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쟝이 라이더라면? (26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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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을 차리고 보니 우리 둘은 김포발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있다.
식이 끝나고 옷을 갈아입고 하객들께 인사드리고
식사하고 하는 동안 양가 어느 누구도 축하공연에 대해
언급하지 않으셨었다.
암묵적으로 다들 약속이라도 한 것 같았다.
마치 없었던 일로 여기고 싶으신 듯 했다.
아버님이 한 두 차례
"쟝 니가 그렇게..." 라고 운을 띄우시긴 했는데
다들 제발 말하지 말라는 눈빛의 사인을 보내셔서,
머쓱해지신 아버님이 얼버무리셨다.
아주버님만 키득거리고 웃으셨다.
나도 가족들 앞에선 언급하지 않았다.
이제 단 둘이 있을 수 있게 되었으니 지.금.은.
말할 때가 되었지.
나: 그러니까, 축하공연 하고 싶다는 건 니 생각이다?
쟝: 응... 나 너한테 잊지 못할 결혼식 되게 해주고 싶었어.
원래는 야구부 동기들한테 부탁했는데
식장에서 비보잉은 좀 그렇잖아...
그래서 애니 씨한테 sos쳤는데 마침 도와준대서...
그래서 한 달 전에 퇴근하고 셋이 모여서 틈틈이
연습한 거야...
나: 나한텐 일언반구의 말도 없이.
쟝: 응, 깜짝 놀래켜주고 싶었으니까...
나: 그래서 그렇게 늦게 들어오고, 전화 안되고.
쟝: 응, 공연 맘에 들었어? 나 춤연습 진짜 열심히 했거든.
나 쩔지?
나: 확~! 아아 쟝... 내가 널 어쩌면 좋니.
쟝: 왜에... 나 여주한테 이쁨 받고 싶었다구.
나: 그걸 또 들어준 애니와 유미르 이 악한 것들...
절교할 수도 없고 이걸 어떻게 갚아주지...?
나도 애니 아르민 결혼할 때 발레라도 해야 하나...
아니, 창을 해야겠어, 자진모리장단에 맞춰서...
서편제 틀어놓고 목탁 두들길까... 아아...
쟝: 왜 흑화하고 그래 여주~~~~~
갑자기 쟝이 잡고 있던 내 손에 쪽 하고 뽀뽀를 한다.
쟝: 부모님이 예쁘게 키워주신 내 신부님, 화내지 마.
나: ...... 암튼 넌 못말려.
아 나 앞으로 얼굴 어떻게 들고 다녀 진짜...
쟝: 왜?
나: 진심 몰라서 물어?
쟝: 부끄러웠어?
나: 하아... 내가 유교걸은 아니야 쟝...
너두 알지?
내가 막 꽉 막히고 그런 사람은 아닌거.
근데... 사실 결혼식은 우리끼리만의 파티가 아니라
양가 어른들 친척들 직장상사 선후배 기타등등...!
좀 체면도 생각해야 하는 자리라구.
거기서 싸이 노래에 춤까지 추다니 아아...
쟝: 다들 즐거워하던데.........
쟝이 시무룩한 얼굴로 어깨를 추욱 늘어뜨린다.
아, 정말 모르는 거야?
아님 나 혼자 고지식한 거야?
진짜 다들 즐긴 거 맞아?
혼란스럽다.
우리 결혼식 영상 누가 유투브에 올려서 돌면 어쩌지.
한 시간 남짓한 비행을 마친 비행기가 착륙하고,
짐을 찾고 렌터카를 받은 우리는 1132번 국도를 타고
애월읍에 얻어둔 숙소로 이동했다.
애월항이 눈앞에 펼쳐진 깔끔하고 아기자기한 독채로
미리 점찍어 두었다.
어차피 겨울이라 해양스포츠나 수영을 즐기기 어려워서
내가 에어비앤비에서 고른 숙소인데
사진으로 본 것보다 더 마음에 든다.
나는 심란한 마음은 잠시 접어 두기로 했다.
정식으로 온 신행은 아니지만 어쨌든 우리는 불과
몇 시간 전에 식을 올린 따끈따끈한 신혼부부이고,
식을 올린 후 첫 여행을 온 거다.
여기서 첫날부터 화내고 따지고 하진 말자.
사실 그럴 기운도 없다.
우리는 숙소에 들어가자마자 양가에 무사도착을
보고했다.
아주버님께서 잠시 후 퀵을 하나 보낼 거라고,
깜짝선물이라고 하셔서,
깜짝 놀랄 일이 아직도 남았냐고 물었더니
쟝과는 상관없이 진행한 거라며 웃으셨다.
해는 이미 졌고 9시 가까이 되어 가는데
우리는 허기를 달래러 외출을 하고 싶지만
퀵 때문에 나가지도 못하나 하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빨리 퀵서비스가 도착했다.
정확하게는 출장부페였다.
우리가 식사를 제대로 못할 것을 염두에 둔 아주버님이
여러 음식들을 미리 준비해 주신 것이었다.
큼지막한 전복이 듬뿍 든 전복죽,
싱싱한 모듬회,
아직 따끈따끈한 베이비립BBQ와 버터롤,
내가 좋아하는 고디바 초콜릿으로 만든 푸딩,
그리고 와인까지 완벽한 풀코스 요리였다.
진심으로 감사하며 인증샷을 찍어 보낸 후
우리는 허겁지겁 늦은 저녁식사를 즐겼다.
추워서 살짝만 열어놓은 창문 너머로
파도소리가 작게 들어왔다.
입을 즐겁게 해주는 요리가 입과 뱃속에 가득 차자
나도 마음이 누그러지는 것 같았다.
남은 음식은 내일 마저 먹기로 하고
뒷정리를 자처하는 쟝이었다.
나는 쟝의 엉덩이를 툭툭 쳐주고
숙소를 마저 살펴 보았다.
여름에 왔다면 전용 풀을 쓸 수 있을 풀빌라 형태였고
1층은 거실과 주방과 욕실,
2층은 침실 2개와 욕실 한 개가 있는 아담한 곳이다.
거실에 난 대형 통창은 2층까지 이어져 있어
제주 앞바다가 아주 잘 보인다.
지금은 밤이라 깜깜하지만 내일 아침 절경을 볼 수
있겠지.
1층 욕실은 과장 좀 보태면 4인 가족이 들어가고도
남을 정도의 대형 자쿠지였는데,
천창이 있어 쏟아지는 제주의 별들을 감상하기
안성맞춤이었다.
버블이 나오는 제트스파라 피로 풀기에 제격일 듯 했다.
집주인이 센스좋게 버블입욕제도 세팅해 놓았다.
나: 쟝! 샤워할거야? 아님 자쿠지?
쟝: 오, 쟈쿠지 좋다. 여기서 같이 와인 마시자.
어느새 설거지를 끝낸 쟝이 등 뒤에서 대답한다.
욕조가 꽤 커 물을 미리 받아놔야 할 것 같다.
물을 틀어놓고 쟝과 함께 2층에 올라가 보니,
방 한 개는 서재 겸 드레스룸인 듯 책상과 의자,
옷장이 구비되어 있었다.
침실은 작은 방의 두 배 가까이 되는 큰 방으로,
킹 사이즈의 침대와 2인용 안락의자가 있었다.
심플하고 모던한 편이다.
침실에는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작은 데크가 딸려 있다.
데크로 나가 보려고 문 손잡이를 잡았는데
등 뒤에 있던 쟝이 나를 꼬옥 껴안는다.
쟝: 집 보느라 신랑은 뒷전이네. 나도 좀 봐 줘.
내가 뒤를 돌아 쟝의 얼굴을 바라보자
쟝이 내 양 뺨을 꾸욱 누른다.
나: 우우...
쟝: 귀엽다. 히힛... 애기같아.
나: 까불고 있... 읍!
쟝이 순간 입술을 포갰기 때문에 나의 다음 말이 막혔다.
커다란 쟝의 왼손이 내 귀와 턱을 완전히 감싸고
오른손은 내 허리를 휘감아 안았다.
흐응... 하는 신음소리와 함께 쟝의 입술을 받았다.
나: 쟝. 오늘 밤은 길어. 서두르지 마.
쟝: 기대할게 ㅎㅎ
우리는 잠시 현실적인 이야기들을 주고받는다.
침대에 누워 쟝의 팔베개를 하고,
오늘 식에 와준 사람들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앞으로 남은 연수 기간동안 얼마나 일을 해야 하는지,
제주도에서 돌아갈 때 뭘 사갈지,
아직 다 받지 못한 택배들은 어떻게 할지,
결혼식에 와주셔서 감사하다는 단체문자는 뭐라고
쓰면 좋을지 같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그리고 앞으로 몇 명의 아이를 낳으면 좋을까,
차를 한 대 더 사느냐 마느냐,
신혼을 즐길겸 아이는 미루고 애완동물을 키울까,
아주버님께 소개시켜 줄만한 참한 아가씨는 누구 없을까
같은 이야기도.
도란도란 머리를 맞대고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고 또한다.
앞으로도 쟝과 이렇게 살면 좋겠다.
크고 작은 모든 일들을 공유하고
서로를 믿고 존중히고 사랑하고 아끼며.
나는 쟝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었다.
쟝이 몸을 빙글 돌려 자기 다리 사이에 나를 끼워 넣었다.
기다란 쟝의 몸이 나를 에워쌌다.
마치 커다란 인형을 안고 자는 어린애처럼,
쟝은 내 몸 위에 팔다리를 얹고 꼬옥 안은 채로 눈을
감았다.
깜빡 잠이 든 것 같다.
하루종일 결혼식 때문에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한데다
막히는 주말 오후 공항까지 허둥지둥 리무진을 타고 달려
도착하자마자 비행기에 몸을 싣고,
숙소에 와서 늦은 식사를 하면서 긴장이 풀렸나 보다.
얼마쯤이나 잤을까?
퍼뜩 생각난 건 쟈쿠지다.
앗, 혹시 물이 넘치고 있으면 어쩌지??
나는 내 몸 위에 팔다리를 걸치고 자고 있는
이 거대한 댕댕이를 겨우 밀쳐내고
허둥지둥 1층으로 내려갔다.
천만다행으로 물은 절반 정도밖에 차지 않았다.
욕조가 워낙 대용량이기도 하고,
시계를 보니 11시가 아직 안되었다.
푹 잔 것 같은데 사실 시간은 많이 지나지 않은 것이다.
나는 부랴부랴 입욕제를 풀고
쟈쿠지에서 올라오는 향긋한 향을 맡으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온수에서 올라오는 수증기로 천창이 뿌옇게 습기가
차긴 했어도 쏟아질듯한 별들의 무리가 드문드문
보였다.
제주도의 밤바다라니.
좋다.
내 옆의 커다란 쟝도.
이제야 결혼을 했고 한 남자의 아내가 되었다는 것이
조금 실감이 났다.
사실 우리의 연애는 초반의 굴곡을 제외하면
큰 사건사고는 없다.
만약 내가 쟝의 나이와 속사정을 알고 돌아섰더라면,
그랬더라면 지금 이 자리엔 쟝 대신 다른 사람과
함께 왔으려나?
그때 쟝을 놓지 않은 23살의 나와 지금의 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없듯,
아직도 엇그제 일 같은데 벌써 나는 서른 살이 되었다.
감계무량이라고까지 하면 너무 거창하지만
어쨌든 7년 가까이 잘 지내온 우리 관계가 새삼
신기하고도 고마웠다.
내가 센티멘탈해져서 잠시 추억에 잠겨 있을 때
쟝이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쟝: 언제 일어났어?
나: 아... 깼어? 푹 자길래 조용히 내려왔는데.
쟝: 너 없으면 바로 깬다고.
나: 그동안 어떻게 사셨대요~?
쟝: 사는게 사는게 아니었대요~
나: 크크큭... 안피곤해?
쟝: 쟈쿠지에 몸 담그고 있으면 싸악 풀릴 거 같아.
와인 가져올께?
나: 아, 좋아.
쟝이 와인을 가져올 동안 나는 샤워를 먼저 하기로 했다.
신부 메이크업을 아직도 안지워서
세수는 아예 샤워하면서 해야겠다는 생각에
옷을 벗고 오일을 얼굴에 문질렀다.
한참을 문지르고 있는데 문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이내 쟝이 내 등 뒤로 다가오는 촉감도.
나: 으... 쟝... 속눈썹이 안떨어져...
쟝: 나 봐봐.
내가 쟝을 향해 돌아서자 쟝이 박장대소를 한다.
나: 왜왜?
쟝: 으흐흐흐흐흐흐흐흐... 아... 잠깐만 ㅋㅋㅋㅋ
나: 나 아프다고, 앞도 안보여...
쟝이 웃음을 참다못해 끅끅거리다가 기침을 하더니
조심조심 눈썹을 떼어주었다.
겨우 눈썹을 떼고 거울을 본 나는 쟝이 그렇게 웃어댄
이유를 그제야 알 수 있었다.
마스카라가 번져 눈두덩이는 팬더곰 같고,
그마저도 흘러내려 피에로가 따로 없다.
게다가 입술도 다 지워지지 않았다.
그 얼굴을 보고 웃음을 참기란 어려웠으리라... ㅠㅠ
나는 쟝을 흘겨보며 마저 클린징을 마쳤다.
쟝은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다가
내가 화장을 겨우 다 지우자 낄낄거리며
내 몸에 온수를 뿌려준다.
화장 땜에 씨름을 하느라 잠시 잊고 있었는데
진짜 춥다.
온수가 뿌려지자 소름이 돋으며
그제야 추위가 실감이 난다.
쟈쿠지에 들어가기 전 쟝이 몸에 비누칠을 꼼꼼히
해주었다.
쟝의 손길이 닿는 곳곳이 부끄럽다.
나: 이제 내가 할게...^^;
쟝이 샤워기를 나에게 넘겨줄 줄 알았는데
물을 잠구더니
갑자기 나를 번쩍 안아들었다.
❤ 이미지는 https://mobile.twitter.com/kakiba518/status/1375452480905961477/photo/1
❤ 다음 화는 꾸금이지만 다들 바빠 보여서...
다음주에 올려야 하나 고민중... 많댓부 많관부
❤ 어제 안올려서 기다린 병사가 있다면 미안...
관심먹고 사는 쓰니 어제 힘빠져서 쉬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