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에 못박 힌 예수는 한 명이 아닌, 여러 명이었다?
십자가에 못박 힌 예수는 한 명이 아닌, 여러 명이었다?
3박 4일의 일정으로 남도여행을 마치고 나는 어제 서울로 돌아왔다. 이번 나의 여행 목적은 조선시대 절개를 굽히지 않았던 선비이며 관료였던 한 역사적 인물인 K의 행적을 찾는 것이었다. 내가 그 인물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는 이유는 그 역사적 인물의 후손들이 오늘날 안타까운 사정이 있어 직접적 공개되기를 꺼려하기 때문이다.
당시 K는 반란의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죽었지만, 그는 임금에 대한 변함없는 충성심과 절개를 지켰던 사람이었다. 다행히 후대에 그의 무죄가 밝혀지고 박탈된 관직도 복원된다. 그리고 임금으로부터 휘호를 하사받아 사당에 현판으로 남겨지는 등 K의 높은 충절은 역사에 기록되어 전해지게 되었다.
마침 내가 B읍에 도착했을 때, K의 시제(時祭)가 있었다. 그런데 시제에 참석한 직계 후손들은 모두 60대 이상의 나이 많은 노인들 대 여섯 명뿐이었다. 역사의 기록에 남겨진 K의 훌륭한 업적에 비하여 너무도 초라하게 느껴지는 시제였다. 동네의 마을 회관에서 허리가 굽어진 늙은 아낙들이 만든 제사 음식을 사당까지 옮기는데도 무척 힘겨워 보였다.
백발(白髮)의 남자 노인들은 제상(祭床)에 고기와 생선을 어동육서(魚東肉西)의 격식에 따라 올려놓고 과일과 나물도 차례로 올렸다. 그리고 초헌관복을 갖춰 입고 향불을 피우고 조상에게 술을 따르고 절을 했다. 나는 이 광경을 카메라 영상으로 남겨두고 싶었다. 그러나 그중에 최고 연장자가 나에게 다가와 촬영을 중단시켰다.
그는 어둡고 무거운 표정으로 “멀리서 찾아온 손님에게 정말 죄송하지만, 오늘은 그 카메라는 치우시고 그냥 (시제를) 지켜보시는 것으로만 만족해 주시면 감사하겠소. 다 끝나고 내가 그 이유를 말해 드리겠소. 너무 서운하게 생각하지 마시오.”라고 말했다. 나는 카메라의 전원스위치를 끄고 조용히 뒤로 물러났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음복(飮福, 제사를 마치고 제사에 참석한 후손들이 제수나 제주를 먹는 일.)을 마치고, 다시 최고 연장자는 다른 방에 음식을 장만해 놓고 나를 불렀다. 나는 그와 단 둘이 방안에 앉았다. 그의 얼굴에는 거뭇한 죽음 꽃이 여기저기 피어있었다. 그는 “집안에 젊은 후손들이 많이 있지만 조상들에 대해 무관심한 실정이라 이렇듯 사람이 없어 참으로 부끄럽소."라고 말했다. 자랑스러운 선조가 있음에도 후손으로 그 선조의 영정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배어 있는 말이었다.
그는 "솔직히 나는 개신교에 대해 불만이 많소. 그래도 천주교는 조상들을 존중해서 제사를 허용하는데, 개신교는 그렇지 않소. 이래가지고, 나중에 한국에서 조상을 모시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참으로 걱정이오."라며, "해방 이후 개신교는 미국의 주도로 우리 사회 현실을 무시한 채 도입되어, 우리의 모든 것을 부정하게 된 것 같소."라고 꼬집었다.
불현듯 나는 그의 말을 들으면서 니체가 “신은 죽었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여기에서 니체가 신이 죽었다는 의미는 무신론적 입장의 주장이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하고 무비판적으로 신을 믿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종교가 아닌 광신(狂信)이요. 광신은 신을 모독하고 스스로를 모독하여 결국 신을 죽인다는 의미이다.
물론 자신의 정체성은 단순히 현재에서만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연속성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일체 과거를 부정하고 심지어 조상에 대해 무관심하면서 자기의 정체성을 찾겠다고 하는 것은 나무에 뿌리를 잘라내어 버리고 열매가 맺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어리석은 것이 아니고 그 무엇이랴.
그는 “잘 모르겠으나, 예수는 부모에게 제사지내는 것도 우상숭배라 하여 자신부터 없앴다고 들었소. 그것이 관행이 되어 오늘날 교인들이 조상에 대해 외면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깝소.”라고 말했다. 즉, 예수가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것은 조상에 대해 모두 부정하자는 취지가 아니라 과거의 잘못된 관행을 일색하자는 의미인데, 오늘날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그들 스스로 잘못된 관행을 다시 만들어버리는 어리석음을 자행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사실 인류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사람은 예수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역사적으로 K와 같이 자신의 소신을 지키고 많은 사람들을 위해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린 훌륭한 인물들은 얼마든지 많다. 그럼에도 단순히 조상신도 귀신이라 섬기고 우상을 섬기는 일이라 하여 금(禁)해야 한다는 교리를 단순히 적용시켜 그의 업적마저 외면하는 이와 같은 현상은 어리석은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예수가 살아 있을 때, 각종 우상을 섬기는 종족들이 많아 무차별적인 살육이 자행되고 세상이 어지럽고 혼탁하니 예수는 하나의 정립된 교리로 세상을 평정하고자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오늘날 한국의 교인들은 상황논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조상들마저 귀신으로 취급하여 외면하고 있으니 가히 슬픈 일이다.
불교는 자애(慈愛), 유교는 인(仁), 기독교는 사랑을 표방한다. 이 삼교의 공통점은 사랑이다. 사랑이란 상대에게 닫힌 마음이 아니라 열린 마음이다. 그럼에도 자신 이외의 다른 것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로 사랑을 운운하는 것은 결국 자기모순인 것이다.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떠돌고 있을 때, 노인이 책 한권을 꺼내어 내 앞에 펼쳐 보인다. K의 일가 족보와 업적이 한자로 기록된 책자였다. 내가 “사진으로 찍어 보관해도 되겠습니까?”하고 묻자, 노인은 웃으며 “나의 조상님들을 직계 후손보다 귀히 여겨 찾아와 주시니 정말 고맙소.”라고 대답했다. 노인이 책장을 넘기기 시작하고 나는 셔터를 눌러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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