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상처받는게두려워요

임금님귀는... |2020.10.13 17:44
조회 215 |추천 0

살아오면서 늘 입에 달고 사는 말
힘들 때마다 달고 사는 말
"나보다 더 힘든 사람들도 힘내서 살아가는 데
나라고 못살것 없어 열심히 살자"
이러면서 스스로를 위로하며 거의 40년을 살면서
쓰러지면 훌훌 털고 일어나기를 반복하면서 지금껏 버티며 살아오고 있네요 다들 그렇게 사시고 계시죠? 나만 왜 ...나만 이렇게 살까 그런 생각도 가끔 하면서 말이죠...

여기에 글을 쓰면 제 속이 좀 편안해질까 싶어서 지금껏 살아온 저의 인생이야기를 제목처럼
단 한번도 100% 꺼내보지 못했던 이야기를 여기에
글을 남기면 조금은 위로가 될까 싶어 두렵기도 하지만 써보려고 합니다.

저는 사랑과 축복속에서 태어난 다른 아기들과 달리 친부모에게서 어떤이유인지 모르나 버려져 그 젖먹이는 이집저집 돌고 돌아 지금의 부모님 집에 업둥이로 오게 되었습니다.
위로 아들만 있던 지금 부모님은 그 당시 아버지의 정관수술로 인해 더이상 자식을 둘수 없는 상태에 친구분들의 딸들을 보고는 딸이 무척이나 갖고 싶었던 아버지...그렇게 저와 부모님은 인연이 닿아
사랑받으며 자랄꺼라 생각하실수 있을겁니다.

저의 어린 시절에 8세이전의 기억은 드문드문 아버지와 낚시도 가고 여행도 다닌 행복한 기억이 있기도 합니다. 허나 그 이후의 아버지는 알콜중독자에 가정폭력의 가부장적인 아주 무섭고 두려운 존재였었지요. 그 폭력이 어머니가 처음 피해자이시면서 저희 남매를 본인의 가정을 지키기위해 가정폭력을 견디며 생활마저도 가장역할을 하면서 살아오셨죠 그렇게 저는 그 광경을 지켜보다 결국 아버지와 때로는 어머니의 폭력을 받으며 사랑을 받는게 아니라 폭언 과 폭력이 난무하는 가정에서 자라게 되었지요...
그 환경속에서 저의 어린 학창시절이 좋을리는 없겠지요 어느 정도 지나지 않아 친한던 친구들도 하나 둘씩 멀어지더니 요즘 말로 왕따가 되어 늘 놀림거리가 되었죠"쟤는 더러워~ 냄새나 집에 돈도 없데~"
학교에 육성회비 단돈 500원 하던 시절 그 단돈500원도 저는 어머니에게 달라고 요구하지 못했습니다. 불우이웃돕기성금 내라고 말을 전했던 저에게 하시는 말은 우리집이 불우이웃이야 라는 말이 나오고 난 후부터는요 학교측에 돈을 내야 하는 날이 되면 전 학교를 가지않고 동네를 맴돌았었죠

그렇게 상처에 상처를 받던 시절 6학년 담임선생님을 잊을 수 없을것입니다.
좋은 일이 있었냐고요 아니요 더 상처를 주셨지요
친구들 앞에서... 창작동화작가셨던 그분은 저에게 친구보다 더 상처를 안겨주셨지요 어른이시면서...
학교와 저희집은 100미터 거리도 안되는 위치에 있었죠 그 시절은 급식이 유료였는데 위에 말했든이 저희 어머니께서는 집이 가깝다는 이유로 급식을 하지않고 집에서 먹으라고 했고 그 이유를 선생님께 전했지만 단체성으로 강제적인 급식을 하게 하셨고
급식비를 청구하셨죠 따로 불러 1대1 대화가 아닌 친구들이 보는 그 자리에서 또 안 내니? 에휴 꼭 받아와 ... 따뜻한 눈길한번 측은한 눈길 한번 ...선생님은 정작 동화작가이시면서 저를 그렇게 상처를 주셨죠 놀리던 친구들도 그 일이 있고 난 후 더욱 더 비난과 놀림을 줬죠 그렇게 어린 학창시절을 보냈어요 "와~바이러스다" "거지다" "더러워~ 훠이훠이 꺼져" 우연히 옷깃에 살짝 부딪히면 "으악~ 썩는다 " 저와 부딪힌 친구들도 놀림상대가 되었죠... 친구들의 구타와 폭언, 양부모의 폭력과 폭언 여기까지의 일이 다가 아니였지요 ...
동네 할아버지의 용돈미끼로 9살부터 11살이 된 3년동안 저와 동네에 다른 여동생까지 추행을 만행하려했던... 용돈을 주겠다며 산속으로 유인해 몇번이나 추행을 감행했었죠 그 동네 여동생은 모르겠으나 저는 그렇게 당하고도 혹시나 진짜 주실까 그 돈이 뭐라고...따라가서 당하고 또 당하고 차마 부모님께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 그 할아버지를 피하면서 도망다니면서 지낸 시절... 한건물에 살다보니 자꾸 마주치고 끌려가고 내가 부모님께 말하지 못한다는걸 알고는 더욱 강제로 추행을 서슴치 않았죠 그 할아버지가 이사를 가게 되고나서야 그 일이 생기지 않았지요...
참.. 안격고 살아도 되는데... 여기까지만 적었지만
거리에 쫒겨나 길에서 노숙하기도 했고 하루가 이틀이 되고 그렇게 전 집이 아닌 거리에서 잠을 자기도 했지요 현관 신발들을 요삼아 깔고 누워 자다 들키는 날은 발에 밟혀 맞고 물탱크 구석에 그 좁디좁은 곳에서도 쭈끄려 자기도 했으며 한겨울에는 추위를 피하려 보일러실 배관호수에 앉아 자다 머리채 잡혀 두들겨 맞기도 했죠 배가 고픈 날에는 거짓말로 동네슈퍼에 부모님심부름이라며 라면같은걸 외상으로 구입해 부셔먹기도 했죠 몰래 집에 들어가 쥐새끼마냥 밥만 먹고 나오기도 했는 나날... 지금은 그 시절 그랬지 하며 웃기도 하지만 너무나 두렵고 무섭고 아프고 힘든 나의 어린시절... 중학교도 못가는건 당연지사
미용기술배워 미용사나 되라고 여자가 무슨 중학교냐며 등록금줄돈 없다고 모른체 하시던 부모님... 초등학교 졸업식날 당당히 졸업식 의자에 앉지도 못하고 제일 뒤에 다른 친구들 부모님들 서있는 그 곳에서 지켜보다 끝나고 집으로 가려고 신발장에서 실내화를 갈아신으려는데... 그때 제 신발장에 하얀봉투가 ... 친구이름...그리고 금액이 적힌봉투... '이 돈이면 중학교 갈수 있는데... ' 저 망설임 없이 그 봉투를 들고 도망치듯 학교를 빠져나와 곧장 은행으로 갔습니다 . 등록금 내는 마직막 날이였거든요 ...욕할수 있지요 분명 잘못된 행동이걸 알면서도 했으니까... 미안함 ...아직도 그 친구에게 사과 못하고 있지요... 그친구는 졸업후 얼마지나지 않아 머나먼 타국으로 이민을 가버렸거든요...여기서라도 사과하고 싶네요... 그때 내가 그랬는거 정말 돌려주지 못한거 정말 미안해... 너의 돈으로 내 중학교 추억이 만들어지고 나의 단짝친구들을 만들수 있었어... 정말 정말 미안하고 고마워...

여기까지가 초등학교까지의 저의 이야기랍니다...

그 이후의 삶도 만만치 않게 스펙타클하지요
아마 여기까지의 삶은 조금 흔하다면 흔한 이야기일수도 있겠어요 그래도 그 누구에게도 못하는 저의 이야길 조금 털어내니 편해지는것 같네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기회가 된다면 그 이후의 이야기도 올릴 날이 오겠지요~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