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화내주시고, 엄청 차갑고도, 따뜻한 글들 써주신 분들 덕분에
제가 현재 겪는 일이 부당하다는 걸, 화나는 게 당연하다는 걸
공감받고 힘을 얻었습니다.
주작이라고 욕하고 조롱하신 분들도 많은데,
그만큼 믿기 힘든 인생을 살아왔고, 잘 극복한거구나 라고 생각할게요.
마침 엄마가 어제 전화하셔서 또 다시 이사, 투자 얘기 하시길래 싫다고 실랑이 하다가
저한테 "근시안적이다" "돈 좀 번다고 교만하다" "꼼짝도 못하게 할거면 자산 분리하자"
하고 화내시더라고요. 그래서 담담하게 '그러자' 라고 했습니다.
사실상 거의 다 제 돈이지만, 수익금 어떻게 분리할지 계산하고, 정리하기로 했습니다.
이제 더이상 '우리돈' 이런 건 없을거고요, 제 명의로 투자강박에 휘둘리는 일도 없을겁니다.
아래 글에 등장하는 인간승리 오빠랑, 동생이랑 셋이 카톡으로 회의중입니다.
오빠는 이글 쓴거 모르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명해줬더니 상황인식 똑바로 하고 있더라고요.
엄마가 어떻게 삶에 다른 목표를 찾으실 수 있을지 전략을 짜서 같이 설득해 보기로 했습니다.
워낙 강하고, 고집세신 엄마니까 삼남매가 같이 대응하기로 했습니다.
언젠가는 해야 했던 정리였는데, 다양한 분들의 시각으로 더 객관화 되어서 가능했습니다.
그리고 왠만한 '주작이지?' 악플러에 대응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런 환경에서 태어나 그꼴이지' 스타일 악플이 반복되는 건
화가나서 동생이랑 같이 몇몇 댓글로 싸움도 했네요~
글 내리라는 분들도 많았는데, 제 삶의 기록으로 그냥 두려고 합니다.
(원글 행간만 제가 나중에 보기 편하게 한번 정리 했어요.)
관심주시고, 조언주신 모든 분들께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아래부터 원문입니다.
****** 긴글주의 ******
사는게 너무 답답해서 인생을 간추려서 적어봤어요.
더이상 이렇게 살수 음슴으로 음슴체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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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우리집은 그럭저럭 행복하고 괜찮은 편이었어.
아빠는 미술학원을 운영하셨고, 엄마는 가정주부. 오빠, 나, 여동생 이렇게 3남매.
화가인 아빠는 그림뿐만 아니라 손재주도 아주 뛰어나셨어. 운동도 잘하시고, 기타도 잘 치시고...
전업주부셨던 엄마는 냉미녀로, 삶에서 높은 이상을 추구하시는 성향을 가졌어. 좀 엄격하신편.
어린 내 눈엔 부모님은 다 특별하셨고, 우리집이 자랑스러웠어. 겉보기엔 그림 같은 가족이었지.
두분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셔서 어렸을 때 부터 가족 모두 열심히 성당에 다녔어.
그러다 초4학년때쯤, 아빠가 어디선가 구해온 종교강의 테이프를 듣고 이단종교에 빠지셨어.
아빠는 운영중이시던 학원을 접고, 전재산을 기부하며 가족과 함께 종교단체에 귀의하려고 했어.
초등 의무교육조차 부정하는 종교라 엄마가 완강히 버티셨어, 학교 안 보내는 건 말이 안된다고.
아빠가 새벽에 우리 잘때 막 데려가려고 봉고차에 억지로 태우시고 그랬었어.
엄마가 소리지르고 난리치시고…아파트 단지사람들 나와서 다 구경하고.
곧 두분은 이혼하시고, 오빠는 아빠가 종교단체로 데려가고, 엄마랑 나, 여동생이 서울에 남았어.
초등학교 5학년때 갑자기 멀쩡했던 우리집은 풍비박산 난거지, 그것도 정말 돈 한푼없이.
나중에 들었는데 외할머니가 애들 고아원 안보내고 어쩔거냐고 혀를 끌끌 차셨다고.
(딱히 도움은 안주셨음)
삼촌들이 5백만원씩 도와주셔서 월세방을 얻고, 엄마는 생전 처음 돈벌이를 시작하셨어.
처음엔 호떡장사, 겨울에 추워서 입이 돌아가기도 하고…몇달 그렇게 일하시다가 곧 그만두시고
그 다음엔 미싱공장의 시다, 하루 12시간 일하셨던 엄마 월급은 당시 40만원 정도였던것 같아.
40만원으로 3명이 생활하고 있었으니까 당연히 삶은 구질구질했어. 원래 내 꿈은 화가였지만,
중학교 1학년때 장래희망 조사서에 ‘돈 많이 버는 사람’ 이라고 썼어.
우리집이 너무 말도 안되게 가난했고, 엄마가 너무 고생하시는것도 느껴졌고.
다행히 내가 성격 하나는 밝아서, 우리집이 망했든 어쨌든 그래도 명랑한 학창생활을 했어.
성적도 상위권에, 좋은 친구도 많았고,
그림그리는걸 좋아했는데 스스로 재능이 있는 것도 알아서 자신감이 넘쳤어.
어쨌든 중3이 되니 엄마가 상고를 가라고 하시더라고. 빨리 벌어서 보탬이 되었으면 했나봐.
근데 난 그러기엔 성적이 너무 좋았어. 나 꼭 인문계 가고싶다고 우겼고 결국 그렇게 했지.
그때쯤 어느날, 오빠가 갑자기 집으로 돌아왔어. 아빠랑 울진 산속의 종교단체시설에 있었는데
엄격한 규율을 어기고, 안식일에 몰래 라면을 끓여먹었다나? 그런 이유로 바로 강제추방.
산속서 멧돼지에 쫓겨서 다친거라고 허벅지가 패이고, 팔 골절이 방치되어 어긋나 붙어 있었어.
그 종교단체는 의료지원, 치료 하나도 안해주고 뭐든 다 기도로 낫게한다고 하거든.
암튼 병원 보낼 돈은 없어서 접골원에서 몇 만원 주고 뼈 맞추는 치료를 해 주고,
초등졸업 상태인 오빠를 검정고시 학원에 보냈어. 엄마는 학원비 감당을 위해 식당일로 이직.
엄마는 평생 3남매 생계를 위해 이런저런 직업을 전전하셨어.
분식집을 차렸다가 망하기도 하고, 또다른 식당에 취업하시기도 하고, 치킨호프 차렸다 망하고...
주방일이 너무 고되어서 엄마 손가락에 류마티스관절염이 왔어.
뼈마디가 부풀고 손이 안움직이시고…당시 우리집은 돈을 못 내서 의료보험도 없었어.
엄마는 손가락 마디가 이상하게 뒤틀리고 있어도, 병원엔 못가고,
진통제랑 커피믹스로 버티면서 매일 식당에 나가 일하셨어.
내가 할수 있는것도 없고 괴로워하시는 엄마 손을 자주 주물러 드렸어.
엄마가 대학교 구내식당에서 일하시던 몇년 동안 폐기해야 할 남은 반찬을 몰래 싸오시곤 했어.
그걸로 우리가 밥을 먹고 생활비를 아꼈지.
그런데 폐기해야 하는 잔반이 아닌, 참기름 같은 식재료에 손대는 아줌마들이 있었나봐.
영양사가 그걸 알고 주방 아줌마들 전부 식당에서 무릎꿇으라고 했어.
엄마는 너무 자존심이 상해서 무릎 안꿇고 바로 그길로 관두셨어.
근데 관두셔봤자 엄마가 하실수 있는 일은 없었어. 결국은 다른 식당에서 일하시는 거지.
나랑 동생은, 그냥 그와중에도 꽤 모범생으로 학교를 다니고 있었어.
중학교 때까진 그래도 도와주신 주변 분들이 있어서
동생이랑 피아노도 배웠고, 학원에 잠깐 다니기도 했는데
고등학교 때부턴 그냥 교사용 문제집이랑 참고서 받아가면서 공부했고, 성적은 좋았어.
고등학교 시절 좀 힘들었던 건, 용돈이 정말 너무 적어서.
하루 용돈이 1000원이었는데 그걸로 식비, 차비 다 해야 했어. 왕복 차비 빼면 밥값이 안 남는데.
엄마한테 더 달라고 말할 형편 아닌건 당연히 알고있었으니까
3년내내 매일 점심을 500원짜리 매점 핫도그로 떼웠어.
오빠는 고3을 대충 보내더니 대학에 안가고 게임에 빠져들었어.
PC방에서 월급안받고 일해주면서 죽돌이가 되어 현실도피
새벽부터 밤까지 식당일하는 엄마, 오빠는 아예 집에 없고 나랑 동생만 있었는데
보호자가 없이 방치되다시피 하다보니 우울한 사건도 생겼어.
고2말에서 고3될 무렵 쯤 왠 아저씨가 접근해 왔어.
등하교길에, 본인이 EBS교사라며 학교까지 태워다주겠다고. 신분증까지 보여주면서.
순진하게 난 그걸 믿었고 그래서 뭐 결과적으론 준강간 같은걸 당했지.
정확하게는 삽입당하기 직전에 그 아저씨 차에서 탈출 했어.
무서웠어. 화도나고, 우울하고. 근데 진짜 아무한테도 말 안하고 혼자 참아 넘겼어.
엄마한테 말해봤자 혼만 날 것 같았어.
집이 풍비박산인 상황에서 엄마는 왠지 더 엄하신편이었어.
특히 성적인 것과 관련된 모든걸 극혐하고 나를 모욕하곤 하셨어.
아빠 없이 키운 자식이라고 얕잡아 보일까봐 그러신 건지,
아님 아빠 때문에 남성혐오 같는게 생기신 건지...
암튼 저런 얘기하면 나만 남자 질질 따라다니는 밸도없는년 __같은 년이라고 혼날 게 뻔했거든.
성인이 된 후 남자친구 사귄다고 했을때도 창녀같은년이라거나 더럽다고, 모욕을 많이 하셨지.
엄마는 더 이상 식당일은 못 하시겠다고 술집을 차리셨어. 양주 파는 조그만 가게.
엄마가 술을 팔기 위해 아저씨들 옆에 앉아서 같이 마시니까
새벽녘엔 취해서 토하고 힘들어 하시는 때가 많았어.
지금 생각해보니 엄마가 그런 술집을 해서 더 남성에 관해 혐오적으로 굴었다는 느낌도 드네.
아무튼 여러모로 방치된 고3시절을 보내고도 수능을 무사히 치뤘어.
사실 수능 엄청 잘 봐서 다 합쳐서 10개정도밖에 안틀렸어.
최소 연고대 가겠다 싶었는데 그해 하필 유명한 물수능이어서 최종 성적은 상위 5%정도.
빨리 취업하고 싶어서 교대 위주로 지원했는데 그 점수로 어림없이 떨어졌지.
그때까지는 공부만 잘하면 인생이 풀릴 줄 알았는데
거기서부턴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더라.
재수는 꿈도 못꾸고, 그냥 전문대 점수 커트라인 높은 순서로 봤더니
간호대, 철도대, K예대가 있더라고. 거기서도 제일 점수 높은 과 위주로 봤어.
미술쪽에 재능이 있으니까 적성에 맞을까 싶어서 예대,
막연히 취업 잘 될것같은 느낌에 디자인으로 골랐어.
담임선생님이랑, 친구 아버지까지 전화하셔서 너 아깝게 왜 전문대 가냐고 그러셨었지.
근데 선택권이 없으니까.
대학생활부턴 난 본격적으로 우울해졌어.
나는 수업끝나고 알바하고 과제하는것도 숨가쁜데 다들 술마시고 연애하고 잘들 놀더라고.
노는 분위기도 다르고, 실력적으로 존중할 친구도 없고,
무엇보다 나처럼 절박한 사람은 아무도 없는것 같았어.
어찌어찌 졸업은 했는데, IMF후 몇 해 지나지 않은 시점이라
취업이 너무 힘들었어. 닥치는대로 면접을 보러 다녔어.
기억나는덴 지하 골방에서 월급70에 십자수 도안 만드는 디자이너 뽑던거...
그리고 월급 30만원 6개월 인턴 하겠냐고 물어본 3명짜리 캐릭터디자인 회사...
난 월급 100만원 준다는 작은 현수막 실사출력집에 취직했어.
현수막, 전단, 명함 같은것을 디자인하고 출력하거나 인쇄보내는 곳인데
첫 월급 세금 떼고 통장에 꽂힌 돈 88만원. 그거 받고 버스타고 울면서 집에왔던 기억이나.
아 내 가치가 이거구나! 하고
오빠는 카드빚300과 요금 40만원 밀린 핸드폰을 방치한채 군대를 갔어.
그 돈은 엄마랑 내가 갚았어.
오빤 전역 후에도 집에 안들어오고 겜방에서 살다시피 하며 지냈고.
장남인데 사실...아무것도 한게 없었어.
동생은 수능을 보고, 아예 기숙사 있는 대학교로 가버렸어. 그때부턴 엄마랑 둘이 살았지.
그때쯤 엄마는 또 망해가던 술집을 접고, 버스운전기사가 되고싶어하셨어.
대형면허를 따고, 경력을 위해 마을버스 운전을 하시던 중에 운전 미숙으로 급정차를 하셨나봐.
버스안에서 넘어진 어떤 승객이 전신을 다 정밀검사 하고 난리를 치는 통에
엄마는 그 승객의 병원비를 잔뜩 물어주고 또 퇴사. 다시 실업자가 되셨지.
그때 우리는 3천만원 짜리 낡은 다세대주택 반지하에 전세로 살고있었는데
여름에 비만 오면 바닥에서 물이 차올랐어 그래서 세간이 온통 다 젖고 물 퍼낸 경험이 두세번.
그러던 중에 우리 집이 경매로 넘어갔다는 우편 통지서가 왔어.
집주인이 파산신청을 하고 집을 경매에 넘기고,
세입자들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가 집을 낙찰 받았대
갑자기 그 다세대주택가에 살고있던 29가구가 한번에 다 불법주거자신세가 된거야.
보증금 3천만원은 엄마가 몸 상해가며 모으신 우리 전재산이었어.
엄마는 무료변호인도 알아보고, 혼자서 이리저리 뛰면서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고 하셨어.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대응해보려는 집이 엄마 밖에 없었어서…
본보기로 먼저 우리집이 강제퇴거를 당했어.
엄마랑 둘이 새벽에 자고있는데
인부 십여명이 우르르 집에 들이닥쳐서 우리집 세간을 다 빼서 옮겨버리더라고.
우리 다 쫓아내고 문 잠궈버렸는데, 워낙 보안도 없고 허술한 반지하 집이었어서
인부들이 우리집 짐 다 빼고 사라진 후에, 슬쩍 돌아와서
창문따고 들어가서 그 텅빈집에서 그냥 살았어.
사실 갈곳도 없고 돈도 없어서 그렇게 살 수 밖에 없었지.
옆집할머니들이 이불이랑 밥통 빌려주시고…
주변에 티낼수도 없어서 목욕탕에서 씻고 출퇴근도 그냥 했어.
그래도 죽으란법은 없는지, 엄마가 신청해두신 임대아파트가 너무 운좋게 당첨이 되어서
빈집에서 한달반 정도 생활한 후에 작은 임대아파트로 이사갈 수 있었어.
당시 친구들 도움 받아서 집 대충 청소하고, 낡은 문을 칠하고,
이사 들어가던 날 너무 좋았었어.
엄마는 이후에도 베이비시터 등으로 일하시다가,
내 월급이 좀 커지면서 일을 관두셨고 이후부터 내가 번 돈으로 생활하게 되었어.
그 이후 10년은... 그 임대아파트에 살면서 정말 죽도록 일했어.
실력있다고, 일 잘한다고 입소문 내서 조금이라도 몸값을 올리고 싶었어.
디자인회사 다니니까 주말엔 당연히 밤샘하거나 회사에 살다시피 해야하는 업무환경이었지만
주말에도 알바거리가 생기면 무조건 했어.
단돈 얼마에도 편집디자인, 로고디자인, 일러스트레이션… 할수있는건 다.
그렇게 해서 회사는 조금씩 나은 곳으로 이직했고, 연봉도 점점 올랐어.
눈뜨고 있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일하고 돈벌기만 하니까
골반은 뒤틀리고, 위궤양이 생기고, 난소난종도 생기고...
몸은 아프고, 마음은 우울했지만 그래도 뿌듯함도 있었어.
돈을 버니까 말도안되게 쌓여있던 문제들이 해결되더라고.
엄마가 아프신데도 돈벌러 나가시지 않아도 되고, 병원도 갈 수 있게 되고…
수십년간의 경제적 결핍에서 온 생활의 구멍들을 하나씩 메우고
엉망인 환경을 내 손으로 개선할 수 있게 된 게 너무 좋았어.
남들 보기엔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 정말 짜릿하더라.
사대보험 되는 직장으로 옮겨서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래서 아플 때 집에서 그냥 참지 않고 병원에 갈 수 있게 되었을 때
티비를 샀을때, 냉장고를 샀을 때, 에어컨을 샀을 때…
치아가 제대로 없으신 엄마에게 틀니를 해드렸을 때, 나중에 틀니를 임플란트로 바꿔 드릴 때.
집에 가구들도 조금씩 들였어. 강제퇴거 이후 가구도 다 부서지고 제대로 없어서
버린 가구를 주워와서 쓰거나, 싸구려 공간박스를 쓰고 있었거든.
하나씩 ‘사람답게 산다’ 는 느낌이 되어갈 때마다 너무 좋았어.
난 가난하게 사는 것에 완전히 익숙해 진 상태로 성인이 되었어.
중고등학교때부터 겨울에도 스타킹없이 교복입는게 당연했고,
3년동안 구두 한켤레, 뜯어지면 꼬매고 고쳐가면서 신고.
쓰레기장에서 버려져있던 초등학교용 나무책상 주워서 공부하고 있었고.
길다가 뭐 먹고싶은거 못사먹고 빤히 쳐다보다 올 때가 많았어.
5백원짜리 와플이 비싸서 못사먹었던 얘기 해줬더니 남편이 울더라.
샴푸 대신 빨래비누로 머리를 감고,
로션이 떨어져서 얼굴에 식용유를 바르고 다니기도 했어
돈을 벌게 되고부터는 그래도 제일 싼 로드샵 제품이라도 썼지.
아폴로 눈병 걸렸을 때 병원 못가고 집에서 걍 나을때까지 누워있을 수밖에 없었고,
집에 가스 끊겨서 11월까지 찬물로 씻었던 적도 있고,
집에 워낙 기본적인 것도 없으니, 친구들이 생일선물 물어보면 냄비나 빨래건조대 받고…
사회에 나와서, 점점 주변 사람들은
보통은 나보다 훨씬 나은 환경에서 살아왔다는 걸 알게됐어.
우리집이 얼마나 형편없이 가난했던 건지 그때서야 제대로 체감하고,
뭔가 되게 멍~ 했어. 사실 지금도 가끔 멍해져.
주변엔 대체로 부모님이 계시고, 아파트에 살았고,
나처럼 어려서부터 절박하게 돈걱정하면서 살아온 사람이 없더라.
친구들이 하는 연애얘기, 맛집이 맛이 없었던 얘기,
부모님과의 소소한 갈등, 앞날에 대한 고민, 회사에서의 무기력감…
이런 또래다운 고민얘기들을 들을때 나는 많이 멍해지곤했어.
어려서부터 워낙 험난하게 살아와서 그런지 내 입장에선 너무 아무것도 아닌 것들인거라.
‘이게 뭐가 문제라는거지?’ ‘뭐가 힘든거지?’ 이런 생각이 들고
공감이 안돼서 멍한표정을 짓고 있을 때가 많았어.
특히 사람을 좋아한다는 감정 같은게 뭔지도 잘 모르겠더라고.
그게 뭔가 부끄럽고 추접스러운? 숨겨야 할 감정으로 느껴지는 부분이 있어.
내 머릿속엔 엄마가 어려서부터 반복적으로 계속 해주신 말씀이 너무 박혀있었어.
‘세상 그 누구도 널 책임져 주지 않는다’, ‘남자는 무책임하고 쓸모가 없다, 제 자식 조차도 버린다’
‘사랑? 그런건 없다. 짐승 짝짓기 본능인거지,
연애할 때나 외투 벗어서 어깨 덮어주고 쇼하지, 평생 보살펴 줄 것 같냐’
‘니가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도, 그 사람이 갑자기 사고라든가 무슨 일로 널 떠날수 있다.
그러니까 경제적으로든 심리적으로든 늘 너 혼자 설 수 있도록 대비해야 한다’
‘니 감정, 예민함 이런 것들은 사는데 하등 도움이 안돼. 너 자신만 힘들게 할 뿐.’
‘돈이 생명이다’
뭐 이런류…
불행과 무감동, 내감정 무시하기, 인간혐오 같은게
머릿속에 프로그래밍 되어있다고 해야하나.
사실 내 인생은 나 스스로 구해낸 것도 있지만, 상당부분은 남편을 만나서 구원 받았어.
남편 역시 문제가 많은 가정에서 상처받고 자랐지만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이야.
나에게 ‘너는 더 너 자신을 사랑해야해’ 라고 말해줬어.
뭐든 다 괜찮다고 해주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줬어.
가난에 찌들고, 엄마가 주입한 사상으로 움추려 있던 나도
남편이랑 오래 만나면서 조금씩 다시 밝아졌어.
20대중반부터 결혼전까지는 엄마가 ‘가정을 일으켜야 한다’고 하셔서 월급은 엄마에게 맡겼어.
결혼전까지 절박하게 돈을 모은 결과, 내 명의로 소형 아파트를 전세끼고 샀어.
그래서 결혼할 때도, 나 결혼하게 그 아파트 팔아서 내돈 달라는 말을 못하겠더라.
사실 이런 두명뿐인 가족이다 보니 내가 결혼한다고 했을때 엄마가 싫은 티 많이 내셨어
결국 엄마 모르게 알바비 2년정도 모아서 그돈으로 빠듯하게 결혼했어.
어쨌든 그렇게 쭉 미친듯이 발버둥치며 20대 30대 다 보내고 현재…
나는 대기업 계열 광고대행사 부장이 되었어. 연봉은 8천 정도.
거기다 퇴근후, 주말 등 시간만 나면 이런저런 알바로 연 3~4천정도 벌어.
연 1억이상 벌게 된지 몇년 됐어. 알바비로 대학원도 수료해서 학벌 컴플렉스도 탈출했어.
동생은 스웨덴의 큰 선박 엔지니어링 회사로 취업해서, 스웨덴으로 이민갔어. 거기서 집도 샀고.
그래도 책임감있게, 이민가서도 계속 엄마 생활비를 일부 보태고 있어
남편은 고맙게도 동수저 집안 정도 돼, 남편도 가족은 시어머님 한분이나 다름없어.
시어머님이 수입이 있으신 건 아닌데, 연립 한채 가지신 건물주셔서. 우리도 그 건물에 살고.
결혼 이후 쭉 친정엄마랑 시어머니께 생활비 각 월 80만원+a 씩 드리며 부양하고 있어.
우리 이제 꽤 잘살게 됐거든.
집쫓겨난 후 십여년만에 가난 거의 다 극복한거지.
진짜 믿기 힘들 정도의 해피엔딩이잖아.
근데 난 그걸 몰랐어.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고 자라면, 스스로 어느정도 극복하더라도 절대 끝이 안난다는거.
대비 안된 부모의 노후까지,
엉망으로 상처받은 부모의 몸과 마음까지 계속 짊어져야 한다는거.
현재 엄마는 내 명의 아파트에 혼자 사셔. 역세권 소형평수에 깔끔하고 빛 잘드는 아파트.
난 매주 주말 엄마 찾아가서 손발 주물러드리고 대화도 나누고, 건강도 체크하고 그래.
당뇨 치료를 제대로 안한채로 너무 오래 사셔서 건강이 좋지는 않으셔.
엄마는 나 결혼전에 샀던 그 작은 아파트를 시작으로 부동산 갭투자에 올인하시기 시작했어.
워낙 가진돈이 적으니까, 부동산 사고팔면서 큰돈 버는건 아니고 천이하로 조금씩 남는 수준.
아파트 계속 옮겨타면서 아주 조금씩이라도 돈을 굴리는게
엄마 삶의 희망의 전부라 멈추게 할수가 없더라고.
그런거라도 안하시면 삶의 의미를 다 잃으시고 죽음을 자꾸 얘기하시고 하니까.
근데 이 투자의 가장 큰 문제는 계속 내 명의, 내 돈으로 투자를 하신다는 거지.
사실 엄마가 평생 무주택자였던 덕에, 몇년 전에 25평 신축 SH아파트가 당첨되셨는데
오빠네 가족 살라고 양보 하셨어. 오빠네는 애가 셋이라 모은 돈도 집도 없어서.
덕분에 나는 명의가 엉망진창으로 얽혀서 남편이랑 따로 사는걸로 전입신고 되어있고…
아, 우리 부부는 아이는 안 갖기로 했어. 둘다 워낙 힘든환경에서 살아왔고
양가 홀어머니 케어 해야 하니까, 우리 아이까지 낳아 기를 여유가 없으니까 진작에 협의했지
그와중에 화나는건,
이제 나랑 동생은 왠만히 안정되어서 엄마 더 편히사시라고 돈을 더 드리거나 하면
그걸 자꾸 모아서 오빠네 빚을 갚아주려고 하셔. 오빠가 애도 많고 사는게 쉽지 않다고.
오빠가 엄청 못사는 건 아냐. 개발자인데 직장에 부업까지 해서 월 6백정도. 나 못지않게 잘 벌어.
단지 오빠도 밑천한푼 없이 결혼했고, 외벌이에 자식 셋이니 모은돈 없이 늘 허덕이는 거지.
엄마는 욕심이 커져서, 갭투자로 자산 늘려서 아들도 조금이라도 유산 남겨주고 싶다고
깔고앉은 그 아파트를 자꾸 옮겨타기 하시려고 해.
나 결혼후 8년동안 엄마가 이사만 5번 하셨어. 아무리 화내고 싫다고 해도 자꾸 그러셔.
엄마 스스로는 이사하느라 자신이 고생이라고 생각하시고,
그 고생을 통해 ‘우리 자산’ 을 늘리고 있다고 생각하시지만
집 옮겨탈때마다 대출금 알아보는것부터 이사비 조달하는것까지 다 내가해. 당연한듯이.
아, 아파트 갈아타면서 갭투자에 들어가는 돈은 내 알바비 + 대출이야.
엄마 당뇨 합병증이 이래저래 있으셔. 지난 겨울엔 거의 실명 위기까지 오셨었어.
그런 상태이신데도 자꾸 ‘죽기 전 마지막 기회’라며 좀더 오를듯한 아파트로 이사를 하려고 하셔.
맨날 유튜브로 부동산 정보 보고 계시고,
생활비 드리면 싸구려 식재료 사시고, 본인 약값도 아끼려고 해. 아직도 몇천원에 벌벌 떠셔.
그러면서 어제 통화로 ‘2년동안 2억만 더 모아서 이사 한번만 더하자’ 고 하셨어.
호재 많은 동네에, 오를 것 같은 재건축예정 아파트가 있다고.
2년동안 2억을 나보고 더 빡시게 벌라는 거잖아.
엄마는 더 빡시게 절약하면서 사시겠다는거고. 진심 돌아버리겠어.
‘우리돈’ 이라고 하는데 나혼자 벌고 있던 게 15년 넘었다고….
“엄마가 이사 계속해서, 나중에 죽고 오빠 줄 유산 마련하려고 하는 건
진짜 나한테 할 짓이 아니지” 라고 몇번 말 했지만
“누가 니 돈 떼먹는데? 너한테도 섭섭치 않게 줄거라니깐?”
“너 아니면 누구한테 이런얘기를 하냐” 며 적반하장으로 울먹울먹 난리셔.
엄마가 어렸을때부터 워낙 엄하게 강압적으로 키우시기도 했고,
엄마가 얼마나 고생하면서 나를 키워주셨는지 다 알기 때문에
왠만한 상황에서는 엄마의 의견을 따르고 존중하고, 져드리려고 하며 살아왔어.
절대 싫다고 이사 좀 그만하라고 난리치고 소리지른적도 있어.
근데도 또 잊을만 하면 그러신다.
엄마가 왜 저러시는진 알아.
자식한테 해준거 없다는 마음, 평생 가난에서 벗어나려던 습관,
몸쓰는 일하다가 불로소득을 맛봐서 희망을 본 기분,
그래서 자식들 공평하게 잘 살게끔 조금이라도 더 벌어놓고 싶으신 기분...
근데 나는 엄마와 혼연일체가 아닌데…
나는 엄마의 보호자이지만, 오빠의 보호자가 아닌데…
너무 화가 나고 미칠것 같아.
나는 올해 40살이 됐어. 쉼없이 일하고 돈번지는 19년째야
너무 지쳤어. 이 모든건 다 언제 끝나는 거지?
평생을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만 발버둥쳤는데, 왜 끝이 안 나는 거지?
이렇게 집을 일으켜세우고, 엄마를 부양할수 있게 된 내가 스스로 대견스럽고,
엄마께도 계속 잘 해드리고 싶어. 이것도 내 진심이지.
하지만 엄마가 아들까지 잘살게 하겠다고 본인 능력밖의 욕심부리는것도 화나고,
내가 계속 군말없이 돈에 대해 편하게 해드렸더니 나만 ATM처럼 여기셔서 분해.
남편한테도 너무 미안해. 결혼 후에 몇 번이나 묵묵히 장모님 이사를 계속 돕고,
내가 엄마때문에 힘들어 할때마다 위로해 주고…사실 장모님이 꽤 밉겠지.
와이프를 금전적, 정신적으로 착취하고 있는걸로 보여질테니.
이렇게나 나를 사랑해주고 이해해주는 남편 만났는데도,
내가 계속 주기적으로 우울하고 낙심하는 모습 보이는게 미안해.
마흔 살이 되어서 ‘돈 버는것’ 이외의 삶의 목표를 새로 잡는 것도 너무 어려워.
취미활동도 다양하게 하고있어. 기타도 치고, 식물도 기르고, 마라톤도 해보고…
모르는 사람들이 나를 보면…일도 즐겁게 하고, 삶도 즐겁게 잘 누리고
주변에서 젤 잘 사는 것 같다고 부러워 하기도 해.
그런데 내 속은 너무 공허하고 끝없이 초조해.
잠깐 내 자유시간이 생기면 평소 관심있었던 걸 좀 해보지만
결국 내 일상 대부분은 일하고 돈벌기야.
지금도 엄마가 아프시고 혼자 계시니까 거의 매일 엄마랑 통화해. 근데
잊을만 하면 또 오를것같은 부동산 얘기, 이사할 얘기야.
“인제 진짜 돈에 쫓기면서, 이런식으로 그만 살고 싶다”고 엄마한테도 몇번이나 호소해도
나이들으셔서 그런지 되게 안바뀌시더라. 본인욕심 위주셔.
"좀만 더 바싹 벌어서, 한번만 더 이사하고싶다. 내삶의 마지막 소원"
이딴소리하면서 계속 죄책감으로 나를 조종하려고 하시지.
안그래도 돈에 쫓기며 평생을 살았는데, 엄마가 계속 이러시니까,
아무리 내가 맘 좀 다독이며 살아보려고 해도 매일 하는 이런 통화들이
나를 너무 힘들게 하고, 계속 초조감으로 밀어넣어.
엄마는 친구도 없고, 오빠랑 동생은 엄마한테 연락을 잘 안하니까
엄마가 세상에서 대화하는 유일한 사람이 나인거야.
어느새 나는 엄마의 남편이자, 딸이자, 감정 쓰레기통이자 경제적 기둥이 된거지.
사실 엄마는 내 감정을 알아준 적이 한번도 없어.
외롭고, 두렵고, 억울하고, 인정받고 싶고, 칭찬받고 싶을때도 난 그냥 이렇게 있었지.
엄마 감정도 누구에게도 인정받아 본 적이 없이 자라셨을 테니 모르시는게 당연한 건가?
원래 사는 게 이런 걸까?
사실 나는 집은 망했어도, 재능이나 지능을 비교적 괜찮게 타고난 편이고
남편까지 좋은 사람 만났으니 진짜 운좋게 잘 풀린 케이스 인거잖아
우리엄마도 엄청 책임감있게, 우리 삼남매를 먹여살리느라 인생 다 갈아넣으셨으니
그점은 너무 감사하지. 같이 너무 오래 고생한 터라 엄마에게 일종의 전우애까지 있어.
그래서 막 엄마를 미워하고 싶지는 않은데...
근데 평범하게, 부모로부터 어느정도의 지원과 보호를 받을수있고,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에 쫓기지 않을 수 있는
그런 삶을 살아보는 건 어떤 기분일까 궁금해
다른집에 다시 태어나보지 않는 한 나는 죽을때까지 모르겠지.
이게 얼마나 쓸모없는 생각인지 잘 알면서도, 자꾸 그런 생각이 들어.
엄마는 계속 저렇게 돈돈거리며 부동산 욕심 내시다가, 결국 병나고 아프고 돌아가시겠지.
나는 엄마 돌아가실 때까지 케어하실 예정이긴 한데, 계속 엄마 돈돈거리는 소리나 들어야겠지.
엄마가 그놈의 아들에게 유산 줄 욕심만 안 내시고,
본인 건강 챙기면서 행복하게 지내실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 모든 정신병적인 상황이 가난에서 온 굴레이고
엄마 돌아가실 때까지 끝나지 않을 것 같다는 사실이 나를 너무나 무기력하게 만들어.
이 모든게 언제 다 끝날지 궁금해.
죽고싶다는 얘기는 아니고…난 현재 내 삶이 좋으니까.
다른 식의 삶을 살고싶어. 이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어.
근데 그냥, 언제쯤 마음을 놓을 수 있을까, 언제쯤 쉴수있을까, 엄마는 언제까지 저러실까.
끝이 안보여
망한집, 가난한집의 K-장녀 인생.
다 이겨낸 것 같지만 절대 끝나지 않는 이 가난한 기분.
욕은 왠만하면 안쓰고 싶은데
요샌 사는게 다 ㅈ같고 너무 현타온다.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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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추가합니다
어제 엄마때문에 너무 화가나고 답답해서 쓴 글인데, 생각보다 많은 관심이 모여서 놀랬어요.
굳이 이 긴글 다 읽고 신경써서 적어주신 진심어린 위로와 답답함에 나오는 모진말들,
감사합니다. 댓글들이 의외로 마음 정리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어요.
같이 욕하면서 오는 후련함, 내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겠다 라는 생각 등...
사실 어제 글 올리자마자 동생한테 보여줬거든요. '내 인생 너무빡쳐서 요약했다' 이러면서
우리한텐 이렇게 살아온게 그냥 삶이었는데...남들 보기엔 엄청 허언증 같구나 싶어요.
주작이다 아니다...좀 재미있기도 해서 몇가지 팩트체크 해드립니다.
** 엄마 첫월급 40만원 :
미싱기술이 없으셔서 시다(실밥떼기, 단추달기) 로 시작하셔서 40만원이었습니다.
재봉틀 배우면 70~80까지도 벌 수 있어서 곁눈질로 열심히 배우려고 하셨었어요.
** IMF이후라 수능 잘보고도 전문대 간 것 :
00년 물수능 유명했습니다. 만점자 60명 넘게 나와서 진짜 대혼란이었어요.
382점 맞았는데, 상위 5.8% 였습니다. 당시는 등급제 도입되기 전이었고
IMF터지고 몇년 지나지 않은 때라 취업난이 계속되고 있었어요. 그래서 교대 경쟁률이
갑자기 기존 예상치보다 훨씬 치솟아서 떨어졌습니다. (인천교대/한국교원대)
가~라 군 중에서 가,나 밖에 못냈습니다. 인지대가 한군데당 6만원이어서 너무 비싸서요.
그리고 웃긴 얘기지만 당시에는 '전문대 나와도 실력으로 인정받는 세상'
이런식으로 매스컴에서 전문대 많이 띄우고 있었습니다. 잘 몰랐으니까,
그냥 실력으로 인정받아보자 하고 간거였죠. 주변 조언도 못받고 그땐 넘 어리석어서 ;;
** 전문대 나왔는데 대기업 부장? :
K예대(비실기전형100%, 실기없음) -> 방통대(회사다니면서 다님) -> H대학원(최근졸업)
회사는 처음부터 좋은회사 다녔던 건 아니고
현수막집 > 편집디자인회사 > 작은 광고부띠끄 > 디지털광고대행사 > 종합광고대행사
이렇게 이직했습니다. 워낙 업계 문이 좁고 입소문이 있어야 입사되는 바닥이다보니
제가 노력하기도 했지만, 운도 엄청 좋았던 편이었어요.
대기업 인하우스 광고대행사는 국내에 그렇게 많진 않습니다. 그중 한곳이라고 보심 됩니다.
** PC방 죽돌이 오빠가 월수입 600? :
오빠가 고등학교-제대이후까지 주로 게임하며 한심하게 지냈던 건 사실입니다.
근데 머리가 되게 좋고, 검정고시로 들어간 고등학교에선 금방 전산부 부장도 했어요
이후 사이버대학 나왔고요, 작은 회사 개발자 되어서 박봉에 시달리며 개고생했고
집에 월급 못가져다주면서 일하고..그런 시간도 길었습니다. 지금은 과장급 개발자고
월급은 저랑 비슷하고(400넘는듯) 밤이랑 주말 쪼개서 프리로 일 받아서 더 합니다.
오빠도 진짜 빡시게 벌고있긴 해요. 애들이 셋이나 되다보니
저한테 월최소 6백 벌어야 집 생활이 된다고 했어요. 인간승리 맞습니다.
** 스타킹 없음, 얼굴에 식용유? :
겨울 맨다리 등교는 매일그런건 아니고 스타킹 자꾸 나가는데 살돈 없어서 그랬어요.
교칙상 검은스타킹+검은양말 / 살색스타킹+흰양말 이면 문제 없어서 걸릴일은 없었고
로션없어서 얼굴에 식용유 바른건...너무 황당하시겠지만 진짜입니다
엄마가 가난한데도 되게 안 비참한척? 당당하게 말씀을 잘하셨거든요.
'먹어도 될정도로 인체에 무해한 건데, 오히려 화학성분 많이 있는 로션같은거보다 낫다' 막
이런식으로 당당하게...그래서 고2~고3때쯤 너무 건조할때 종종 발랐습니다.
덕분에 엄청 여드름피부였어요. 화장품 제대로 된거 쓰니까 나중엔 금방 낫더라구요.
** 남편이 불쌍하다. 있기는하냐? :
남편은 대학동기입니다. 친구로 오래 지냈고 20대 중반부터 사귀기 시작했어요.
저 가난하다고 대학때도 친한사람은 다 알아서 ㅎㅎㅎ 망한집인거 알고도 만난거고
남편도 이 글 쓴것도 알고있어요. 아까 같이 차타고 가면서 댓글도 읽어주고 그랬어요
'너 나한테 진짜 더 잘해라' 막 그러면서 웃고 ㅎㅎㅎ
그리고 저희 진짜...행복하게 재미있게 잘 사는 중입니다.
남들처럼 같이 여행다니고, 놀고, 맛있는거 사먹고...잘 지냅니다.
남편의 돈을 빨아먹거나 그돈을 친정에 기부하고 있진 않아요.
그냥 어제는, 엄마가 오랜만에 또 이사얘기 꺼내셔서 너무 화가 치솟아서
비참한 기분에 쓴 글이라 부정적인 부분만 적어서 그렇습니다.
** 강제퇴거, 임대아파트, SH? :
집주인이 집을 경매로 내놓을 경우 강제퇴거 전에 사실 세입자에게 먼저 고지해야 하는게
법적으로 맞습니다. 근데 신문에 아주 작게 공고만 냈다고 해요. 세입자 중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리고 전세금 보호를 못받은 이유는, 저희가 살던 다가구주택이 '가건물' 로 등록되어 있어서
전세자금우선보호제도권 밖에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걸 알고 일부러 가난한 세입자들을
쫓아내려고 그런식으로 몰래 경매내놓고, 낙찰받고 한 것 같습니다. (낙찰자가 총6인이었음)
운좋게 들어간 임대아파트는 엄마가 집이 너무 불안불안해서 지원해놓으셨던거고
가족구성원 명의로 아파트 산게 발각되어 나중에 급히 이사해야 했습니다.
후에 엄마가 SH신축에 다시 당첨이 되셨을 때는, 이미 임대아파트에서 나와서
제 명의 아파트에 살고 계셔서 가능하셨습니다.
** 여초커뮤니티출신, 페미, 소설? :
저는 여초커뮤니티 안하고요, 네이트에도 12년만에 첫글입니다.
검색해보니 28살때 쓴 '남성혐오인 어머니께 2년넘게 몰래사귄 남자친구 소개하기..도와주세요'
라는 예전에 제가 쓴 글이 하나 있긴 있더라고요 ;;; (당시 남친 = 현 남편)
원래 화나면 일기장이나 쓰거나, 일하면서 잊거나 그래서
진짜로 화나서 이런곳에 분노의 인생 까발리는 글을 올려본 건 처음인 것 같습니다.
** 본인이 깔고앉은 집으로 하는게 갭투자? :
저도 이 부분이 가장 힘들어서 글쓴것 맞습니다. 초반엔 정말 전세끼고 아파트 사서
조금 오르면 팔고 하는 식의 갭투자였는데 (엄마는 월세집 거주)
나중엔 세입자가 집을 지저분하게 쓰거나, 부동산에 안보여주거나 해서
거래가 잘안되니까 엄마가 직접 들어가서 사시는 말도안되는 갭투자가 시작됐어요
그러니깐 갭투자 한번 할때마다 본인이 이사하시는 상황이 된거고
그것도 2년에 한번 하든가 해야 양도세가 줄어들텐데...
자꾸 맘이 급해져서 더 펄쩍 하시다보니 8년간 5번 이사하신 겁니다
중간에 엄마 거주 집 관련 다른 상황들도 있는데 얘기가 너무 길어서 생략합니다
** K-장녀 어그로? :
K-장녀라는 표현은, 아는 동생이 '언니 같은 사람이 진짜 K-장녀야' 해서 처음 알았고
한국식장녀라는 표현을 (엄마가 아들보다 딸에게 기대며, 정서적 지지자 역할까지 바라는 것)
구글링해서 찾아보고 이게 딱 나다 싶었어요. 맘에들어서 사용했습니다.
********************** 인증 추가합니다**********************
주작논란이 너무 심해서 그냥둘까 하다가,
모바일 급여명세, 아파트등기권리증, 대한민국광고대상 명찰, 알바비이체내역 인증합니다.
가난했던 사연이 주작이다 / 지금 잘살게된게 주작이다 크게 두가지로 나뉘는 것 같은데
일단 가난했던 사연을 다 증명할 순 없지만, 현재 저에 있어서 거짓이 없었던 점은 인증할게요
동생 스웨덴 관련 증빙은 댓글에 있습니다. (주작 조롱에 화가나서 댓글로 싸우고있더라고요 ;;;;)
솔직히 누가 이렇게까지 공들여서 이렇게 이상한 소설을 쓰겠나 싶기도 하네요.
********************** 인증 일부 삭제합니다 **********************
주작이라고 해서 인증했더니, 제가 누군지 찾아내고 싶어하는 몇몇 이상한 분들이
대한민국광고대상 수상자 아무 사진을 퍼나르고 있어서,
등기권리증 제외한 일부 인증 사진은 삭제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