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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쩌둥
손자병법(孫子兵法)과 6.25 한국전쟁 오늘날 손자병법에 대한 관심은 동양에서보다 서양에서 더한 것 같다. 정보 산업계의 왕자 빌 게이츠는 자신의 경영원리를 손자병법에서 찾고 있다고 한다. 구미인(歐美人)이 손자병법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언제부터인가. 뜻밖에도 그것은 6.25 한국전쟁 때부터라고 한다. 도대체 그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6.25 한국전쟁 때이다.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북한군의 주력은 궤멸되고 미군은 파죽지세로 북진했다. 미군은 38선에 이르자 일단 멈추어 섰다. 중공이 미군의 북진을 경고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미군이 38선을 넘을 경우 중공군과의 한판 대결을 피할 수가 없었다. 미국 수뇌부는 중공군의 전력을 예상하여 보았다. 당시 중공군은 정규군이라고 할 수 없는 한심한 수준의 군대였다. 그들은 중일전쟁 때 현대화한 일본군의 정면대결 상대가 못되었다. 중공 홍군이 일본군을 괴롭혔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중국의 험한 산세에 의지한 덕택이었다. 한국에는 중국 홍군이 의지할 그런 산세가 없었다. 미국 수뇌부는, 중공군이 한국전에 참전할 경우 일거에 격퇴시켜 백두산 속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확신이 섰다.
이윽고 미군은 38선을 돌파하고 북진하여 압록강에 이르렀다. 과연 중공군은 압록강을 건너와 참전했다. 그리고 중공군의 화력은 예상했던 대로 보잘 것 없는 것이었다. 그들에게는 야포와 전차가 없었다. 야포와 전차가 없다면 군대라고 할 수 없고 굳이 군대라면 19세기 군대라고나 할까. 19세기 군대와 비행기까지 동원하는 20세기 군대의 대결이었다.
그런데 결과는 놀라운 것이었다. 20세기 군대가 19세기 군대에게 참패한 것이었다. 미군의 참패는 구미인들을 경악 속으로 몰아넣었다. 그들은 19세기에 진작 동양 문화에 감탄하고 관심을 가졌었다. 그러나 동양 문화에 대해서 진정으로 관심을 갖고 연구를 시작한 것은 6.25 한국전쟁 이후부터였다. 중공군의 승리는 바로 동양 정신문화 병법전술로 인한 것이라고 구미인들은 생각했다. 중공군의 승리가 손자병법 전술에 의한 것이라고 단정하여 손자병법 열풍이 구미(歐美)에서 일어나게 된 것이었다. 그 열풍은 역으로 동양으로 들어와 60년대부터는 한국과 일본에서도 손자병법 열풍이 일어나게 된다.
몇해전 21세기 최첨단 무기의 미군과 재래식 무기의 이라크군 간의 전투가 있었다. 무기의 수준은 그러했지만 구미인들은 현대무기의 군대가 재래식 무기의 군대에게 패배한 월남전과 아프가니스탄전의 경험을 갖고 있는지라 불안 속에 있었다. 이라크의 후세인이 손자병법을 사용하고 있다고 외신은 보도했다. 구미인이 아직도 6.25 한국전쟁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느끼게 만드는 보도였다.
그러나 6.25 한국전쟁 때 중공군이 사용한 전술은 손자병법 전술이 아니었다. 손자병법은 고품격의 책이다. 당시 중공 홍군 지휘부의 지적능력은 그런 책을 숙독하고 연구하여 응용할 수준이 못되었다. 모택동에게는 그럴 지적 능력이 있었지만 그의 전반생에는 손자병법을 숙독하고 연구할 겨를이 없었다. 모택동과 홍군 지휘부가 즐겨 읽은 책은 손자병법이 아니라 삼국지연의였다고 한다. 당시 중공 홍군의 전술은 손자병법 전술이 아니라 삼국지연의 병법 전술(그들이 사용한 전술을 ‘고대 무슨 책 전술’이라고 할 경우)이었다.
이야기를 더 거슬러 올라가보기로 하자. 명나라 말기에 만주족 군은 자신들보다 백배 더 큰 국력의 명나라 군을 격파하고 청나라를 세웠다. 당시 만주족 군의 지휘부가 즐겨 읽은 책은 삼국지연의로 그들의 전술은 삼국지연의 전술(그들이 사용한 전술을 ‘고대 무슨 책 전술’이라고 할 경우)이었다고 한다.
그럼 6.25 한국전쟁이 끝나고 구미인이 중공 홍군의 병법전술을 연구할 때 그 사실을 몰랐던 것일까.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도 맨 처음에는 삼국지연의를 보았을 것이다. 삼국지연의를 보고난 뒤의 감상은 어떠한 것이었을까. 그것은 한 마디로 ‘넌센스’였을 것이다. 그들은 삼국지연의를 던져버리고 다음으로 손자병법을 보았다. 손자병법을 보고 난 뒤의 감상은 어떠한 것이었을까. 한마디로 놀람과 감탄이었다. 중공 홍군의 전술은 손자병법 전술이라고 구미인은 자의(恣意)적으로 단정했다. 그리하여 손자병법 열풍이 구미에서 일어났고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역사는 종종 고품격의 책보다는 저품격의 책에 의해 더 큰 영향을 받으며, 그 사실이 왕왕 왜곡되기도 한다.
내용출처 : [기타] <박정희에서 고건까지(북갤러리 刊)>-<2부 CEO를 위한 삼국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