”


“응! 다시 또 그 사람이 보여.”


현정은 눈물을 훔쳐내며 서럽게 울며 민서의 가슴에 안겨왔다.


“괜찮아. 꿈일 뿐인데...뭘.”


“흑흑흑. 알아 그렇지만, 왜 이렇게 슬픈지 모르겠어. 민서야 나 좀 꼭 안아줘.”


민서는 흐느껴 우는 현정을 꼭 안아주었다.


슬픈 눈동자 누구와 닮은 그 눈동자

현정은 꿈에 보았던 눈을 생각하며 이내 상혁은 슬퍼 보였던 눈을 떠올렸다.


<상혁씨 눈이 슬프다고 느껴서 또 다시 그 꿈을 꾼 건가?>


현정은 상혁의 눈과 꿈에 보았던 그 슬퍼 보이는 눈이 닮았다고 생각하면서, 또다시 그 꿈을 꾼 건 상혁의 슬퍼 보이는 눈 때문이였을거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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