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25일(음력 9월9일)은 유교 전통명절 중양절입니다.유교경전 예기에는 국유황화(鞠有黃華:국화는 노란 꽃이 되고)로 언급.중양절 전후로는 오래동안 전국에서 국화를 즐기는 시기입니다. 신라이후 국가의 중요 명절로 이어진 중양절. 조선시대에는 절제(節製)라 하여 유교명절 중양절에 과거시험을 보았습니다.
1]. 중양절(重陽節)에 대한 개요(槪要).
중국에서는 한나라 이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당송(唐宋) 대에는 추석보다 더 큰 명절로 지켜졌다고 합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절제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조선 시대에, 성균관과 지방의 유생을 대상으로, 명절인 인일절(人日節)ㆍ상사절(上巳節)ㆍ칠석절(七夕節)ㆍ중양절(重陽節)에 실시한 과거.
한국 세시 풍속사전에 의하면 이렇습니다. 중국 당나라에서는 중양절이 되면 나라에서 태학(太學)의 학생들에게 겨울옷을 하사하는 의식이 있었다. 중양절 무렵이 겨울을 준비하는 적절한 때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중양절에는 국화주, 밤단자(밤떡)등을 즐겨 먹는다고 합니다.그리고 유자(柚子)를 잘게 썰어 석류알, 잣과 함께 꿀물에 타서 마시는 화채(花菜)’도 절식(節食)으로 먹었습니다.
. 필자 주 1). 밤단자가 없으면, 약밥에 밤이 있는것을 골라 드시면 무방합니다.
. 필자 주 2-1). 인일(人日): 음력 정월 초 이렛날. 표준국어대사전이 출처.초이렛날.
. 필자 주 2-2). 상사(上巳): 음력 삼월 초 사흗날. 표준국어대사전이 출처.사흗날.초사흗날.
. 필자 주 2-3). 칠석(七夕): 음력으로 칠월 초이렛날의 밤. 표준국어대사전이 출처.
. 필자 주 2-4). 중양(重陽): 세시 명절의 하나로 음력 9월 9일을 이르는 말. 이날 남자들은 시를 짓고 각 가정에서는 국화전을 만들어 먹고 놀았다. 표준국어대사전이 출처.
유교의 최고신이신 하느님(天)을 중심으로 계절을 주관하시는 신들이신 오제(五帝)께서 베푸시는 아름다운 절기(상강)와 명절(중양절). 상강(霜降)절기의 단풍철, 중양절(重陽節)의 국화철이 오랫동안 한국의 가을을 아름답게 수놓게 됩니다. 유교 명절이나 유교문화 24절기는 유교의 관습과 전통이므로, 24절기나 명절때, 절에가면 않됩니다. 종교적으로 볼 때, 불교는 하느님.창조주를 인정치 않고, 창조주 브라만을 내리깔고 덤비는 부처Monkey를 중시하며 절에서 예불하는게 불교의 본래 위치며, 조상제사도 거부해 온 무군무부(無君無父)의 금수입니다.
2]. 유교 경전(儒敎經典) 예기(禮記)에 나타나는 음력(陰曆) 9월(月)의 국화(菊花).
季秋之月....
鞠有黃華...
국유황화(鞠有黃華)
국화는 노란 꽃이 되고...
국은 菊과 통함. 오색 중 황은 중색(中色)으로서 귀하게 여기므로 특히 황화라고 했다.
. 출처:신역(新譯) 예기(禮記),역해자(譯解者):권오돈, 발행처:홍신문화사,2003.10.30
3]. 중국에서 중양절의 유래. 한국은 신라이후 큰 명절.
중양절은 중국에서는 한나라 이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당송(唐宋) 대에는 추석보다 더 큰 명절로 지켜졌다.
등고회(登高會)는 중양절의 중요한 행사인데 이날 우산(牛山)에 올라 눈물을 흘렸다는 제나라 경공(景公)에 대한 기록을 근거로 중국에서는 이미 전국시대부터 행해졌다고 주장한다. 또한 내려오는 전설에 동한(東漢) 때 앞날을 잘 맞추는 비장방(費長房)이라는 도인(道人)이 어느 날 학생인 항경[恒景, 桓景]에게 “자네 집은 9월 9일에 큰 난리를 만나게 될 터이니 집으로 돌아가 집사람들과 함께 수유(茱萸)를 담은 배낭을 메고 높은 산에 올라가 국화주를 마시면 재난을 면할 수 있네.”라고 하였다. 항경이 이날 그가 시킨 대로 가족을 데리고 산에 올라갔다가 집에 돌아오자 집에서 키우는 가축들이 모두 죽어 있었다고 한다. 중양절에 수유 주머니를 차고 국화주를 마시며 높은 산에 올라가는 등고 풍속은 이에서 비롯되었다고도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수유 주머니를 차는 것은 나쁜 기운을 제거하기 위해서이고, 국화주를 마시는 것은 노화 현상을 막기 위한 것이라는 기능적인 해석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신라 이래로 군신들의 연례 모임이 이날 행해졌으며, 특히 고려 때는 국가적인 향연이 벌어지기도 했다.조선 세종 때에는 중삼 곧 3월 3일과 중구를 명절로 공인하고 중구를 무척 중요하게 여겨 늙은 대신들을 위한 잔치인 기로연(耆老宴)을 추석에서 중구로 옮겼으며, 또 중양절에 특별히 과거시험을 실시하여 이날을 기리기도 하였다.
. 출처: 중양절[重陽節] (한국세시풍속사전)
.필자 주 3). 음력(陰曆) 역법(曆法)으로 가을은 맹추지월(孟秋之月), 중추지월(仲秋之月), 계추지월(季秋之月)의 석달이 있는데, 季秋之月은 마지막 가을의 달로, 음력 9월을 말함.
4]. 필자의견.
1. 학설이나 이론들이 일치하지 않을때는, 일반적으로 국가에서 발행하는 여러가지 교과서나, 기타의 검인정 교과서가 우선이 되겠습니다.(국사 편찬위의 국사, 다른 형태의 세계사, 국가의 公敎育인 삼강오륜 교육등 교과서 공교육이 우선). 그리고 용어에 관련하여서는 국립국어원의 국어사전이 우선되고, 한자사전 및 중국어사전등도 병행하여서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유교관련용어로는 유교 경전인 오경(五經)과 사서(四書)가 중심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용어나 학설에 관한 견해로는 국가에서 관여하는 국사교과서나 대통령령에 의해 발행되는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의 학설(삼국사기는 正史, 삼국유사는 전통적으로 野史의 관례도 반영하여야 할것)이 우선되어야 하겠지만, 시야를 넓혀볼때는 세계사 교과서나 다른 교과서도 중요하게 반영하여야 할것입니다. 수천년 인류문화를 담는 학설이나 이론에 관하여는 중국이나 로마제국.교황청, 그리고 漢字나 라틴어가 언제든지 중요하며, 국가주권을 반영할때는 해당국가의 국내법을 우선적으로 하면서도 국제법과 조화를 이루어야 할 것입니다.
2. 중양절(重陽節)이나 한로(寒露)나, 상강(霜降)이나 어디까지나 유교문화의 오랜 전통이니까, 유교를 모방하는 불교의 각종 유교명절(설날.추석, 입춘, 단오절,한식,칠월칠석, 중양절, 한로.상강,동지등의 유교전통 행사) 모방행사때, 유교의 여러 신(神)제사.조상제사등에 무의미하게 부근의 절에 찾아가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불교는 어디까지나 인도지역 브라만교의 창조주에 대항해 일어난 현재의 네팔지역 출신 부처에서 비롯된 Monkey사상이니까, 절 안에서 부처에 불공이나 드리는게 제대로 된 의식입니다. 인간을 창조하신[천생증민(天生蒸民)] 조물주이신 유교의 하느님(天)! 유교의 최고신은 하늘천(天, 태극과 연계되신 하늘 天), 하위신은 계절의 신, 해의 신, 달의 신, 별의 신, 우주 공간의 여러신, 산천의 신, 조상신등 많습니다. 악한 기운을 쫒아내는 유교명절 단오절의 창포(菖蒲)나 중양절의 수유(須臾)로 볼 때, 악령(惡靈)도 있습니다. 유교는 세계 4대 문명의 발원지중 하나인 황하문명의 시원유교(始原儒敎)부터 시작하여 중국 한(漢)나라란 강대국.문명국의 세계종교 유교(세계사적 견지에서 한나라때 동아시아 지역인 중국.한국.베트남.몽고지역에서 세계종교로 성립되어 한자와 함께 유교 제사, 유교 명절, 24절기, 유교 교육기관, 여러가지 유교 교육, 한문성씨의 사용등 여러 요소들이 어울려 동아시아의 정신적 구심적 역할을 해옴)로 이어져 다른 종교들과 달리 시원유교(始原儒敎)의 신관(神觀)에서 큰 변화없이 하늘천을 최고신으로 하여 여러 하위신도 같이 모시는 다신교(多神敎)측면의 신앙을 유지해온 종교입니다. 4대문명에서 시원적(始原的) 출발을 한 종교들은 다음과 같이 다신교(多神敎)적 측면이 있었습니다.
- 다 음 -
가. 메소포타미아 문명.
[ Mesopotamia civilization , -文明 ]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사이에서 발생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 발생지이다. 개방된 지리적 조건으로 수많은 민족의 이주와 정복, 이에 따른 지배자의 교체가 있었다. 지구라트라는 신전이 있었다. 왕 · 관료 · 전사가 지배 계층을 이루었으며, 평민과 노예가 존재하였다. 문화적으로는 함무라비 법전, 쐐기 문자, 태음력, 60진법, 현세적 성격의 종교 등의 문화적 특징을 지닌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가장 큰 정치 세력은 바빌로니아와 아시리아였다.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집트 문명의 비교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집트 문명의 비교 구분메소포타미아이집트공통점지형정치종교문화
전제적 신권 정치, 실용적 과학 기술 발달
개방적-이민족의 침입으로 왕조 흥망 거듭
폐쇄적-통일 국가 유지, 정치 안정 지속
수메르 인→아카드 인→아무르 인 →혼란 계속
고왕국→중왕국→힉소스 족의 지배→신왕국
현세적 다신교-점성술(천문학)
내세적 다신교-미라, 피라미드, 사자의 서
쐐기(설형)문자, 태음력, 60진법, 아치, 지구라트
상형 문자, 파피루스, 태양력, 10진법, 측량술, 외과 의학, 로제타 스톤
. 출처: 메소포타미아문명 [Mesopotamia civilization, -文明] (Basic 고교생을 위한 세계사 용어사전, 2002. 9. 25., 강상원).
나. 이집트문명.
[ Egypt 文明 ]
나일강 유역에서 형성된 문명으로, 기원전 3000년경 고대 이집트 왕조의 수립 뒤 알렉산더 대왕까지 이어진다. 폐쇄적 지형으로 오랫동안 통일을 유지하였고, 전제 군주인 파라오가 통치하였다. 사회는 파라오-신관 · 관료-서기 · 상인 · 공인-부자유 농민 · 노예의 피라미드 형태의 신분 구조를 보인다. 내세적 다신교를 섬겼으며, 상형 문자, 파피루스, 태양력, 측량술, 역학적 지식, 의학의 발달 등의 문화적 전통을 지녔다.
. 출처: 이집트 문명 [Egypt 文明] (Basic 고교생을 위한 세계사 용어사전, 2002. 9. 25., 강상원)
다. 인더스 문명.
대규모의 신전이나 묘는 없고, 곡물 창고나 대 목욕탕이 있다. 다신교 신앙과 신정 정치가 발달하였다.
. 출처: 인더스 문명[Indus civilization, -文明] (Basic 고교생을 위한 세계사 용어사전, 2002.9.25, (주)신원문화사)
a. 고대 인도의 브라만교.
브라만교
[ 婆羅門敎 ]
고대 인도에서 브라만 계급을 주축으로 성립된 인도의 민족 종교이다. 《베다》라는 성전을 근거로 하고 있지만, 체계가 뚜렷한 종교는 아니다. 인도 아리아 인이 B.C. 1500년경에 인도에 침입한 뒤 신봉한 민속 종교로, 넓게는 힌두교(인도교)에 속한다. 이 종교의 본질은 다신교이며, 《리그 베다》에서 발단하는 우주의 유일한 근본 원리의 탐구는 《우파니샤드》에서 그 정점에 이르렀다. 우주 유일의 근본 원리로서 브라만(범(梵))과 개인 존재의 본체인 아트만(아(我))이 상정되며, 결국 이 두 가지는 같은 것이라는 범아일여(梵我一如)의 사상을 형성하였다. 브라만교는 카스트 제도라는 엄격한 신분 제도에 바탕을 두었으며, 지나친 형식주의 때문에 비판받았다. 이러한 브라만교는 굽타 왕조 시대에 민간 신앙을 받아들여 당시 인도 전역에 교세를 떨쳤다.
. 출처: 브라만교 [婆羅門敎] (Basic 고교생을 위한 세계사 용어사전, 2002. 9. 25., 강상원)
b. 고대 인도 불교의 탄생 [ 佛敎 ]
기원전 6세기경 인도 북부 부다가야에서 싯다르타에 의하여 창시된 종교로서, 전통적인 카스트 계급 사회에서 브라만 계급의 횡포를 반대하고 만민의 평등과 자비의 실천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 출처: 불교 [佛敎] (Basic 고교생을 위한 지리 용어사전, 2002. 2. 5., 이우평)
c. 부처의 탄생지는 현재의 네팔 영토.
네팔불교
분류
문학 > 불교설화힌두교와 라마교가 혼재되어 있는 네팔은 불교에서 빼놓을 수 없는 성지 룸비니를 국경 안에 두고 있다. 부처님 탄생지 룸비니는 19세기 이전까지 매몰된 채 덩굴과 잡초만 무성했었다. 1896년 고고학자 퓨라 박사가 아쇼카왕이 세운 석주를 찾아내고 이곳이 룸비니임을 확인했다. 룸비니는 1967년까지만 해도 황폐한 모습의 유적지였다. 당시 이곳을 방문했던 우탄트(전 유엔사무총장)는 룸비니의 재건을 호소, 세계인의 호응을 얻어 이곳을 개발했다. 탄생의 성지 룸비니가 있는 나라 네팔에 처음 불교가 전래된 시기는 확실치 않다. 네팔불교의 상징인 스와얌브나트 스투파(塔)가 건립된 것이 1세기경이므로 이때에 이미 불교가 전래되었다고 할 수 있으나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는 주장이 우세하다. 이 탑의 양식은 밀교의 영향을 받고 있어 네팔의 불교 전래시기는 훨씬 하대로 추정된다. 네팔은 인도와 인접해 있지만 티베트와도 접경을 이루고 있다.
한때 네팔은 티베트의 지배를 받았는데, 이때 라마교가 자연스럽게 네팔에 뿌리내리게 됐다. 물론 네팔은 불교를 티베트로부터 전수받은 것만은 아니다. 오늘의 네팔불교는 곧 라마교를 지칭한다. 사원은 모두 티베트승려에 의해 운영되는 라마사원들이다. 살아있는 부처님으로 추앙되는 달라이라마는 티베트가 중국에 의해 공산화되자 라마승들을 데리고 네팔로 옮겨 왔다. 근년에 와서 티베트난민과 승려 수가 늘어나자 사원도 새로 지었다. 네팔의 불교문화는 대체로 말라왕조(1200-1750) 후기에 완성된 것이다. 네팔벨리에는 엄격한 구분이 없는 힌두사원과 불교사원이 2천5백여개에 달한다. 네팔불교에 대한 예비지식이 없는 순례자들은 힌두의 신상을 관음보살상이라고 참배하기도 한다. 네팔의 불교는 티베트에서 온 라마승들에 의해 명맥이 유지되고 있다. 스와얌브나트 사원은 소년불교학교를 운영하고 있으며, 학생은 2백여 명 정도다. 이들은 사원에서 합숙하면서 종교예절. 교리 외에 일반 중학과정을 배우고 있다.
. 출처: 네팔불교 (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 용어사전), 2012.)
5]. 여러 사전에 나타나는 중양절.
1.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 나타나는 중양절(重陽節).
명사 민속 세시 명절의 하나로 음력 9월 9일을 이르는 말. 이날 남자들은 시를 짓고 각 가정에서는 국화전을 만들어 먹고 놀았다.
조선 시대에, 성균관과 지방의 유생을 대상으로, 명절인 인일절(人日節)ㆍ상사절(上巳節)ㆍ칠석절(七夕節)ㆍ중양절(重陽節)에 실시한 과거. 의정부, 육조 등의 당상관이 성균관에서 제술로써 인재를 뽑았다.2. 한국 민족문화 대백과에 나타나는 중양절(重陽節).
정의음력 9월 9일로 제비가 따뜻한 강남으로 돌아간다고 전해지는 세시풍속. 중구
내용‘중구(重九)’라고도 한다. 중양은 양이 겹쳤다는 뜻이니 양수인 홀수가 겹친 3월 3일, 5월 5일, 7월 7일도 다 중양이 될 수 있겠으나, 중양이라고 하면 중구를 가리킨다. 중구는 음양 철학적인 중일명절(重日名節)의 한 대표적인 명절이었다.
중국에서는 한대(漢代) 이래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상국(賞菊)·등고(登高)·시주(詩酒)로 즐겨 온 날이었다. 당송 대(唐宋代)에도 관리들의 휴가일로서 추석보다도 훨씬 성대한 명절이었다. 우리 나라에서도 신라시대부터 안압지의 임해전(臨海殿)이나 월상루(月上樓)에서 군신이 중구에 연례적으로 모여서 시가를 즐긴 듯하다.
고려시대에는 중구의 향연이 국가적으로 정해져 있는 규례이다. 내외신하들과 송나라·탐라(耽羅)·흑수(黑水)의 외객들까지 그 축하연에 참석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다시 세종 때에 중삼·중구를 명절로 공인하고, 성종 때에는 추석에 지내던 기로연(耆老宴 : 노인 잔치)도 중구로 바꾸어서 지내었다.
또한, 성균관유생들에게 시험을 보이던 절일제(節日製)도 인일(人日 : 1월 7일)·중삼·칠석·중구에 보였다. 여기에서 특히 추석에 지내던 기로연을 중구로 바꾸었다는 사례는 상징적이다. 그만큼 관(官)과 상층에서는 음양 철학적인 경향을 많이 띠었고, 그것은 보름명절[望日名節]보다 중일명절을 크게 쳤다는 것에서 선명해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 일반농어민사회에서는 어디까지나 추석·백중(百中 : 7월 15일)·대보름(1월 15일) 등 보름명절이 훨씬 성대하였다. 더구나 중구 때는 벼수확과, 목화따기 및 콩·팥·조·수수·깨·고구마·감자에 무·배추 등 김장채소 거두기까지도 겹치는 농번기였으므로 명절로 즐길 겨를이 없는 때였다...
. 출처: 중양[重陽]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3. 두산백과에 나타나는 중양절(重陽節).
중양절
[ 重陽節 ]
요약 음력 9월 9일을 이르는 말.
중구(重九)라고도 한다. 9는 원래 양수(陽數)이기 때문에 양수가 겹쳤다는 뜻으로 중양이라 한다. 중양절은 제비가 강남(江南)으로 간다고 전하며, 이 때쯤 되면 제비를 볼 수 없다. 이 날은 유자(柚子)를 잘게 썰어 석류알, 잣과 함께 꿀물에 타서 마시는데 이것을 '화채‘(花菜)’라 하며 시식(時食)으로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기도 한다. 또 이 날 서울의 선비들은 교외로 나가서 풍국(楓菊) 놀이를 하는데, 시인 ·묵객들은 주식을 마련하여 황국(黃菊)을 술잔에 띄워 마시며 시를 읊거나 그림을 그리며 하루를 즐겼다. 각 가정에서는 ‘국화전(菊花煎)’을 부쳐 먹는데 3월 3일에 진달래로 화전을 만드는 것과 같다.
. 출처: 중양절[重陽節] (두산백과)
4. 한국 세시퐁속사전에 나타나는 중양절(重陽節).
중양절[ 重陽節 ]
중구차례-충남 연기군 금남면 반곡리-국립민속박물관
분야계절날짜시절음식다른이름관련속담관련풍속
정일가을(음력 9월)음력 9월 9일국화주(菊花酒), 국화전(菊花煎), 밤떡(栗糕)중구(重九), 국화절(菊花節), 귈, 산신의탄신일(山神-誕辰日), 상국일(賞菊日)구월 군두 조금에 사돈네 빚 갚는다성묘(省墓), 차례(茶禮), 등고(등산), 과거시험실시, 형(刑)을금함정의
음력 9월 9일을 가리키는 날로 날짜와 달의 숫자가 같은 중일(重日) 명절(名節)의 하나. 중일 명절은 3월 3일, 5월 5일, 7월 7일, 9월 9일 같이 홀수 곧 양수(陽數)가 겹치는 날에만 해당하므로 이날들이 모두 중양(重陽)이지만 특히 9월 9일을 가리켜 중양이라고 하며 중구(重九)라고도 한다. 또 ‘귈’이라고 부르는 지방도 있다. 음력 삼월 삼짇날 강남에서 온 제비가 이때 다시 돌아간다고 한다. 가을 하늘 높이 떠나가는 철새를 보며 한해의 수확을 마무리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유래중양절은 중국에서 유래한 명절로, 그곳에서도 매년 음력 9월 9일에 행하는 한족의 전통 절일이다. 중양절은 중국에서는 한나라 이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당송(唐宋) 대에는 추석보다 더 큰 명절로 지켜졌다.
등고회(登高會)는 중양절의 중요한 행사인데 이날 우산(牛山)에 올라 눈물을 흘렸다는 제나라 경공(景公)에 대한 기록을 근거로 중국에서는 이미 전국시대부터 행해졌다고 주장한다. 또한 내려오는 전설에 동한(東漢) 때 앞날을 잘 맞추는 비장방(費長房)이라는 도인(道人)이 어느 날 학생인 항경[恒景, 桓景]에게 “자네 집은 9월 9일에 큰 난리를 만나게 될 터이니 집으로 돌아가 집사람들과 함께 수유(茱萸)를 담은 배낭을 메고 높은 산에 올라가 국화주를 마시면 재난을 면할 수 있네.”라고 하였다. 항경이 이날 그가 시킨 대로 가족을 데리고 산에 올라갔다가 집에 돌아오자 집에서 키우는 가축들이 모두 죽어 있었다고 한다. 중양절에 수유 주머니를 차고 국화주를 마시며 높은 산에 올라가는 등고 풍속은 이에서 비롯되었다고도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수유 주머니를 차는 것은 나쁜 기운을 제거하기 위해서이고, 국화주를 마시는 것은 노화 현상을 막기 위한 것이라는 기능적인 해석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신라 이래로 군신들의 연례 모임이 이날 행해졌으며, 특히 고려 때는 국가적인 향연이 벌어지기도 했다. 조선 세종 때에는 중삼 곧 3월 3일과 중구를 명절로 공인하고 중구를 무척 중요하게 여겨 늙은 대신들을 위한 잔치인 기로연(耆老宴)을 추석에서 중구로 옮겼으며, 또 중양절에 특별히 과거시험을 실시하여 이날을 기리기도 하였다.
중양절에는 여러 가지 행사가 벌어지는데, 국가에서는 고려 이래로 정조(正朝), 단오(端午), 추석(秋夕)과 함께 임금이 참석하는 제사를 올렸고, 사가(私家)에서도 제사를 지내거나 성묘(省墓)를 하였다. 또 양(陽)이 가득한 날이라고 하여 수유 주머니를 차고 국화주를 마시며 높은 산에 올라가 모자를 떨어뜨리는 등고의 풍속이 있었고 국화를 감상하는 상국(賞菊), 장수(長壽)에 좋다는 국화주를 마시거나 혹은 술잔에 국화를 띄우는 범국(泛菊) 또는 황화범주(黃花泛酒), 시를 짓고 술을 나누는 시주(詩酒)의 행사를 가졌다. 서울 사람들은 이날 남산과 북악에 올라가 음식을 먹으면서 재미있게 놀았다고 하는데, 이것도 등고하는 풍습을 따른 것이다.
중양절에는 이와 같이 제사, 성묘, 등고 또는 각종 모임이 있었기 때문에 정부에서는 관리들에게 하루의 휴가를 허락하였다. 그래서 관리들이 자리에 없기도 하였지만 또한 명절이었으므로 이날은 형(刑) 집행을 금하는 금형(禁刑)의 날이기도 하였다.
한편 중양절은 농촌이 한창 바빠지는 때이기도 하다. 남자들은 그해 논농사를 결산하는 추수를 하고, 여자들은 마늘을 심거나 고구마를 수확한다. 퇴비만들기, 논물 빼기, 논 피사리 등은 남녀 공동작업이다. 지방에 따라서는 목화도 따야 하고, 또 콩, 팥, 조, 수수, 무, 배추 같은 밭작물의 파종과 수확이 겹친다. 그러므로 농촌에서는 중양절이라고 하여 특별한 행사를 벌이기보다는 평상 때와 똑같이 보내는 곳이 더 많다. 그러나 양수가 겹친 길일(吉日)이므로 여유가 있는 계층에서는 이날을 즐겼다. 등고 풍속이 그러하고 국화잎을 따서 찹쌀가루와 반죽하여 국화전을 만들어 먹는 것도 그 예가 된다.
추석 때 햇곡식으로 제사를 올리지 못한 집안에서는 뒤늦게 조상에게 천신(薦新)을 한다. 떡을 하고 집안의 으뜸신인 성주신에게 밥을 올려 차례를 지내는 곳도 있다. 전남 고흥의 한 지역에서는 이때 시제(時祭)를 지내는데, 이를 ‘귈제’라고 한다.
과거에는 각 마을마다 또는 두세 개 마을에 한 명씩 동네 단골무당이 있었다. 마을사람들은 연말에 이장에게 이세(里稅)를 내듯이 중양절이 되면 이들에게 시주를 하는데, 이것을 하지 않으면 다음에 탈이 있을 때 단골의 도움을 받지 못한다고 한다.
중국 당나라에서는 중양절이 되면 나라에서 태학(太學)의 학생들에게 겨울옷을 하사하는 의식이 있었다. 중양절 무렵이 겨울을 준비하는 적절한 때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중구절의 국화술은 중국의 시인인 도연명(陶淵明)과도 관련이 있다. 그가 이날 국화밭에 무료하게 앉아 있는데 흰옷을 정갈하게 입은 손님이 찾아왔다. 그는 도연명의 친구가 보낸 술을 가지고 온 것이다. 연명은 국화꽃과 함께 온종일 취할 수 있었다고 한다. 고려 말의 학자 목은(牧隱) 이색(李穡)도 중양절에 술을 마시며 도연명의 운치를 깨달았는지 “우연히 울 밑의 국화를 대하니 낯이 붉어지네. 진짜 국화가 가짜 연명을 쏘아보는구나.”라는 글귀를 남겼다. 두목(杜牧)이 남긴 취미(翠微)의 시구에도 이날 좋은 안주와 술을 마련해놓고 친구들을 불러서 실솔시(蟋蟀詩)를 노래하고 무황계(無荒戒)를 익혔다고 한다.
『고려사(高麗史)』에는 이날 중구연(重九宴) 또는 중양연(重陽宴)을 열었다는 기사가 있다. 국가가 규례를 정하여 내외의 신하들과 송나라, 탐라(耽羅), 흑수(黑水)의 외객들까지 축하연에 초대하였다. 조선에 들어와서도 임금이 사신(使臣)들에게 특별히 주연을 베풀었다. 또 탁주(濁酒)와 풍악을 기로(耆老)와 재추(宰樞)에게 내리고 보제원(普濟院)에 모여서 연회하게 하였다.
선조(宣祖) 때 예조에서 제향 절차에 대해 아뢰면서 중양이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는 속절(俗節)로 열거되어 있지 않지만, 이날 시식(時食)으로써 천신하는 것이 고례(古禮)이므로 속절에 해당하는 제사가 행해져야 한다고 하였다.
이언적(李彦迪)은 『봉선잡의(奉先雜儀)』에서 정조, 한식, 단오, 중추와 함께 중양을 속절로 여겨 아침 일찍 사당에 들러 천식(薦食)하고 이어 묘 앞에서 전배(奠拜)한다고 하였다. 이문건(李文楗)의 『묵재일기(黙齋日記)』를 보면 조선 중기까지 사가(私家)에서는 중양절은 등고 외에 간혹 간단한 천주과지례(薦酒果之禮) 곧 천신례가 있을 뿐 묘제를 행하는 한식에 비하면 속절로서 크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러나 후기에 들어와 삼짇날과 중양일이 함께 또는 둘 중의 하나가 원래 중월(仲月)에 복일(卜日)하여 행하던 사시제(四時祭)의 한 축으로 설정되는 경향이 나타났다.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는 조선 전기까지는 시제(時祭)보다 기제(忌祭)를 중요하게 여기다가 중엽에 이르러 사대부들이 시제를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는데, 일년 4회의 시제가 부담되었으므로 이를 춘추(春秋) 2회로 줄여 봄에는 삼짇날에, 가을에는 중양절에 지내는 자가 많아졌다고 하였다.
중양절의 시제는 조선 후기 이후 특히 영남지방에서 부조묘(不祧廟)를 모신 집안들을 중심으로 행해져 왔다. 유교 제례에서는 사대봉사(四代奉祀)라고 하여 4대가 지나면 사당에 모시던 신주를 묘에 묻게 되어 있으며, 나라에서 부조(不祧), 즉 묘를 옮기지 않아도 된다는 허락이 있어야 사당에 신주를 두고 계속 기제사로 모실 수 있다. 이 부조가 인정된 조상에 대한 시제는 각별히 중일을 택하여 삼월 삼짇날이나 구월 중양절에 제사를 지내는데, 특히 중양 때가 되어야 햇곡을 마련할 수 있었으므로 첫 수확물을 조상에게 드린다는 의미도 지닌다. 영남지방에는 중양절에 불천위제사를 지내거나 성묘를 하는 집안들이 간혹 있지만 날이 갈수록 더 귀해지고 있다.
중양절은 국화가 만발할 때이므로 국화주, 국화전을 만들어 먹는다. 국화주는 꽃을 따서 술 한 말에 꽃 두 되 꼴로 베주머니에 넣어 술독에 담아 뚜껑을 덮어둔다. 약주에 국화꽃을 띄워 국화주를 즐길 수도 있다. 화전, 화채, 술에 모두 쓰이는 국화는 재래종인 감국(甘鞠)이어야 향기도 좋고 오랫동안 싱싱하다.
국화전은 노란 국화꽃잎을 따서 국화 찹쌀떡을 만드는데, 그 방법은 삼월 삼짇날의 진달래떡을 만드는 방법과 같으며, 이름도 화전(花煎)이라고 한다. 봄의 진달래 화전은 율무를 많이 쓰는 반면 가을의 국화전은 찹쌀가루를 많이 쓴다. 중국 양나라 사람 오균(吳均)이 지은 『서경잡기(西京雜記)』에 “한나라 무제(武帝) 때 궁녀 가패란(賈佩蘭)이 9일에 이(餌) 떡을 먹었다.”라고 했는데, 이(餌)란 경단[餻]을 말하는 것이다. 송나라 사람 맹원로(孟元老)의 『동경몽화록(東京夢華錄)』에는 “도시 사람들이 중구(重九)에 가루로 떡을 쪄서 서로 선물한다.”라고 했다. 잘게 썬 배와 유자(柚子)와 석류(石榴)와 잣 등을 꿀물에 탄 것을 화채(花菜)라고 하는데, 이것들도 모두 중양절 음식으로 제사에 쓴다.
추석이 햇곡으로 제사 지내기 이른 계절이 되어감에 따라 추수가 마무리되는 중양절에 중구차례를 지내는 등 논농사의 발전에 따라 조상을 위하는 날의 의미를 더해갔다. 조선시대에 이날 기로연을 베풀었다는 사실은 장수에 좋다는 국화주를 마시는 것과 마찬가지로 국가에서는 물론 민간에서도 이날을 경로(敬老)의 날로 인식하였음을 알 수 있다.
. 출처:중양절[重陽節] (한국세시풍속사전)
6]. 중국의 중양절(重陽節).
1. 베이징 관광국에 나타나는 중국의 중양절.
http://www.visitbeijing.or.kr/detail.php?number=699
2. 중국의 창에 나타나는 중양절. 2016-10-03 보도기사.
....또 국경절 연휴 후 곧 맞이하게 될 노인절인 중양절의 영향을 받아 60세 이상의 노인 관광객도 대폭 늘어나고 있습니다. 많은 가정은 아이들을 데리고 외출하고 있습니다. 상해 디즈니, 광주 장륭(長隆) 풍경구, 주해 장륭 해양세계 등 코스의 인기도 올라가고 있습니다.
'도우관광사이트' 대외연락부 왕밀(王蜜) 여사의 소개에 따르면 서북과 서남의 가을철 관광도 국내 관광의 큰 특점으로 되고 있습니다...
http://korean.cri.cn/1620/2016/10/03/1s240715.htm
7]. 필자는 유교도 중시하지만, 대학의 교과서자격.법적 자격.백과사전의 자격.학술적 자격에 주안점을 두어 학벌을 우선시하는 문필가며 사상가입니다. 그래서 대학의 학벌관련 사항도 강조하여 왔습니다.
1. 한국 임시정부는 일본에 선전포고하였고, 일본은 항복하지 않았는데, 이 선전포고는 영속적으로 유효합니다.
http://blog.daum.net/macmaca/2525
2. 대학은 Royal대인 성균관대(국사 성균관 자격, 조선.대한제국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승계한 한국의 최고(最古,最高)가 Royal대로 한국에서 가장 좋습니다. 국사 성균관 교육이 있어와서 해방이후 현재까지 성균관대가 한국 최고((最古,最高))대학 학벌이어 왔습니다. 세계사를 반영하여 성대 다음 교황 윤허 서강대도 관습법적으로, 성대 다음 Royal대로 예우. 한국 최고(最古,最高)대학 성균관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성균관대.
http://blog.daum.net/macmaca/2325
3. 법적 원칙. 서울대는 한국에 주권.학벌없는 패전국 일제 잔재. 한국에서는 성균관대가 한국 최고(最古,最高)대학 학벌이며, Royal대임. 일본 항복후, 포츠담선언 8항에 의해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등의 한국내 주권이나 학벌은 없어왔음. 중요한건, 해방이후 현재까지 성균관대가 한국 최고(最古,最高)대학 학벌이어 왔다는 것.
http://blog.daum.net/macmaca/2375
4. 일본강점기때 폐지.왜곡된 성균관. 해방후에 설립(재건승계)된 성균관대학교가 조선(대한제국) 최고대학 성균관을 승계하였다는 정부출연 연구기관.백과사전.성균관대 학교당국의 현대 한국사적 입장에 대한 학술적 고찰. 그리고 한국사의 성균관대(성균관에서 이어짐)와 세계사를 연계하여 해방이후 합법적으로 설립된 敎皇聖下 윤허대학인 예수회의 서강대와의 Royal.Imperial 특성의 공통점 고찰.
http://blog.daum.net/macmaca/733
5. 대중언론이나 사설 입시학원의 자료를 이용하여 매일 덤벼도 조선.대한제국 성균관은 해방이후의 성균관대였었고, 성균관대의 6백년 넘는 역사는 학술적 정설(定說)로 보강되어, 국사 교육 성균관과 함께 성균관대의 최고(最古,最高)대학 학벌은 바뀌지 않아왔고, 현재도 그렇습니다.대학은 Royal대인 성균관대(한국 최고대)와 서강대(국제 관습법상 세계사를 반영하여 교황윤허 서강대는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학벌이 가장 높고 좋으며, 세계적인 교과서.학술적 자격이 있습니다.
http://blog.daum.net/macmaca/2313
6. 일본에 선전포고 현행헌법(대한민국 임시정부 반영).패전국 불교Monkey일본이 강점기에,유일무이 최고교육기관 성균관(해방후 성균관대로 복구)격하,폐지.해방후 성균관대로 복구. 강점기에 세계종교 유교국일원 한국유교(공자나라)를 종교로 불인정,성씨없는 점쇠賤民(점쇠가 석쇠賤民.불교Monkey서울대 전신 경성제대설립)을 천황으로옹립,하느님보다 높다하다 패전국
한국사와 세계사의 연계가 옳음.한나라이후 세계종교로 동아시아의 정신적 지주로 자리잡아온 유교전통.
해방후 유교국 조선.대한제국 최고대학 지위는 성균관대로 계승,제사(석전)는 성균관으로 분리.최고제사장 지위는 황사손(이원)이 승계.한국의 Royal대는 성균관대. 세계사 반영시 교황 윤허 서강대도 성대 다음 국제관습법상 학벌이 높고 좋은 예우 Royal대학.
http://blog.daum.net/macmaca/2967
7. 유교는 하느님이 인간을 창조(天生蒸民)하신 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에 기반을 둔 세계종교.십수억명의 인구가짐.부처,불교 일본,경성제대후신 서울대는 하느님.창조주에 덤벼야 되는 무서운 교리Monkey로,동물윤회사상등 가졌음.한국은 수천년 하느님(天),유교, 공자나라.한국에는 왜구 잔재학교들이 대학에서부터, 중.고교까지 아주 광범위하게 남아있음.아주 복잡함. 일제 강점기 잔재를 청산하지 못해서, 그 엄청난 전방위적 일본잔재들이 여전히 발호하고 있음.
인터넷에서 종교가 어떻게 표기되어도 유교는 교과서나 학술개념으로는 분명히 동아시아의 세계종교고, 한국은 5,000만이 조선 성명인 유교성명.본관을 포기할 수 없는 나라기 때문에 행정법.관습법상 유교국가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세계적인 추세와 비슷하게 한국에 헌법상 국교는 없습니다. 여러 나라에서 현대적 국교는 없어도 교과서 개념으로 보면, 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및 2차 대전후의 신생국가인 대만.싱가포르등은 중국의 한자성명을 기반으로, 설날(춘절), 추석(중추절)등을 쇠고, 충.효 교육 및, 공자.맹자님의 가르침인 인의예지신, 삼강오륜을 정규교육으로 받아온 유교문화권이기 때문에, 인터넷이나 대중언론인 신문등에서 일제 강점기에 강제로 포교된 외래 종교인 일본 신도(불교), 불교, 기독교(천주교, 개신교) 및 일본 강점기에 피어난 원불교등이 종교주권없이 유교의 전통에 도전하는 현상이 빈번하게 발생하여 교과서 정규교육의 주류인 유교 교육, 주민등록의 조선성명 유교 성씨.본관 의무등록, 유교 명절(설날.추석,단오,한식,대보름등), 제사를 치르는 유교 한국인들이 자아표현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권없고 학벌없는 패전국 잔재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나 각종 왜구 잔재 카르텔의 저항에 대처해야 합니다.
창조주를 내리까는 부처를 믿는 불교나라 일본이 항복하여,미군정때, 불법.강제의 일제강점기를 거친 한국이 다시 유교국가인 조선성명 복구령을 법률로 발효했습니다.
한국은 교과서 교육상 세계사 개념으로 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지역에서, 한나라 때 형성된 세계종교유교국가중 하나입니다. 전세계적으로 십수억명의 인구를 가진 세계종교입니다.
한국 국사는 고려는 치국의 도 유교, 수신의 도 불교라고 가르침. 고려시대는 유교 최고대학 국자감을 중심으로, 고구려 태학, 백제 오경박사, 통일신라 국학의 유교교육을 실시함. 유교사관 삼국사기가 정사(正史)이던 나라.
다른 종교도 그렇지만 유교는 교과서를 통해 학술적으로 파악하는게 옳음. 세계사로 보면 한나라때 동아시아 지역(중국,한국,베트남,몽고지역)에 세계종교 유교가 성립되어 지금까지 전승. 이와 함께 한국 유교도 살펴봄.
http://blog.daum.net/macmaca/2888
* 본 글은 비영리적이며, 공익적인 글입니다. 한국과 세계의 유교에 대해 되돌아보고, 더 잘 이해하고, 연구.검토하기 위하여 자료인용을 하였으니, 널리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 첨부자료.
1. 1915년 조선총독부 포교규칙은 신도.불교.기독교만 종교로 인정하였는데, 일본항복으로 이들 강점기 포교종교는 종교주권은 없는상태임. 일제강점기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의 일원인 한국유교를 인정않았음.
http://blog.daum.net/macmaca/2632
2. 한국은 수천년 동아시아세계종교 유교,하느님,조상신,공자 나라.최고제사장은 고종후손 황사손(이원).5,000만이 조선성명 유교한문성씨.본관 의무등록 행정법.관습법상 유교국.일제강점기 강제포교된 일본신도(불교),불교,기독교는 주권없음.일제강점기 유교를 종교로 불인정.해방후 교육은 유교가 주류.
대한민국 초대대통령(이승만)연설문.우리나라 종교 유교 강조,유교 교훈지켜 예의지국 백성이 되자고 설파.아세아 동방 모든나라가 다 유교의 덕화 입었다고 하시며,유교의 교훈 지켜 예의지국 백성이 되자고 훈시.삼강오륜 중시연설.
http://blog.daum.net/macmaca/2803
3. 하느님에 대드는 불교 일본 성씨없는 점쇠賤民 천황이 하느님보다 높고 예수보다 높다고 자기들이 들여온 기독교의 신부억압과, 목사 고문.구타.
http://blog.daum.net/macmaca/30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