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 막 수능치고 몇 시간 전에 가채점 한 문과 여학생입니다.
수능이 망했어요.
고1,고2까지 모의고사로 전교에서 1등도 해보고 못해도 5손가락에는 드는 성적이었고 내신은 고1 1학기때 노력한만큼 나오지 않자 바로 난 정시파인가봐 하면서 수시를 아예 안챙겼습니다.
학교쌤들도 걱정하시면서도 모의고사 안정적이니까 지금부터 마음잡고 하라고 응원해주셨고요..
고2 마지막 모고에서 인생 최고점 찍고 제2외국어 준비해서 서울대가야하나 자만하다 고3 들어오면서부터 무너졌어요.
보는 모의고사마다 꼭 한 과목씩 돌아가면서 성적이 아쉽고 등급이 안나오고..
그래도 수시 상향으로 쓸 대학들보다 망한 모의고사 성적 기준 하향이 더 높아서 노력하면 수능때는 괜찮을 줄 알고 수시도 하나도 안썼어요.(수시 등급은 정말 처참합니다.)
마지막으로 본 3주 전 사설모고에서 좋은 점수 받으면서 자신감도 어느정도 회복했었는데 오늘 수능이 그냥 쫄딱 망해버렸네요.
어쩔지 모르겠어요.
평소 생각도 안하던 대학의 점수대가 나왔습니다.
정말 그냥 슬프지도않고 눈물도 안나고 그냥 어쩌지 어떡하지 하는 생각밖에 없습니다.
학교,친구,가족들 모두 저 수능 당연히 잘 볼거라고 믿어줬는데 어떻게 말해야할지도 모르겠어요. 제가 너무 멍청한거같아요.
사실 공부하는거 정말 죽도록 싫어하는 성격이라 재수는 생각도 안해봤습니다. 가정형편상 재수하기도 눈치보이는 집이고요.
공부도 싫어하고 꿈도 없고 하고싶은 것도 뭔지 모르겠는데 그냥 몇개월 있다 수능만 잘보면 대학생활은 일단은 즐겁게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과 오빠는 명문대에서 장학금 한번도 안놓지고 타오는데 나도 어느정도는 해야 가족들이 어디가서 안 쪽팔리겠구나 하는 마음으로 공부했습니다. 근데 망했네요.
가족들이 저 부담줄까봐 오늘 하루 시험 잘 봤는지 물어보지도 않아줬는데 제가 먼저 말해주길 기다리는건데 저 혼자 몰래 가채점해놓고 일찍 잔다하고 방 들어와있어요.
어떻게 말 꺼내야할지 잘 모르겠어요.
진짜 그냥 죄송하고 창피하고 사실 아직 실감이 잘 안나는 상태라서 뭘 해야 할 지도 모르겠어요.
친구들은 단톡방에서 놀러가자고 하고 내일 가족끼리 맛있는거 먹으러 가자고도 했는데 그럴 자격도 없는거 같고 그냥 어떻게 이걸 말하지 하는 상태에요.
어쩌죠 진짜..
솔직히 말하면 저 스스로 명문대에 대한 욕심이나 학구열 이런건 정말 없는 편입니다. 예전부터 고급스러운거, 과시하는거,사회적 지위같은거에도 별로 흥미없고(부모님은 좋은거 해주고 싶어하셔서 꽤 해주셨는데 제가 잘 이해를 못했어요.)비혼할거라 굳게 마음 먹어서 돈도 많이 벌 필요없고 그냥 나 성인되면 내 몸 하나 간수할정도, 부모님께 나름대로 자식노릇 할 정도로만 먹고 살 수 있으면 된다 생각했는데 부모님이 바라시는 대학 간판수준이 있고 저 때문에 고생 많이 하셔서 제가 잘해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가족들 친구들 주변분들 전부 정말정말 진심어린 응원 많이 해줬고....친척들 압박도 센 집이라 저 때문에 가족이 눈치볼까봐 진짜 그게 너무 걱정되고 속상해요.
저 나름대로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저 스스로의 간절함이 부족했던 걸까요.. 더 열심히 했었어야 했는데 저도 모르게 조금씩 쉬면서 타협하며 살아온거같단 생각도 들고 그냥 스스로가 싫네요.
담임쌤께 부모님께 친척들에게 입시 결과 알려드릴 생각만 하니까 눈앞이 아찔해요 진짜..
앞으로 어쩔지 모르겠습니다. 진짜 정말 솔직히 말하면 사실 전 그냥 이렇게 대학 가버릴까 싶어요. 아쉬운가 싶다가도 앞으로 남은 삶 막 좋은 대학가서 좋은데 취직하고 그러면서 치열하게 살고싶은 생각도 안들고...저만 좋은 욕심, 열정 다 없고 무기력한거 같아요. 진짜 고삼내내 수능 끝까지 사는게 지치네요.
응원 사랑 많이 받는 고삼생활이었는데 너무 배부른 소리인가요..
재수는 정말...모르겠습니다. 본인들 욕심보다 진짜 그냥 저 잘 살았으면 하는 마음에 대학 생각하시는거 너무 잘 알아서 더 속상해요. 사실 부모님이 반응이 어떨지 아직 모르겠지만 엄마는 그냥 속상해하실거같고 아빠는 재수 생각해보라 하실거같아요. 저희 집이 크게 여유로운 편이 아닌데 재수비용 이런 것도 사실 다 투자잖아요. 힘들게 버신 돈으로 투자받고 다시 꼴보기싫은 공부한다는게 맞나 싶고 벌써 이런 마음가짐인데 재수하면서 공부열심히 할 수 있을까 스스로 의심스럽고...그래요.
저는 사실 막 치열하고 멋있는 사람들의 삶을 동경하면서도 뭐랄까 무서워해요. 저희 오빠가 두 살 밖에 차이가 안 나는데도 정말 정말 정말 저랑 정반대되는 사람이라 목표도 뚜렷하고 말도 안되는 노력파에 어떻게 저렇게 살지 싶을정도로 열심히 사는데 부담도 많이 느끼는 성격이라 스스로 자꾸 다그치거든요.(저한텐 진짜 잘해주는 좋은 오빠에요.) 제가 옆에서 보면서 어떻게 저렇게 살지?해요. 그에 비해서 전 항상 그냥 좀..무기력하고 잠많고 어리광부리는 뭔가 전체적으로 운좋은 삶을 살아온 철부지 막내고요. 그래서 옆에서 좋은학교 다니면서 열심히 사는 모습 보면서도 진짜 철이 덜 들어서 그런지 수험생활 중에도 저런 대학생의 삶을 잘 살 수 있을까 생각했어요..
그냥...이 글 쓰는 와중에 오빠가 들어와서 연초부터 줄라고 모았다고 이제 대학생이니까 좋은 코트 사라면서 60만원 주고 가채점 했냐고 조심스럽게 물어보길래 내일 말해주겠다 하니까 영어만 알려달래서(오빠가 영어 전공이에요.) 말해주니까 괜찮다고 수고했다고 잘했다고 해주고 나갔거든요.
자기도 학비 부담 덜라고 올장학금타고 알바뛰면서, 막 놀러다닐 나이인데도 스스로 돈도 자꾸 아끼면서 큰 돈 모아준것도 너무 고맙다로도 표현 안되고 그냥 저 인간은 진짜...하는 생각밖에 안들고 위로 좀 받았다고 뭘 잘했다고 눈물 나려 하네요.
왜 우는지 모르겠어요.
모르는 것만 많네요.
사실 가족들이 실망할까봐 속상할까봐 그런게 제일 걱정돼요.
저 어쩌면 좋을까요. 오늘 수능 못 본 이유는 글세..잘 모르겠어요 수능보던 시간이 뭔가 제정신이 아니었던 거 같아요. 분명 긴장을 많이 하진 않았는데 정신줄이 끊긴 상태로 본건지..
진짜 수미잡이네요....모의고사 성적이랑 바꾸면 좋겠어요..
우울하고 불안하고 한심하고 돌아버릴거 같아요 주변에 말할 데가 없어서 여기쓰네요.
저 어쩌죠 도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