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바이와 나의 관계는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없었다. 친구라기엔 미묘한 감정들이 존재했고, 가족이라기엔 왠지 모를 배덕감이 들었으며, 연인이라기엔 우리들의 마음을 충분히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표현하지 않아도 서로가 서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알 수 있었다. 그래, 어쩌면 그는 내게 친구이자 가족이자 연인일 수도 있겠다.
리바이를 처음 만난건 꽤 오래전이었다. 8살의 나는 거지꼴로 지하도시를 무작정 배회하고 있었다. 난 갈 곳이 없었다. 아버지는 누군지도 모르고 어머니는 몸을 팔다가 죽어버렸다. 마담 아주머니는 한순간에 고아가 된 나를 어린아이를 취급하는 사창가에 팔려고했고 난 가까스로 도망쳐나왔다. 목적지는 없었지만 최대한 멀리 가야했다. 이대로 마담 아주머니에게 잡힌다면 그 더럽고 추악한 곳으로 끌려가게 될테니.
난 며칠동안 물 한 모금도 제대로 마시지 못했었다. 고통스러운 굶주림과 갈증에 서서히 눈이 감겨갈때 쯤 그를 만났다. 기껏해야 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그는 금방이라도 싸우고 온 듯 상처엔 피가 맺혀있었고 한쪽 손엔 단도를 들고 있었다. 그는 내게 다 식은 빵 한조각을 건넸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작고 하찮은 빵쪼가리이지만 그때의 나에겐 어둠 속 한줄기 빛과도 같았다. 그것이 우리의 첫만남이었다.
***
"어이,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는거냐."
"아니 뭐, 그냥 옛날 생각이 좀 나네."
"칫, 뜬금없기는."
리바이는 감상에 젖어있는 나를 바라보고선 의자를 내쪽으로 돌려세우고 앉았다.
"홍차 줄까?"
"됐다. 밑에서 와인가져왔어. 이거나 마시자."
오늘은 좀 특별한 날이었다. 내일 월마리아 탈환 작전의 성공을 기원하기 위해 아껴뒀던 식량과 술들을 풀고 잔치를 벌이는 날.
이상하게도 난 오늘따라 기분이 좋지 않아서 잔치에 참석하지 않고 혼자 방안에 틀어박혀 있었다. 리바이는 내가 여기 혼자 있다는걸 어떻게 알고 찾아온걸까?
"오랜만에 하는 잔치인데.. 좀 즐기다 오지. 나 여기 있는지는 어떻게 알았어?"
"니가 썩은 표정으로 혼자 방에 올라가는데 내가 가만히 있을거라 생각한거냐? 그리고 너 없는 잔치는 재미있지도 않아."
리바이는 무심한듯 다정한 말을 건네고서는 차분하게 와인을 따랐다. 짙은 선홍빛의 와인이 잔잔하게 일렁였다. 너무나도 붉은 저 와인의 자태를 보니 결코 잊혀지지도 않고 잊을 수도 없는 기억들이 내 머릿속을 헤집었다.
'동료들의 죽음'
지하도시때부터 함께한 이자벨과 팔런을 시작으로 얼마나 많은 내 사람들이 죽어나갔던가.
난 더이상 내 사람을 잃고 싶지 않다.
내 목숨을 바쳐서라도 절대 리바이를 잃고 싶지 않다.
그는 날 살아있게 하는 내 심장과 같은 존재이니까.
"(-), 부탁이 있다. 꼭 들어줬으면 해."
리바이는 무거운 표정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죽지마라."
"...응?"
"죽지 말라고. 너만은 날 떠나지마. 넌 내 삶의 이유다. 그러니까 제발 죽지마. 부탁이다. 아니, 상관으로서의 명령이야."
혼란스러웠다. 죽지말아라, 날 떠나지 말아라. 넌 내 삶의 이유다. 이런 말들을 내게 직접 한다는게. 평소 그가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몰랐던 것은 아니다. 행동으로는 그가 날 아낀다는게 티가 나긴 했지만 그가 직접 이런 말을 하는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많이 취한건가? 아니, 그럴리가 없다. 그는 아무리 들이부어도 끄떡없는 말술인데.
"당황스럽다는 표정이군."
"어..? 어... 이런 말은 처음 들어봤으니까... 근데 오늘 갑자기 왜 그래?"
"그냥.. 이대로 평생 말하지 않으면 정말 후회할 것 같아서."
리바이의 눈동자에 옅은 슬픔이 비치는 듯 했다.
그래, 그의 마음 또한 얼마나 갈기갈기 찢어졌을까. 내게 짐이 될까봐 힘든 내색 한번 하지도 않고. 난 당신에게 지켜지는 사람이 아닌 당신의 안식처 같은 사람이고 싶은데. 내 마음을 알긴 하는걸까?
"리바이, 날 지키려고 애쓰지마. 당신한테 부담주는 사람이 되고싶지 않아."
내 단호한 말에 그는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
"너, 네가 내게 부담이 될거라고 생각하지 마라. 널 위하는 것들에 한번도 그런 감정 느껴본 적 없어. 넌 내게 그런 존재야."
아, 두 뺨에 열이 오르기 시작한다. 취해서일까? 아니면 리바이답지 않은 낯간지러운 말들 때문일까? 뭐든 상관없다. 난 리바이를 사랑하고 그 또한 나를 사랑할 것이다. 서로의 감정이 이렇게 훤히 보이는데 그동안 우린 뭘 그리 망설였을까?
취기 때문인지 용기가 생겼다. 오늘 우리의 마음을 확실히 확인해야겠다.
난 그의 손을 살며시 어루만지며 말했다.
"리바이.. 날 사랑해?"
그는 내 직접적인 말에 놀랐는지 머뭇거리다 이내 답했다.
"...응."
난 그의 대답을 듣자마자 그의 입술에 내 입술을 포갰다.
---
하편은 꾸금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