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다 쓰고 잠들었어 ㅠㅠㅜ 지금이라도 올려본다...미안 유미히스 에루리 두 버전으로 써봤어!
01.
정신이 아득해진다. 주변에서는 소리가 시끄럽다. 아, 죽는구나. 진짜로? 내가?
여전히 익숙치 않다, 죽음은. 수없이 봐왔는데, 분명 세상의 누구보다도 죽음을 봐왔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더 많이 경험했기에 더 많이 익숙치 않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사람이 한 순간에 사라진다는 것. 얼마나 허무한가.
만약에 이렇게 죽는다면, 사후세계 따위는 없기를 바란다. 지옥이나 천국 같은 문제보다는... 쉬고 싶다. 너무 아득하고 가파른 인생이었어.
아, 지옥에 떨어질 거야, 나는.
다행이네.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숨이 턱 막혀 온다. 물에 잠기듯이 죽음에 잠겨서는, 그대로, 얄팍한 숨 한 번도 내쉬지 못하고, 죽어 가는 거야. 아름답고 잔혹하다.
세계도 그랬건만.
"..."
히끗히끗한 형체가 시야에 잡혀 온다. 귀가 울렸다. 웅웅 소리가 얕아질 때 쯤 숨은 되려 짙어졌다.
어디지? 아 제발, 환생은 아니었으면.
눈알을 굴려서 주변을 살폈다. 애석하게도 모두 하얗구나. 사후세계일까?
"젠장할."
욕지거리를 내뱉은 후 신경질적으로 허공을 찼다. 허우적대는 다리에서 독특한 감각이 느껴진다. 가볍다. 중량이 없는 듯이.
여긴 대체 어디야?
온 잡다한 생각들이 모여 눈앞이 흐려진다. 본능적으로 달린다. 몸도 가볍게 느껴졌다. 여긴 천국인가, 아니면...
"...바이! 리바이."
귓가의 얕아졌던 웅웅 소리가 갑자기 커지더니 음성이 섞여 들렸다. 무슨. 모든 것이 새롭다. 두렵다. 음성이 온 곳에서 퍼져 흐르는 듯 한다.
익숙해서 견딜 수 없는 음성이 다시 한 번 짙어진다. 아, 대체. 대체...
엘빈이야?
오래간 한 번도 꺼내지 않던 말을 내뱉었다. 입가가 바싹 말라 있었다. 반사적으로 눈에 눈물이 고인다.
응, 나야.
포근한 무언가가 뒤에서 껴안는 느낌이 들었다. 시야가 맑아진다. 하얀 방 안에서부터 퍼진 빛이 온통 세상을 둘러싸서, 어떻게 표현할 수 없는 공간이 빚어짐과 동시에 작별했던 모두가 눈 앞에 서 있다.
그 순간 주저앉을 수 밖에 없었다.
아, 진짜 죽었구나, 나도, 너희도.
뒤에서 껴안는 느낌은 더 진해진다. 팔이 어깨에 걸려 있는 걸 느꼈다. 확실히 깨달았다. 엘빈이야.
당장 그 손길을 뿌리치고 나와 형체를 마주 껴안았다. 아주 오랫동안 그리웠던 품과, 향기와, 따스한 눈빛과•••
아, 엘빈. 여기는 지옥이야?
너의 다정한 얼굴을 어루만지며, 보고 싶었다는 얘기를 하고, 너의 어깨를 어루만지며, 힘들었다는 얘기를 하고,
너의 단단한 팔을 어루만지며, 너무 미안하다는 얘기를 하고,
너의 여전한 허리를 어루만지며, 잘 지냈냐는 얘가를 하고,
너의 몸 전체를 더듬더듬, 시각조차 잃어 버린 듯 미치도록 어루만지고 더듬대며 눈물을 쉴새없이 흘리면서,
사실은 이런 얘기를 하고 싶었다고,
너는 분명히 지옥에 가 있을 줄 알았다고, 그리고 그게 나 때문일 줄 알았다고, 그리고 그래서 나도 내심 지옥에 가길 바랐다고, 지옥에 가서 널 만남으로써 더이상 그곳이 고통스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또 그렇지만 우리는 모두 지옥에서 고통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모든 이야기들 말이야.
아, 엘빈, 너구나.
너는 항시 내 곁을 떠난 적이 없었구나.
02.
시끄러워. 조용한 임종의 순간을 맞고 싶었는데.
얇은 숨을 내쉬면서 죽음을 기다린다. 이렇게 끝인 걸까, 죽음은 수도 없이 봐 왔는데.
...아, 하하. 결국에는...
왜 이렇게 된 거지, 내 자신을 위한 삶이었나? 정녕? 눈물이 나오지도 않는 눈에서 눈물이 차오른다. 우습게도 정말 이게 끝이야.
진절머리나는 마지막 숨을 내뱉었다. 여왕님! 탄식 소리가 귓가에 조용히 울린다.
사후세계가 정말 있을까? 그렇다면... 단 한 번이라도, 만나고 싶어. 만나게 해 줬으면. 어차피 그 애와 나는 있는 곳이 다르겠지만.
내가 정말 죽어가는구나.
죽음에 잠겨가는 것은 슬픈 일이다. 잔혹한 일이다. 동시에 숭고한 일이다.
...질리지, 이런 일은.
"..."
금빛 머리칼을 힘없이 쓴다. 흐느적대는 몸을 간신히 일으켜 비틀대며 주변을 살폈다.
온통 흰색이 가득한 이 방은 너무도 익숙하고, 짜증나고, 괴리감이 든다. 차라리 불타는 용암 안이었으면 낫겠다.
...아무도 없어?
문득 불안감이 앞선다. 두어 번 비틀대더니 이내 온전히 서서, 타닥 뛰어다니면서 주변을 살폈다.
아무도, 아무도...
아, 제발.
날 두고 갔으면 한 번 얼굴이라도 보여야지.
털썩 주저앉는다. 여기 안엔 나 혼자뿐이야? 처음에는 다 하얗길래 천국이라도 되는 줄 알았는데... 하하, 역시 나같은 게 천국에 갈 리 없어. 지옥이구나.철저히 고립되는 지옥.
우스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다. 여왕이 홀로 군림한다.
-세상의 모든 족쇠를 차고!
죽었는데도 또 죽고 싶은 감정은 대체 뭘까. 멍히 앉아서 허공을 응시한다. 아, 정말 최악이네.
...!
순간 볼을 어루만지는 느낌이 들었다. 적당히 따뜻하고 적당히 시원한, 부드러운 손길로, 마치 골리는 듯이...
유미르, 너야?
어리둥절한 채 주변을 살피니, 이내 가물가물하게 무언가 나타난다. 익숙해. 익숙하다. 이 체취, 분위기, 모든 것까지.
이명에 목소리가 섞여 들려온다.
그래, 누굴 위한 삶이었어?
아아, 널 위한 삶이었어.
눈물이 한두방울 맺혔다. 앙상한 손목으로 허공에 손짓하자, 곧 형체가 픗, 하며 작게 웃고는 뚜렷해진다.
정말 너구나, 우리는...
우리는, 죽었구나.
여긴 천국이야, 유미르?
볼을 어루만지는 손길에 맺힌 눈물이 미련을 아주 조금씩 남기고 떨어졌다. 그 손을 잡고는 엉엉 울었다. 나는 너와 이별할 준비가 안 됐었는데, 지금조차도 안 되어 있는데...
삐죽빼죽한 머리카락을 어루만지며, 원망하는 말을 보내고,
주근깨가 박힌 볼을 마주 어루만지며, 보고 싶었다고 말하고,
단단한 어깨를 어루만지며, 사랑한다고 말하고,
보드라운 팔을 어루만지며, 네가 너무나도 절실했다고 말하고,
허리를 꼭 껴안으며, 사실은 널 절대 잊지 못했다고 말하고,
네 온 몸을 슥슥 미치광이처럼 훑듯이 어루만지며 눈물을 떨구면서도,
사실은 이런 얘기를 하고 싶었다고,
너는 천국에 가고 나는 지옥에 갔어야만 했다고, 너는 내게 여지를 주고 떠나 충분히 나쁜 아이지만 그것보다도 착하고, 좋은 아이였고, 나는 못돼먹은 애였다고, 그리고 우린 죽어서는 만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고, 헛된 희망으로 주변을 둘러봤을 때 그 죄책감과 모든 감정을 네가 아냐는 이야기를.
유미르, 보고 싶었어.
크리스타는 네가 죽여준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