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마리아 탈환 이후.
조사병단은 엄청난 성과를 거두었지만, 병단 내 인원 역시 눈에 띄게 줄어들어, 남은 단원들이 밤을 새면서까지 서류 작업을 끝마치는 날들은 잦아지고 있었다.
리바이처럼 높은 직급은 아니었지만 나름 간부에 속했던 터라, 너는 평소에 다른 간부들과 친밀한 사이를 유지해 왔었고, 특히 한지와 엘빈, 그리고 너를 포함한 3명만이 조사병단 내에서 리바이의 생일날을 알고 챙겨주는 유일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런 엘빈마저 죽고, 그를 추모할 겨를도 없이 한밤중에 리바이와 둘이서 잔뜩 밀린 서류 작업을 하고 있는 지금, 너는 문득 오늘이 리바이의 생일이라는 것을 기억해 내었다.
사각거리는 만년필 소리와, 타닥거리며 은은히 빛나는 전등 소리만이 울려퍼지는 집무실에서, 너는 잠시 서류 작업을 멈추고는 서류에 코를 박고 열심히 무언가를 작성하고 있는 리바이를 빤히 바라보았다.
"할 말이라도 있나보군."
자신을 관통하는 시선이 느껴졌던지, 여전히 서류에 눈을 고정하고 있는 리바이가 너에게 말을 건네었다.
"아, 혹시 오늘이 무슨 날인지 기억하세요?"
"..."
너의 말에 드디어 서류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들어 네 눈을 바라본 리바이였다. 리바이는 자신이 잊었던 무언가를 찾기 위해 잠시 말을 멈추었고, 넌 그가 어떠한 대답을 할지에 대한 기대를 하며 그를 가만히 기다려 주었다.
"... 입체기동 물량과 관련된 서류라면 어제 내가 제출하였다. 자금 확대 회의 날짜는 아직 잡히지 않았고.."
"아, 아니 그런 일적인 것들 말고요."
이런 순간에도 오직 일만 떠올리는 리바이의 말을 황급히 끊고는 다른 대답을 유도하였다.
"그럼 네 녀석의 병단 입단일 정도라도 되는 건가. 아냐, 그땐 여름이었지.."
"그런 것도 기억하세요? 전 너무 오래돼서 거의 다 까먹었어요..ㅋㅋ"
"너라서 기억하는 거다. 네가 눈에 좀 띄었어야 말이지."
"제가요? 왜요?"
"알 것 없다. 그래서, 오늘이 무슨 날이지?"
"병장님이요."
"하?"
"병장님 생신이에요, 오늘."
네 말에 잠시 실소를 지은 리바이는 다시 서류로 눈을 돌렸다. 동료들의 하루하루는 누구보다 잘 기억해 주면서 자신에게는 이렇게도 무심한 그에게 괜히 심술이 났다.
"특별한 날이잖아요! 왜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특별할 것 없어. 그저 지나가는 하루일 뿐이다. 내 생일을 기억해주던 엘빈은 죽었고 한지도 산더미 같은 서류에 밀려 힘들어하고 있더군. 이런 상황에서 생일이니 뭐니 하는 것들은 사치일 뿐이겠지."
"제가, 제가 기억하는데도요?"
잠시 정적이 흘렀다.
"ㅇㅇ."
"네..?"
순간적으로 리바이와 너 사이의 벽이 느껴졌다. 괜히 오버한 것인가 라는 생각들이 머리를 가득 메웠지만 그래도 후회는 되지 않았다. 대신, 넌 리바이의 입에서 나올 다음 말을 숨죽여 기다렸다.
"네가 조사병단에 입단하던 첫 날, 유독 너만이 내 눈에 띄었던 이유가 무엇인지 아나."
"어.. 글쎄요."
"희망. 희망이었다. 다들 공포에 짓눌려 잔뜩 움츠려 있었는데, 너 하나만이 희망으로 가득 찬 얼굴을 하고 있더군."
"그랬나요? 어.. 그때는 무언가 바꿀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제 손으로 말이에요."
"ㅇㅇ."
"네."
"난 그래서인지 널 보면 희망이라는 희박한 확률에 기대고 싶어져. 널 만나기 전까지 애써 억누르고 있었는데 말이지."
"희망을 억눌러요? 왜요..?"
"희망은 가지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잔인한 법이거든. 그때문에 난 내 동료들을 무수히 잃어왔고 다시는 희망 따위 가지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아.."
"그래서 널 대하기 어려워. 너와 가까워질수록 나도 모르게 조금씩 희망을 가지게 되지만, 그러다 내 사소한 희망 때문에 너마저 잃게 될까봐 두려워지더군."
"그랬군요.."
"아까 네가 기억해주는데 왜 내 생일이 특별하지 않냐고 물었었지? 그래, 네가 기억해주는 생일은 조금 특별할지도 모르겠군. 아니, 어쩌면 많이 특별할 거다."
"..."
"마치 네게 다음 생일 인사도 들을 수 있을 것만 같아지거든. 그 다음 해도, 그 다음 해도, 그리고 우리가 함께 눈 감을 날까지 말이야."
"함께요..?"
"그래, 널 보며 살고 싶어졌어. 이런 희망은 악이 되어 돌아오겠지만 그것이 너와 함께하는 것에 대한 대가라면 따라야지."
리바이는 들고 있던 서류를 내려놓고 두 손을 모아 책상 위에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 희망이라는 희박한 확률의 배팅에 한 번 걸어보기로 했다. 희망 따위 가지지 않으려 했건만, 너 때문에 이렇게 되었으니 네가 책임져야겠군."
"그래야겠죠..? 어떻게 책임질까요?"
"만약 우리가 거인 토벌에 성공한다면, 그래서 우리의 희망대로 끝까지 살아남게 된다면..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그리고 너와 내가 눈 감을 날까지 내 생일을 책임져."
말을 마친 리바이의 두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고 귀는 잔뜩 새빨개져 있었다.
"참고로 눈치는 매미 똥 수준인 너를 위해 한 마디 덧붙이자면,"
리바이는 잠시 말을 끊고, 너와 눈을 맞추었다.
"그러니까, 이건..
프로포즈다, ㅇ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