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바이의 사생활(34화) -
늦은 오후, 곯아떨어진 두 사람.
먼저 눈을 뜬 여주가 꿈뻑하고 눈을 비비며
본능적으로 리바이를 찾았다.
얼굴을 마주한 채 그가 코앞에서 고롱고롱 잘도 잔다.
흐트러진 앞머리 사이로 찌푸린 눈썹이 너무 귀엽다.
오밀조밀한 이목구비는 뭐 하나 부족함이 없이
참 잘도 생겼다.
눈 밑 약간의 그늘은 처연미까지 있다.
앙 다문 입술에 뽀뽀를 해주고 싶지만 깨겠지.
여주는 살그머니 일어나 옆방으로 갔다.
게스트 룸의 이불을 끌어다가 곯아떨어진 리바이의
몸 뒤에 살짝 덮어 주었다.
자신도 게스트룸 옷장 속의 샤워 가운을 걸쳐 입고
끈을 둘러 묶었다.
아랫층으로 내려와보니 벌써 저녁이다.
약간 한기를 느낀 그녀가 부르르 몸을 떨고는
불이 꺼진 난로에 다시 불씨를 돋운다.
그리고 주방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리바이가 깨기 전에 뭔가 먹을 거리를 만들어 두고
싶었는데 뭐가 어디에 있는질 몰라 잠시 허둥대다가,
창문 앞 식료품 보관상자 안의 베이컨과 감자를 찾았다.
감자껍질을 벗겨 삶고 베이컨을 잘게 다졌다.
삶은 감자를 으깨어 베이컨 기름에 함께 볶다가
뭉근한 스프를 졸이면서 다른 먹거리를 찾는데
윗층에서 인기척이 났다.
리바이가 깼나?
여주가 고개를 드는데 이윽고 계단을 쿵쾅거리며
뛰어내려온 리자이가 허둥지둥 주방으로 들어왔다.
아무 것도 입지 않은 채로 달려온 그가 여주를 보고는
달려들어서 여주를 꽉 움켜쥐며 포옹했다.
깜짝 놀란 여주가 국자를 내려놓고 리바이를 떼어내려
애쓰며 물었다.
"어? 왜, 왜요??"
"간 줄 알았잖냐..."
"어머! 욕실에 옷도 그대로 있는데요. 자고 간댔잖아요."
"그래도."
"2층에서 주방 소리 듣고 깬 거 아녜요?"
"꿈. 꿈을 꿨는데... 소중한 걸 잃어버리는 꿈...
다 떠나버리는 꿈..."
리바이의 눈에 눈물자국이 보였다.
세상에.
뭐야.
이 남자, 꿈꿨다고 미친 듯이 나를 찾아 내려왔어?
조금만 둘러보면
2층 욕실에 내 옷도 그대로 있고
1층에선 음식냄새에 요리하는 소리가 나니
당연히 1층에 내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옷을 입고 슬렁슬렁 내려올 것을,
내가 안보인다고 바로 벌거벗은 채로 달려왔단 말이야?
이 남자가?
군 간부에 산전주전 다 겪었다는 이 남자가?
사람들이 슬금슬금 피해다닐 정도로 용맹을 떨쳤던
이 까칠하고 차가운 이 남자가?
여주는 묘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사귀기 시작한지 이제 한 달이 채 안되는데
무서울 정도로 서로에게 중독되고 있는 것 같았다.
마음과 몸을 모두 섞으면 이렇게 되나?
라이너와 끝까지 함께 할 수 없었던 건
내가 몸을 허락하지 않아서였을까?
...... 아니야.
무슨 말도 안되는 바보같은 소릴 하고 있어.
지금 라이너가 왜 나와.
그 남자는 내 인생에 더 이상 아무런 상관도 없어.
여주는 리바이를 꼬옥 안았다.
"가긴 어딜 가요, 이런 멋진 남자를 두고.
걱정 마요, 리바이.
무슨 꿈을 꿨길래 이렇게 놀래가지고..."
여주가 리바이의 뺨에 쪽 하고 뽀뽀를 했다.
그제서야 약간 냉정을 찾은 리바이가 눈을 제대로 뜨고는
여주를 물끄러미 내려다 보았다.
여주가 포옥 하고 리바이의 품에 안기자
리바이의 손이 여주의 허리를 안았다.
한동안 두 사람은 서로의 존재를 확인이라도 하듯
그렇게 안고만 있었다.
여주의 배을 찔러대는 감촉이 있기 전까진 그랬다.
"리바이. 그만 찔러요..."
"이건 내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네가 있는데, 게다가 너도 그런 차림이잖냐...
나더러 어쩌라고..."
"으음... 얘(?)가 이렇게 튼튼한 걸 보니
우리 리바이 씨 잠 완전히 깼나보다."
"하아... 안되겠지, 역시?"
"뭐...가?"
"네가 여기 무사히 있는 걸 확인하고 나니까...
여기서 하고 싶어졌어. 해도 돼?"
여주의 의사를 물어보고는 있는데
허락도 떨어지기 전에 그의 손은 스르르 아래로 내려가
있다.
"네. '지금' 도 아니고 '여기' 도 아니에요."
"사실... 꼭 침대에서만 하라는 법은 없잖냐...?
넌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필요가 좀 있는 것 같다.
교사라면 편협한 자세를 버려야..."
"궤변 늘어놓지 말고 얼른 가서 옷 안입어요?"
"쳇..."
리바이가 뒷통수를 긁적이며 주방을 나서는 뒷모습을
보며 여주는 웃음을 참느라 애썼다.
리바이가 계단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몰래 훔쳐보며
그녀는 큭큭거리며 웃었다.
아니,
사귄지 얼마나 됐다고 틈만 나면 들이대지?
욕실에서 하질 않나,
책상에서 하질 않나,
아까는 복도에 사람들 지나가는 소리가 다 들리는데
아무리 문을 잠궜다고는 하나 집무실에서 해놓고
이제는 주방에서 하자니,
주방 어디??
설마 식탁??
미쳤어 미쳤어.
여주는 눌어붙기 시작한 스프를 나무주걱으로 휘저으며
붉어진 자신의 뺨에 손부채질을 했다.
잠시 후 헐렁헐렁한 셔츠 차림의 리바이가
털레털레 돌아온다.
아. 어떡해.
깔끔하고 반듯한 모습도 매력있지만
저런 무방비한 옷차림도 너무 좋아.
누가 36살 아저씨래.
"저도 다음엔 여기서 입을 옷을 하나 갖다놔야겠네요."
"그럴 필요 없어."
"왜요?"
"내가 사다놓을거야."
"엥? 내 사이즈도 모르면서."
"나보다 키는 작고 여기랑 여기는 큰 걸로 달라면 되지.
안그래?"
여주가 째려보는데 리바이가 여주를 밀치더니
소매를 걷어부쳤다.
"냄새 좋네. 나머진 내가 할테니까 비켜 봐."
"그럼 난 뭐해요?"
"니 가방 안에 수학책 있던데. 그거나 풀어."
"어..."
포르코의 수학책.
1장 채점을 마쳤으니
2장 진도범위를 먼저 살펴보고,
어려워보이는 부분에는 미리 첨삭을 달아놔야 하는 걸
지적하는 거다.
그걸 해놔야 포르코가 공부 핑계로 내게 오는 것을
막을 수 있으니까.
리바이는 여주가 포르코를 신경쓰는 게 영 마땅찮다.
하지만 여주를 무조건 구속할 수는 없다.
그러고 싶지도 않다.
여주가 스스로 결정내리길 원하지,
리바이의 눈치를 보며 원치도 않는 결정을 유도하면
당장은 편해 보일지 몰라도 나중엔 결국 곪을 거라는 걸
그는 안다.
생각 같아서는 과외고 뭐고 그 자식하고는
일절 엮이지 말라고 우기고 싶다.
당분간 제 집에서 출퇴근하라고 강요하고 싶다.
그렇지만 언제까지 그게 통할까?
게다가 여주는 직업 상 그 집 형제와 마주쳐야 하는
입장이고,
그 직업을 포기하는 순간 파라디 거주 여부도 불투명해
질 수 있다.
리바이가 여왕에게 직접 간청하거나 뭔가 편법을 써서
파라디 국적을 취득하게 힘을 써볼 순 있겠지만
자연스러운 방법도 아니고 나중에 있을 불똥 역시
무시할 수는 없다.
결론은, 정말 내키진 않아도, 지금으로선 여주를
존중하고 기다려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방어선은 일단 구축해 놨다.
그 사내녀석이랑 단 둘이 있지 말라고 경고를 했고
그녀도 그 경고에 따르려면
지금같은 공부는 리바이도 눈을 감아줘야 한다.
리바이는 기분이 좋아졌다 나빠졌다를 반복하는 자신이
못마땅한 듯 혀를 차며 요리를 했다.
여주도 안다.
리바이 성격에, 여기까지 봐 준 것도 큰 양보라는 걸.
자신을 성인으로 존중해 주고,
최대한 이해하려고 노력한 것임을 알고 있다.
뭐 언제까지고 포르코의 공부를 내가 봐줘야 하는 건
아니다.
여주도 약 1,2년 남짓 가볍게 시작한 호의였고
구스타프를 챙기는 마음으로 포르코를 보고 있어
죄책감은 없다.
다만 연인의 배려를 악용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적당한 시점에서 포르코의 공부는 멈춰야겠지.
여주는 힐끔힐끔 리바이를 훔쳐보며 문제집에 주석을
달기 시작했다.
"요리 잘 해요?"
"뭐 그럭저럭. 파라디는 요식업이 발달한 나라는 아냐.
식재료도 한정적이었으니까."
"군생활 오래 했으면 남이 해주는 밥만 먹었을텐데."
"간단한 거 몇 가지 정도는 한다. 넌?"
"음... 새우. ㅋㅋㅋ"
"다음에 네 집에서 해줘."
"그래요. 또 무슨 음식을 좋아해요?"
"홍차."
"는 식사가 아니잖아요."
"우유 넣은 홍차."
"말곤?"
"너."
"... 뭐야, 내가 음식인가..."
여주가 뾰로통한 얼굴로 중얼거리며 얼굴을 붉힌다.
사람 보고 음식이라니, 뭐야...
은근히 야리꾸리한 말 참 잘한다니까...?
여주는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척 문제를 풀지만
자꾸 리바이의 뒷모습에 눈이 간다.
투블럭 헤어가 약간은 불량스럽지만 그게 그의 매력이다.
하얀 피부와 대조되는 흑발은 뭔가 강인한 인상을
심어준다.
170cm이 될까 말까 하는 비교적 작은 키이지만
두상이 작고 다리가 길어 그런지 전체적으로 균형이
잘 잡혀 있는 호리호리한 몸매의 그와
식탁에서 사랑을 나누는 기분이 어떨지 상상해 본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남자에 대해, 남자의 몸에 대해
아무 것도 몰랐던 나인데,
리바이의 마음을 알게 되고
나도 모르는 나의 마음을 확인하게 되면서
급속도의 관계 진전이 있었다.
무서울 정도.
내가 저 남자와 이렇게 깊은 관계가 될 줄이야 누가
상상이나 했겠나.
무섭다.
저 남자가 너무 좋아서 무섭다.
혹시라도 또 헤어짐이 있을까 무섭고
내가 어디까지 저 남자에게 빠져들지 그 깊이를 가늠할
수조차 없어 더 무섭다.
무섭다고 하면서 나는 어느새 식탁에 누워 있는
나의 모습을 상상해 보고 있다.
속으로는 좋아 죽겠으면서
겉으로만 짐짓 부끄러운 표정을 하며.
한껏 그의 몸에, 그의 냄새에, 그의 목소리에,
그리고 잘생긴 그의 얼굴에 도취된 나를.
나도 모르게 얼굴을 붉히는데 어느 새 리바이가 내 옆에
와 있다.
"무슨 생각 하길래 내가 불러도 못듣고 혼자 실실
웃고만 있나?"
"아, 아무것도..."
"정말?"
리바이가 여주의 턱을 잡고 들어 올리고는
엷은 미소를 띈 채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계속 손가락을 놀린다.
여주의 엉덩이가 의자에서 엉거주춤 들린다.
아아. 어떡해.
내가 내 입으로 주방에서 어떻게 하냐고 핀잔을 줘 놓고
내 몸은 이미 이렇게 반응하고 있는걸.
여주가 입술을 깨물고 눈을 감는다.
그때, 리바이가 여주의 어깨를 짚고 있던 왼손의
손등으로 여주의 뺨을 쓸어내리며 씨익 웃는다.
"궤변이 고정관념을 이겼군."
❤ ㅍㅌ 원문의 ⅕가량을 삭제하여 ㄴㅇㅌ에 올림
❤ 문맥을 최대한 해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단어를
대체하거나 구체적인 묘사를 제외하였으나 이해가
잘 안되는 병사는 ㅍㅌ를 참조해 주길... (짐거무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