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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쟝이 라이더라면? (24화)>



- 쟝이 라이더라면? (24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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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정말 빨리 흐른다.

3주 남짓한 기간 동안

29년 평생 제일 많은 일을 한 것 같다.

가구와 대형가전부터 시작해서 

작게는 커피포트나 다리미 같은 소형가전제품들

하나하나를 결정하고 주문하고 수령하고 확인하는 일은

의외로 골치가 아팠다.

살면서 하나하나 장만하는 재미가 있다고 

아무리 말씀드려도 엄마는 고집을 부리셨다.

하나뿐인 딸래미 시집 보내는 거라

최대한 챙겨주고 싶은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리고 쟝네 집안에서는 딱히 나의 학벌에 대해

부족하다거나 하는 내색을 안하시지만

부모님 입장에서는 내가 시집 가서 학벌이나 경제력으로

주눅들 것을 염려하시는 것도 이해가 갔다.

덕분에 혼수를 좋은 걸로 해가게 되서 죄송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예복이며 여행이며 신경을 하도 써서

스트레스성 위염도 왔다.

아쉽게도 쟝은 너무 바빠서 준비 막바지를 거의

내 쪽에서 해야 했다.

그놈의 회사는 사람을 어찌나 부려먹는지

밤 10시에도 통화가 안될 때가 많았다.






내가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결국 결혼식 하루 전날.

나는 1주일 휴가를 낸 덕분에 오전에는 피부관리를 받고,

오후에는 잠실본가에 들러 시부모님과 점심식사 후, 

백화점에 들러 세팅이 완료된 예물시계를 받아왔다.

쟝의 손목에 잘 어울릴 오메가 시계의 가격은

내 두 달 치 월급보다 높다고 해두자.






저녁 무렵 신혼집에서 마지막 택배를 받고 난 뒤

쇼파에 벌러덩 누워 있는데 카톡이 울린다.

내일 부케를 받을 애니이다.

{ 야, 설렌다고 밤새지 말고 일찍 자라. 눈에 팩 붙이고.}

말은 무뚝뚝하지만 속마음은 착한 애다.

아르민 씨와 3년째 썸만 타는데

나 결혼하고 애니도 얼른 결혼하라는 뜻에서

부케를 부탁했다.

오늘 신혼집에서 같이 자기로 했는데 9시가 넘도록

쟝은 소식이 없다.

결혼식 직전까지 야근이라니.

이러다 여행- 우리는 신혼여행을 3월로 미룬 대신,

토요일 예식을 치루고 제주도에 토일월화로 다녀오기로

했다- 가서도 일하는거 아닌가 몰라.

나는 애니에게 답장을 보낸 후 샤워를 했다.

새 이불 특유의 바스락거리는 촉감과 소리가 참 좋다.

내일 2시 예식까지 앞으로 16시간 가량 남았다.




깜빡 잠이 든 것 같다.

나를 만지는 촉감에 눈을 떠보니 쟝이 와 있다.

쟝은 내 머리카락을 한 올 한 올 쓸어넘기며

나를 인자한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쟝: 깨웠네.

나: 응... 아냐 괜찮아. 언제 왔어?

쟝: 좀 전에.

나: 피곤하겠다.

장: 응. 좀.

나: 얼른 씻고 누워.

쟝: 응. 저기 여주. 있지.

나: 응?

쟝: 넌... 나 믿지?

나: ... 당연하지. 

쟝: 내가 우스꽝스러운 짓을 하거나...
     어이가 없는 실수를 하더라도...
     사람들이 나를 흉봐도 너는 내 편 되줄 거지?

나: ... 왜그래, 불안하게. 무슨 안좋은 일 있어?

쟝: ...아냐...^^ 나 씻을게.







쟝은 내 손을 가만히 내려놓고 욕실로 들어갔다.

뭐지?

하필이면 결혼식 하루 전야에 저 불편한 질문은 뭐람.






쟝이 나올 때까지 이런저런 가정을 하면서

쟝의 말을 곱씹었다.

내가 봐온 쟝은 허툰 말을 하거나 실없이 구는 남자가

절대 아니었다.

나에게만큼은 순진하고 귀여운 모습을 종종 보여줘도

밖에선 카리스마로 사람들을 압도하고

남자다운 매력이 넘치는 사람이다.

사기캐라고 생각될 정도로 다 갖춘 남자.

그러면서도 나한테만큼은 한없이 사랑스러운 남자.

한 번도 쟝의 표현같이

어이없는 실수를 해서 지탄해 본 적이 없는 쟝인데

왜 그런 불안한 말을 한 걸까?






샤워 소리가 끝나고 쟝이 몸을 닦는 듯 했다.

그때 테이블에 올려둔 쟝의 핸드폰 카톡 알림음이

울려서, 나는 번개같이 뛰어 폰을 들었다.

평소같았으면 쟝의 핸드폰을 염탐하는 짓 따위는

하지 않는다.

나 자신을 스스로 갉아먹는 짓 따위라고 여기니까.

제일 경멸스럽게 여기는 행동 중 하나라 생각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지금 그 행위를 하는 데는

방금 전 쟝의 의미심장한 질문이 큰 영향을 미친 것이다.

폰이 잠겨 있어도 가장 최근 메세지는 볼 수 있었다.

이렇게까지 하긴 싫지만...

나와 쟝이 함께 환하게 웃고 있는 배경 사진 위로

카톡이 보였다.

{ 애니: 잘 들어갔죠? 
          여주한테 끝까지 비밀유지 잊지 마요. }






나는 잠시 할말을 잃었다.

어라?

비밀을 유지하라니?

무슨 비밀?

애니랑 쟝 사이에?

애니랑 쟝은 서로 불편해 하는 사이인데.

같이 식사를 한 건 1년에 한 두 번,

지금까지 다 합쳐도 다섯 손가락에 꼽을 뿐더러

연락처를 서로 알지도 못할텐데?

둘이 연락을 하고 있었어?

게다가 나한테 비밀을 유지하라는 건 뭐지?

내가 쟝과 사귀면서 

단 한 번도 여자문제로 나를 불안하게 하거나 

의심이 갈 만한 행동 자체를 하지 않던 쟝이다.

그의 외모를 생각하면 들이대는 여자들이 분명 

꽤 있었을 거고,

같이 식당이나 카페를 갔을 때 수근거리는 소리도

분명 들었으며,

그런데도 눈길 한 번 주지 않던 쟝의 모습이 나에겐

너무도 익숙하고 당연했다.

그래서 그쪽으로는 속상했던 적이 아예 없다.

마치 달에는 공기가 없는 것처럼.

나에게는 그냥 절대적 진리 같은 거다.

그런데 기분이 이상하게 묘했다.

백 번 양보해서 유미르라면 또 모를까,

쟝을 늘 탐탁찮다는 듯 바라보던 애니가 왜 연락을?

심지어 CPA 준비기간에도

공부 때문에 소원해진 것 아니냐며 의혹을 품던 애니다.

그런 애니가 왜 쟝과 개인적인 연락을 주고 받으며,

내가 모를 비밀을 둘이 갖고 있는 거람?

혹시,

정말 만에 하나라도,

애니가 쟝에게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고,

그래서 쟝에게 일부러 퉁명스럽게 굴기라도 했단 거야?

그럴리가.

애니는 나와 10년 넘게 친구로 지낸 사이잖아.

쟝도 6년 동안 무한한 신뢰와 사랑을 준 연인이잖아.

그래,

카톡 하나야.

저 한 줄의 카톡 때문에 나의 수 년 간의 믿음과 

돈독한 관계를 흔들다니 말이 안되지.

알고나면 되게 사소한 걸꺼야.

뭔가 합당한 이유가 있겠지.

일단은 모른 척 하자.

고작 이런 걸로 흔들릴 관계가 아닌데.






나는 마음을 정리하고 쟝의 폰을 살짝 내려놨다.

아무래도,

피곤하고,

내일 있을 식에 긴장한 나머지

내가 확대해석을 한 것이 분명하다.

나는 허허 웃으며 침대에 누웠다.

잠시 후 샤워를 마친 쟝이 나왔다.







나: 그 회사 너무한 거 아냐? 
     낼 결혼하는 거 알면서 야근을 이렇게 시키냐...

쟝: 담주 화요일까지 쉬잖아, 대신...
     연수 기간 중에 휴가 받는 것도 사실 감지덕지지 뭐.
     나 보고 싶었어?

나: 칫. 머리 말리고 누워.

쟝: 말려줘.

나: 어리광은.

쟝: 히힛... 드라이기 갖고 올게.







쟝이 드라이기를 가져와서는 내 옆 방바닥에 주저앉아

내가 머리를 말려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일어나 전원을 연결하고 침대에 앉은 채

쟝의 머리카락을 말려준다.

침대 밑으로 내려간 내 두 다리를 쟝이 벨트처럼

자기 가슴팍 앞으로 끌어다 엑스자로 당긴다.

덕분에 나는 흡사 쟝의 목에 목마를 탄 것처럼

바짝 붙게 되었다.

2,3분 정도 머리를 말려주며 생각을 정리했다.

물어볼 것인가 말 것인가.

아는척 할 것인가 모르는 척 할 것인가.

넘어갈 것인가 짚고갈 것인가.

딱 한 줄의 그 카톡. 

고민의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았는데 다시 카톡 알림이 울린다.

드라이기의 소음에도 불구하고 똑똑히 들었다.







쟝: 어, 이제 다 된 것 같아. 고마워^^








쟝이 일어나 내 손에서 헤어드라이기를 받아들고는

코드를 뽑아 둘둘 감더니,

서랍장에 올려둔 핸드폰에 손을 뻗는다.








나: 누구...야? 밤 11시에 매너 없게.

쟝: 응... 동창. 별 거 아냐.







쟝이 옆구리에 드라이기를 껴고 폰을 든 채로 슬슬
이동한다.

얼른 액정을 확인하더니 아무렇지도 않은 듯

씨익 웃어보이며 드라이기를 서랍에 넣는다.







나: 동창 누구?

쟝: 응? 아... 고교동창...

나: 니 동창? 내 동창?

쟝: 어?? 

나: ...아냐.

쟝: 어... 여주, 그게...

나: 아까 너 씻을 때 우연히 봤어.
     너 애니랑 개인적으로 연락해?

쟝: ......

나: 나한테 비밀로 해야 하는 일이 뭐야?

쟝: 있잖아,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결혼식 때까지만
     믿고 기다려줄 수 있어?

나: 이런 찜찜한 기분으로 식을 제대로 치를 수 있을까?

쟝: 맹세컨대 나쁜 짓 한 건 아니야.
     나 정말 너한테 털끝만큼도 나쁜 일 하지 않았어.
     너도 알잖아, 내가 널 어떻게 생각하는지...
     다만 식 때까지만 나한테 시간을 줬으면 해,
     내가 너한테 그동안 한 걸 생각해서 날 믿어줘.

나: ...... 알았어.

쟝: 식이 끝나면 얘기해줄게.

나: 그래. 근데. 뭐가 됐든 간에. 
     앞으로 이런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기분 별로거든.

쟝: 응... 미안해. 두 번은 없을거야.
     그리고 너 배신하는 일은 죽어도 안해.
     조금만 믿고 기다려줘.
     이해해 줘서 고마워.








마음 한 구석에 찝찝함이 여전히 남아 있는데도,

나는 쟝을 한 번 믿어보기로 마음먹었다.

당장 말하라고 보챌 수도 있지만,

쟝 말마따나 내가 쟝을 믿고 믿어왔다는 걸 증명하겠다는

오기도 발동했다.

기분은 여전히 나쁘다.

애니에게 바로 연락을 해서 따질 수도 있지만

내 자존심이 허락치 않았다.

그래.

저렇게까지 확신이 있게 말하는데,

기다려보자.








나는 언짢은 표정을 감추려 안간힘을 쓰면서

침대에 도로 누웠다.

잠시 후 전등을 끄고 쟝이 다가오더니 내 눈치를 살피며

이불을 살짝 젖히고는 살그머니 내 옆에 눕는다.

나는 눈을 감고 몸을 살짝 돌려 옆으로 누웠다.

쟝이 주저하다가 팔을 뻗어 나를 살짝 끌어안는다.








쟝: 이제 한 시간 지나면 우리 결혼식 날이야 여주.

나: 응.

쟝: 나. 너한테 진짜 잘할게.

나: 그래야 할 거야. 







나는 오지 않는 잠을 청했다.

결혼식을 눈 앞에 두어서인지,

애니와의 카톡이 신경쓰여서인지,

둘 다 때문인지 모르겠다.















❤ 오늘도 감사합니다. 다들 시험 잘보길.


❤ 이미지는 https://mobile.twitter.com/therapistlevi/status/1385173315183022084/phot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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