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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승이별"당했는데 제가 쓰레기네요. 욕과 조언 부탁드립니다

쓰니 |2021.08.14 06:54
조회 3,316 |추천 0

안녕하세요 형님 누나 동생들.....

 

어디서 부터 어디까지 써야 할까요?? 두서 없이 쓰겠습니다. 길어질 수도 있습니다.

 

환승이별 당했는데 제가 쓰레기네요.............

 

저는 올해 39살 되는 동네 이저씨 이고, 과거에 여자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습니다.

성격이 비교적 밝고 사교성이 좋으며, 나의 아픔이나 힘든것은 잘 드러내지 않는 성격 입니다.

 

어릴때 부모님이 이혼을 하시고 (아버지가 바람을 폈습니다. 장가를 세번을 갔네요.)

홀 어미님 밑에서 누나2명과 저 이렇게 자라왔습니다만, 굴곡이 많았지만 크게 경제적 어려움은

없이 자라왔습니다. 그러다 저 6학년때 어머니 하던 일이 부도가 나는 바람에 할머니 두분(외할머니, 외할머니의 언니)과

사춘기 시절을 보냈고, 성격이 까불까불 거리는 애들이 으례 하듯이 저또한 친구들과 어울리기를 좋아 했습니다.

 

그 시절 첫경험을 했고, 어릴 때 심정으로 그것이 너무 좋아서 여자라는 사람이 좋아서 만난다기 보다,

그저 여자와 동침 하는것이 너무 좋아 우선순위에 두고 있었습니다만 강제로 하거나 엽기적인 행동들은 없었습니다.

집에 여자 가족이 많은 관계로 여자를 대하는 것이 크게 어렵지 않았고, 잘 다루었던거 같습니다.

 

그러다 20살에 첫사랑을 했어요. 게임하다 만난 여자인데 내눈에 너무 이쁘고 사랑스럽고 사랑했습니다.

저는 대구에 그여자는 서울에 살았었죠. 그 친구 집이 참 말이 아니였습니다. 아버지는 안계시고 어머님도 안계시고,

홀로 까치산역 반지하에 살았습니다. 한끼 먹을 돈이 없고, 매일 같이 게임만 두리서 하고 지냈음에도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내 인생에서 젤 행복했던 때 였습니다. 가족도 보고싶지 않았고, 친구들도 보고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동네 언니동생으로 지내는 누나를 알게 되었고, 제 여친의 남자사람친구와 그 언니가 사귀는 관계로 발전을

했고 그렇게 4명이서 참 많이 놀러도 다니고 했습니다.

 

그러다 나도 20살 어린 꼬맹이였지만 남자라, 그 친구 한테 뭔가를 해주고 싶어졌습니다. 그길로 고향인 대구로

내려와 당장 시작을 한것이 노가다 였습니다. 하루에 5만원씩 받으며 무언가를 해주고 싶어 일하는 그 마음이 참으로

행복하더군요, 150만원을 모았습니다. 크리스마스에 150만원치 선물을 사가지고 정말 이쁘게 포장도 하고,

우리 누나가 해놓았던 십자수도 들고 서울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너무 행복했습니다. 그거 받고 좋아 하는 모습에 너무너무

행복했고, 누군갈 사랑하며 일하며 거기에서 무언가를 해줄수 있음이 인생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몇일간의 재회 끝에 다시 대구로 내려와 일을 하기 시작 했습니다. 그녈위해 무언가를 해주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잘못된 것이였을까요? 나는 새벽에 일 나가서 하루 5만원 벌어서 그 버스비가 아까워 걸어서 집에 와서

여친이랑 전화 하고 잠들었다가 밤 12시 정도에 다시 일어나서 전화 하고 그런 날들의 연속 이였는데

어느순간 부터 매번 전화도 잘 안되고, 일 술에 취해 있고, 감정에 겪해져 3~4시 사이에 울면서 전화 하는 일이 잦아졌어요.

그때 느끔이 왔죠. 아~~ 술집에 나가는 구나.....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을 처음 받았습니다. 내 여자가 내가 사랑하는 그녀가 돈때문에 술을 팔고, 웃음을 팔고, 몸을 팔고.......

싸웠습니다. 너무 싸웠습니다. 진짜 돈이 없어서 딱 두달만 한다는 것이였습니다. 어린 마음에 이해하고 넘어가려 했습니다.

딱 두달만 참자...... 두달 후에도 그일은 계속 되었습니다. 그래서 무작정 엄마차를 가지고 서울에 갔습니다.

집에 가서 또 싸웠습니다. 그래도 얼굴 볼때 행복했던 기억이 선~ 합니다.

 

그렇게 싸우는 중에 전화가 한통 왔어요. 보도방 형님이 태우러 온다는 전화 였습니다. 그렇게 싸우다가 또 그렇게

상냥하게 전화를 받는 모습에 화가 머리 끝까지 났고, 그 보도방 형님이 도착 했을땐 나도 모르게 보도방 운영 차량을

운전 하는 그 사람을 패버렸습니다. 그 차가 가고 10분여정도가 지났을까요?? 스타렉스에서 여러명의 형님들이 내려서

약 10분동안 구타를 당했습니다. 아마 대략 1~2분 정도였을테지만 10분 정도로 느껴졌습니다.

 

멀리서 저 맞는거 보면서 울더군요. 그리고 제가 다가가서 이야기를 했어요. 일 그만 둬.......

그래도 조금만 더 한다기에 욕을 했습니다. 씨*년*아 니 진짜 씨*년이다.... 이 한마디 하고 다시 대구로 내려왔죠.

 

그 뒤로 내 삶은 거의 폐인이 되었습니다. 선천적으로 술을 잘 먹지 못합니다. 두잔만 마셔도 얼굴이 아직 빨~~~개 집니다.

그 당시에는 아침에 술 먹고 점심에 술먹고 저녁에 술먹고 새벽에 술 먹었습니다. 도저히 맨정신으로는 살아갈 수 없었어요.

그렇게 3~4개월 정도 지났을때 내가 술에 취해 어버버 하고 있을때 엄마가 출근전 내 방에 와서 울고 가더이다.

 

엄마 가시고 몇시간 후 정신을 차려 거울을 보니, 진짜 미친놈이 한명 서 있네요..... 그 길로 정신 차리고 다시 일을 시작 했습니다. 무언갈 하면서 잊혀가라고..... 그때 당시 싱크대 만드는 공장에서 일을 했는데 설치보조가 주 업무 였습니다.

그렇게 한 3개월이 흘렀습니다.

 

한통의 전화가 왔습니다. 참 익숙한 번호드라고요. 그리고 말을 했죠. 터질듯한 심장을 부여 잡고, 떨리는 입술도 깨물고,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왜?? 라고 헸습니다. 그녀가 하는 말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납니다.

일 그만 뒀고 엄마가 가게 차리는데 간판을 해주고 싶은데 돈이 모자란다는 것이였습니다. 그때 당시 참 고마웠어요.

아~~ 이 아이가 힘이 들면 아직 내 생각을 하는구나..... 그래도 날 찾는구나...... 하면서 혼자 오만 상상의 회로를 돌렸습니다.

우리 엄마가 피부미용실을 하니 대구로 델꼬 와서 엄마 가게에서 일 시키면서 같이 살 수 있겠구나.... 하면서

참 다시 행복 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였지만, 그 일도 계속 하고 있었고, 내가 준 돈으로 새끼개를 한마리 산거였습니다.

그 개 이름이 하양이 입니다. 그 일을 아무렇지 않게 고백을 하더군요......

참 사람의 배신이라는게 너무너무 힘이 들었습니다. 다시 일도 그만 두게 되고 폐인 생활을 했습니다.

 

그때 내 친구가 힘들어 하는 날위해 "니가 그년때문에 힘들어 할때 그년은 돈받고 딴남자 하고 섹스 하고 있다. 정신 채리라"

이렇게 말을 했고, 그 순간 엄청난 분노로 인해 친구와 치고 박고 싸웠습니다. 참 고마운 친구죠.

얼마간의 폐인 생활을 또 하고 있을 즈음에 다시 전화가 옵니다.

 

"니 내 이름으로 개통한 핸드폰비가 70만원 나왔다" 그때 아마 기계값 포함해서 그정도가 나온게 맞을겁니다.

나이가 만 19세 여서 내 이름으로 개통 못하고 엄마 이름으로 된 핸드폰을 쓰다가 그 친구 이름으로 개통을 했거든요.

그래서 그 돈을 주고 진짜 모든것을 깨끗하게 끝내고 싶었습니다.

 

그날 저녁에 그 치고 박았던 친구와 술을 한잔 먹었고, 이 이야기를 해줬습니다. 그랬더니 내보고 미친놈이랍니다. 그 돈을 왜

주냐고......  새끼 개 살때 주었던 돈이 몇배는 되거든요.

 

다음날 입금 하러 가는 데, 참 기분이 묘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주면 안될거 같더라구요. 돈이 아까워서?? 헤여져서??

절~~대 아닙니다. 어릴적 순정에 그당시로 회상 하면

"이돈을 주면 그녀가 날 까맣게 잊을거 같다. 차라리 돈 안주고 더러운놈. 치사한놈 으로 라도 기억되고 싶다"

 

후에 우리 엄마한테 저나 해서 참 가지 없는 이야기를 많이 하더군요, 내가 이야기 했습니다. 절대 주지 말고

우리 끼리 해결하게 두시라고......

 

그렇게 나의 더러웠던 첫사랑은 끝이 났습니다. 그 후로 더이상 여자와의 관계는 육체적인 관계 말고는 나에게 없다!! 는

마인드가 생겼습니다. 참 여자 쉽게 마니 만났던거 같고, 참 어렸습니다. 지금 생각에는.....

 

그러다 일년 후 나의 길고 긴 인연이 찾아왔습니다. 지금 생각 하면 참 많이 사랑했고, 정말 미숙했고, 정말 미련했습니다.

이번의 그 친구는 나의 초등학교 3학년때 짝꿍 이였는데, 그녀의 언니와 우리 큰누나가 친구였습니다.

 

아주 오래전 "다모임" 이라는 싸이트에서 쪽지 주고 받다가 친구 본다는 생각으로 만났는데, 첫눈에 반한다는 그말이

그때 알게됬습니다. 너무 이쁘고 사랑스러워서 몇번의 고백 끝에 사귈수 있었고, 참 기억에 남는 것은

그녀의 순결을 내가 뺐어버렸습니다. 그것이 뭣이라꼬 참 많은 느낌을 받더군요. 책임감이랄찌, 사랑이랄찌, 뿌듯함이랄찌,,,

참으로 뜨뜻한 느낌이였습니다.

 

21살 10월에 만나 22살부터 사귀면서 너무 사랑했습니다. 근데 제가 두려웠던 것은, 지금의 이 친구도 저번의 그 친구 처럼

그렇게 되면 어쩌지?? 혹시 내랑 연락이라도 안되면 불안해서 제눈으로 어디서 뭘 하는지 확인이 안되면 견딜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됬습니다. 지금 생각 해보면 참 많이 힘들었을꺼 같고 참 마니 미안합니다.

 

그 아이는 학원에서 경리로 일을 했었는데, 학원 회식 하는 날이면 어디서 하는지 꼭 확인을 했고, 심할 경우에는

몇 테이블 떨어진 곳에 자리 하고 있던적도 많습니다. 그걸로 많이도 싸웠는데 이게 고쳐지지가 않더군요.

돈만 생기면 그녀에게 선물을 사다주었고, 아마도 그것이 예전에 선물을 주면서 참 행복했던 기억을 더듬고 싶지 않았나

생각이 됩니다. 그렇게 몇년의 시간이 흘렀고,

 

저에게도 군대라는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 아이와의 같이 있는 시간이 너무 좋았고, 헤여지는 죽는거 보다 싫었습니다.

그래서 군대를 미루고 미루고 미루다가 현역임에도 시험에 합격해서 방위 산업체 라는 곳에 갈수 있었습니다.

그때 당시 이미 몇년을 그렇게 만나다가 26살에 방산에 갔습니다.

 

전남 광주에 있는 방위 산업체 였고 하남산단 10번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거기 기숙사에서 2년 10개월을 보냈습니다.

참 환경도 열악하고, 일도 2교대에다가 단순 반복된 일이였기에 정말 못하겠더이다. 그래서 내가 생산과 차장님께

이야기를 했습니다. 원재료 섞으라 하면 원재료 섞고, 금형 교환을 하라 하면 금형교환을 하겠고, 배달을 가라 하면 배달을

가겠으니 다른거좀 시켜달라고. 그날부터 원재료 다루고 건조시키고 주간에 쓸 원재료를 준비 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 일이 생각보다 정말 힘들었습니다. 플라스틱 사출 하는 공장이였는데 하루 10톤 이상의 삽으로 섞고, 건조시키며, 불량

제품을 분쇄 하였습니다. 그렇게 3개월이 지고, 의무로 하는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뇨단백?? 단백뇨?? 여튼 오줌으로 단백질이

다 나온다는 것이였습니다. 어릴적 부터 워낙 건강했던 저는 너무 걱정되서 그 여자친구 한테 이야기를 하니까

바로 다음날 와서 같이 병원도 가주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뭐 그 병이 별거는 아니였고 주사 맞고 며칠 있으니 다 나았습니다.

 

방위 산업체에서 근무 하던 중 4주 훈련을 가는 날, 그 여자친구가 대구서 광주까지 직접 찾아왔고, 너무 행복했습니다.
머리도 깍고 친구들과 같이 배웅 해주고 4주라는 시간을 보내고 다시 재회때로 광주까지 온 참 착한 친구였습니다.

 

내가 참 복에 겨운지 모르고 그때 같이 일하던 동생들 한테 여자를 소개 받았습니다. 나이가 좀 어린 친구 였는데

내가 사귀는 사람이 있다는 걸 숨기고 사실상 양다리를 걸쳐 놓은 것이였죠. 말을 좋게 해서 양다리지 그냥 가지고

놀았다는 표현이 더 맞는듯 합니다. 참 쓰레기죠. 그 어린 친구는 제 여자친구와는 다르게 말도 정말 상냥하게 잘해주었고,

참 순종적이였다는 느낌이 마니 듭니다.

 

그 시기에 아버지가 유산을 미리 상속해 줍니다. 살면서 일년에 딱 한두번 정도 보는 아버지 인데 우리 엄마랑 나이 차이도

마니 나고, 내가 아버지랑 살았던 기억이 없기 때문에 아버지에 대한 정이라는게 없습니다. 대신 평범한 가정에서 엄마에게서 느끼는 감정을 할머니들에게 느꼈으며, 아버지에 대한 감정은 엄마에게서 느끼고 자랐습니다. 이런 가정이 불우하다거나

내가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냈다고 생각 한 적이 단 한번도 없었고, 다만 커서 아버지 처럼은 안살겠다 다짐을 많이 했죠.

나이를 먹다 보니 엄마가 너무 짠하고 불쌍하고 왜소 하시더라구요.

여튼 구미에 있는 제법 큰 건물을 상속 받았습니다. 그때부터 어깨뽕이 참 커지더라구요.

 

그렇게 28살에 재대 하고 다시 대구로 내려와 지냈습니다. 이제 슬슬 결혼도 해야 할거 같고, 직업도 가져야 할거 같더군요.

그 시기의 모든 남자들이 하는 흔한 고민이요. 그 친구 만나면서 참 많은 일들을 했었는데 가장 오래 일했고 가장 돈을 마니

벌었던게 그 시기의 세녹스 판매업이였습니다. 후에 신나로 바꼈지만요.

 

나는 번듯한 직업을 가지려고 서울로 향합니다. 회계사 라는 이름만 듣고 무작정 그것이 되고 싶어서 서울에 올라가서

학원에서 공부를 시작 했습니다. 그 학원 근처의 방들은 월세도 월세지만 방이 너무 좁아서 살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수원에 방을 하나 마련했습니다. 학원 근처 방값의 반도 안되는 금액에 방이 2개 화장실 2개 거실 주방 있는

독채를 구할수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서울까지 와따가따 하며 약 6개월 정도를 공부 한듯 합니다.

 

아마 그 나이쯤 내 생일이였나 봅니다. 서로 사랑하면서 떨어져 있으니 참 마니 티격태격 했습니다. 난 보고 싶은데

안온다고 해서 싸웠나 무튼 자세히 기억은 나질 않네요. 너무 신경질도 나고 화도 나도 해서 방산에 일할때 만났던

그 친구 한테 연락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바로 올라온다더군요. 지금 생각 해도 참 저는 쓰레기 입니다.

 

올라와서 같이 놀고 같이 잤습니다. 자고 있는데 누군가 문을 열더군요. 맞습니다. 저의 여자친구가 올라왔어요.

같이 자고 있는 모습을 보고 참 마니 울고 참 마니 화를 냈습니다. 그래서 나는 분명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제 술을 너무 마니 먹어서 기억이 안난다. 너는 누구냐? 빨리 집에 가라" 정말 두여자의 가슴에 대못을 박은 천하의

쓰레기 중에 상 쓰레기 입니다. 집에서는 다들 귀한 딸 자식인데, 정말 철 없고 못난 짓을 저질려 버렸음을 몇년 지나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두 여자가 이야기를 한 후, 다들 각자 집으로 갔습니다.

 

저는 고개를 박고 죽어라 사죄를 해도 모자랄 판에, 용서를 빌었습니다. 물론 대구에 있는 제 여자친구 한테요.

광주에서 만난 그 친구 한테는 그 당시에 미안한 감정도 없었던거 같아요. 몇개월 빌고 빈 끝에 다시 만날수는 있었습니다만,

학원에서 배운 앏디 얇은 지식으로 사고를 쳤습니다. 따라 할 수 있을거 같아서 이야기는 안드리겠습니다만,

이 일로 제 삶은 완젼 바뀌게 됩니다.

 

저는 조사를 받다가 구속 적부심에서 구속이 되고 대구로 배정을 받아 1차 재판에서 3년 10개월을 받습니다.

구치소에 있던 시절 하루에 한번씩 저의 면회를 와주고, 친구들, 선배들, 저희 부모님이랑 다 연락 해주고 했습니다.

하루에 한두통씩 꼭 편지를 쓰면서 제발 바람만 피지 말고, 행복하게 해줄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애원하고 애원했습니다.

글 쓰면서도 제가 완전히 미친놈 같습니다.

 

구치소 수감되 있던 때에 그간 동네에서 알고 지냈던 몇몇의 형들이 있었고, 그 형들이 다른 형들을 소개 시켜 주면서

좀 적응해 갔습니다만,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저 스스로도 너무 놀라고 이건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라는 생각에

즉각 협의를 보고 잘못을 뉘우쳤습니다. 이건 저 스스로 진심에서 우러나와서 한 행동이였고, 앞으로 다시는 그런일들은

없다고 확신 합니다. 그렇게 10개월이 흘렀습니다.

 

저는 2차때 집행유예로 풀려났고, 그에 따른 몇가지 처분이 더 있었습니다. 빈털털이가 된 저는 친구들이 얻어준 월셋방에서

폐인처럼 있었습니다. 그때 당시 제 여자친구는 네일샾을 차리려는 꿈에 네일가게서 일을 하였고 제가 방산에 취직하기 전

내 손톱을 5센치 가량 기르어 같이 시험지러 서울에 간 기억이 있네요. 여튼 제 여자친구가 일 마치고 집에 오면

같이 밥 먹고 데려다 주는게 유일한 낙이였습니다. 그렇게 약 3개월 정도 지난거 같아요

 

무언갈 해야겠다는 생각에 택배 상하차를 시작 했습니다. 첫날 무지 힘들고 무지 고되었습니다. 그때 당시에는

저녁 6시 부터 아침 6시까지 상하차를 하였으며 점심시간이 밤 12시 였습니다. 밥 먹고 도망 가고 싶었지만.

이 일도 못하면 무슨 일을 할수 있을까 싶어서 꾹 참고 3개월 정도 쉬지 않고 일을 했습니다. 무언가를 할수 있는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 했으며, 그리고 우연치 않게 울산으로 내려 오게 됩니다.

 

30살에 울산으로 내려 오면서 아파트 분양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참 꿈에 부풀고 일에 있어서는 정말 열정적이였습니다.

다만, 그렇게 오래 만나고 기다려주고 용서해 준 여자친구는 내가 울산에 내려 간다 하니 정말 배신감이 마니 들었을겁니다.

지금사 알게되네요...... 처음에 3개월간을 돈을 하나도 벌지 못했지만 언젠간 성공해서 대구에 내려간다는 생각 하나가지고

정말 열심히 했고, 젤 처음 일을 배웠던 대표님께서 인간적으로 많이 애를 써 주셧습니다.

그러자 3개월이 지나서 저의 실적은 폭등 했고 전체 120여명의 직원 중에 3등을 했습니다. 직원 120명이라고 해도

정작 일하는 사람은 절반에 지나지 않았지만 6개월만에 7천8백만원이라는 큰돈을 벌었습니다.

 

너무너무 행복했고 끝이 보이는거 같아서 빛 갚고 남는 돈은 여친 한테 맡겨 용돈을 받아 썼습니다. 그렇게 하루 이틀 한달

두달이 지나고, 일에 너무 전념한 나머지 여자친구 입장에서는 소흘 하다 생각 할 수 있던것을 몰랐습니다.

전 그저 성공해서 내려 가고 싶은 마음 뿐이였는데, 여자를 잘 안다고 생각 했는데 실상을 하나도 모르고 있던것을

이때 알았습니다. 헤여지자 하더라구요.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좀만 더 기다려주면 성공 할 수 있을거 같은데

왜 기다리지 못하는 것일까? 하는 마음이 제일 컸습니다. 네.... 저 미친놈 못난놈 쓰레기 맞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러자고 했습니다. 으례 제 여친이 삐졌다고 생각을 했고, 성공해서 내려 가면 기다릴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1년 후 시집을 가버렸고, 전 홀로 남겨졌습니다. 그거와는 별도로 저의 연봉은 2년차에는 1.4억을

찍었습니다. 이 시기에 개인적은 빛들은 거의 다 갚을 수가 있었고, 저의 생활도 조금은 안정을 찾았는데, 막상 나의

청춘을 함께 했던 그녀가 없어졌다는 사실이 너무 아프고 견딜수가 없었지만, 그녀를 보내주는게 사랑이라는 생각에

참고 참았습니다.

 

그 후로 1년뒤 그녀는 아기를 출산 했고, 그녀의 아기가 내 애기였으면 소원이 없겠다는 생각도 해봣지만, 참 행복해 보이는

그녀의 가족사진만이 있을뿐이였죠. 그때 내마음 속의 남아 있던 사랑을 다 놓아 주었습니다.

 

저의 일은 날로 번창 했고, 같이 일하던 누나의 투자를 받아 회사도 하나 설립했습니다. 그 누나와 일 하면서 정말 신나게

돈을 버니, 그것도 그 나름대로의 맛이 있더라구요, 투자금 회수와 3년정도의 지분을 주면서 세월이 흘러 갔습니다.

 

남녀 사이보다 일이 더 중요한 사람으로 변해 있고, 순정은 없어졌으며, 결혼은 하기 싫고 여자는 정말 가볍게만 만나는       그저 그런 아저씨로 변모 해 가는 내 자신이 참 처량 했습니다.

마지막 남아 있던 그녀에 대한 미련을 다 버리고 나니 정말 남아 있는게 없더군요. 그렇게 36살에 일도 사랑도 모두

버렸습니다.

 

그 시기 즈음 해서 해외 선물 바람이 불더군요. 재미 삼아 하던게 점점 겉잡을 수 없이 불어 나게 되고 천국과 지옥을

와따가따 하면서 허송세월을 보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참 인생이 망가져 있다라구요,

 

 

하필이면 그때 저의 엄마가 황혼에 마음 맞는 짝을 찾았다고 제주도로 재혼을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마음이 참 기뻤습니다.

여태 고생만 하시다가 말년에 그런 사람을 만났다는게 정말 기뻤고, 누나들의 반대에도 엄마만 원하시면 반드시

보내드리겠다고 다짐을 했고, 가지고 있던 현금을 다 써버려서 엄마랑 같이 살던 집을 전제를 놓고 그 돈으로 제주도에 내려

가셨습니다. 집을 팔려고 했었는데 그때 당시 집이 안팔려서 전제를 준것이 거든요.

 

다시 정신 차리고 재기를 하려고 38살 10월 부터 다시 일을 시작 하였습니다. 그때 지금 하려고 하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나타났어요. 머리를 자르려고 미용실에 들렸는데 너무너무 이쁜 아가씨가 있길래 밥 먹자고 다짜고짜 이야기를 하였고

당연히 거절당했습니다. 그렇게 5개월간의 끈질긴 구애로 우리는 사랑을 시작 할 수 있었습니다.

 

저보다 좀 마니 어린 친구 였는데, 철은 없지만 열심히 일하고 너무 착하고 제눈에 너무 이뻤습니다. 머든 다 해주고 싶은

마치 20살때의 그 마음이 자꾸 되 살아 나는 느낌을 받았지만, 한편으로는 좀 무서웠습니다. 또 다시 그때 그 친구처럼

지금 이 친구도 그러면 어짜나 하는 그런 느낌. 마음이 커질수록 더 불안했습니다.

 

하필 지금 같은 시기에 나를 만나는가? 제가 구애 하고 제가 선택한 사람이지만, 참 마음이란게 마음대로 안대더군요,

그래서 또 일에 매진을 했습니다. 지금은 재개발 쪽으로 일을 하고 있는데 성공이 목전에 있습니다.

그렇게 일에 너무 많은 열정을 쏟으니 당연히 여자친구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나 봅니다. 여자친구는 마니 어리고

사랑받고 싶어 하고 관심받고 싶어할 나이에, 저의 입장을 고수 했으니 얼마나 외로웠겠습니까?

 

한날에는 낮에 연락안한다고 너무너무 짜증을 내길래 홧김에 헤여지자고 말했습니다. 3~4일 쯤 후 우리 집 앞에 찾아 와서는

커피 한잔 하자고 하고 이야기를 나눈뒤 다시 만남을 이어갔습니다.

그렇게 만남을 가지는 중에 여자 친구가 자꾸 오해를 하더군요. 내가 낮에 무슨일을 하는지 모르겠으며, 내가 하고 있는일이

도대체 어떤 일인지도 모르겠고, 자기는 결혼 하고 싶은데 오빠는 결혼할 마음이 없다고.......

 

단지 어린애의 투정 정도로 생각을 했고, 전세금 돌려줄 정도만 벌어놔도 시작은 할수 있겠구나 해서 진짜 빨리 돈을 벌려고

미친듯이 뛰어 댕겼습니다. 그리고 이런 저도 표현을 잘 안했지만 결혼을 생각 하고 서서히 마음을 열였습니다.

 

한번은 약속이 펑크가 나서 같이 일하는 동생이랑 커피 한잔 하고 제 여자 친구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동생이 하는 말이 "형님 요즘에 너무 어린애들은 피하셔야 됩니다. 진심이 아닐수도 있습니다. 확인을 좀 해보세요" 그랬더니 오늘 약속 펑크 난거 이야기 하지 말고 좀 기다려 보시고 전화 받는지 안받는지 확인을 하라 하더이다.

 

그애가 다 좋은데 술 먹으면 연락이 잘 안되는게 평소에도 잦았거든요, 친구들 있을때나....... 뭐 나이차이가 좀 나니까

불편해서 그런거일 수도 있다고 이해는 했습니다. 그 동생이랑 밥 먹고 커피 한잔 하고 그 동생이 타는 오토바이가 있는데

뒤에 좀 타다가 우리집에 와서 냉면 먹고 집에 갔습니다. 오랜만에 있는 자유시간이라 참 좋았습니다.

 

몇일 뒤 제 여자 친구가 집에 오고 그 냉명 먹은 종이를 봤나봐요. 그래서 그날 제가 집에 누군가와 있었단걸 알게 되었고,

그날에 제 여친은 전화를 받지는 않고, 집에 들어가서 전화를 했습니다.

제가 왜 약속이 펑크 났는지 일에 관해 이야기 하는걸 싫어 해서 둘러된게 화근이 되었습니다. 집에 누구와 왔는지

관리실에서 cctv 확인 하자 하더라고요.

 

쪽팔리기도 하고 이게 뭐 하는 짓인가 해서 그냥 헤여지자 했습니다. 저 참 쓰레기죠?? 맞습니다,. 저도 압니다........

 

그 며칠 뒤에 너무 허전 하고 너무 보고싶고 해서 용서를 싹싹 빌었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만났죠. cctv 확인 시켜 달라고 했는데 관리실에 말하기가 좀 그래서 두리뭉실하게 넘어갔습니다. 사이는 예전처럼 좋았고 저는 조금씩 더 잘할려고 노력 했어요.

 

그러나 천성이 어디 안가듯 처음에만 좀 해주고 일이 바쁘다 보니 낮에 연락이 또 자연스레 쭐어들었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이별 통보를 해왔죠. 전 알겠다고 하고 끝내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그 뒤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진짜 여태 연예를 하고 산

20년 보다 지금부터 2개월 전부터 지금까지가 더욱 더 사람을 이해하게 되고 소소한 행복이 먼지 상대가 어떤걸 원하는지

어떻게 해야 돼는지 뼈져리게 느꼈습니다.

 

연락이 안되는 며칠동안 그애가 뭘 먹었는지 어디서 뭐하는지 더운데 힘들어 하지는 않는지 일하면서 스트레스는 안받는지

오늘은 무슨 옷을 입고 무슨색 메니큐어를 발랐는지...... 너무 궁금해서 미칠거 같더라구요

그래서 한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애원하고 매달렸습니다. 읽씹만 하는 그녀의 카톡에 너무 힘들고 지쳐서 화도 내보고

마음도 전해보고, 편지도 써보고 했습니다. 그녀의 집 앞에도 가보고 하다가 이제는 안되는걸 알고 포기를 했습니다.

 

근데 저랑 5일날에 정리 하고 6일날 바로 카톡에 하트 표시가 떠 있더라구요, 5일날에 우리 집에 남아 있던 그녀의 집기들과

속옷들 전부 챙겨서 그애 집 관리실에 맡기러 갔는데 그애가 내물건도 챙겨서 관리실에 맡겨놨더라구요.

전화를 했는데 받지를 않고 톡을 했는데 무시 하길래 그냥 집에 갔습니다. 집에서 생각 해보니 갑자기 쓰러졌나 싶은 생각에

다시 그애 집을 갔는데 비번이 바껴있고 집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 생각은 진심입니다. 의심따윈 전혀 없었어요.

 

며칠전 좀 싸우고 만나자고 했는데 힘이 들어 집에 들어 간다고 했어요. 그 후로 또 저나도 안받고 카톡도 씹길래

본가에도 가보고 집에도 가봤는데 역시나 없더군요. 그때 말을 했습니다. 제발 남자 생겼으면 말을 하라고.....

그건 아니고 그냥 오빠랑 못만나겠다는 말만 했습니다. 전화 안받고 거짓말 하는걸로 처음으로 화를 좀 냈어요.

 

그 이후로 그냥 저의 연락을 철저히 무시 하면서 저는 답답해져만 갔습니다. 그녀의 집에 찾아가보기도 하고 매일 카톡도 남기고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그 애한테 참 미안하더군요....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이 감정들이 그녀가 느꼈던 감정이던가.....

그냥 남친과 소소한 일상을 대화하며 누군갈 호박씨 까고 먹고싶은거 느끼고 있는거 이야기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어 가는....

그런 진짜 아무것도 아닌게 행복이고 그것이 사랑이라는 걸 뼈져리게 느꼈습니다.

 

오늘입니다. 산책길에 하염없이 걸었습니다. 지갑도 담배도 아무것도 안가지고 나와서 그냥 걸었습니다.

내가 향하는 곳은 그녀의 집이 였습니다. 근데 그녀의 집 현관문 앞에서 남자 소리가 들립니다. 눈이 뒤집혔습니다.

 

문을 두드리고 잠깐 이야기좀 하자고 남자 한테 말했습니다. 화내는것도 아니고 잠깐 이야기좀 하자고.

결국 그 남자와 이야기를 좀 했습니다. 6월달 부터 연락을 했고. 8월 6일부터 사겼다고 말을 합니다......

 

저는 정말 비참했어요. 이기적인건지는 몰라도 이제야 어떻게 사랑을 하는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겠는데.

이제야 머리가 아닌 마음이 움직이는데, 이제야 행복하게 해줄 행동들이 먼지 알겠는데...... 정말 미칠거 같습니다.

무더운 여름날 이케아 에서 주문한 침대에서 같이 뒹굴고 있었다고 생각 하니 정말 비참 합니다.

 

근데 더 찌질한건 제가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상황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 여자가 내려와서 잠깐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남자와 말하는게 틀리더군요........

제발 사실대로 말해 달라고 부탁 했습니다. 그리고 사고를 칠거 같아서 젤 친한 친구 한테 전화해서

나좀 말려달라고 했습니다. 그 친구가 문신이 좀 많은데 이것도 오해를 살 여지가 있을런지요??

 

아.... 제가 뭘 어찌 해야 할까요? 제가 어떻게 하면 현명한 대처가 될까요? 그냥 잊는게 맞는걸까요??

전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진짜 39년 살아 오면서 여자와 사랑에 대해서 2달동안 배운것이 더 많네요.........

 

그리 사랑을 서로 속삭이다가 어떻게 이래 불편한 사이가 되는것인지.... 이 상황들이 너무 섭섭하기만 합니다.

제 친구가 그렇게 말하더군요. 진짜 사랑하면 찌질하게 보여도 혼신의 힘을 다해서 잡아보라고.....

 

그말듣고 이렇게 했는데 결과가 이렇습니다. 제가 잘못한 부분은 저도 잘 압니다. 공감해 달라고 쓰는것도 아닙니다.

저 나쁘고 쓰레기 맞습니다. 다만 이 상황을 어케 해야 하는건지 좀 알려주십시요.

 

긴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읽으실 분이 몇분이나 계실지 모르겠지만 혹시 보신다면 좀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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