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부선선교사는 일제강점기 황해도 재령읍에서 살면서
황해도 전 지역을 복음화시키는데 일생을 바쳤던
한위렴(William B. Hunt)선고사의 아들로 평양기독병원
에서 태어났다.
16세가 되기 까지 평양의 외국인학교에서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는 것을 직접보고
그해 6월에 기선을 타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한부선은
한국사람이 3.1운동을 하다가 일본 헌병에 쫓겨 넘어지면서
땅에 떨어뜨린 태극기를 주워 그것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태평양을 건넜다. 휫튼대학에 입학하여서도, 평양외국인학교
운동장에서 주은 태극기를 언제나 자기 방에 꽂아놓았다.
한부선은 어려서부터 황해도 재령에서 한국 아이들과 같이
놀면서 자랐기 때문에 한국말을 한국아이들과 똑같이 했다.
그의 음성은 부드럽고 구수하였다. 그는 여는 지방의 사투리를
사용하지도 않았고 특이한 음성을 내지도 않았다. 누구든지
그의 음성을 듣고 흉내내고자 하는 사람도 없었다.
한부선은 용모뿐만 아니라 말씨는 구수하고 식사도 소박했다.
**********홍치모교수의 글에서**********.
어릴 때 외국인을 처음보았는데 바로 한부선선교사였습니다.
신기했습니다. 그리고 외국인이 우리나라 말을 너무나 잘
해서 천사인가 생각했습니다.
그분은 참 좋은 분이었습니다.
그분에 관해서 누군가가 글을 남겼으면 했는데
홍치모교수의 글이 있어서 여기 옮겨놓았습니다.
우리 나라를 그렇게 사랑했던 그분이 정말로 그립습니다.
행복하십시소
내일 계속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