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쟝이 라이더라면? (23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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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떴을 때,
내 등 뒤로 쟝이 나를 안고 있었다.
우리는 백허그 자세로 잠들었나 보다.
암막 커튼을 쳤는데도 빛이 새어 들어오는 걸 보니
해는 진작에 뜬 모양이다.
어제의 순간들이 새록새록 떠올라 얼굴이 뜨거워졌다.
그 소리들, 표정, 떨림, 목소리,
그리고 내 발에 꼭 맞는 프로포즈 하이힐.
어제.
세 번째 한 뒤에는 그대로 나가떨어졌다.
핸드폰을 찾으려고 살짝 일어나려는데
쟝이 나를 덥썩 잡아서는 못일어나게 막았다.
쟝: 어딜...
나: 어, 더 자, 쟝.
쟝: 이리 와. 너 없으면 못 자.
쟝이 놀라울 만큼 강한 힘으로 나를 끌어당겨서
나는 쟝에게 찰싹 밀착된 상태로 다시 누웠다.
아깐 백허그였는데 지금은 서로 마주본 자세로.
나: ...이건 아직도 팔팔하네...
쟝: 건드리면 해야 돼.
나: 뭐어?
쟝: 난 4살 연하 남편이라구~ 잊었어?
팔팔하단 말이야.
나: 뭐야! ㅋㅋㅋㅋ
우리는 마주보고 킥킥대며 웃었다.
결국 침대 밑에서 쟝의 핸드폰을 찾았는데 시간이 벌써
정오를 넘겼다.
나: 어쩐지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계속 나더라.
우리 뭐 시킬까?
쟝: 난 먹고 싶은 거 정했어 이미.
나: 어떤거?
쟝: 여주.
나: ... 너 이렇게 밝히는 애였어?
쟝: 응. 몰랐어?
나: 응. 몰랐어.
쟝: 내가 6년 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 이제 알겠지?
나: 어휴~ 내가 널 어떻게 말로 이기겠니?
쟝: 어어? 우리 사이에 우위는 항상 너잖아, 헤헤^^
이리 와 봐.
쟝이 누운 채로 나를 번쩍 안아들더니
자기 위에 나를 태운다.
쟝: 이거 봐.
오늘은~ 이렇게 해볼까?
나: 못살아 증말.
나는 못된 어린애를 꾸짖는 것처럼 쟝의 다리를
찰싹 때린다.
쟝이 킥킥거리며 웃는다.
쟝: 하나도 안아프지롱~
나: 어휴 얄미워~!
쟝: 같이 씻자.
나: 됐네요.
쟝: 왜?
나: 그거... 남겨둘꺼야.
우리 식 올리는 날까지.
지금 미리 다 해버리면 권태기 금방 올지도 몰라.
쟝: 허얼...
나: 빨리 씻고 나가자. 밥 먹어야지. 나 배고프다구.
먼저 씻는다!
나는 찡긋 웃으며 잽싸게 욕실로 향했다.
카페거리에서 아침 겸 점심으로 쌀국수를 먹은 뒤
우리는 소화시킬 겸 짧은 산책을 했다.
쟝의 취업과 결혼 준비가 겹치면서 최근 이런 여유를
누려본 적이 별로 없었다.
게다가 오늘은 12월 31일 일요일.
쟝은 오후에도 잠시 일이 있어 나가봐야 한단다.
2시간 정도 걸릴 거라길래
따라가서 근처 카페에서 책을 읽으며 기다리겠다고
했는데 그냥 쉬란다.
내가 입을 삐죽이며 싫다고 하자 마지못해 그러라고
하는 쟝이다.
내가 쟝과의 교제 사실을 친구들에게 털어놓은 것은
쟝이 대학에 입학한 시점,
그러니까 내가 25살, 쟝이 21살 1학년이던 때였는데,
사실 그때도 의혹이 가득한 눈초리를 하던
친구들이었다.
애니와 유미르는 정말 친자매 같은 친구들이다.
그러다보니 내가 좀 더 나은 조건의 남자- 예를 들면
에르빈 선배 같은 남자를 만나기를 권했다.
사실 어떻게 보면 고마운 노릇이다.
내가 안정적이길 바래주는 거니까.
만약
19세 휴학생 내지
20세 고3의 쟝을 오픈했다면
내 부모님의 식당을 찾아가 여주를 제발 말려주세요
하며 소란을 피우고도 남을 녀석들이었다.
그 후로도 쟝과 친구들은 1년에 두 어 번 합석을
하긴 했다.
나를 데리러 왔다가 스치듯 인사한 횟수는 좀 더 많고.
그치만 쟝이 본격적으로 공부에 돌입한 뒤로는
사실 나부터도 자주 만나지 못했었으니
애니, 유미르와 쟝이 만날 일도 희박해졌다.
청첩장을 주기 위해 친구들을 만날 때는
아예 쟝이 지방 합숙소에 있을 시점이어서
이제는 결혼식 당일날에나 친구들과 쟝이 만나게 생겼다.
서글서글한 쟝은 애니와 유미르를 만나면 불편해
하고는 했다.
유미르는 그나마 덜했는데 애니가 유독 까칠하게 굴었다.
내 절친들이니 쟝하고도 사이가 좋으면 좋으련만.
아, 유미르는 현재 동시통역사로 일하고 있다.
애니는 방송국에서 영상편집 일을 하고 있고.
나는 카페에서 쟝을 기다리는 동안
잠시 친구들을 볼 수 있을까 싶어 단톡을 보내 보았다.
그런데 왠걸, 둘 다 선약이 있어서 안된단다.
내가 연애하느라 얘네들이랑 좀 소원해졌나?
왠지 씁쓸한 생각이 든다.
쟝이 자리를 비운 동안 나는
카페에 가는 대신 쟝의 차 안에 앉아서
어제 못다 잔 잠을 마저 보충하기로 했다.
한참 자고 찌뿌둥한 몸을 일으킨 시각은 무려 오후 8시.
허걱.
1시에 아점 먹고 2시에 산책하고,
3시~5시까지 미팅이 있다던 쟝이 아직까지도
소식이 없다니.
이상함을 느낀 나는 쟝에게 연락을 해야겠다고 느꼈다.
설마 아직도 회의 중인 걸까?
이야기가 길어져서 내게 연락도 못하는 상황인 거라면
내가 전화하면 안될텐데.
나는 전화 대신 카톡을 보내기로 했다.
그런데 앱을 실행시키기도 전에 쟝이 나타났다.
쟝의 얼굴은 약간 붉게 상기되어 있다.
쟝: 차 안에 계속 있었던 거야 설마?
나: 응. 너무 졸려서 그냥 내리 잤어.
넌 안피곤해?
쟝: 버틸 만 해~!
나: 너 땀 나?
쟝: 어? 어 그러네... ㅎㅎㅎ
나: 무슨 12월에...
쟝: 좀 뛰었어, 빨리 오려구, 헤헷~
어서 가자.
쟝이 시동을 걸어서 나도 본능적으로 안전벨트를 맸다.
좀 늦은 저녁식사는 돈가스를 먹기로 했다.
식당에 가보니 아버지는 거래처 사장님과 약속이 있어서
나가셨고, 엄마와 알바생들이 가게에 있었다.
쟝: 쟝~모~님~ 헤헤헤^^
쟝은 내 손을 뿌리치듯 놓고는 달려가
엄마 등 뒤에서 어부바 하듯 엄마의 목에
기다란 팔을 두른다.
쟝의 애교는 이제 적응하실 만도 한데
엄마는 아직도 쑥스러우신지 화들짝 놀라시며
쟝의 포옹에서 슬그머니 빠져나와 얼버무리신다.
엄마: 으응, 쟝... 그런 건 여주한테 하게나...
... 너는 오면 온다고 말을 해줘야지!
올 줄 알았으면 한우라도 미리 사놓잖아~!
나: 엄마 그럴까봐 갑자기 왔어.
돈가스 먹으러 왔는데 왠 한우.
엄마, 우리 히레 가스 두 개 주세요.
엄마: 니들은 맨날 그것만 먹더라.
소바도 좀 줄까?
쟝: 네! 우동이랑 소바랑 둘 다 주세요.
세트로 나오는 작은 거 말고 큰 걸로 주세요 장모님.
엄마: 그걸 다 누가 먹게?
쟝: 힝... 아까우세요?
엄마: 엉? 아니아니, 내 사위 주는데 뭐가 아까워~!
다 먹을 수는 있고?
쟝: 그럼요! 많이 먹고 많이 운동해서 소화 다 돼요^^
엄마: 그, 그래 그럼... 금방 내올께...^^;;
내가 엄마를 쫄레쫄레 따라가 주방으로 들어가는데
엄마가 중얼리신다.
"아휴, 어려서 그런가, 봐도봐도 적응이 안되네..."
하긴 쟝이 덩치에 비해 애교가 넘치긴 하지...
나는 엄마를 도와 얼른 음식을 차린다.
엄마: 얘, 가구들은 얼추 다 들어왔지?
내일 엄마가 한 번 가봐야지, 궁금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고.
나: 아... 큰 것들은 거진 다 자리잡았어.
소파는 아직.
리클라이너가 불량인 게 들어왔다고 며칠 미룬대.
서재방 책상이랑 책장도 아직 안왔구.
엄마: 네 시아버님은 결혼식 주에나 들어오신대니?
나: 응. 수요일에는 입국하시니까 토요일 예식까지는
지장 없으실 거야.
엄마: 동생 먼저 장가보내는 거라 마음이 좀 그러실 거야.
나: 응... 아주버님 그래도 많이 좋아지셔서,
그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해.
박사 과정 밟는 것도 상상도 못했던 일인데.
공부랑 결혼할 거라고 우스갯소리로 맨날 그래.
엄마: 그집 아들들이 둘 다 영재 수재들이야.
쟝도 한 번에 합격한 거 보면...
손주 낳으면 너 말고 쟝 머리 닮아야 할텐데.
나: 엄마가 안티네, 엄마가 안티야...
식사를 내가며 내가 인상을 썼다.
쟝이 핸드폰으로 누군가와 연락을 하고 있는 눈치라
힐끔 봤는데 카톡이다.
나: 주문하신 히레가스, 우동, 메밀소바 대령이요~
누구랑 연락해?
쟝: 어??? 아, 아냐^^;;
나: 뭘 그렇게 놀라냐? 바람피는 남편 같이.
쟝: 바람이라니?
나: 화들짝 놀라니까 글치. 누군데?
쟝: 어? 아~ 그냥 동창... 청첩장 땜에^^
나는 시큰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쟝은 나랑 연애 당시 공부밖에 안해서 동창들하곤
거의 친분이 없는 걸로 아는데.
오히려 고등학생 시절 야구부원들과 더 친하다고
했으니까 고교동창 중 하나를 말하는 건가보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늦은 저녁밥을 허겁지겁 먹었다.
그때 그렇게 무신경하게 넘어가지 말았어야 하는데.
나중에 두고두고 이를 갈아야 했다.
❤ https://mobile.twitter.com/therapistlevi/status/1375987266741399552?s=12
❤ 어제 내리 3~4번 썰려서 멘탈이 가출했었어...
❤ 오늘 판버젼 순한 맛으로 썼음
❤ 원문은 ㅍㅌ 참조(큰 차이는 없음. 단어선정의 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