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해석해 볼게. 편지 해석이야! 여러 해석이 가능하지만 워낙 세상의 벽, 편견 같은 것들에 관심이 많아서 우선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걸로 해석했어. 물론 나로서도 다른 해석도 생각하고 있지만 깊게 어느 분야로 파고 들진 않고 겉핥기 식으로ㅎㅎ 두 가지 해석이 떠오르는데 이거만 먼저 올려ㅎㅎ
아파트 - 주로 단지로 구성되어서 ㅁ자로 아파트 건물들로 둘러 싸인 형태. 그런 ㅁ자 형태가 여러 군데에서 어딜 가든 볼 수 있어. 같은 단지일 수도, 다른 단지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 단지마다 가진 생각이 다른 거지. 단지 내 사람들 끼리는 공유하는 생각이지만, 단지 밖 사람들에게는 편견으로 와닿겠지. 단지 내 사람들 끼리의 결속력을 다지면서 단지 밖 사람들과의 교류는 거의 없는 모습을 보여.
아파트 맞은 편 길목과 버스 정류장 - 단지 밖 사람들의 길. 각자 자신들에게 맞는 단지를 찾아 떠도는 무수한 사람들이 지나쳐가는 장소라고 생각해. 단지 내에서는 한정적인 교류가 이루어진다면 길목과 버스 정류장에서는 보다 폭 넓은 교류가 가능하겠지. 45번 버스에서 내리던, 흰 운동화의 앞코를 만난 장소도 그곳이었을 거야.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을테니 다른 버스를 타도 결국 같은 정류장으로 돌아와 다음 버스를 기다린 사람들도 많았을거야.
버스 정류장에 앉아 고개를 들면 보이는 <창 너머로 비치는 멀끔한 내면>이 <잘 다듬어진 삶의 단면> 같았던 이유는, 아직 정처를 찾지 못한, 나만의 ㅁ의 찾지 못한 나로서는 실내가 훤히 들여다 보이는 아파트들이 동경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겠지. 정처를 찾아 가정을 꾸리고, 멋들어진 가구들이 자리잡힌 곳들을 보자니 나 자신이 얼마나 초라했을까. 정착 할 곳에 나를 데려다 줄 버스를 찾는 데에 번번히 실패했기 때문에 자존감은 점점 더 바닥을 쳤을 거고, 상대적으로 창 너머 비치는 풍경들은 너무나도 멀끔했으니까. 저게 내가 그려왔던, 늘 마음 속에 품어 온 '삶'이었을테니까.
동경이 혐오가 되기 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겠지. 나에게는 없는 세상이 그들에게는 존재했고, 당연했을 테니까. 그 삶이 누군가에게는 정말 간절할 수도 있을 거라는 것도 모른 채로. 얼마나 미웠겠어. 그렇게라도 해야 내가 편했을 테니까.
가사에도 ‘say something I’m giving up on you’가 있잖아. 나는 늘 정처를 찾았는데 정작 반대편에선 답이 오질 않으니까. 점점 지쳐가겠지.
그래도 괜찮았을거야, 늘 옆 자리를 지켜주는 네가 있었을테니까. 그 아이가 자신의 정처를 찾아 긴 여정을 끝낸 후 정착을 했는지, 혹은 그 길을 포기했는지 더이상 내 옆에는 네가 없겠지. 사랑해 주어서 고맙다는 말조차 건네지 못한 채 그렇게 끝이 났겠지. 너무나도 사랑했지만, 동시에 너무 어렸던 열아홉이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