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구미호15에렌x아커만족15미카사 약 아르애니

아르애니 잇음

이 나라 중심에는 산맥이 있음. 거대한 숲의 북쪽 끝에는 900년을 채운 구미호들이 환생하는 차가운 계곡이 있음. 에렌은 와글와글한 본가에서 유일하게 백살도 안된 신참이라서 귀여움받는 역할인게 싫어서 본가에는 한달에 한번씩만 생존신고 하는 정도임. 본가는 그냥 요괴로서 이세상에 다시 눈뜨고 나서 혈연이 없고 만들수도 없다는걸 깨달은 구미호들이 외로움을 달래려고 만든 클랜중에 하나임.

에렌은 애니가 환생하는걸 참관하기로 해서 항상 지쳐서 고장난 기계같은 몸을 삐걱이면서 몇시간동안이나 달려감. 에렌은 신참한테 귀찮은건 다 떠맡긴다고 숨 몰아쉬는데 애니는 환생장소인 북쪽 계곡을 지나쳐서 근처의 외딴 정신병원으로 향함.

"야! 헉, 헉... 너 평생 요괴로 살거냐? 열두시까지 5분도 안남았어"

"알아. 도착했어. 고마웠다 에렌. "

"야, 야!"

애니는 에렌을 한번 돌아보더니 뒷산에서 정신병원 창문 방향으로 도움닫기해서 팔을 엑스자로 맞대고 한 병실의 창문을 뚫고 들어감. 그리고 그 병실의 주인은 놀라는것도 잠시 애니 얼굴을 보더니 쇠약하게 움푹파인 둥그런 눈을 구부리며 활짝 웃음.



에렌은 여전히 뒷산에서 애니의 뒷모습만 보면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때 무슨 말이 오가고 애니가 무슨 표정을 짓는지는 보지 못했지만 애니가 인간의 더벅머리 금빛 머리칼을 쓰다듬더니 돌연히 입을 맞대고 푸르스름한 구슬을 뱉어먹여주는걸 목격함.

"뭐야 저게...?"

빠른 속도로 발부터 희미해지면서 타버린 잿가루처럼 창문 밖으로 증발하는 애니의 모습은 몇초에 불과했지만 그걸 지켜보는 에렌에게는 몇년과도 같았음. 구슬을 뺏기는거라면 몰라도 스스로 구슬을 내주는 구미호는 처음봤기 때문에 하늘과 땅이 뒤집힌것 같았음. 반면 인간은 물먹는 스펀지처럼 살이 오르면서 움푹 패여서 무섭기까지했던 눈은 총기가 돌고 피부에는 광이 나고 야위었던 몸도 탄탄한 근육으로 채워짐. 그리고 바르르 어깨를 떨면서 애니의 마지막 조각이 사라지는걸 바라보고는 덤덤하게 눈물 흘림. 뒤에서는 창문 깨지는 소리에 달려온 간호사가 문을 박차고 들어옴.



에렌은 정신차리고 인간한테 본체 모습 들킬세라 본가로 헐레벌떡 달려가서 일어났던 일을 지크한테 설명함. 지크도 곧 환생할 시기가 임박한 구미호였으니 애니가 저럴걸 알면서도 막지 않은 합리적인 이유가 분명 있을거라고 믿고있었음. 애니는 사실 구미호로 살면서도 저지르면 안되는 짓을 저질러서 환생 못할 운명이었다든지, 아니면 애초에 그 인간에게 복종하라고 신이 구미호로 만든거라서 사명을 다한것뿐이라든지... 뭐가 됐든 그렇게 스스로의 의지로 자신의 환생을 수없이 죽고 수없이 태어나는 여느 인간의 삶 따위에 바치는건 납득할수가 없었음.



그런데 돌아오는 지크의 대답은 더더욱 이해가 안됐음.

"애니쨩은 죽음까지 하고싶은대로 할줄 알았어. 뭐 예전에도 몇백년에 한번씩 그러는 애들이 있긴했어. 하지만 어려서 구슬도 없으면서 무슨 걱정이지?ww 이 형이 그럴까봐 불안한건가? 아구구구 에렌쨩 이리와아아"

"크읏, 닥쳐 이 털북숭이!"

에렌은 지크를 피해 숲 가장자리로 도망감.



'인간을 사랑해서 900년을 갖다 바쳐? 무슨 멍청이짓이냐 애니... 난 이 세상의 모든 신선을 구축하기 전에는 사랑같은 감정에 휘둘리지 않아!'

서걱거리는 인간의 간을 꼬박꼬박 취하지 않으면 죽음. 그래서 인간들 틈에 자연스레 섞이기도 어려운데 이 상태로 구백년이라는 시간동안 버텨야함. 인간과 사투를 벌이며 백 중 하나가 900년을 살아내고 기껏 신선이 돼서 하는일은 인간과 구미호의 탄생과 소멸을 관리하는것임. 이 말도 안되는 지옥의 굴레의 시작은 한 신선이 심심풀이로 구미호를 만들어 데리고 다니다가 인간세계에 버린것이라니, 에렌은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때부터 신선들을 구축해내겠다고 다짐함.



화를 가라앉히느라 주변에 있던 나무조각을 강화해서 바위에 던지며 깨뜨리고있던 에렌은 마지못해 흰 꼬리를 탁탁 휘두르며 일어남. 근처에 인간 냄새가 나기 시작해서 눈에 안띄게 몸을 숨겨야겠다 생각중이었음.



에렌은 눈이 나뭇잎처럼 풍성하게 쌓인 상록수 위로 올라탐. 달빛이 들어찬 작은 오솔길에서 검은 장발의 여자애가 조심스레 손에 대 구미호 총을 들고 한발씩 내딛는 모습이 보였음. 이 근방에 사는 검은 머리는 죄다 구미호에 혈안이 난 아커만족임.

'도망가야하나? 깡마른게 힘도 없어보이는데.'

요즘 쟤네가 들고다니는 저 총에 다른 구미호도 당해서 끙끙거린다는걸 들은 에렌은 눈살을 찌푸림. 매일 쏘다니는 다른 구미호들과는 달리 간을 씹어삼켜야 사는 스스로의 삶을 혐오해서 사냥을 몇달에 한번밖에 안하니 자신의 사냥 실력에 의문이 들기도 했고 아커만한테는 애써 구축눈깔을 풀고 유혹을 써도 안통함.



그리고 눈이 마주침. 여자애가 총을 쏨. 힘없이 나부작거리던 에렌이 맞음. 여자애가 다시 쏨. 에렌이 나무 뒤로 떨어짐.



아프다. 너무 아픈데... 아, 나는 저딴 어린애한테도 당하는 머저리구나. 밥 좀 먹을걸. 눈꺼풀이 바위만큼 무거워서 에렌이 의식을 잃음. 열시간은 너끈히 지난것같음. 총탄이 박힌 어깨가 짜릿해서 에렌이 다시 눈뜨니까 앞다리 뒷다리 노끈으로 묶였고 입에는 신문지에다가 재갈까지 물림. 옆으로 누워있는 자세에서 고개를 마구잡이로 돌려보니 하늘에서 달빛이 내리는게 보이고 긴 철창이 자신이 누워있는 진흙바닥 주위를 두르고 있음.

'내가 왜 살아있지?'

지크! 살려줘! 세게 외쳐내는 목소리는 이으... 아어.. 괴상한 옹알이로 여자애의 귀에 떨어지고 대 구미호 총을 들고 찾아오게 함.

"인간 모습으로 변해라."

"오앙 ... 웅옹앙엉 앙...아.."

기껏해야 앞뒤로 몇번 몸부림치고 고개 비트는것밖에 못하는 주제에 일어서려고 아둥바둥대는 에렌은 고작 인간따위에게 굴복할것 같냐고 버럭했지만 자기가 들어도 으름장이라고 하기에는 우스울 지경이었음. 성한건 그것 뿐이라 초록색 눈이라도 부라려보지만 역시나 여자애는 미동도 없이 총을 겨누고만 있음.

"인간화 해. 당장 죽고싶지 않으면."

낮게 읊조리는 목소리에 짜증나면서도 에렌은 마지막 힘을 다해 차가운 연기를 내뿜으며 인간화함. 오른쪽 어깨에 하나 목에 하나 뚫린 구멍으로 콸콸 솟구치며 바닥을 적시는 피와 이리저리 굴려지며 묻은 흙먼지 때문에 에렌은 헐렁해진 결박을 풀고 달아나기는 커녕 온몸을 적시는 핏구덩이 속에서 다시 정신을 잃음.



여자애는 총을 내리지 않고 서서히 다가와서 에렌 앞에서 총을 거꾸로 들더니 개머리판으로 에렌 머리를 내려침. 손전등을 꺼내 에렌의 동공에 비추고 살아있는걸 확인한 아이는 에렌을 끌고 집안에 들어가 어떤 사내 앞에 패대기 침.

"리바이. 구슬 없는 구미호다."

"얼굴이 왜 그렇게 빨간거냐? 그나저나 이건 똥구덩이 구르다가 온 모습이군. 내가 그래보이는 녀석들은 목만 꺾어서 기절시키라고 했잖아 미카사."

"여우 모습인데다가 나무위에 있어서 어쩔수 없었어. 나 잔다."

미카사는 묵직한 총을 내려놓고 욕실에서 간단히 씻은뒤 유난히 쿵쿵거리면서 자기 방에 들어가서 눕고 눈감음. 그리고 왜인지 아까부터 자꾸 그 구미호로 채워지는 머리와 떨리는 심장을 가라앉히려고 애쓰다가 문득 이게 각인일수도 있을까 하는 생각에 눈이 활짝 뜨임.

아커만족은 각인이라는 약점, 정부에게 당하는 생체실험, 앞서 말한 두가지를 피하려고 어떻게서든 각성해서 그나마 안전한 숲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스스로 저지르는 자해 등등으로 멸족 위기에 처함. 그런 상황에서 구미호에게 부모님을 잃고 유일하게 나서서 자기를 구해준 삼촌 리바이와 함께 구미호를 팔며 사는 미카사는 자신이 그 짐승나부랭이에게 각인했을수도 있다는 생각에 정신이 아득해짐.

'걔는 인간이 아니니까 그럴리가 없어. 별거 아니야. 아까 옷이 두꺼워서 더웠던거야 '

미카사는 눈썹을 찡그림. 불안한 마음으로 그래도 내일 전례가 있는지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이불을 끌어안음. 그리고 지금쯤 리바이에게 치료받고있을 걔는 많이 아플까 걱정함.



"있네."

"어떻게 됐대?"

미카사는 리바이와 도시에 있는 도서관에 잠깐 나와서 아커만에 대한 기록을 인터넷과 도서관에서 고대 문헌부터 샅샅이 뒤지다가 폰을 던지듯이 내려놓음.

"그 구미호한테 죽었대. 자기한테 각인해준게 고마우니까 안잡아먹어야지, 했겠냐? 좋다고 허겁지겁 먹어치운거다. 이제 홍차 사러가자."

리바이는 홍차 사러 나왔는데 애송이가 도서관으로 끌고 온게 귀찮아서 휘리릭 찾아서 나갈 생각이었음. 근데 미카사 표정이 심상치 않게 어두워지는걸 보고 책을 내려놓다 말고 미간을 좁힘.

"뭐야. 해피엔딩은 드라마에서나 보면 되잖아. 터무늬 없는 상상 그만두고 가자."

"좀만 더 찾아보자..."

미카사가 리바이 소매 붙잡고 울먹거리면서 부탁하니까 하루종일 오락가락 하는 미카사가 유별나다고 생각한 리바이는 뭔가 떠올림.



아침에 인사도 안하고 나가서 숲을 달리고 오던 애가 자기 깰때까지 기다린게 이상했음.

'삼촌 잘잤어? 구슬 없는 구미호 상처 심각한거야?'

'몸집에 비해 회복력은 괜찮은 편이다. 대충 총알 뽑고 꿰매는데 내내 말을 안듣길래 머리를 걷어찼었다. 정말 지독했는데 그 후에는 고분고분 3번 독방에 들어갔어. 씨씨티비 보니까 깬 것같아'

'걔는 장기 빼지도 말고 포주한테 팔지도 말자...'

긴장 풀어지는 표정으로 그렇게 중얼거리지를 않나.

'그러면 어떻게 할건데?'

'같이 살면 안돼?'

헛소리하길래 무시하고 구미호들 아침 먹이려고 간 소분하는데 갑자기 쭈뼛거리면서 자기가 다녀오겠다고 나서질 않나. 그러고 나서는 씨씨티비실에 눌러앉아서 학교도 안가지를 않나... 무엇보다 어제밤 항상 하얗던 미카사 얼굴이 뭔가 잘못이라도 한것처럼 유독 빨갰던거.



"네 얘기냐?"

"아니야."

"맞잖아 3번. 하루종일 걔 생각만 하지? 지금도?"

미카사는 얼굴이 발개지더니 아니야... 중얼거리고 리바이가 손을 거의 벗어난 책을 뺏어들음. 손가락까지 펴가며 속독하는 미카사의 손가락이 달려가는 문단의 끝에는 '잡아먹혔다'는 단어만 처연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음.



결국 며칠동안 도서관에 있는 모든 아커만 책과 논문을 뒤지고 인용 자료까지 뒤지고 자기와 같은 경우가 이천년동안 여섯 그리고 살아남은 경우가 빵이라는 절망적인 결론을 얻기위해 밤을 샌 미카사는 눈이 퀭 해짐. 오늘도 자기만 보면 풀어달라고 빽빽대다가 기괴하게 입꼬리 끌어올리며 웃기도 하다가 지랄을 하는 에렌의 식사를 위해 터덜터덜 걸어감.

'에렌이 날 좋아하게되는 날이 오기는 할까? 그전에 리바이가 에렌을 죽일까 아니면 그러는 리바이를 내가 죽일까 아니면 에렌네 패거리가 나랑 리바이를 죽일까. 근데 이 모든게 해결되더라도 에렌이 내 간을 빼먹지 않을까?'

구미호에게 납치된 엄마를 살리겠다고 각인에 단단히 미친 아빠는 가지 말라는 미카사를 두고 아무런 무기 없이 갔다가 둘다 간이 도둑 맞은 채로 발견됨. 그런데 나는 그구미호에게 각인했구나.



흐흐, 미카사는 이제 자기만 보면 티는 안내려고 해도 시름시름 시들어가는 리바이와 쉰 목소리로 내보내달라고만 악쓰는 에렌을 떠올리며 반쯤 미친 사람처럼 헛웃음을 내더니 단단한 철 문구멍 사이로 쟁반을 밀어넣음.



또 딸깍하고 에렌이 손도 안댄 쟁반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림.

'이름이랑 나이 안알려주면 쏠거야.'

에렌이 잘 받아먹어서 미카사가 홀로 미소지었던 첫날 이후에는 정말 만지지도 않아서 책상위에 나란히 놓인 그릇들이 새 그릇에게 밀려 바닥에 떨어지는거임.

'애니 레온하트 450살. 이제 좀 보내줘.'

미카사는 퀭한 눈이 자꾸 감겨서 일단 자러가려고 뒤로 돌음.

'거짓말 하지마. 쏠거야.'

한발한발 떨어지는 발걸음이랑 찰랑이는 머릿결마저 무겁게 느껴짐.

'아 진짜, 에렌예거 열다섯! 왜 이딴걸 물어보는거지? 죽일것도 아니면서 좀 놔주라고!'

쨍 하면서 뭔가 깨지는 소리가 남. 아마 자신의 만성적인 두통의 일환이겠거니 하고 그저 걸어감.

'네가 여기서 살아나가서 갈수있는곳은 호빠나 장기매매소밖에 없어. 우리는 지금 널 살려주고 있는거라고.'

계속해서 쨍쨍거리는 용접소리 같은게 들리다가 멈춤.

'살려두는게 아니라 이유가 뭐가됐든 네가 날 못 죽이게 하는거겠지. 그 아저씨는 주먹만으로도 날 죽일것같은 표정이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데 넌 나를 존1나 날개 다친 새처럼 쳐다보잖아. 진짜 또라이냐? 지가 쏴놓고 걱정하는 사람은 처음본다.'

타다닥 뭔가가 가볍게 뛰는 소리가 들림. 불안감이 덮쳐서 미카사가 멈춰서 오른쪽으로 뒤를 돌아봄.

'에렌. 여기서 같이 있을 생각은 정말 전혀 없는거야?'

눈앞에서 여우의 발톱이 쑤욱 튀어나와서 미카사의 뒷목을 향해 달려들음.

'난 이뤄야하는 꿈이 있어! 너같이 아무런 목표없는 가축과는 다르다고.'

미카사는 잘린 머리칼과 볼에서 튄 핏방울이 휘날리는걸 보며 총을 향해 손을 뻗지만 등뒤에는 아무것도 잡히지 않음.

'그 꿈이 뭔데?'

여우는 이제는 신경쓰일것 없다는듯이 휘달리다가 구미호 사옥의 대문에 부딪힘. 끼잉 하며 일어나서 재빨리 양발로 우뚝 서있는 철문을 긁어댔지만 불쾌한 소리밖에 얻지 못하자 연기를 내뿜으며 인간화하고 미카사의 두눈을 똑바로 쳐다봄.

"끝이다 미카사. 난 신선이 돼서 이 세상의 모든 신선을 구축할거야. 그러면 넌 이렇게 숲속에 박혀서 살지 않아도 돼. 나를 밖으로 보내줘."

미카사는 에렌만큼 짧아진 머리를 매만지면서 에렌에게 걸어감. 움찔하는 에렌의 양볼을 감싸쥐고 미카사는 자기 볼에서 흐르는 피가 놀란 얼굴에 사르르 퍼지도록 천천히 입을 맞추다가 뗌.

"에렌. 그딴건 필요없어. 내곁에 있어."
추천수2
반대수0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