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는 스물 셋, 스물 다섯에 만났다.
스물 셋의 나는 대학교를 졸업한 지 얼마 안 된
순수하고 열정적인 모습이었고,
스물 다섯인 너는 막 사회초년생이 된 청년이었다.
처음 만난 날, 홍대 골목골목을 누비며 조금은
망설이고, 부끄러운 어투로 말했던 너의 한마디.
“잘해줄게. 사귀자”
나는 솔직히 그 날 뭘 먹었고,
내가 무슨 옷을 입었는지 기억도 안난다.
하지만, 그 날 저녁의 냄새, 바람, 칼 날 같이 차가운 날씨,
너의 옷 차림, 너의 말투
이건 내 머릿속에 박혀 있듯 기억이 난다.
내가 너무 어리숙했고, 순진했던 탓일까.
아니면 너의 말대로 우리가 만난 시기가 너무 빨랐던 탓일까.
난 2년 6개월이라는 시간을
너가 언젠가 나한테 고백했을 때 했던 말을 지키겠거니했다.
너를 만나기 전 SNS를 보며 요리사 남자친구에 대한
환상을 가졌고,
너를 만난 후 나의 환상은 깨진 유리잔처럼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연애 초반 때는 틈틈이 카톡을 하고, 전화를 하던 너가
2년이 다 되 갈 때 즈음,
나의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장례식장인데 왜 이렇게 연락이 잘 돼??’
그때는 그냥 웃고 넘겼지만, 난 알고 있었다.
모처럼 너가 쉬는 날,
우리 할아버지 장례식을 핑계로 연락 하기 귀찮다는 뜻이라는 걸
헤어지기 6개월 전부터 바빴던 너로 인해
근 6개월을 실내 데이트를 해야했던 나.
괜찮다. 괜찮다했지만
실은 속이 썩어뭉들어졌었다.
여자로서, 자존심은 이미 바닥을 내비쳤고,
연애 초반 때는 이런 사랑을 받아도 될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2년이 지나니 이런 사랑을 받아야 할까?로 변질되었다.
헤어지기 3주전, 마지막으로 영화를 보던 날.
평소 같으면 영화보는 도중에 손도 덜컥덜컥 잡았을텐데
그날은 왠지 손을 잡으면 너가 뿌리칠 거 같았다.
무슨 영화인지 어떤 내용인지 그런 건 눈에 안 들어왔다.
손은 잡고 싶은데 용기를 내야 한다는 기분에
나는 그날 느꼈다.
“이 연애도 조만간 끝을 보겠구나”
그 이후, 정확히 3주 뒤에 헤어진 거 같다.
이상하게, 눈물이 막 나오지는 않았다.
예고 되어있던 이별인지라,
나도 어느정도 마음의 준비를 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많이 울지 않았지만
예상밖으로 너가 울었다.
미안하다고, 더 잘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나를 신경써주는 사람을 만나서
나들이도 많이 가고 진심으로 좋은 사랑했으면 좋겠다고.
그래도 너로 인해 많은 것을 경험했다.
사람을 온전히 사랑하는 내 모습을 보았고,
나도 사랑을 받을 수 있다라는 것을 느꼈으며,
연애는 결코 성숙한 연애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스물일곱, 스물 아홉이 된 지금,
서로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위치를 지키며 살고 있지만
너도 언젠가 너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그 모습이 찬란하게 빛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