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음..."
그날 밤이었다. 리바이의 휴대폰에서 시끄러운 전화음이 울렸다. 저는 작게 응얼거리다 휴대폰을 들어 잠긴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지금 이 시간에 전화하시는 거 되게 실례신 건 알-"
"으... 우... 나 어떡해요..."
전화 너머에서 낮게 깔린, 익숙한 음성이 들려왔다. ...엘빈? 저는 놀라 소스라치며 입을 열었다.
"...엘빈, 스미스 씨?"
"네에... 근데 어떡해요... 근데..."
한껏 취한 듯 낮지만 풀린 목소리는 어떡하냐는 말을 중얼거린다. 이 놈, 어울리지 않게 술이라도 마셨나 보군. 저는 한숨 작게 내뱉더니 덜컹이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켰다. 이내 조심스레 말 꺼내었으며.
"뭐 문제라도."
"...회사에서어... 으..."
하? 내가 마치 감정 쓰레기통이라도 된 기분이군. 무슨 일이길래 이 놈이... 얼굴을 잔뜩 찌뿌리곤 왜인지 차오르는 긴장감에 다시금 한숨 내뱉었다.
"...그러면 뭐, 무슨 일이 있으셨길래 저하고 볼일이."
"그냥 좋아서..."
웅얼웅얼거리는 엘빈의 말에 헛웃음이 터져나온다. 정말 귀찮은 녀석... 왜인지 마음 한 켠이 시큰시큰거리는 그 감정을 애써 무시하며 엘빈에게 조곤조곤 답하였다.
"좋으면 뭐, 우리 집으로 쳐들어오기라도 하시게요?"
"가도 된다는 뜻입니까...?"
갑작스럽게도 집에 올 구실을 만들어버린 저는 잠시 머리가 얼얼했다. 이런 똥같은. 영상통화도 아니기에 보이지도 않을 표정을 꽉 찡그리곤 엘빈에게 답했다.
"아니요. 누가 이 야밤에 갑자기-"
" ..근데 어디 살아요?"
그런 것도 모르면서 집에 가니 마니 한 건가... 어이없단 듯 실소 지어 보인다. 왜인지 귀찮단 생각은 옅어지고, 오히려 호감이 들이찼다. 저는 인지하지 못했지만.
"제 연인이라도 되세요? 반말에 무단침입 예고에."
"죄송합니다... 근데, 그러면 연인 하면 그래도 돼요...?"
? 제 얼굴 점점 달아오른다. 젠장, 이번에도 어떤 관계라도 이어지면... 애써 진정하며 숨을 고르던 저의 눈에 한순간 초점이 살짝 흐릿해지더니 전의 엘빈이 겹쳐 보였다. 힘차게 전진을 외치는. ...갑자기 심장이 미친 듯 뛰기 시작했다.
"무슨... 소리세요. 끊습니다."
"네에? 잠-"
뚝. 제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 ...성가신 놈, 똥같은 놈.
잠시 숨을 골랐다. 엘빈을 만나고 나서부터 전생의 기억이 고통스럽게 느껴지기만 한다. 저는 찬장을 뒤적거려 수면제 한 알을 꺼냈다. 그리곤 물도 없이 삼켜 버렸다. 잔잔하게 아린 기운이 속에서부터 퍼져 오고 이내 졸음이 몰려온다. 이불을 덮고 웅크린 채 저는 다시금 최대한 잠을 청했다. 기억을 잊으려 노력한다.
딩동.
구식 초인종 울리는 소리가 선명히 들려왔다. 저는 놀라 몸을 일으키며 시간을 살핀다. 3:57 am. 젠장, 아직 까마득한 새벽인데. 또 누구지? 부스스 머리를 털고 일어난 제 귀에 낮고 작은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문 좀 열어 주세요..."
...엘빈인가? 대체 이게 무슨... 전생에 무슨 일이 있었든 이정도면 스토킹 아닌가? 제 온 몸이 나지막이 떨렸다. 아니, 우리 집은 어떻게 알고...
"누구...신데, 지금 저희 집에..."
여차하면 때려 기절시키리라, 하며 마음의 준비를 하던 저에게 엘빈은 다시금 말을 건네 온다.
"엘빈 스미스... 문 열면 얘기할게요... 맛있는 거, 사왔는데..."
역시나 네 놈이군.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왜인지, 달가운 이 기분은 뭘까. 전생에 엮였던 그것 때문이려나? 저는 아무 생각 없이 문을 열어줘 버렸다.
"..."
끼익, 하며 열리는 문 앞엔 엘빈이 서 있었다. 한 손엔 비닐봉지를 들고, 다른 한 손엔 휴대폰을 들고. 침울했던 표정은 리바이를 보자마자 어느 정도 풀어졌다. 엘빈은 술 냄새가 풀풀 나는 모습으로 집 안에 발을 들인다.
"? 어이, 일단 옷이라도 털고..."
그런 저를 무시한 엘빈은 신발도 대충 벗어던진 채 문을 닫아버리고는 안으로 천천히 들어왔다. 단란한 투룸. 제 집을 잠시 살펴보던 엘빈은 이내 저에게로 시선 돌린다.
"...우...으..."
그러곤 어울리지 않게 후드득 눈물 흘리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저는 당황하여 엘빈에게 다가가 등을 토닥인다. 젠장. 이렇게나 체구 차이가 많이 나는 놈이 내 집에서 처 울고나 있다니. 이상하게도 왜인지 원망스런 마음이 들지 않았다.
"리바이이... 나 어떡해..."
한참 시간은 지났건만 아직도 울먹울먹 얼굴을 손에 파묻으며 우는 엘빈 덕에 리바이, 저는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무슨 일이냐고 캐물어도 회사 어쩌고, 그따위 말만 반복하니 절로 욕지거리와 원망스렁 마음이 들쑥 올라왔다. 어느새 둘은 격식은 제쳐두고 반말이나 주고받고 있다.
"뭐, 무슨 일인지 말이라도 해 줘야 위로라도 할 거 아니냐, 네 놈은 정말 멍청하군."
"...짤렸다. 이제 됐어...?"
제 재촉에 엘빈은 그제야 입을 연다. 짤렸다고? 하긴 일을 그따위로 하는데 나같아도 짤랐지. 저는 한숨 다시금 내쉬었다.
"그러면 아무 관계도 없는 나한테 왜 이러는 거냐. 엘빈, 뭘 원하는 건가?"
얼굴 찌푸리며 식은땀 닦아내는 저에게 엘빈은 중얼중얼 대꾸한다.
"좋으니까, 리바이 네가... 난 가족도 없다, 다 나 때문에 없어져버렸어. 그런데 리바이 네가 날 구원해줄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래서 널 찾아온 거야..."
어느새 울음을 멈춘 엘빈이 충혈된 눈으로 저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구원이라니, 정말 멍청하기 짝이 없군... 전생에서 구원받는 건 항상 자신이었는데, 똑같은 상대와 완전히 뒤바뀐 상황을 마주하는 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혼란이 자꾸만 찾아온다.
"하..."
"난... 갈 곳이 없어. 이제 돈을 벌 곳도 없고. 여기도 수소문해서 찾아왔다. 그러니까 나하고, 잠시만 같이 있어 줘..."
엘빈의 눈시울이 다시금 붉어진다. 저는 엘빈을 바라보았고, 엘빈도 저를 바라본다. 엘빈, 네 녀석은 무엇에 취해 있는 거냐... 제 입술 꼭 깨물었다. 그리고 저는 조심스레 입을 연다.
"...알겠다."
+ 쓰니인데 캐붕 너무 미안해 하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스토리가 이어지질 않았어...ㅜㅜ 오글거려서 쓰는 나도 죽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