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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암 말기 언니를 하늘로 떠나보낸지 한달이 되었네요

ㅇㅇ |2020.09.14 22:15
조회 76,670 |추천 560

예전에 간암말기 언니를 호스피스 병동으로 보내는 것에 대한 고민 글 쓴 사람이에요. 사실 채널 설정이 맞지 않지만 그냥 제일 첫번째로 있는 것으로 했어요. 이해해 주세요.
그 때 댓글 써주신 분에 호스피스 병동 간호사님의 조언을 보고 가족들과 바로 응급실로 갔습니다. 결과는 황달수치도 많이 높고 복수양도 많고 피수치도 너무 안 좋고 간성혼수에 섬망이 확실하다고 하셨어요. 병원측에서는 호스피스로 보내는 게 맞다고 하셔서 일단은 호스피스 대기를 걸었고 일주일 가량 대기하다가 들어갔어요. 언니는 통증조절이 수월해지니 기분도 훨씬 좋아졌고 섬망증상도 많이 좋아졌어요. 여러가지도 바로바로 처리해주니 좋아하더라고요. 언니가 가족이 몸 닦아주고 대소변 처리해주는 걸 되게 창피하다고 싫어했거든요. 사실 그때 헛된 희망을 좀 느낀 거 같아요. 왠지 언니가 괜찮아질거라는 기대요. 차라리 이렇게 좋아하니 일찍 데려올걸 이런 후회도 들었고요.
그러다가 떠나는 날 정신도 또렷하고 통증도 없는 채로 가족끼리 통화하고 만나고 하다가 새벽에 가버렸어요... 언니가 저랑 조카한테 자기가 죽는 걸 보여주기 싫었나봐요. 진짜 둘째날까지는 어땠는지 누가 왔다갔는지 기억도 잘 안나요. 마지막으로 언니 얼굴을 봤는데 그냥 자고 있는 것 같아서 통증고통없이 너무 편안해 보였어요. 그렇게 지금까지 엄마아빠 챙기고 언니가 떠났다는 실감이 안 났는데 오늘 한달이 되니 정말 미칠 것 같아요. 형부도 조카 챙기느라 왔다가 지난주부터 와서 통곡을 하고 갔어요. 아직도 져희 집에 언니가 살아 있는 거 같다고요. 제가 지금까지 누구를 떠나보낸 적이 없어서 너무 어렵네요. 이별이 힘든 건 알았지만 어떻게 이겨내야할지 언니를 어떻게 가슴이 묻어야할지 앞이 캄캄해요. 암튼 두서없아 썼는데 이전 글에 조언 많이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수560
반대수3
베플|2020.09.15 04:13
시간이 약이에요. 슬프면 슬픈대로 슬퍼하세요. 다만 사진보고 말걸고 하면 안된다고 들었어요. 전 2003년도에 아빠가 뇌출혈로 하룻밤만에 돌아가셨어요. 혼자 자취하며 진짜 2~3년간 매일밤 울었어요. 그 시기에는 혼자 생각만해도 눈물이 쏟아지더라구요. 기차타고 가다가도 울고 그랬는데 3년 넘어가니 흐려지더라구요. 눈물나는 횟수도 줄어들고 괜찮아지데요. 그런데 20년이 코앞인 요즘도 누군가 이렇게 이별로 아파하는걸 보면 같이 생각나면서 눈물이나요. 울컥하기도 하구요. 첨엔 아주 멀리 연락 안닫는곳으로 출장가신 느낌이었어요. 힘내세요.
베플ㅇㅇ|2020.09.14 22:22
이 글 맞죠? 그 때 사람들 의견이 많이 갈렸는데 전 호스피스를 그리 나쁘게 보지 않아서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힘드실지 이해됩니다.. 부디 기운차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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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플ㅇㅇㅏ|2020.09.15 15:03
우리 아빠 호스피스 병실로 옮긴 첫날에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신발을 좀 달라고 함. 내심 당황하며 병원에서 신는 슬리퍼를 내줬더니 '이거 말고.. 내가 신고 온거' 하심. 사실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기기로 하고 이젠 정말 끝이구나.. 하는 생각에 엄마가 입원 할 때 신고온 운동화랑 옷이랑 집으로 전부 들려보내서 내가 집에 가져다 놨었음. 운동화는 왜 찾아 그냥 이거 신어 아빠.. 하니 집에 가야지.. 라고 함. 차마 내 입으로 신발 없어. 아빠이제 그거 못신어 집에 못가.. 라는 말이 떨어지지 않아 엄마 불러옴. 엄마가 그냥 여가 있어 신발 없어.. 라고 하니 그제서야 '그래..?' 라고 하며 딱 허탈한 표정으로 침대에 도로 털썩 누움. 그 후 3일 뒤 돌아가셨어요. 마지막으로 집(고향)에 갈 수 있는 기회라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아빠 돌아가시고 바로 도망치듯 고향집에 내려갔는데 첫 날 꾼 꿈에서 집 안으로 빛이 환하게 들어오고 내가 문을 모조리 열으며 뭔가를 열심히 찾고 있었습니다.(집에 문이 좀 많아요) 분명 집안 어딘가에 있다고 생각하며 찾다가 꿈에서 깼습니다. 아빠가 집으로 돌아왔구나 싶더라구요. 처음 한동안은 아빠가 돌아가신게 실감이 나지 않았는지 잘 지냈습니다. 눈물도 안나더라구요. 근데 2달이 지나 어느 날 한 밤 중에 동네 길냥이들에게 밥을 주고 혼자 언덕길을 내려가고 있는데 아무도 없는 적막속에서 야경이 눈에 들어왔는데 갑자기 너무나 지치더군요. 아빠가 돌아가시기전에 내게 했던 말이 따올라서 아빠 인생이 너무 불쌍해서 그제서야 눈물이 났습니다. 혼자 길에서 엉엉 울다가 눈물 닦고 집으로 돌어갔어요. 나 보다는 엄마가 더 힘들테니까요. 3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저 날 신발을 꺼내주지 못한게 제일 마음에 남네요. 그래도 살아있는건 누구나 언젠가 끝이 있으니까 그 때 되면 모두 다시 만나겠구나.. 그 때 오며 가며 인사나 해야지 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누구나 어차피 언젠가는 끝 날 여행중이라 생각 합니다. 비록 짧은 여행이었더라도 끝을 맺은 모두가 수고했다고 생각해요.
베플ㅇㅇ|2020.09.15 20:15
저희 아버지 췌장암말기세요 올해 1월에 6개월 사신다는 얘기 듣고 실감 안 났어요 9월인 현재 담당 교수님이 호스피스 권유 하시더라구요 항암치료도 이제 효과 없다고 중단했어요 그걸 다 들으신 아빠가 교수님께 얼마나 살 수 있냐고 물어보셨어요 2-4개월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처음 6개월 들었을 때는 실감이 하나도 안 나던게 지금 뼈만 남으신 아빠 보니까 너무 실감이 나요 아빠 정말 살고 싶으셔서 힘든 항암치료도 잘 뎐디셨는데..모든걸 듣고 받아 들이신 아빠의 심정이 어떨지 가늠도 안가서 혼자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전 지금부터 마음의 준비를 해야해요 다른 것 보다도 아빠가 정말 아프지 않게 가셨으면 좋겠어요..여기 댓글들 보니까 저도 그냥 제 얘기 적고 싶어서 댓글 남깁니다..아빠 가시고 나면 저에게도 시간이 약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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