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던 5월의 프린시펄리티즈의 모터쇼가 끝이나고 이제는 본격적인 출시를 앞두고 있었다.
너무도 성공적으로 끝이난 모터쇼때문에 한국에서는 벌써 프린시펄리티즈에 주목하고 있었고
이제는 일반인들을 위한 광고를 준비해야 했다.
"달아- 오늘 잠깐 회사에 나올래?"
"응? 왜??"
"그냥 점심이나 같이 하자구"
"흠... 오늘 해우가 쏜다고 했는데..."
"오늘 안나오면 후회할지도 모르는데..."
"무슨 후회??"
"내가 지금 데릴러 갈수 없으니까 택시타고 잠깐 와-"
"말두 안해주구. 안갈래-"
"정말 후회할지도 몰라-"
"좋다. 한번 속는셈치고 가주지 뭐."
삼십분 후 달이가 내방으로 왔다.
"자 이제 얘기해줘."
"나가자-"
"어딜? 나 방금 들어왔는데?"
"점심먹으러-"
"점심? 아."
달이는 차안에서도 쉴새없이 물어댔다. 하지만 조금뒤 놀랄 달이를 생각하면... 후훗...
웃음이 나왔다. 전통 가옥의 한정식 집. 종업원은 나를 가장 안쪽으로 안내했다.
"와서 기다리고 계세요."
"예 감사합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안엔 이미 CF촬영을 맡을 감독. 그리고 모델이 와 있었다.
"인성씨 이쪽은 타이요사 한국지부 오태양 이사님."
"아 예 안녕하세요-"
"예 반갑습니다. 앉으시죠."
"예-"
달이를 위한 특별한 이벤트... 이번 프린시펄리티즈의 모델이 될 조인성과의 만남.
사실 녀석을 섭외할 마음은 없었다. 광고주측에서의 추천때문에 라고 말해도 독자들은 다들 눈
치채셨겠지? 흠... 그렇다. 모델 조인성씨는 내 적극적인 추천때문이었다.
"인성씨 이사님와이프께서 팬이시래-"
"아 그러세요. 감사합니다."
그때까지도 달이는 조인성의 얼굴을 뚫어져라 볼뿐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정말 인성오빠 맞아요?"
달이의 말에 그가 조심스레 웃었다. 아무리 이사부부라지만 우린 조인성보다 한살 어렸고, 감
독과는 열살정도 차이가 났다. 때문에 달이의 말투에도 문제가 있긴 했지만 어쩔수 없는 듯 그
도 이해를 하는 것 같았다.
"예. 맞아요."
"태양아, 나 안 믿어져- 어떡해- 너무 좋아"
달이는 내 팔을 당기며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난 달이의 말을 들으며 끓어오르는 화를 삭히
며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달이는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었다. 노트북을 안은채 꼼짝도 하지 않는 달이.
"뭐해?"
"잠깐만-"
"뭐하는데?"
"......."
또... 무시 당했다. 그래서 조용히 달이의 뒤로가 노트북을 내려다 보았다.
-조인성 팬클럽-
할말을 잃었다. 프린시펄리티즈의 모델. 잘못 뽑은것 같다...
다음날 아침.
토요일이어서 달이는 학교에 가지 않았다. 나도 오늘은 달이를 위한 데이트를 준비 중에 있다.
어디로 가면 좋을까...? 1박 2일 짧지만 조금 멀리라도 가보자 하는 생각으로 인터넷을 뒤졌다.
커플을 위한 1박 2일 낭만 데이트 코스- 신혼부부를 위한 주말 여행 등등 그리고 한시간여만의
웹서핑 끝에 드디어 갈 곳을 결정했다.
"달아- 우리-"
"태양아 오늘 늦게 회사가는 거면 나 학교 좀 데려다주고 가라. 응?"
"갑자기 학교는 왜?"
"어. 후배들이 자꾸만 밥을 사달래네- 헤헤"
"오늘 꼭 사줘야 돼? 다음에 사줘도 되잖아?"
"애들 지금 학교에서 나만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어. 나 안가면 난리날거야. 혹시 바쁜거야? 회
사 지금 가봐야 돼?"
"아니... 데려다 줄게..."
달이와 주말 여행을 하기 위해 오늘은 회사에 나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달이는 나보다
약속이 먼저 있었다. 나와 함께 있어주길 바랬는데...
달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고 회사로 곧장 나왔다.
"이사님-홍보실장님 오셨습니다."
"예. 알았습니다."
잠시후 문이 열리고 홍보실장이 들어왔다. 스물 여섯의 해외파 홍보실장 진유리씨.
"잠시만요. 이것만 처리하구요."
"괜찮습니다. 기다릴게요. 천천히 하세요."
"아닙니다. 다 됐어요."
급한 서류만을 확인하고, 홍보실장이 앉아 있는 소파로 걸어와 앉았다.
"늦으셨네요?"
"예. 좀 늦게 나왔습니다."
"안 나오려다 나오신거죠?"
"네?"
"토요일인데 회사도 나오기 싫었다던가 아님 뭐 다른 이유가 있어서든 안 나오려고 하셨던 거
죠? 제 말이 맞죠?"
"눈치가 빠르신데요?"
"후훗. 제가 좀 그렇죠? 음. 이번일 많이 힘드시죠?"
"무슨..."
"처음하시는 일이시잖아요. 동경대를 3년만에 수석 졸업한 수재에 마츠모토 주이치 장관의 외
손자이며 아버지인 오석주씨는 일본 3대 그룹중 하나인 사이쿄(さいきょう)의 회장. 게다가
어머니이신 마츠모토 게이코씨는 일본 의류산업에 일인자라고 해도 무리가 아니죠. 제 말이 맞
죠?"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하는겁니까?"
"엄청난 집안에 외동아들로 태어나셔서 아직은 나이 어린 나이 이신데도 타이요의 한국지부 이
사를 맞고 계시잖아요. 힘드실것 같아서... 제가 도움이 되어 드리고 싶어서 그러는거예요."
"그런말이라면 구지 그렇게 돌려 말하지 않으셔도 되는데... 괜히 오해할뻔 했군요."
"점심...식사 같이 하고 싶은데...지금 막 들어오셔서 안되겠죠?"
"......."
"......."
"저녁식사로 하죠."
"네. 좋아요. 있다 다시오죠."
홍보실장과의 저녁약속. 대답하기 전 달이가 떠올랐다. 하지만 난 약속을 정했다.
반달곰 내사랑 # 23
"어머 이사님두- 그게 정말이었단 말이예요?"
"후훗..."
"소문에 이사님이 조인성씨를 모델로 추천했다고 하길래 설마 설마 했었어요."
"그건 CF감독하고 조용히 말한 거였는데 어떻게 소문이 났죠? 하하"
"글세 말이예요. 그렇다면 혹시 이감독님이 말씀하신건가? 설마 이사님이 말씀하시고 다녔을
리는 없잖아요."
"글세... 팀원들하고 회식자리에서 말을 했을지도 모르죠?"
"어머나- 설마요."
홍보실장은 말이 통하는 여자였다. 내숭이 있다거나 낯을 가리지 않는 화끈한 성격. 홍보실장
과 저녁식사를 마친 후 간단히 술도 한잔 했다.
"이사님 우리 다음에 여기 또 오는거예요-?"
"이런데랑 안 어울릴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네요."
"실내포장마차가 얼마나 좋은데요. 미국에 있을 때 한국 실.포가 그리워서 혼났어요."
"좋은 친구를 만난거 같아서 기분 좋은데요?"
"어머- 그렇게 생각해주시면 제가 더 고맙죠."
"그래요. 그럼 월요일에 보죠."
"네. 이사님. 들어가세요."
각자의 차 대리운전을 시켰다. 나와는 집이 반대 방향이었고, 어차피 홍보실장도 차가 있었기
때문에... 밤 12시가 넘은 시각. 달이는 자고 있겠지?
열쇠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집안은 조용했다. 역시...달이는 자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이 되었다. 일요일 아침임에도 늦잠 같은건 오지 않았다. 원래 잠이 없는 나와 일요
일이라고 열한시가 넘어서 일어난 달이...
"우우어- 졸리다."
"일어났어?"
"응. 나 졸려."
"그럼 더 자-"
"허리아파서 못 자겠어."
달이는 일어나자 마자 소파에 앉아 책을 잃고 있는 내 무릎에 머리를 들이민다. 동그란 눈을 크
게 뜨고 아래에서 날 올려다 보고있는 달이...
"왜-?"
"그냥."
"어제 후배들은 잘 만났어?"
"어?어."
"그래..."
"책 볼꺼야?"
"왜?"
"놀러가고 싶어서."
달이의 말에 아주 조금 화가 났다고 해야 할까. 여하튼 뭐 그런 느낌이 조금 들었다. 어제 회사
일도 미뤄 놓고 함께 여행가려고 했었는데 벌써 반나절이나 지나버린 일요일 오후에 놀러가고
싶다는 달이에 말... 그래서 난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너무 늦었나?"
"......."
"귀찮지? 그치?"
"......."
"난 그냥 피곤해서 집에 있고 싶은데- 자꾸만 해달이가 가고 싶다네-"
들고 있던 책을 접어 테이블에 내려 놓았다. 해달이...
임신 소식을 처음 접했던 그날 밤 나와 달이는 소파에 앉아 오태양 주니어의 이름 짓기에 열중
했다. 그러던중 내가 생각 해낸 이름은 태양이의 해와 달이의 달을 합친 오해달이었고, 달이는
차라리 수달이라고 짓지 그러냐며 분명 놀림을 받을 거라했다. 그래서 다음으로 생각한 이름은
우주에 있는 태양과 달. 그밖에 것을 생각하던중 나왔던 이름은 오행성. 오화성. 오수성. 오지
구 등등 끝이 없던 중 오은하수까지 나오게 됐었다. 그러다가 내가 다시 생각한 이름은 달에 사
는 토끼를 생각해서 오토끼... 달이는 그 이름에도 반대를 했고, 결국 오바람. 오비를 생각했다.
오비... 가수 비를 생각해서 지은거라나. 여튼 오바람 역시 바람둥이의 바람 같지 않은가.
때문에 고민고민 끝에 아들이면 오구름. 여자면 오새별이라 짓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아직은
성별을 알수 없으니 해달이라 부르고 있다.
12시가 조금 넘어서 달이를 데리고 차에 올랐다. 잠깐 바람이라도 쐬고 와야지 하는 생각으로
나왔는데 마땅히 아는 곳도, 갈만한 곳도 없었다. 그리고 불연듯 한곳이 떠올랐다.
"우와- 여기-"
"아직 일년도 안 지났지만 내가 간접적으로 너한테 좋아한다고 말했던 곳이지."
"그럼 그날 내 생일 파티 해준 이유가 날 좋아해서 였어?"
"...훗..."
"뭐야- 할머니때문에 고마워서 해준거라고 해놓고..."
"바보야 원래 그렇게 돌려 말해도 다들 알아 듣는거야. 근데 넌 왜 못알아 들었어?"
"그, 그게..."
"흠. 너 설마 알았는데 모른척 한거야?"
"아-니야. 그런거 아니야. 나도 몰랐단말이야...그보다 여기 오니까 너무 좋다. 바다도 잘 보이
고... 이방 그날하고 똑같은 방이지. 그치?"
"응... 다행히 비어 있네..."
"조금만 더 있으면 여름인데... 우리 그때도 여기 꼭 오자?"
"그래..."
어느덧 여름의 문턱으로 접어드는 6월이 되었다. 프린시펄리티즈가 출시된지 만 일주일이 지
났고, 나와 타이요 한국지부 모두의 힘으로 엄청난 반응을 얻게 되었다. 이미 한국에 확보하고
있는 생산 공장 역시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었고, 난 눈코뜰새 없이 바쁜 하루하루를 보냈다.
달이 역시 여름방학이 얼마 남지 않았고, 혹시나 집안일이 힘들까 도우미 아주머니도 불러놓았
기에 그리 걱정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첫테잎을 멋지게 끊은 우리의 자축 파티. 타이요 한국지
부 전 사원들을 위한 축하파티였다.
"이사님- 축하드립니다."
"저한테 축하하실일이 아닙니다. 여러분 모두가 애쓰셔서 나온 결과인데 서로 축하와 감사를
주고 받아야죠. 수고하셨습니다."
테이블에서 일어서자 사원들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아직은 이른 축하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오늘 이자리는 그동안 수고하신 여러분들의 노고
를 위해 마련한 자리입니다. 그러니 앞으로 더 열심히 해주시기 바라며 오늘 하루만큼은 모두
잊고 즐겨볼까요?"
"우와-"
내 말을 끝으로 각팀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원들의 잔이 공중에서 부딪혔다.
"이사님 축하드려요-"
"감사합니다. 홍보실장님이 많이 도와주셔서 그런거죠-"
"어머. 그렇게 말씀하시면 제가 너무 죄송하죠. 제가 한일도 없는데..."
"홍보를 제대로 해주신 실장님 덕분이죠. 앞으로도 부탁할게요-"
"힘껏 도와드릴게요-!"
"그래요. 부탁합니다."
생각보다 더 큰 반응을 얻었기에 오늘만큼은 아무 생각도 없이 취해보고 싶었다. 기분탓인지
분위기 탓인지 오늘따라 술이 달콤하게만 느껴졌다. 게다가 든든한 오른팔이자 말이 통하는
친구같은 누나. 홍보실장이 있다는 것 역시 날 기분 좋게 만들어 주었다.
두시간여 동안 홍보실장 외 몇몇 간부급 임원들과의 술자리가 계속 되었다.
"전 이만 일어나 보겠습니다."
"벌써 가시게요? 이사님 이제 시작인데 어딜 가시려는 거예요?"
"죄송합니다. 먼저..."
인사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꾀 많은 양의 술을 마셨지만 앉아 있을땐 몰랐던 현기증이 느
껴졌다. 고개를 두어번 가볍게 흔들고 사원들의 인사를 받으며 밖으로 나왔다. 초여름 저녁의
시원한 바람이 내 피부에 닿았다.
"이사님-"
뒤에서 누군가가 내 팔을 잡았다.
"어. 홍보실장님. 무슨일이시죠?"
"사원들을 위한 축하파티는 끝났는데..."
"......."
"밖에서도 이사님은 저를 꼬박꼬박 홍보실장님이라고 부르시네요?"
"그건 홍보실장님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후훗... 그런가요? 많이 취하셨나요? 전 어디가서 이사님이랑 간단하게 한잔 더 하고 싶은
데..."
"...그럼... 그럴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