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을 당한 여성에게 '조심했어야지'라고 말하는 것은 여성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만약에 할렘가에 가서 1만달러를 손에 쥐고 흔들며 다닌다면 당연히 강도를 당하겠죠. 그 경우에 저에게 '조심했어야지'라고 말하면 그 도둑이 100% 잘못했다는 사실이 변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 경우에도 도둑이 100% 잘못했죠. 하지만 저에게 '조심했어야지'라고 충고한 사람의 말도 여전히 옳습니다. 여성의 성추행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지요. 성추행범이 100% 잘못한 것은 맞지만 여성에게도 조심할 필요는 있는 겁니다. 즉, '조심했어야지'라는 충고를 하는 것과 성추행범이 100% 잘못했고 책임은 오로지 그에게만 있다는 사실은 양립 가능하며, 이분법적으로 구분할 수 없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늘 듣는 말이 있다. 안하는 것과 못하는 것을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고. 그런데 이걸 이분법적으로 구분할 수 있는 것일까?
예를 들어보자, 여러분들은 은행강도를 ‘안’하는가, ‘못’하는가? 조희팔처럼 1조원대 이상의 사기를 '안'치는가, '못'치는가?
대부분의 사람은 둘 다일 것이다. 은행의 보안과 경찰의 체포를 피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고, 설사 가능하다 하더라도 평생 추적당하는 현상수배자의 삶을 원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의 가정을 파탄내고 대못을 박으면서 사기를 쳐서 돈을 벌고 싶어하지는 않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당연히 그런 말빨도 되지 않을 것이고.
즉, 안하면서 못하는 것은 당연히 동시에 가능하며, 따라서 이 둘은 명확히 구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못한다는 것은 객관적 능력이나 상황에 의한 것이고, 안한다는 것은 개인의 주관적 의지에 의한 것이다.
따라서 안한다고 하는 사람이 명백히 모순된 행동을 하지 않는 한(예를 들어 결혼에 관심없다면서 결혼정보 회사에 가입한다거나, 차에 관심없다면서 매일 자동차 할부만 알아보고 있다거나) 그 사람이 의지가 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한국에서는 관심법 달인들이 많아서 남에게 함부로 “너는 안하는게 아니라 못하는거다” 라고 하는데, 이것은 비교를 좋아하는 한국인의 특성상 남을 함부로 깎아내려서 자신의 우월감을 확인하고자 하는 절차가 아닐까?
한국에서는 매우 희한하게도 안한다는 것의 의미를 ‘당장이라도 할 수 있는데, 오로지 의지에 의해서 하지 않는 것’으로 곡해하고 있다. 안한다는 것에 할 수 있는지 없는지의 여부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