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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여자 보셨나요?? 긴글입니다.

ㅇ서방 |2004.02.24 19:28
조회 6,008 |추천 0

여기에 올라오는 많은 얘기를 보면서 어렵게 용기를 내어 적어봅니다. 두 사람의 얘기를 모두 들어봐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것이지만, 제 입장에서 얘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서투른 글 솜씨로 얼마나 정확히 쓸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서지만 아무한테도 말못했던 얘기를 여기서나마 할까 합니다.

 

결혼하기 전에 5명의 여자친구와 사귄 경험이 있습니다. 그리고 스쳐간? 사람도 있었습니다. 제 생각에는 다양한 사람을 만나봤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여자라는 존재에 대해서 내린 결론은 ㅡ 이 여자 저 여자 다 마찬가지고 거기서 거기다 ㅡ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왜냐면 여러 사람을 만나다보니까 처음에 느껴지는 신비감?은 얼마 안 가서 없어지고, 이런저런 장단점을 알게되고, 원래 완벽한 사람은 없으니까 각자 조금씩 다르지만 누구나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된 겁니다. 그래서 결혼할 때는 마음이 악한 사람만 아니면 별 상관없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 위로 지지리도 못난 형이 하나 있습니다. 현재도 결혼을 못하고 혼자 살고 있는데, 아버지의 생각으로는 형보다 동생이 먼저 결혼을 하는 게 용납이 안되셨나 봅니다. 제가 아무리 사랑하고 결혼하고 싶은 여자친구가 있어도 결혼을 할 수가 없었지요. 그런 상태로 시간이 가다보니 여자친구랑 다투는 일도 많아지고 결국 헤어지게 되었읍니다. 참 마음이 아픕니다. 그래서 결혼 전 한동안 아예 여자근처에도 안가고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지금의 집사람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귀기 전에 먼저 아버지께 이번에는 결혼을 해도 되는지 미리 허락을 받고는 사귀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께서도 연세가 있으셔서 마냥 소식 없는 형을 바라보시기가 지치셨는지 마지못해 허락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일사천리로 결혼을 진행했습니다. 이것저것 가릴 것 없는 저였기에(여자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에)처음 만나고 6개월 후에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저보다 한 살이 많은 사람이고, 두 번째  결혼이었습니다. 그리고 선천적으로 심장기형이라서 수술을 세 번이나 한 사람이지만 그런 거 저한테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저를 만나기 전에 결혼을 한 번했든 두 번했든 아무런 상관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누구나 살다보면 멀쩡하던 사람도 병이 날 수 있으니까요. 수술을 해서 정상적으로 살고 있으니까 문제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이런 사실을 알았다면 미쳤다고 하겠지만 저한테는 상관없었습니다. 지금도 이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런데 결혼 전 한달 전쯤에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이 사람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청첩장 다 돌린 상태였죠. 온 집안에서 형 결혼소식을 많이 기다리던 상태여서 더욱 분위기가 성대해져 있어서 파혼선언을 하기엔 너무나 용기가 안 났습니다. 속으로 이렇게 위로했죠. "살면서 조금씩 맞춰 살면 되겠지" 가장 결정적인 오산이었죠. 정말 너무나 철이 없다는 걸 그때서야 알았습니다. 그때31세였는데 그 나이를 어디로 먹었는지 다들 의심스러워했거든요. 분위기파악 못하고 막말 마구 마구 신나서 하는 것이며, 심장이 안 좋은 것 때문에 성장하면서 대인관계에도 문제가 많았고, 집안에서의 대접?등으로 아무 것도 할 줄 모르고, 아예 할 생각을 못하는 것청소한번 안하고 시어머니가 아침밥부터 집안살림 모든 거 다 하십니다. 아무 것도 배울 생각 안 합니다.), 상대방의 말은 백 번이고 일단 부정하고 뒷수습하려 억지로 말 맞추어 자기 잘났다고 억지고집 피우는 것, 식성 또한 까다로워서 못 먹는 것이 대부분이고 등등, 참으로 아무런 생각 없는 단세포라고 생각됩니다. 게으르고 말초적인 것만 추구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모든 면에서 10세정도의 정신연령으로 보입니다. 그때에 이런 것들을 어렴풋이 알았는데 살면서 고칠 것 고치고 맞춰서 살자고 안일한?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 생각으로 시작한 결혼이라 그런지 시작부터 순탄하지가 않았습니다.

 

저의 잘못도 많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흔히 생각하는 잘못으로 술을 많이 마신다거나, 폭력을 행사한다거나, 도박을 한다거나, 바람을 피웠거나, 돈을 못 벌어준다거나, 이런 것들은 전혀 없었습니다. 다만 제가 잘못한 것은 성인군자가 아니었고, 생활에 쫒기는 상황이라 다정하게 대해주지 못한 것이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이기적인 생각으로는 보통의 대부분의 남자들이라면 참기 어려웠으리라 감히 생각합니다. 처음 결혼하고는 회사선배가 살고 있는 동네에 14평 전세방을 얻어서 살았습니다. 총각 때 쓰던 제 물건(옷가지 등)을 보따리에 싸서 이사를 갔죠. 그런데 6개월 동안 그 집에서 살고는 본가로 들어왔습니다. 살던 집 전세금을 빼서 조그만 가게를 열었습니다. 물론 서로 상의해서 그렇게 했습니다. 장남도 아닌데 부모님 모시는 게 여자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고, 전세금 빼서 가게를 한다는 게 불안하기도 했을 것이고, 아무튼 참 미안했고 저를 믿고 따라준 것이 고마웠던 것이 사실입니다. 다행이 가게는 아주 잘 되었습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저의 모험?이 성공적이었죠. 그런데 그 집에서 6개월 동안 살면서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의 여러 가지 모습을 직접 보고 부딪히게 된 것인데, 내색은 안 했지만 참으로 결혼을 잘 못 했구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제가 저녁에 퇴근해서 돌아오면 출근할 때의 풍경과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는 것입니다. 뒹구는 이불이며, 생활쓰레기 등등. 제 생각으로는 집안에서 왔다 갔다 할 때 발에  걸리적거려서라도 좀 치웠을 것 같은데... 저는 처음에는 결혼식, 신혼여행, 친정, 시댁 인사 등으로 힘들어서 그럴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습니다. 그 사람은 지금까지 그렇게 집에서 아무 것도 안하고 살아왔고, 더욱 놀라운 건 할 생각을 아예 안 한다는 것입니다. 심장이 안 좋아서 긴 시간을 환자로 지내면서 자연스럽게 집안에서 공주처럼 자랐고, 단 한번도 밥이나 빨래, 설거지 등 집안 일을 해 본적도, 할 생각도 안 해본 사람이었습니다. 그것이 그 사람한테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죠. 저로서는 참으로 난감했습니다. 일일이 잔소리를 하자니 이것도 참 못 할 짓이고, 그냥 별 말없이 참고 살았던 듯 합니다. 그 긴 시간동안 하는 것이라고는 순정 만화 몇 권 보는 것이 전부인 듯 보였습니다. 저녁식사 준비도(인터넷업체에서 2일치 식단을 짜서 요리법 적어서 재료와 함께 배달 해주는 것으로,,,) 지금까지도 말초적인 것 외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아무튼 제가 신혼집으로 이사가면서 꾸렸던 옷 보따리를 풀지도 않은 채 그대로 다시 본가로 들고 왔습니다. 그 보따리 그 후 2년이 지나서 완전히 정리되었습니다. 불편한 제가 정리했어도 되는 것이긴 합니다만. 부부관계도 별로 없었습니다. (나름대로 피임을 했었는데 결혼 두 달만에 애기가 생겨서,,,)본가에 들어오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시어머니랑 살다보면 살림도 배우고, 요리도 자연스럽게 배우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것 또한 커다란 착각이었습니다.

 

너무나 인자하신 어머니덕분에 지금까지도 아침밥한번 안하고 있습니다. 물론 빨래, 청소 등, 스스로 하는 적 한번도 없고 어머님이 하시면 그 제서야 어머니 뒤따라서 다닙니다. 물론 어머니는 잔소리 안 하십니다.(지금까지 단 한번도.) 욕실 세면대에 아무리 때가 끼어도 닦지 않습니다. 무엇이든 할 생각을 못합니다. 누가 일일이 잔소리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보는 것이 있으면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 게 보통 사람의 모습 일건데 전혀 그런 것이 없습니다. 심지어 잠자는 방 청소도 어머님이 해주십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님은 이렇게 지저분한데 어떻게 사는지 한심해 하십니다.(저는 1년 가까이 거실에서 생활합니다.) 지금까지도 가장 먼저 잠자리에 들고 가장 늦게 일어납니다. 오로지 TV드라마, 순정 만화, 영화, 잠자는 것, 노는 것, 이런 것 말고는 스스로 하는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앞으로도 절대로 변함없을 거 라는 걸 이미 알고 있습니다. 포기 한 것이죠. 그리고 너무나 버릇이 없습니다. 일부러 그러는 것이 아니고 몰라서 못 하는 것이긴 하지만 정도가 좀 심합니다. 어머님이 무슨 말을 하시면 쳐다보지도 않고 고개만 까닥거립니다. 어머님이랑 같이 TV를 볼 때도 두 다리 쭉 뻗고는 웃느라고 박수를 쳐가면서 봅니다. 오히려 어머님이 단정히 앉아서 보십니다. 이런 사람을 어디서부터 가르쳐야겠다는 상상조차 못합니다. 물론 가르쳐보려고 시도는 해봤지만 절대로 교육이 안 되는 사람임을 잘 알게 되었습니다. 한번도 자기잘못 인정 안합니다. 상대방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일단 반박이 먼저 시작됩니다. 예외 없습니다. 아무리 대화를 해보려고 시도를 하지만 절대로 대화는 불가능합니다. 한번뿐인 소중한 제 인생인데 나름대로 많은 노력을 해봤습니다.(이런저런 방법으로 궁리를 해가면서...) 대화가 불가능하다는 건 정말로 저를 막막하게 만들었습니다. 10살 정도의 어린애들이 하는 습관이나, 생각수준을 갖고있으니 많이 답답했습니다. 한마디로 정말로 무식합니다. 남들한테 얘기할 때는 부풀리고 없는 얘기 만들어서 하고(제 험담 등). 있는 그대로만 말하라고 제가 늘 당부합니다. 저는 제 행동이 정당하다고 자신합니다. 누가 들어도 상관없지만 부풀려지고, 보태어진다면 안되겠죠. 아무튼 지금 본가에서 2년6개월 정도 살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로 제가 조금씩 마음의 문들 닫게 되었습니다. 대화가 불가능하니까 어느 정도 포기를 하게되고 부부로서의 의미도 없어졌습니다. 그러면서 저의 태도도 당연히 다정하게 대하지는 못했습니다. 마음에서 멀리하게 되었습니다. 그 모습이 제가 잘못한 것이라고 인정하는 유일한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늘 한 달에 10일 정도는 친정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낮에 장인어른이 태우러 오시고 데려다 주십니다. 이에 대해서 아무도 뭐라고 하는 사람 없습니다. 얘기가 너무 길어지는 듯해서 죄송합니다.

 

아버지 얘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2002년11월초에 혈액종양(암) 말기 판정을 받으시고 2003년10월5일 돌아가셨습니다. 그 1년 동안에도 참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제가 아버지를 모시고 원자력병원을 다녔습니다. 처음에 가게 할 때는 저 혼자 일했는데 나중에 와이프하고 같이 했습니다. 아버님이 입원하시면서 어머님이 병상을 지키셨는데 애기를 볼 사람이 없어서 처가에서 봐주었습니다. 물론 와이프도 거기서 생활을 했습니다. 처가집 얘기도 할 말이 많지만 하지 않겠습니다. 가정교육?에 문제가 많다고 생각됩니다. 아무튼 집안에 암 환자 있으면 그 집안은 모든 정상적인거 다 포기해야하더군요. 온 가족 모두가 많이 힘들었습니다. 겪어본 사람만이 그 고통을 알거라 봅니다. 그런 와중에도 잘난 와이프 여지없이 무식함과, 교양없음과, 철없음을 만천하에 드러냅니다. 그 전부터 늘 해왔던소리 이혼하자, 별거하자, 등등 별별 인간이하로 보이는 말, 행동을 용감하게 해서는 저와 가족의 가슴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새겨주었습니다. 그러던 중 처제가 이혼을 했습니다. 처제가 딸이 하나 있는데 장인장모님이 봐주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날 와이프가 저한테 한다는 말이 걸작입니다. " 심각하게 할 얘기가 있는데 우리 이혼하자"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장인장모님이 참 좋아하시겠다" "이혼도 남이 하니까 하고 싶어?"...참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얼마나 철이 없고 생각이 없어야 이 정도로 용감해질 수 있는 건지. 처제 이혼한 날, 시아버지 입원 중에, 이게 뭐 하는 건지 참 답답했습니다. 이혼하면 장인장모 의지 않고는 단 하루도 살아갈 능력 없으면서 애기도 데리고 가겠다고하고 그렇게 용감하네요. 또 한번은 가게에 애기가 나왔습니다. 손님도 있었는데 하는 말이 "(애기를 일컬어서)확 없애버렸으면 좋겠어" 그래서 너무 당황한 제가 물었습니다. "뭐라고?" 그랬더니 목소리를 더욱 높여서는 " 확 없애버렸으면 좋겠다고, 자기도 귀찮잖아?" 별 상황도 아니었는데 이런 말을 애기도 듣고있고(당시3세, 다 알아들음) 손님도 있고.......할 말을 잃었습니다. 5분후에 애기랑 슈퍼에 다녀와서는 다시 하는 말이 더욱 놀랍습니다. "어유~죽어버렸으면 좋겠어" 그래서 다시 물었습니다. "뭐라고?" 그랬더니 너무도 당당하게 "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순간 정말로 죽여버리고 싶었습니다. 아무 말 할 수 없었습니다. 애기도 듣고 있고, 손님도 있었고,,,담배만 피우고는 말았습니다. 그리고 작년여름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는 아버지 병중에 여름휴가 가자고 졸라서 결국 못이기고 휴가 1박2일로 영덕에 다녀온 얘기, 쓰자니 끝이 없습니다. 자꾸 떠오르면서 할말이 너무 많아지지만 이런 얘기는 그만 하겠습니다.

 

누가 봐도 뭐하나 내세울 거 없는 사람이 뭐가 그렇게 용감해서 늘 저한테 이혼을 요구하는지그런 요구가 반복되면서 저는 스스로 조금씩 이혼준비를 하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처음에는 무서웠지만 자꾸 들으니 조금씩 용기가 생기면서 이혼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고, 이혼과정, 이혼 후를 상상하면서 맘속으로 대책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 돌아가시고 1주일정도 지난 후 이혼하자는 요구에 그러자고 했습니다. 그 동안 저는 정말로 이혼을 하려는 굳은 결심을 했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이혼을 해야겠다고,,,,,,와이프 입장에서 보면 두 번 결혼, 심장수술, 이것만 봐도 평생 감사하고 살아야 할건데 줄기차게 용감할 수 있다는 것이 참,,,인간으로 안보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한번이라도 그런 거 내색 안 했고, 정말로 중요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변사람들한테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제가 이혼에 동의를 하니까 겁나는지 그때서야 잘못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압니다. 절대로 인간 안 된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럴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고 생각했으면 끝까지 제가 희생한다는 마음으로 살았을 것입니다. 수없이 대화를 통해서 시도했지만 지금은 미친 짓이란 걸 알기에 추호도 같이  살 마음이 없습니다. 지금부터는 제가 잔인해집니다. 매달리는 사람 떼어놓기 위해서 하지 말아야 할 말 했습니다. 홀로되신 어머니 계신 자리에서 두 번의 결혼, 심장수술, 모질게 다 말했습니다. 참 나쁘게 굴었습니다. 누가봐도 그렇게 보였다고 인정합니다. 그리고는 어느날 가게문 닫고 늦은 시간 저 혼자 처가 집에 가서 그 동안의 일을 숨김없이 보탬 없이 다 얘기했습니다. 처제 이혼도 모자라서 장녀도 이혼,,,,부모로서 이보다 더한 고통이 어디에 있을까요? 그런데 다 당신 딸 잘못이란 건 장인어른도 부인하지 못하더군요. 그리고 며칠 후 어머님이랑 장인장모님 다 계신 자리에서 저랑 와이프 다 같이 얘기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아무도 제 입을 막지 못했습니다. 다만 장모님이 그래도 딸인지라 두둔하려는 모습을 보이긴 했습니다. 어른들은 처음 듣는 얘기가 대부분이었고, 당사자인 와이프는 고개를 숙인 채 별다른 변명을 못했습니다. 얘기를 어느 정도 들으신 다음 마지막으로 장인어른이 그 연세에 , 그 자리에서 눈물을 흘리시며 하신 말씀 "ㅇ서방 ! 내가 잘못했네. 딸자식 교육 잘 못시켜서 미안하네. 내가 면목이 없다. 헤어질 때 헤어지더라도 싸우지 말고 헤어져라." 그러시고는 동네 창피해서 어떻게 고개를 들고 다니냐는 푸념을 하시면서 꺼이꺼이 우셨습니다. 장모님은 그래도 딸 편을 드느라 제 잘못을 찾아보려 했지만 장인어른한테 호되게 꾸중만 들었습니다. 얘기 끝 무렵에 울음판이 되었는데 그런 상황을 만든 본인은 그래도 아주 용감합니다. 사소한 내 잘못을 지적하려 목소리 높여 시도했지만 누구도 동조하지 않았습니다. 되려 야단만 맞습니다. 전혀 반성?하는 기미는 없습니다. 그럴 줄 알면 인간이죠. 현실적인 얘기로 위자료는 내가 받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말도 안 되는 얘기죠. 돈 문제로 질질 끌고 싶지 않아서 제가 주기로 했습니다. 애기 때문에 마음고생이 많았는데 결론은 와이프가 기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위자료를 애기한테 준다고 생각하고 주기로 했습니다.지금도 한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 이후로 서로 눈 안 맞추고, 말 한마디도 안하고 지냅니다. 싸울 필요는 더더욱 없읍니다. 가까이 오는 것조차 끔찍합니다.  아주 비참한 기분이네요. 이런 길고 유쾌하지 않은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많은 격려, 질타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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