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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뒤틀린 아르민 드림



*약 고어









"..."

어느 밤, 너는 홀로 일어나 있었음. 2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각이므로 조사병단 숙소는 고요했고 너는 우연히 악몽에 의해 깨어난 거였음. 붉은 손들이 너를 끝없이 바다로 끌어내리는 꿈.

"하아아... 개꿈인데 신경쓰이는 건 또 뭐냐..."

스트레스 때문이란 건 알고 있었음. 마침 어제 벽외조사에서 돌아온 터라, 그저께까지만 해도 옆에 있던 동료가 사라져 버린 스트레스는 엄청났음. 그래도 이렇게 허무하게 먹혀 버릴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던 친구였고 그것을 눈앞에서 본 너는 충격이 엄청났음. 항상 네가 의지하던 친구가, 처참히 거인에게 물어뜯기며, 살려 달라고 울부짖던 모습이 잊혀지지 않았음.


그리고 돌아가는 길에 조용히 눈물을 흘리던 네 곁에서 괜찮냐 물어보며 바다 얘기를 해 준 아르민까지. 유독 너는 바다 이야기가 잊혀지질 않았음. 그래서 바다로 끌려가는 꿈을 꾼 건가. 꿈에서 본 바다는 깊고, 아름답고, 어둡고, 푸르렀음. 끝없는 물 속으로 가라앉아서 그 붉은 손들이 네 몸을 휘감는 것을 보고만 있자니 아르민의 얼굴이 생각났음. 그리고 기괴하게 일그러진 친구의 얼굴도. 그 두 얼굴을 너를 조롱하듯 웃었음. 입꼬리가 찢어져서 피가 떨어지는데도, 웃다가, 뒤섞여서는 검붉은 덩어리로-

•••

너는 그 시점에서 깨어났었음. 흥건한 땀을 닦고, 아직까지 물기가 껴 있는 듯한 눈을 깜빡이고, 공허한 어둠 속에 혹여 푸른 빛이 있지는 않나 확인하고서야 덜커덕거리던 심장은 천천히 뛰기 시작했음.

어느새 시간은 3시를 가리키기 시작했음. 당연한 얘기지만, 내일도 훈련이 있는데. 휑한 바람소리와 스산한 공기에 네 몸이 작게 부르르 떨렸음. 정말로 자야 하는데... 너는 찝찝한 마음을 뒤로하고 침대에 누웠음. 눈을 감고, 잠을 청했음.




아침이었음. 너는 어제 늦게까지 깨어있어서 그런지 조금 늦게 일어났음. 그러나 너는 평소처럼 할 것들을 모두 마치고, 식당에 들어가 앉았음. 당연하게도, 홀로.

그런데 식판을 깨작거리던 네 옆에 갑자기 인기척이 느껴졌음. 놀란 너는 반사적으로 옆을 확인했고, 그 옆엔 아르민이 아무렇지 않게 앉아서 너에게 인사하고 있었음.

"안녕, (-)...! 혹시 여기 앉아도 될까?"

너는 잠시 멈칫했음. 이미 앉고 나서 물어보는 심리는 대체 뭐지? 그렇지만 딱히 거절할 이유도 없었음. 정확히 말하자면 타당한 이유. 고개를 느릿하게 흔든 너에게 아르민은 배시시 웃으며 고맙다고 인사했음.

아침 시간이 거의 지나갔을 때 즈음, 묵묵히 먹던 아르민이 한 마디를 꺼냈음.

"...그래서, 바다에 관해서는 생각해 봤어?"

"...바다?"

바다라니.

아르민이 네 악몽을 알고 말했을 리는 없었음. 그저 바다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동의해주길 바라는 마음일 테지. 저번 벽외조사에서...

...갑작스레 속이 안 좋아졌음. 너는 입술을 살짝 깨물고, 꾹꾹 눌러 대답했음.

"그냥... 거기 가면, 자유를 얻을 수 있을까... 궁금해. 그뿐이야..."

"...나도 그래. 그게 너무 궁금하고 경이로워서... 바다는 거대한 소금 호수라던데, 얼마나 아름다울까."

아르민의 손이 점차 느려졌고, 커다란 동공도 흐려지기 시작했음. 초점 없이 허공을 바라보면서,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듯이 미소를 띄고. 그리고... 그 대상은 당연하게도 바다겠지. 너는 점점 머리가 아파 오는 걸 느꼈고, 신경질적으로 일어났음. 여전히 멍한 아르민에게 이질감이 느껴지기도 했음.

"...먼저 가 볼게."

"...아! 그, 그래, 잘 가."

형식적인 인사를 주고받은 후, 너는 빠르게 식당을 나섰음. 찝찝한 기분이 맴돌았음. 훈련 내내 바다에 빠지는 것 같이, 눅눅한 기분이.


•••


"하아아..."

너도 인지하지 못했지만, 너는 아마 친구의 죽음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이 쌓여 있는, 컨디션 저조 상태인 것 같았음. 하루종일 맡지도 않은 물 내음이 코에 어른거리고, 속이 울렁거리고, 숨 쉬기가 가빠 져서, 조퇴를 신청하고 침대에 풀썩 누운 지 한 시간쯤이나 지난 것 같았음. 무심코 이마에 손을 올려 보았고, 역시나 열은 높았음.

"짜증나네..."

그 사실을 인지하자마자 온 몸이 후끈하게 달아오르는 느낌이었고, 덥고, 땀이 나고, 으슬으슬한 이상한 기분이 들었음. 이번 감기는 꽤 가겠는걸. 너는 한숨을 푹 쉬었고, 흐리멍텅한 눈으로 천장을 응시했음. 뜨거운 네 몸을 차가운 바다에 풍덩 빠트리고, 그렇게 빠져서 점점 가라앉고 싶은 마음이었음. 있던 열마저도 모두, 사라지고, 사라져서, 네 몸이 싸늘하게 식어 버리고도 남을 정도로, 바다가 네 모든 걸 가져가도록...

그렇게 한없이 빠지고 싶었음. 어느 순간 동경하고, 바라게 된 그 바다에.

...아르민이 항상 이런 기분이었을까.

이렇게 최악의 상황에서라면, 바다에 빠지고 싶어 했을까. 나처럼?

눈앞이 핑핑 돌았음. 바다는 거대한 소금 호수라던데. 소금물에 얼굴이라도 담그고 있으면 기분이 나아질까.

"...바보같다, 정말."

어느새 시간이 훌쩍 흘러가 있는 듯 했고, 너는 홀리듯 잠에 빠져들었음. 파도에 섞여 일렁이는 네 친구의 피들이 모래로 스며드는 가물가물한 환상을 보면서.


•••


"...으...음."

눈이 떠졌음. 그러나 시야가 잘 확보되지 않았음. 몸은 아직도 열이 펄펄 나는 중이었지만 어느 정도 이성적인 생각은 할 수 있는 상태였음.

...아, 내가 얼마나 한심했는지. 사람이 너무 짜증이 나고, 스트레스가 쌓이면 그렇게까지 생각하게 되는 걸까.

바다에 대한 모든 감각들이 너무 오래 전 일처럼 여겨졌고, 그러면서도 자연스러웠음. 그저 바다라는 존재가 무엇인지 좀 더 투명하게 생각해 볼 수 있을 정도로. 바다에 빠져서 사라지고 싶은 마음보다는, 바다를 온통 그 상태로, 그 아름다움으로, 간직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음.

문득 희열이 찾아왔음. 왜인지 목표를 찾은 느낌이었음. 아르민이 해준 이야기에서 너무 멀리 와 버린 느낌이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음. 아르민과 바다에 대해서 생각하던 중, 갑자기 현실적인 고통이 전해졌음.

머리가 핑 돌고, 가슴께가 너무 답답한 고통이.

"아...으윽..."

잘 나오지도 않는 쉰 목소리로 겨우 작게 신음한 너는 점점 색깔이 돌아오는 시야에 의존해 상황을 파악하려 노력했음. 켜둔 양초 때문인지, 주황빛을 내는 어둠 속에서, 익숙한 실루엣이 네 목에 손을 가져다대고, 네 얼굴을 응시하면서-


아.

아르민이 왜?

자괴감과 절망에 뒤틀린 표정으로 네 목을 조르던 아르민은 네가 고통에 신음하자, 잠깐 놀라더니 손에 힘을 풀었음. 너는 숨을 헐떡였음. 괴로움에 생리적인 눈물이 한두방울 눈에서 떨어졌고, 그렇게 아르민과 너, 둘은 한참을 아무 말 하지 않고 각자 진정했음.

이윽고, 네 의식이 완전히 돌아올 때 쯤, 너는 아르민을 애증의 눈빛으로 곁눈질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음.

"...너, 대체 뭘 했던 거야...? 왜, 무슨 이유였는지라도... 그러니까, 날 해하려고 했던 거야...? 난 널 믿었는데... 이를테면, 믿음 이상의 감정까지도..."

너는 말하는 걸 멈췄음. 아르민은 너를 한번 쳐다보더니 처연하게 고개를 숙이고는 마찬가지로 천천히 입을 열었음.

"...진짜... 정말로, 미안... 미안해, (-)... 난, 그냥... 그러니까... ...바다에 대해서, 나는... 그걸 너무 가지고 싶었어. 온전히 내가 보고, 그걸 온전히 간직하고... 바다에 빠져 사라지는 한이 있더라도, 그걸 그대로 온전히 간직하고 싶었어. ...그게 사랑이겠지, 도를 넘어서서... 그리고 나는 너한테도 그런 감정을 느꼈나 봐. 지금도 널 너무 가지고 싶어서... ...아아, 미안해, 나는 그냥... 그걸 온전히... 모든 걸 온전히 간직하려고..."

너는 묵묵히 아르민에게 다가갔음. 그리고는 아르민을 폭 껴안았음. 작게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음.

"...나도, 널 사랑해. 나도 같은 감정이야. 나도 널 사랑하지만..."

...이상하지. 분명 처음엔 그걸 바랐지만, 지금은 아닌데도, 나는 바다에 빠지는 느낌이다. 끝없이.

















으악 이런 소재를 너무 써보고 싶었어...ㅠㅠㅋㅋ 봐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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