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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바이의 사생활(43화)>




- 리바이의 사생활 (43화) -














 "일어나요~!"

 "으음... 조금만..."

 "불면증이라더니 순 거짓말 아니에요? 
  나랑 있을 땐 늦잠꾸러긴데."



이 바보야. 너랑 자면 악몽도 안꾸고 푹 자니 그렇지.

리바이가 비몽사몽간에 헤매고 있는데

여주가 리바이의 귀에 대고 후 하고 입김을 뿜는다.

소름이 쫙 돋은 리바이가 목을 움츠리자 

여주가 깔깔거리며 웃었다.



 "우리 펠릭스 데리고 공원 가요. 도시락 싸서. 응?"

 "알았어. 10분만. 10분만 같이 누워 있자. 이리 와."

"안돼요."

 "그럼 5분. 나 어제 무리한 것 같다."

 "딱 5분 이에요."



이불을 들추고 여주가 리바이 옆에 눕기가 무섭게

리바이가 여주의 허리를 잡아당겼다.

둘은 침대에 마주보고 누워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한동안 아무 말 없이 가만히 누워 있었다.

이윽고 여주가 리바이의 콧날을 톡 두드리며 말했다.



 "무슨 생각헤요?"

 "글쎄."

 "말해봐요."

 "네 집에 고양이를 한 마리 풀어놓을까 생각했다."

 "네? 왠 고양ㅇ... 아."

 "앞으로 쥐든 벌레든 뭐가 나오면 넌 바로 그 녀석에게
   도움을 청할 거 아니야..."



리바이가 잠에 취해 잠긴 목소리로 중얼거리자,

미안해진 여주가 리바이의 앞머리를 만지작거린다.



 "리바이 씨, 아직 신경쓰고 있었구나, 그 일..."



사실 리바이는 생각 같아선 학교도 그만두게 하고 싶다.

학교 핑계로 그녀의 주변을 알짱거리는 그 녀석...

앞으로도 제2, 제3의 그 놈이 안나타나리라는 보장도

없지. 

학교도 그만두고 외국인아파트에서도 쫓겨나면

나한테 오지 않을까 생각도 잠시 했지만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랑하는 여자를 곁에 두려고 그런 공작을 펼치는 건

말도 안될 일.

뭔가 좋은 수가 없을까.

내일 모리스 여사가 오면 의논해 봐야겠다.

리바이가 다시 잠이 들락 말락 하자 여주는 다시 그를

깨우는 대신 그의 볼을 가만히 쓸어본다.

그리고 자신이 포르코에게 좀 더 냉정하게 선을 그을

필요가 있는 건 아닐까 자문한다.


그날 오후 결국 두 사람은 여주의 바람대로 펠릭스와

함께 공원을 거닐며 이른 봄풍경을 즐기긴 했다.

생후 6개월 정도 된 이 강아지는 볼 때마다 부쩍부쩍

덩치가 커져서, 

이제는 강아지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크기이지만

여전히 재롱둥이이다.


남들처럼 단란한 주말 오후의 데이트를 즐기고 각자의 

집으로 헤어진 둘은,

그러나 다음 날 불어닥칠 뜻밖의 시련을 

꿈에도 예상치 못했다.

안타깝지만 시련은 그녀의 몫이 된다.



                                * * *



3월 21일 월요일 아침.

여주는 교무실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교장의 호출을 받고

가방도 내려놓지 못한 채 교장실 앞에 와 있다.

궁금함 반 긴장 반으로 교장실 문을 똑똑똑 두드리니

"들어와요" 하는 깐깐한 목소리가 들렸다.

교장실 안에는 교장과 교감, 그리고 줄리 선생님이 앉아

있었고, 줄리 선생님은 여주를 보자 치맛단을 꽉 쥐고

고개를 푹 숙였다.

그녀는 여주가 라이너와 담판을 지으러 갈 때

그녀에게 타조털이 달린 고급스런 핑크빛 코트를 빌려준,

여주와 비교적 사이가 가까운 미술교사였다.



 "오늘 여주 선생을 부른 건 최근의 불미스러운 신고에
  대한 확인이 필요해서입니다."



교장은 앉으라는 말 한 마디 없이 안경을 치켜 올리며

여주를 쏘아보았다.



 "불미스러운 일이요? 어떤..."

 "여주 선생이 부임하고 얼마 안 있어 퇴임하신...
  라이너 브라운 선생 말입니다만.
  여주 선생과 혼인관계였더군요."

 "...... 네. 전남편입니다."

 "우리 학교에 부임 후에 이혼한 거니까,
  부임 당시에는 남편이었고요?"

 "네. 그게 문제가 되나요?"

 "하아... 제가 듣기로 마레에서 헤어진 남편을 찾아
  파라디로 망명신청을 한 걸로 아는데...
  우리 학교에 라이너 브라운이 있는 걸 알고 왔나요?"

 "그럴 리가 있겠어요? 시청에서 발령받은 건데요."

 "그래요... 그럼 우연이다? 라는 말이네요?
  우연 치고는 대단한 인연인데, 기쁘게 만나 같이 근무를
  안하고 갑자기 브라운 선생은 퇴직을 했고요?
  그리고 퇴직 시점이 이혼이랑 겹치시네요?"

 "교사의 개인적인 사생뢀도 학교에 보고해야 하는지는
  몰랐는데요."

 "그래요, 뭐, 이혼하실 수도 있죠. 이해합니다.
  그런데 이혼 사유가 뭡니까?"

 "네?"



여주가 불쾌함에 언성이 높아지자, 안절부절 못하고 있던

교감이 헛기침을 하며 교장에게 눈치를 준다.



 "이혼 사유가 왜 궁금하세요, 교장 선생님?"

 "이 부분이 중요한 거요, 여주 선생.
  남자 관계가 문란한 선생 밑에서 배울 수 없다는
  투고가 제출됐어요."

 "....... 지금 그 말씀에 책임 지실 수 있나요?"

 "허어, 누가 누굴 위협하는 거요, 여주 선생!"



교감이 먼저 교장을 비호하며 나섰다.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에 여주가 파르르 떨다가 호흡을

가다듬으며 천천히 또박또박 말했다.



 "제 이혼 사유가 문란란 남자 관계 때문이라는 말씀에
  책임지실 수 있겠느냐고 물었습니다.
  무슨 근거로 그런 모욕적인 말씀을 하신 건지
  들어보고 싶네요."



여주는 아무도 의자를 권하지 않았지만 빈 소파에

앉아 교장을 마주 보았다.

교장의 권위 위에 도전적이지 않으면서도 

할 말은 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기도 했다.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하며 교장이 몸을 뒤로 젖혔다.



 "근거라면 투고가 근거 아니겠소?"

 "보여주시지요."

 "신고자의 개인적인 불이익을 감수할 수는 없소."

 "무고자의 개인적인 불이익은 감수해도 되고요?"

 "험, 험... 무고라고 하기엔... 사례가 구체적이다 보니...
   여주 선생 남자 관계가 복잡하다는 증인들이 있어요..."



교감이 다시 끼어들었다.



 "그래서요? 투고나 증인의 증언을 확인할 수 없다면
  저로선 어떻게 제 자신을 변호할 수 있나요?"



잠시 교감이 교장과 뭔가 속닥거리더니, 교감은 이내

서류뭉치를 내놓았다.

여주는 다섯 장 짜리 투고를 천천히 읽어보았다.


'아이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고 진리를 탐구하도록
이끌어야 할 막대한 사명감을 가진 교사라는 신분에도
불구하고,
주거지에 여러 남자들을 불러들여 밀회를 즐기는 것이
목격되었다.
이혼한 전남편은 물론,
같은 아파트에 거주하는 학생의 가족이자 젊은이를
수시로 집에 들이고,
깡패 출신의 애인과 길거리에서 낯뜨거운 애정행각을
벌이기도 한다'

는 내용과 함께

위의 내용에 틀림이 없음을 서명한 이름이 대여섯 개가

씌여 있었다.

그 중 두 개의 이름은 여주도 낯이 익는 이름.

같은 아파트에 살며 벤보다 한 살 형인 메튜 와그너의

부모의 이름이었다.

그 부부의 이름이 맨 앞에 씌여 있고

투고의 필체도 와그너 씨의 사인 필체와 동일한 걸로

보아, 투고를 가장 적극적으로 쓴 사람은

메튜 와그너의 부친인 듯 했다.

기억을 더듬어 와그너 씨를 떠올리는 여주.

아... 지나칠 때마다 날 그렇게 불만가득한 얼굴로 보더니

이유가 있으셨군요.


여주는 잠시 생각했다.

라이너와, 포르코와, 리바이에 대해 하나하나 설명해야

하는 걸까?

한 점 부끄러움도, 거짓됨도 없는 그녀이지만

교장실에서 자신의 연애사를 해명해야 한다는 현실이

너무도 구차하고 수치스럽고 불쾌했다.

문득 줄리 선생님은 왜 불려 왔는지도 궁금했다.



 "자, 소원대로 다 읽었으니 뭐라 한 마디라도 좀 
  해보실까? 말할 시간은 드리겠소."

 "... 해명하면 믿어주시긴 할 건가요?"

 "아... 한 가지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있는데요, 
  여주 선생. 
  교사는 평판이 생명이요.
  한 번 오명을 쓴 교사는 아무리 그게 억울한 누명이어도
  그 전으로 돌아가기란 어렵소.
  잉크가 튄 흰색 옷을 어찌어찌 빨아서 그게 흐려졌어도
  얼룩과 주름은 어떡할거요.
  사람들은 그 흔적에 주목하는데.
  내 말은, 설사 여주 선생이 결백하다 할지라도 
  이런 탄원서가 제출됐다는 거 자체가 이미 선생에겐
  마이너스가 되어 버렸다는 의미요."

 "들을 마음이 없으시다는 걸로 들리네요."

 "아. 꼭 그렇진 않소. 말해 봐요. 아, 잠깐만,
  세 남자... 가 답니까? 아니면 네 번째, 다섯 번째...
  더 있소?"



모욕감에 여주가 저도 모르게 덜덜 떨리는 주먹을

움켜 쥐었다.

내가 여기서 해명한다 한들 저들이 믿을까?

아니, 해명을 해야 하기는 하나?



 "저어, 여주 선생님, 
  저는 라이너 선생님 일만 말씀드렸어요...
  다른 건 전 모르는 일이에요..."



줄리 선생이 미안해 어쩔 줄 모르며 사과했다.

사실 여주와 친한 교사로 불려가 추궁당하다가 라이너에

대해 몇 마디 증언한 게 다일 것이다.

괜히 줄리에게 불똥이 튀게 할 마음은 없다.

자신을 문란한 여자로 아예 단정지어 버린 채 비아냥

거리는 교장에게 더 먹잇감을 던져 주고 싶지도 않고,

철저하게 교장 편이 되어 눈치나 살피는 교감도 그다지

신뢰가 가질 않는다.



 "어떡하면 되나요?"

 "그걸 왜 나한테 물어요? 
  여주 선생이 스스로 결정해야지."



교무실에 돌아온 그녀가 털레털레 짐을 쌌다.

짐이라봤자 가방에 다 들어갈 것들이다.

책 두 어 권과 필기구 몇 개.

그리고 포르코에게 받았던 사탕병.

줄리 선생이 뛰어 들어와 여주의 손을 잡았다.



 "이렇게 가시면 어떡해요..."

 "보셨잖아요... 제가 여기 더 있을 자리가 있나요."

 "그래도 계약은 1년이잖아요. 
  시청이나 교육청이나... 어디 문의라도 넣어봐요. 네?"

 "제가 여기서 제 주변인들의 서사를 줄줄 풀기를
  바라세요, 줄리?
  어차피 저들은 별로 관심 없어요.
  학교 평판을 해칠 임시 교사 하나 나가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할 거에요."

 "선생님, 저 정말... 브라운 선생님에 대해서 다른 말
   안했어요, 그냥 이혼하셨다고만 했어요..."

 "알아요, 줄리. 그동안 나한테 잘해줘서 고마워요.
  인연이 닿으면 또 뵈요."

 "어디 가시게요?"



그때 교무실 입구에서 지휘봉을 까딱까딱 거리고 있던

교감이 선심쓰듯 말했다.



 "시원시원하게 알아서 행동해 주니
  교장 선생님께서 그 점 하나는 높이 사십니다.
  만약 다른 학교로 부임할 거라면 실력은 인정한다고
  추천서를 써 드리죠. 
  대신 스토헤스 구 내에서는 선생을 채용할 학교가
  없을 겁니다."



여주는 줄리의 손을 잡고 인사를 나눈 뒤,

교감이 건내준 추천서를 낚아채듯 받아 들었다.



 "아이들한테 인사하고 가도 되나요?"



교감이 입을 삐죽하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여주는 2층으로 올라가 자신의 교실에 들어갔다.

수업이 시작되려면 20여분 가량 여유가 있어서

아이들은 교실 곳곳에 무리지어 웃고 떠들고 하다가

여주를 보고는 깜짝 놀라며 달려와 안겼다.



 "선생님, 마크가 제 인형 뺏었어요!"

 "선생님, 저 숙제 다 했는데 깜빡하고 안가져왔어요."



저마다 __ 터지듯 자기들의 이야기를 쏟아내는

아이들을 하나하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녀는 

눈을 맞췄다.



 "어? 선생님... 왜 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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