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경기도 의왕시에 살고 계신 이모님께서 김장을 담근다고 하기에 옛 추억을 떠올리며 찾아갔다. 이모님의 작은 아들이 올해 수능시험을 치렀는데, 그 지역의 고교에서 전교 1등을 한다고 자랑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나의 이모도 일반 어머니와 별반 다르지 않는 학부모 그 자체였다. 하여튼 녀석이 논술대비를 한다기에 서울에서 3일간 약간의 훈수?를 해주었더니 고맙다며 손수 김장김치 만들어 주시겠다고 하기에 찾아가게 된 여행이었다.
의왕역에 도착하자 이모님이 손수 아반떼 마차?를 끌고 마중을 나오셨다. 마차로 얼마를 달리지 않아서 아름다운 왕송 호수가 한 눈에 들어왔다. 왕송 호수는 생태보호지로 겨울이면 수많은 철새들이 날아온다고 한다. 나는 마차를 잠시 세워 달라고 부탁하고, 왕송 호수의 자태를 사진에 담았다. 철새 몇 마리가 호수에서 헤엄을 치다가 얼떨결에 나의 카메라에 들어왔다.
그리고 다시 우리 일행은 마차로 달려서 한 카페의 마당에 들어갔다. 지금은 무슨 사정으로 카페를 운영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우리들은 그 주변의 정경이 아름다워 발길을 내려놓았다. 마당에는 맷돌들이 가지런히 깔려 있었고, 마당의 한쪽에 녹슨 펌프가 낙엽과 함께 놓여 있어 아름다운 운치를 뽐내고 있었다. 펌프를 보자 나의 어린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한 여름에도 시원한 물을 뿜어대던 펌프질을 하기 위해 손잡이에 매달리던 나의 어린 시절이 대롱대고 있었다.
우리 일행이 다시 찾은 곳은 아담한 미니별장이었다. 이 지역에서 이모는 마당발인 모양이다. 막역지간으로 지내는 분이 살고 계신 집인데, 김장을 하러 오는 우리 일생을 위해 주인들은 도주?하고 객들이 무와 배추를 씻고 썰고 새우젓을 넣고 고춧가루를 잔뜩 넣고 버무려서 김장김치가 완성되어 갔다. 김장하는 모습만 가만히 지켜보라던 이모가 나와 아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도와드리자 입이 소녀처럼 활짝 벌어지셨다.
드디어 김장이 끝나갈 무렵, 옛날 시골의 맛이 흠뻑 담긴 막걸리가 없을 수 없었다. 이제 수능과 논술시험도 끝낸 동생 녀석의 마지막 청소년기를 애도하며 우리들은 술잔을 부딪치며, 즉석에서 삶아낸 고기를 안주보쌈으로 먹는 맛은 일품이었다. 무뚝뚝한 경상도 사내에게 시집간 전라도 처녀의 고운 손은 온대간대 없었지만, 김장김치를 담그는 능숙한 그녀의 모습은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