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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 도착할 수 없는 편지



밤 11시. 늦게까지 진행된 신리바이반 병사들과의 훈련이 끝나고 드디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게 된 리바이였음. 귀가 아플 정도로 떠들어대는 녀석들 틈에서 잠시 쉬고 싶기도 하였는데, 막상 이렇게 넓은 집무실에 혼자만 남게 되니 어딘가 마음 깊숙한 곳에서 공허함이 밀려들어왔음.

'항상 이 시간쯤이었지..'

늘 이때쯤이면 낡은 집무실의 문을 누군가가 두 번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음. 거의 매일을 찾아왔지만 한 번도 허락 없이는 문을 열지 않던 그, 엘빈이었음.

리바이의 들어오라는 소리에야 엘빈은 싱긋 웃으며 문을 열고 들어왔고, 그런 그의 손에는 자신이 마실 커피와 리바이의 홍차 티백이 들려 있었음. 리바이도 미리 엘빈과 자신의 컵에 따뜻한 물을 부어놓고 기다리고 있었고, 그렇게 늦은 밤 둘만의 편안한 휴식이 시작되었음.

시작은 늘 병단에 대한 이야기였음. 오늘 훈련은 어떠했고, 지금 조사병단의 예산은 얼마인지 등 잠시 지루한 이야기가 오갔고 그 후로는 소소하지만 그때만큼은 단장, 그리고 병장으로서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편안한 미소를 띌 수 있는 대화가 이어졌음.

잠시 그때를 회상하던 리바이의 한쪽 입꼬리가 어색하게 올라갔음. 한 달 전만 해도 당연시하게 여기던, 그리고 매일 반복되던 일상이 하루만에 뚝 끊겨버린 지금. 어쩌면 그때의 순간들은 아련해진 추억이자 잔인한 희망거리가 되어버렸음. 가까워 보이지만 아무리 손을 뻗어도 닿이지 않는 곳에 있는 태양과 같은 그런 희망.

애써 꾹 눌러오던 감정들이 이상하게 하나씩 상기되기 시작했음. 답지 않게 감성에 젖은 리바이는, 물밀듯이 밀려와 자신을 덮칠 것만 같은 이 감정들을 덜어내기 위해 서랍에서 종이 몇 장과 봉투를 꺼내었음.

「엘빈에게」

길고 긴 종이에 적힌 저 한 줄은 무척이나 외로워 보였음. 그리고 그 모습이 마치 평생을 혼자서 꿈과의 사투를 벌이던 엘빈과도 닮아 보였음.

잠시 펜을 내려놓고 엘빈의 이름자가 적힌 종이를 바라보던 리바이는, 다시 펜을 들어 자신의 감정을 펜을 통해 토해내기 시작했음.

「편지라니. 네게 사적인 감정이 적힌 종이를 주게 될 날이 올 줄은 생각도 하지 못 했어. 아마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일 거야. 널 생각하며 끙끙거리는 건 네가 딱 싫어하는 것일테니 말이야.」

창문 밖으로는 어느새 빗소리가 들려왔음.

「그곳은 어떤지 묻고 싶군. 눈을 완전히 감게 된 순간부터 어둠이 계속되는 건지, 혹은 내 바램대로 그곳에서 편히 쉬고 있는 건지. 네가 내 곁을 떠나고 난 후에, 난 가끔 네가 느꼈던 감정들에 동화되곤 해. 아득한 진실을 추구하던 네가 느꼈을 감정들을 조금씩 알아가는 기분이랄까. 너에 비하면 아직 새발의 피겠지만 그래도 네가 얼마나 힘들었을지는 알 것 같아.」

리바이는 엘빈이 떠나간 이후로 가끔은 엘빈이 어떻게 살고 있는 지에 대해 궁금해 하곤 했음. 의문의 답은 누구에게서도 얻을 수 없었지만 그 끝은 늘 그의 마음대로 엘빈은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단정지어 버리곤 하였음.

아이의 작은 손에서 떠나 자유를 찾아 하늘로 날아가 버린 풍선은, 잠시 동안은 푸른 하늘 이곳저곳을 누비겠지만 높이 날아가게 되면 펑하고 순식간에 터져버리기 마련이었음.

마치 풍선처럼 엘빈의 손을 놓쳐 멀리 날아가버린 리바이는 공중에 둥둥 떠 있는 기분을 느꼈고, 여기서 더 날아가 버리면 펑하고 터져버릴만큼 위태로운 감정을 느꼈음. 그런 그를 터질 경계선에서 붙잡아 준 것이 바로, '그곳에서 행복한 엘빈에 대한 생각'이었음.

「넌 정말 최고의 단장이었어. 한지도 잘 해내고 있지만 그 녀석도 늘 너를 그리워하고 있다. 지하실의 문턱에서 널 막아버린 내가 조금은 미울지도 모르겠어. 그렇지만 후회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넌 이미 도착지점을 한참이나 넘은 후에도 쉴 새 없이 달리고 있었거든. 네게 멈추라고 소리치기 보다는, 수고했다는 한 마디로 한 번쯤 뒤돌아 보게 하고 싶었다. 그 뒤에는 내가 늘 있었으니, 조금은 기대고 쉬어도 괜찮다고. 」

조금 오글거렸던지 눈썹을 살짝 올렸다 내린 리바이였음.

「너 말이야. 내가 네게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할 시간도 안 주고 떠나가 버렸다고. 뭐가 그렇게 급했는지.」

"하.."

더 이상 쓰다가는 정말 이상한 감정에 묶여버릴 것만 같아서 급하게 마무리를 지었음.

「잘 지내. 잘 지내리라고 믿고 있어. 다시 만나면, 그때는 내가 먼저 문을 두드리겠다. 허락해 줄 거지?

리바이가.」

리바이는 두 장 남짓한 편지를 정갈하게 접은 후, 봉투에 집어넣었음. 거칠거칠한 봉투를 쓱 쓰다듬어본 후, 그 위에 엘빈의 이름을 정성들여 새기고는 서랍 깊숙한 곳에 편지를 밀어넣어 다시는 열어보지 않을 각오로 서랍의 문을 닫아버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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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리바이가 죽음의 공포를 느끼게 된 건, 단단하고 차가운 무언가가 자신을 관통할 때였음. '아프다'라는 감정을 느끼기도 전에, 혹시 엘빈을 만나게 되는 건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고, 그 순간 익숙한 공간이 눈 앞에 비추어졌음.




엘빈의 집무실이었음.








"네가 먼저 문을 두드리겠다곤 했지만, 이건 너무 이른 게 아닌가, 리바이?"

"잠깐, 네 녀석.."

"편지는 잘 읽었어."

엘빈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편지 봉투를 슬쩍 흔들어 보이는 엘빈이었음.

"리바이. 지금 넌 어때?"

"엉망진ㅊ.. 아니, 그럭저럭 살 만해. 걱정할 필요는 없어. 그보다 너는 어때?"

"보다시피, 나로 살고 있어. 이 집무실은 리바이 네가 떠올린 나의 모습인 모양이군. 시간은.. 밤인 것 같고."

엘빈은 창문 밖의 반짝이는 별들을 보며 말하였음.

"거창한 건 바라지 않았어. 그저.. 너와 밤마다 함께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던, 그런 일상이 그리웠다."

"나도야, 리바이."

"엘빈, 지금 너와의 시간은 나의 꿈이겠지?"

"그럴지도."

"그래, 네 모습을 보니 조금은 안심이 돼."

"리바이."

"응."

"이곳이, 네가 궁금해하던 죽고 난 후의 세계야. 자신의 마음대로 공간을 떠올릴 수 있고 그리워하던 누군가와 함께 있을 수 있어. 나도 널, 너도 날 떠올렸으니 가능한 일이겠지."

"..."

"궁금증은 해결됐으리라 믿어. 그러니 다시는, 다시는 이곳에 대해 더 궁금해 하지마. 직접 오려고 하는 건 더더욱 안돼. 알겠지, 리바이?"

"명령인가?"

"응, 그 어느때 보다도 가장 중요한 명령이야."

"알겠다, 엘빈."

"네게 보여주고 싶은 이곳의 모습이 많아. 그건 네가 다시 이곳에 오면 하나씩 보여줄게. 그때는 이렇게 갑자기 오지 말고 편지에 쓰인 대로 네가 먼저 문을 두드려줘. 그때동안 난 차를 준비해놓고 기다릴게. 어쩌면 그날 우리의 대화가 밤 사이 끝나지 않을지도 모르겠군."

"그래, 그날을 위해 죽지 않고 기다릴게."

"잘가, 리바이. 지금은.. 지금은 동료들과 널 위해 조금 더 살아줘."

"응."










화악 -

눈이 번쩍 떠졌음. 방금 전의 기억이 꿈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리바이에겐 조금 더 살아갈 이유가 생겼음.

잠깐동안 맛 본 사후세계는 너무나 달콤하였고 너무나 따뜻했음.

죽음이 기다려졌지만 죽음이 기다려지는 이유인 엘빈이 바랬으니, 조금 더 살아보겠다는 생각을 하며 넓디넓은 하늘을 바라보는 리바이였음.









'엘빈, 네가 보는 세상은 어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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