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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전 오늘 11월 21일 -->>IMF 구제금융

IMF돌이 |2008.11.21 21:45
조회 14,489 |추천 0

96년은 반도체, 통신 업종의 호황으로 취업이 무지 잘 되었다. 전자공학과 출신들은 4학년때 공부안하고 놀러다녀도 기업체에서 알아서 모셔갈 정도였다. 전자공학과는 학점이 선동열 방어율 정도만 되어도 대기업에 취직이 될정도 였으니깐. 다른 공대 다니는 학생들은 그들을 무지 부러워하였다. 남들은 4학년때에도 전공과 씨름을 하면서 영어 공부하고 심지어는 시사 책가지 끼고 봐야만 했으니 말이다. 그래도 공대생들은 순조롭게 취업을 할수 있었던 해이다.

97년 초에 나도 한 회사에 취업을 하였다.

세상은 온통 장밋빛이었다. 그때 한창 유행하던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한 짧은 콩트가 있었는데

"경제를 살리자"" 경제야 돌아와라"  경제에 대한 관심이 아주 많은 때였다.

다른 산업들은 모두 안좋았다. 매년 적자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반도체에서 엉청난 수입을 올리는 덕택에 사람들은 경제가 그리 어렵다고 느끼지 못했다.

모 전자회사에서는 사원들 보너스를 가마니에다가 가득 담아 줄 정도로 돈을 많이 벌어들였다고 하니..통신 또한 새롭게 피어나는 산업 이었다.

 

그해 봄 갑자기 기아가 무너졌다. 그전부터 자동차를 아주아주 싸게 파는 행사를 했다. 사람들이 국민기업 기아를 살리자고 열심이었다. 크레도스를 아주 싼가격에 사고 좋아하던 분들이 생각난다.

그런데도 그냥 무너졌다. 

 

그해 여름엔 달라가 600원대에서 800원대까지 올라갔다. 그러면서 외화차입이 많은 대기업들이 위험하다는 신호가 여기저기서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잠깐이었다. 나도 그해 가을  그 시절 외화차입이 가장 많다고 한 회사에 다시 신입으로 들어갔다. 정말 꿈에도 그리던 대기업이었다. 내 가 계속 찔러보고 호감 사기위해 노력했던 여자친구에게도 자랑하고 친구 친지들에게도 자랑하고...

 

그 회사에서 재밌는 신입사원 연수를 받았다. 몇백명이 교육도 맏고 꿈도 얘기하고 높은 분들 초대해 연극 경연대회도 하고, 전국각지에 있는 계열사 방문도하고, 호텔에서 스테이크 먹는 에티켓 교육도 받고, 등산도 하고....

사업본부 배치를 받고 다시 전문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부서 배치를 받고 며칠 후 금융위기가 터지고 모라토리엄을 선포할려고 하니 IMF에서 돈을 꿔와 IMF가 시작되었다.

환율은 갑자기 뛰고 은행 이율이 20%가 넘기도 하였다.

갑자기 그렇게되니 기업체들은 투자를 못하고 사업을 축소하기 시작하였다. 우리회사도 마찬가지였다. 98년 봄인가 명퇴가 시작되었다. 어떤 사업본부에 갔던 내 동기들과 1년차 이하 엔지니어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가기도 하였다. 우리 부서에서도 몇명이 퇴사를 하였다.

내 동기들은 일자리를 못찾아 치킨배달를 한다고 하였다. 

내가 좋아하던 그녀는 공무원 시험에 낙방하고 학원교사를 한다고 했다.

그녀를 무지 좋아했었는데.. IMF 때 금값이 천정부지로 뛰었다. 금모으기도 하였다.

금반지 반돈 사다가 금모으기 행사에 내기도 하였다.

 

난 여자친구의 맘을 사기위해서 반냥짜리 목거리를 선물하기도 하였다. 정말 묵직했는데...

근데 그거 받고도 끄떡도 안했다.. 한냥은 줄걸 그랬다..ㅠㅠ

한냥을 사줘도 아깝지 않았을 여자친구였는데...

그걸로 안됬으면 명품 핸드백하나 선물해주는건데...ㅠㅠ

어째든 그녀는 끄떡도 하지않고 그냥 떠났다.. 돌려준다는 말도없이...

드라마에서 보면 다른 여자들은 돌려주고 떠나던데.. 그녀는 안돌려주고 떠난다..

요즘도 가끔 그녀와 목거리가 생각난다.. 그녀가 그걸 언제쯤 처분했을지? 그것을 처분해서 과연 무엇을 했을지? 만약 내가 알면 상처받겠지만 좀 궁금하다..

난 그녀가 떠나고 난후 그녀의 삐삐 비밀번호를 알게 되었다. 알고 싶어서 안건 아니다..

여자들은 숫자에 대해 너무도 거부감을 느낀 나머지 열에 아홉은 네자리 번호가 동일한 숫자를 좋아한다. 아님 전화번호 정도..

날 차고 세달만에 다른 남자의 목소리와 그녀의 목소리가 녹음이 되어있었다. 배아파...ㅠㅠ

잘살고 있겠지?  사랑해. 왜 날 찼는데 아직도 너를 미워할 수가 없지.. 날 찰때 한 너의 말이 아직도 나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것 같지만 그래도 그런 널 이해한다..보구 싶다.. 가끔은 너를 만나던 너의 집앞 커피숍생각이 나가도 해.. 내가 결혼 해서 살던 집이 너 집에서 10분거리뿐이 안된거 아니? 백화점에 갈때면 널 만날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느낌이 들어.. 널 만나던 커피숍에 가서 추억을 느끼고 싶었지만 우린 이미 서로 다른 길을 가고 있다는 생각에 그렇겐 못했어. 6년을 그곳에서 살았는데 가보지 못했고 널 보지도 못했구나.. 나 다 이해해. 너가 마직막으로 나의 가슴에 못을 박는 말을 한것까지도.. 그렇게 안했다면 난 지저분하게 너에게 집착했을지도 몰라...  

어째되었던 난 그 IMF를 견디고 성장을 했다. 옆에 동기들이 그만두고 많은 사람들이 실직하고 아파했던 그 시절을 난 신입사원으로서 생할하였다. 매일 하루하루 눈치도 많이 보았다.

우리과 과장은 미팅시간에 했던말이 생각난다." 늦게 들어온 아가 먼저나가는게 회사 차원에서 이익이 아니가?" 어떤 사업본부는 신입부터 자르고, 우리 사업본부는 신입은 살려주고 인사고과가 안좋았던 사람이 대상이었다.

IMF 이후로 우리회사는 많은 사업본부를 분사시키고 매각하였다. 내가 속해있던 곳도 몇년뒤 분사하였다.

많은 대기업들이 공중분해되고 사라졌다. 쌍용그룹, 한라그룹, 현대그룹,대우그룹 ...

 

지금 11년전 그때와 지금은 몹시 흡사하다..

그때는 아시아 문제였지만 지금은 전세계적인 문제이다.

그러니 우린 그때보다 더 어렵다. 그나마 그때보다 손에들고 있는게 더 많다는 것이 다행이지만.

얼마나 버틸지는 잘모르겠다.

 

그때와 난 지금 너무도 다른다. 그때는 짤리는것을 두려워 했는데.. 지금은 아니다.

고환율의 덕택을 누리고 있다. 내 연봉은 지금 억대연봉으로 올랐다. 고환율때문에..

한달에 천만원이 넘는 돈을 벌고 있는것이다..

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다. 난 차도 없다.. 

안타깝다. 내가 신입사원때 격었던 그런 두려움과 마음 졸임을 지금 누군가가 겪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안타깝다. 그때의 IMF는 금방 끝났지만 지금은 IMF가 아니라도 그때보다도 더 오래갈것같아서 정말 아타깝다.

하지만 참고 이겨내고 살아남아야한다. 지금 여기서 주저앉고 좌절하면 또 다시 그 자리에 올라가기는 어려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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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플타락천사|2008.11.25 08:31
웃긴건...맹박이랑 아이들은 낙관적이라는거...-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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