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탈 죄송해요. 아무래도 카테고리가 엄마분들이 많으실 것 같아서 조금 괜찮다고 위로받고 싶었어요.
저는 기념일이 싫어요. 날이 가까워 지거나 당일이면 불행하거든요. 무슨 일이 꼭 생겨요.
부모님 결혼기념일엔 두분이 싸워서 준비했던 이벤트가 엉망이 되었고, 처음으로 알바해서 번 돈을 엄마와 상의해서 쓰라던 아빠에게 반항하니 방문짝을 떼이고, 제 생일을 얼마 남겨놓지 않고 엄마가 돌아가셨어요. 해외여행을 간 아침엔 아빠가 애인과 엄마 영정사진이 놓여진 안방에 누워있던 걸 발견한 동생이 욕이 섞인 문자를 보냈어요. 너는 뭐했냐며.
(정말 알고 싶지 않았는데, 아이폰 끼리는 데이터나 와이파이만 연결되면 문자가 전송 되더라구요. 우연한 불행이였죠.)
오늘은 제 생일이네요. 미역국은 무슨. 어제 선물대신 얼굴을 맞았어요. 아빠한테요. 솔직히 그렇게 부르기도 싫어요.
잔뜩 취하면 원래 앞뒤분간 못하고 지 더러운 성격도 못 숨기고 하고싶은대로 했다가 가게에서 난동 부리고 합의금, 택시기사 때리고 벌금, 길거리에서 잤다가 경찰분께 연계 받고. 엄마 돌아가시고 직접 겪은 것만 여러번인데 그 전엔 대체 어땠을까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그 인간이랑 똑닮아 진저리치며 멀리한 동생한테 먼저 연락할 줄은 저도 몰랐어요. 3년전에 그 인간 애인한테 맞아서 경찰 불렀는데, 이젠 지가 절 때려서 경찰을 불렀네요. 끼리끼리라고 해야하는지…
아마 최후의 보루 였을꺼에요. 절 때린 건. 그렇게 맞고 살던 엄마와 힘으로 제압했던 동생을 지나 딸 마저 때리지 않았던 건, 지 마지막의 양심이었겠죠. 웃기게도 절 때리다가 고객한테 전화 오니까 술도 안 깬 목소리로 친절하게 설명하더니 돌아서서 또 욕을 엄청 하며 지 분을 못 이기더라구요. 그렇게 사람 좋은 척 해서 전 우리 엄마 절차를 밟나봐요. 당장에 핏덩이 였던 자식 둘을 홀로 키울 수 없어 이혼 서류를 작성하고도 여러번 제출하지 못한 작은 등이, 결국 암에 걸려 죽음으로 벗어난 그 누렇던 얼굴이. 스스로 산소호흡기를 떼내며 제발 그만하라던 갈라진 목소리가 맴돌아요.
너라도 아빠한테 벗어나라고 마지막으로 쥐어준 돈 소중한 줄 몰랐던 못난 딸은 엄마의 바람과는 다르게 뺨이나 맞고 벌벌 떨게 되네요.
두달 뒤면 준비하는 자격증을 따니까 실습 받았던 곳에서 오라고도 하셨고, 차근히 알바 정리하고 시험보고 바로 취업해서 몇달 뒤 집계약 끝나니까 대출 연장해서(제 이름으로 받은 은행대출이라 세대주가 저예요.) 전세로 이젠 독립할 수 있겠지. 그럼 월급 받고 안정되면 우리 고양이 캣타워도 사주고…돈도 모으고…
초등학교 저학년, 자고 있던 내 위에 넘어진 엄마의 목을 조르던 폭력범의 낯을 마주했을 때 정신을 차렸어야 했을까요?
아니면 죽고 싶어서 허벅지를 그으면서 숨통을 텄던 때에 다 끝내야 했을까요?
전형적인 한국 장녀로 살면서 아빠한테, 엄마한테, 동생한테 이 정도도 못해주냐며 살아온 나는 누구에게 도움 받을 수 있나요?
고소 할 거냐 말거냐 계속해서 물어보는 경찰분들의 얼굴이, 눈물 때문인지 세 번 연속으로 맞다가 날아간 안경이 없기 때문인지 흐릿하던 와중에도 비용이 들면 어떡하나, 신고해도 갈 곳이 없는데 계속 마주치며 같은 집에 살아야하는 내 상황은 어떡하나 수많은 물음표가 나를 갉아먹어요.
나는 피해자인데 성인 남자가 술에 취해 경찰을 때리기라도 하면 경찰분이 고소할 수 있는 명분이 생긴다며 내가 나가야하는 황당함이 우스워 죽겠어요. 차라리 때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비참해요. 내가 못하겠으니 남이라도 해줬으면.
저보다 벌벌 떠는 겁많은 고양이 때문에 동생집에서 다시 지옥을 걸어와서는 빠지면 안되는 강의를 하루종일 듣고, 밥을 먹으려다 상황 모니터링을 위해 전화하신 분과 통화를 하다 체할 것 같아 다 버리고, 다시 들어와야 될 줄 모르고 상황을 전해들은 친구에게 급하게 빌린 돈을 하루빨리 돌려주려고 저번에 하루 뛰어본 택배알바를 한번 더할까 고민하는데 미역국은 무슨…
엄마가 그렇게 괴로워도 외가에 왜 얘기를 못 했는지 알겠더라구요. 엄마 죽고 니 아빠 그래도 아직 젊은데 다시 누구 만나도 되지 않겠냐는 주변사람들과 친척들의 물음에 썩어들어가는 속으로도, 상관없죠 아빠인생인데 하고 대답해요.
모르잖아요 그 사람들은. 엄마가 나 중학생 때 보여준 성매매 업소에 결제된 상호명을. 우리 동네를 걷다가 발견한 바로 그 가게를. 엄마 돌아가신지 2개월도 안돼서 다시 찍힌 그 가게들. 그래놓고 엄마는 이해했고 접대를 위해 가라 그랬다며 뻔뻔한 그 낯짝을. 자신이 잘 나갔을 때 벌어다준 돈으로 남자를 만나고 다녀서 신불자였으며 빛더미에 앉았다는 그 말의 이면에 본인을 투영하며 본인과 똑같이 행동했을 거라는 그 웃긴 사상을.
누구한테든 얘기하고 싶은데, 누구한테도 얘기할 수 없어서 얼마 안 남은 생일날을 돌아보다 하소연 할 곳이 없어서 이렇게 적어요. 적다보니 제 불행이 돌아왔네요. 죽지않고 살아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