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그리지 못하는 이유1 [부제 : 모나리자]
Ⅰ.
“은경아 이 것 봐라. 죽이지? 완전 고소영 저리 가라지 않냐?”
지인은 4절지크기의 도화지 한 장을 은경에게 보여준다.
거기엔 소묘로 세밀하게 그린 지인의 옆모습이 그려져 있다. 단점은 감추면서 지인의 장점이 최대한 부각된....
“와! 이거 완전 매직이네 매직! 야! 이 지인! 니가 일케 이쁘냐?
근데 정말 그리긴 잘 그렸다. 이거 어디서 그린거야 돈 좀 줬겠다?“
“아니 이 뇬이 원판불변의 법칙도 모르냐! 이 언니의 원판이 워낙 출중하니까
이렇게 나온 거 아니겠어..오호호호호. 근데 너 정말 그거 몰라?“
“뭐?”
은경은 동그란 눈을 더욱 동그랗게 하며 지인에게 묻는다.
“요즘 우리 학교에 거리의 화가가 나타났잖아”
“거리의 화가?”
“응 우리 자연대 오는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에 벤치 알지? 언제 부터인가 거기에 항상 점심시간 때면 스케치북을 들고 나타나서 학교 여자애들 인물화를 그려주는 사람이 생겼어. 근데 솜씨가 거의 예술이야. A반 수진이랑 B반 다희가 자랑 하 길래 나두 어제 점심시간에 가서 사진하나 주고 부탁했거든 그랬더니 오늘 아침 내 사물함 앞에 붙여 놓아 주더라구 이런 포스트잇과 함께....”
지인은 자랑하듯 포스트잇을 은경에게 보여준다. 노란색의 포스트잇엔 남자의 필체라고 보기엔 이쁜 글자체로 또박또박 문장이 적혀져있었다.
‘아름다운 당신을 그릴 수 있어. 행운이었습니다. 당신의 미소보다 더 아름다운 친구가 있다면 그녀 역시도 제 추억의 캔버스 속에 담고 싶네요’
“머야? 이 사람! 버터야? 제비야? 좀 느끼하다. 이 사람 그림 솜씨를 가지고 여자애들이나 울리는 카사노바 아냐?”
은경은 부러운 한편으로 조금은 불쾌한 듯 미간을 찡그리며 말한다.
“글쎄 첨엔 나두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가봐. 이 사람 얼굴도 꽤 괜찮은 편이라서 실제 그려준 여자애들이 접근을 했다던데 다들 No라고 대답했나봐. 실제 이 사람 그림 그려줄 때 이름도 안 물어봐 오직 학번과 학과만 물어 보더라구. 그리고 그림 그리고 그 학과 사물함에 붙여놓고 가고 좀 이상해.”
“그래? 그럼 혹시 변...태인가?”
은경은 두 팔을 삐쭉 올리며 지인에게 말한다.
“변태 하하하하 정말 그럼 변태인가보다. 그림 그려주는 변태, 조금 귀여운 변태네 하하”
은경과 지인은 마주보며 가볍게 서로 웃고 있었다.
“그럼 은경아! 오늘은 그 변태 니가 한번 만나볼래?
너도 이쁜 그림 하나 그리면 좋잖아? 요즘 소문이 나서 그려달라는 사람도 많다던데..“
“그럴까?”
은경은 호기심에 가득한 체 지인에게 말한다.
Ⅱ.
아직은 추위가 체 가시지 않은 자연대 앞의 플라타너스 나무아래의 벤치. 그는 약간 추운 듯 손에 입김을 불어가며 캔버스 안에 그림을 그려 넣고 있었다.
가벼운 추위가 느껴지는 바람과 봄의 알림을 알려주는 따뜻한 햇살사이 적당히 웨이브 진 머릿결을 날리며 그는 그렇게 있었다.
“꿀꺽”
은경은 약간 긴장했는지 마른 침을 삼켰다.
‘저 남자 왠지 괜찮다. 느낌이...’
은경은 잠시 동안 그에게 다가가지 못한 체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야! 머해? 어서 그려 달라구 해”
툭! 은경의 어깨를 치며 지인은 서둘러 재촉한다.
“저..어...”
마침내 은경은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건네고 그는 천천히 은경을 쳐다보았다.
“저어.... 저기 그러니까... ”
그는 물끄러미 은경을 쳐다보다 다시 캔버스에 다른 여자애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너무도 무관심하게...
“저기요.. 사람이 말하면 좀 쳐다보시면 안돼요?”
옆에서 지켜보던 지인은 답답했는지 은경을 거들고 나섰다.
“왜 그러시죠?”
듣기좋은 중저음의 울림을 가진 그가 말을 시작했다.
“저기 죄송한데 저도 그려주시면 안되나요?”
은경은 조금은 수줍은 듯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말을 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저..전..안 은경인데요..”
그는 뜬금없이 은경의 이름을 물어본 후 잠시 머뭇거리더니 대답대신 벤치에서 일어나서 캔버스의 다리를 접기 시작했다.
캔버스와 그림을 그리던 화구를 정리한 그는 은경을 쳐다보며 말한다.
“이제는 더 이상 누군가를 그려드리지 않습니다. 그럼...”
그는 가볍게 묵례를 한 뒤 벤치 아래의 계단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당황한 은경은 자존심이 상했는지 눈가에 눈물이 고였고 지인은 조금은 화가 났는지
거칠게 숨을 쉬며 말했다.
“머야 저 새끼! 오늘 아침까지만 해두 친구를 데려오라는 둥의 쪽지 적어놓고
저 자식 저거 진짜 변태 새끼 아냐! 야 은경아 저 새끼 저거 정말 변태인가봐 신경쓰지말고 가자! 응 내가 순대쏠게... 퉤“
지인은 은경의 상처 입었을 자존심을 생각하며 더욱 과격한 언행으로 그를 탓하고 있었다.
“잠시만 지인아..잠시만”
은경은 생각을 정리하려는 듯 잠시 그 자리에 서있다
사라져간 그의 등 뒤로 천천히 오른쪽 세 번째 손가락을 들며 크케 외쳤다.
“뻑큐.!! 잘먹고 잘살아라. 뻑큐다..뻑큐..!!”
Ⅲ.
“짜잔... 야 똥꼬 입술, 찢어진 눈! 나 누구게?“
은경은 쭉 뻗은 두 손으로 공원벤치에 앉아있는 빨간 니트티를 입고 있는 한 남자의 눈을 가리며 말했다.
“풋.. 나보고 똥꼬 입술이라고 하는 애는 너밖에 없잖아. 안! 은! 경!”
우원은 자신의 눈을 가린 은경의 손을 천천히 잡아 내리며 한손으로는 캔버스의 스케치북을 조용히 덮기 시작한다.
“머야 오빠! 오늘은 또 멀 그리고 있던거야?”
은경은 우원의 스케치북을 힘차게 펼친다.
거기에 단색의 4B연필로는 그린 거라 볼 수 없는 단아하면서도 묘한 분위기를 붕기는 아름다운 모나리자가 그려져 있었다.
“어휴..또 이 여자야 또 모씨가문의 딸 나리자 언니? 대체 이 여자는 왜 맨날 그리고 있는거야?”
“이쁘잖아!”
“아무리 이뻐두 그렇지 어떻게 나 만나러 나올 때마다 맨날 그 넘의 모나리자만 줄기차게 그리고 있냐? 나도 좀 그려달라니까.. 나두.. 대체 오빠 나 언제 그려줄꺼야? 왜 다른 여자들은 그렇게 많이 그려줬으면서 나는 안그려줘? 그러고 보니 왜 우리가 첨 만났을 때도 나는 그려줄 수 없다구 한거야 응?”
은경은 자신의 그림을 그려주지 않은 우원이 이내 섭섭한 듯 볼멘소리를 해댄다.
“넌 못생겼잖아”
경상도 남자가 아닐 랄까봐 우원은 역시나 무뚝뚝하게 대답하고 만다.
은경은 잠시 삐쳐있은 듯하였지만 이내 다시 특유의 쾌활한 웃음을 짖는다.
“그래 그만두자 그만둬! 오빠 똥 굵다. 굵어. 근데 오늘 이건 왜 가져왔어?”
은경은 우원이 가져온 16mm 캠코더를 집어들며 말했다.
“응..그거. 내가 놓치는 아름다운 장면들이 있으면 담아 둘려구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는 것들이 카메라에는 잡히는 경우가 있잖아. 그래서..”
“오! 오빠의 눈이 놓치는 아름다운 장면. 그래 있지 그건 바로 나잖아 나.”
은경은 캠코더의 뷰 파인더를 자신에게 돌린 후 자신을 열심히 찍기 시작한다.
그러더니 이내 캠코더를 우원에게 들이대며 말한다.
“자! 지금부터 자신의 여자친구를 처음부터 더럽게 무시한 자뻑 왕자님의 모습을 공개하겠습니다. 어디 볼까요”
은경은 천천히 우원의 머리에서부터 눈썹으로 그리고 눈에서 입술로 내려오며 우원을 렌즈에 담기 시작한다.
“자! 지금 보시는 것이 바로 이 자뻑 왕자의 입술입니다. 입술을 모으면 마치 똥꼬모양이 되어서 똥꼬입술이라 불리지요. 그리고 다음은...”
“은경아 근데 넌 내 어디가 좋아?”
뜬금없이 우원은 은경의 말을 가로막고 섰다.
“응?...으응..”
은경은 우원의 질문에 당황한 듯 잠시 더듬거리다가 이내 캠코더로 우원의 눈을 확대해서 찍기 시작했다.
“여기가 바로 이 인간의 쭉 찢어진 눈입니다. 쌍꺼풀 없이 쭉 찢어진 눈은 보통 재수가 없지요. 그런데 이 인간이 무언가를 바라볼 때의 눈은 마치 비누방울이 터지기 찰나에 가장 투명하고 빛나는 것처럼 맑고 아름답기까지 합니다. 바로 이 점이 이 문화대학교 퀸카 안은경님께서 보잘 것 없는 최우원 군을 좋아라 해주는 이유이지요. 이 눈이 없다면 이 인간은 완전 허접떼기지요. 푸훗”
“하긴 내 눈이 매력적이긴 하지.”
우원은 은경의 툭툭거리는 거친 칭찬이 행복한 듯 엷은 미소를 띄우며 말한다.
“아참 오빠 이리 손 내봐..”
은경은 우원의 오른손과 자신의 왼손을 우원의 무릎위에 나란히 올린 뒤 카메라로 열심히
두 손 사이를 찍고 있었다.
“머 하는거야?”
“응 오빠 잠깐만!! 오빠 진짜 연인들 사이에는 남자의 오른쪽 새끼손가락과 여자의 왼쪽 새끼손가락에 운명의 빨간 실이 묶여져있데.... 그래서 그 연인들이 아무리 먼 곳에 있어두 수십번을 헤어져도 그 실을 따라 삶을 살아가다보면 결국 둘은 만날 수 밖에 없데. 그래서 우리 사이에도 이 빨간 실이 묶여져있나 지금 보는거야.”
“푸훗”
우원은 아이처럼 운명의 빨간 실 이야기를 믿는 은경이 너무 귀엽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에이.. 우리는 없네 우리는 인연이 아닌가보다. 에이.”
“아냐 은경아 잠시만 눈감아봐. 니가 지금 눈이 아파서 잘 안 보이나봐 내가 눈뜨라고 하면 다시 떠서 캠코더로 살펴봐 알았지”
은경은 눈을 감았고 손에 무언가가 감겨지는 감촉을 받았지만 우원이 눈을 뜨라고 할때 까지 꾸욱 눈을 감고 있었다.
“자 이제 봐봐”
은경은 두 눈을 뜨고 캠코더의 뷰파인더로 다시금 자신의 왼손 새끼손가락과 우원의 오른손 새끼 손가락 사이를 살펴보았다. 거기에는 빨갛다 못해 붉디 붉은 굵은 실이 투박하게 묶여져 있었다.
“봐! 보이지 이 굵은 운명의 붉은 실이..... 우리는 천생연분인거야”
우원은 큰 선물을 받은 아이처럼 환한 웃음을 짖고 있었고 우원의 붉은 니트 상의는 실을 뽑아 낸 흔적들로 튿어져 있었다.
“머야 이거..머야... 이거 무효야 무효..
머 이런게 다 있어. 이 사기꾼아..“
은경은 두 팔로 우원의 목을 조르기며 웃기 시작했고 우원 역시 여전히 즐거운 듯 웃음을 짖고 있었다.
“하하하하하하”
두 연인의 행복한 웃음소리가 공원의 나무 사이로 사라질 때쯤
하루를 마감하는 엹은 붉은 노을이 조금은 쓸쓸히 하늘에 드리워 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