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이 지난 지금에야 말하는 이야기.
사실 난 너에게 헤어짐을 고하기 두달전부터
이별을 준비했다는 것.
네가 나와의 여행약속을 부모님핑계로 파토내고
친구들과 바다에 가서 헌팅했다고 한 날로부터
두달.
세상에서 가장 비겁한 이별이었다.
너에게 이유를 말하면 네가 사과하고 용서를 빌 것 같아서 못 말했다. 난 받아주고싶었으니까.
이별하던 날, 돌아서서 가던 네 뒷모습보며
몇년의 연애가 끝났다는 실감이 나 눈도 못 떼고
울었다.
서로의 부모님이 서로를 너무나도 예뻐하셨고,
처음으로 한 열렬한 사랑에 너랑 내 끝이 오늘이
아닐거라고 막연히 생각했었다. 왜인지는 모른다
왠지 상처가 아문 후 우연히라도 우리가 만나면
다시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은 꿈을 꿧다.
너는 몰랐겠지만 너와 헤어진 후 나는 고립되었다.
다시 돌아오던 못 돌아오던 네가 나쁜놈이 되는게 싫어 헤어진 이유를 함구하고 그저 내 탓이라했다.
널 유독 좋아하던 내 동생은 너와 헤어진 후,
한달을 나랑 이야기도 안하고 첫날엔 울기까지했다.
그리고 헤어진 지 6개월 될때까지도 친구들은
나쁜년이라며, 넌 아직 날 못잊어 힘들어한다고
너랑 다시 만나라고 말했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들었던 다음 날,
우연히 너를 만났다. 최악의 상황이었다
내가 알바하던 편의점에 손님으로 왔던 너.
너와 니 옆에 새로운 여자친구를 보고
창고에서 나오다가 창고로 다시 숨어버렸다.
새로운 여자친구를 품에 안고 나가는 걸 보고
어제까지도 함구했던 내가 바보같고 미련하고
서러워서 다시한번 펑펑 울었다.
너와 헤어진 후 나는 감정이 메마른 사람처럼
소개팅도 거절하고, 호감표시들도 밀어내며
그저 일상을 보내왔었기에 허탈하기도 했다.
10대였던 내가 얼마나 철이없었냐면
네 귀에 들어가라고 니 지인한테 맘에도 없는
고백을 하고 만나지는 않았다.
그렇게 1년 쯤 더 지나 서서히 무뎌졌던 것 같다.
새로운 연애도 시작했지만, 너와 몇년을 연애했던 게 없던 일처럼 누군가에게 큰 사랑을 쏟지못하고
마음속으로 너와 비교하는 나를 발견했다.
결국 매번 짧은 연애들로 끝이났다.
그리고 1년후 쯤, 네가 찾아왔다.
내가 생각나서 사왔다던 치킨을 받았다.
이런저런 이야기하다 부모님이 날 보고싶어
하시더라는 이야기에 무슨뜻인지 알면서
모르는 척 너를 보냈다.
한번만, 딱 한번만 더 고생하라고
다음번에 한번 더 찾아와주면 그땐 모르는 척
받아주려고, 괜한 오기를 부렸다.
또 한번 만날 수 있을 줄 알았던 너를 본 건
그 날이 마지막이었지만.
그렇게 몇년 후, 자궁에 문제가 있어
난임확률이 높고 결혼 후 시험관를 통해 임신을
시도해야될 가능성이 높다던 내가 임신을 했다.
연애 4개월만에 갑작스런 임신이었지만,
내 인생에 다시는 아이가 없을 것 같아 남자가
아니라 아이만 보고 결혼을 했다.
태어난 아이는 너무나도 예쁘고 사랑스러웠지만
그 사람을 제대로 알기전에 한 결혼이 문제였을까
부부사이는 점점 더 금이 가다가 결국 몇년 전
이혼을 당했다.
혼자 키우지만 감사하게도 아이는 큰 도움으로
부족함없이 밝게 잘 자라고있다.
무서운 아빠 밑에서 눈치보던 아이들은 이제
제법 많이 커서 엄마를 지켜주는 아이가됐다.
네 소식은 매년 들어왔던 것 같다.
편의점에 데려왔던 그 여자친구, 나를 정말 많이
닮았었다고 그래서 네가 좋아했다는 이야기.
내가 결혼한 후에도 나를 그리워했다는 이야기.
한번쯤은 내 속마음 터놓아도 될까 생각했었는데,
나한텐 지난 12년간 많은 일들이 있었기에 용기가
나지않았다.
난 12년동안 누군가의 배우자이기도 했다가
내 아이의 엄마도 됐고, 끝은 이혼녀였으니까.
물론, 용기 낼 자격도 없는 사람이지만 ..
서로가 서로의 연락처도 몰랐기에 더 큰 용기가
필요했던 것 같다 .. 연락처를 알 방법이 생겼으나
망설이던 사이 너에게 새로운 여자친구가 생겼다.
새로 시작 된 너의 행복을 깨고 싶지도않고
이제는 용기를 내도 너한테 직접 말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익명의 힘을 빌려 여기에라도 말하고
편해지려고 한다, 대나무숲처럼.
너도 내 첫사랑이었고, 나도 너를 추억했다고
1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네 생일, 휴대폰 뒷번호
모두 기억하고있다고.
수 많은 생일을 보내면서도, 사물함 가득 네가 채워줬던 간식들을 아직도 기억하고 추억한다고
네가 날 좋아하는 줄도 몰랐어서 더 의외였지.
그 날을 기점으로 우리가 만나게 되었지만,
우리 참 많이 돌아돌아 힘들게 만났었어.
몇년동안이나,
네가 나를 좋아할 때 내 옆엔 다른남자친구가 있고
내가 너를 좋아할 때 네 옆엔 다른여자친구가 있고
매번 엇갈렸었는데 기억해?
등교하다가 갑자기 붙잡혀서 학교대표로
너랑 나 버스에 올라탔잖아. 그 많고 많은 애들 중
따로따로 잡혔음에도 너랑 나, 둘이길래
운명같이 느껴졌었는데, 어제 일 같이 또렷하다.
학교 끝나고 친구들과 매일같이 갔던 N PC방,
C노래방, 같이 아르바이트했던 P뷔페
모든 게 또렷해.
커플끼리 같이 찜닭도 먹고, 포켓볼도 쳤는데
온 통 놀러다닌 기억뿐이네. 넌 기억할까
만약 너가 이걸 보게된다면 정말 많이 사랑했다고,
나도 널 그리워했었다고 그리고 네가 다시한번
날 만나러 와주길 기다렸다고 꼭 말해주고싶었다.
너의 새로운 연애소식에 축하하면서도 여전히
가슴이 아팠을정도로.
철 없던 10대와 정신이 없었던 20대를 지나서
드디어 오늘 난 너와 나눴던 편지들을 버릴거야.
버리는데 12년이나 걸렸다는 게 더 놀랍지만.
이제야 널 진정으로 놓아주는 기분이 들어.
그런다고 놓아질지는 모르겠지만,
네가 오늘보다 내일 더 행복해지길 소망해
친구야. 잘 지내고 건강 조심하고 항상 행복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