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의 5단계
인간은 누구나 자신을 특별하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유일성을 인정받고 싶어한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신의 상황과 감정에 매몰된 채로 살아가기에 타인의 유일성을 이해하려는 시도를 좀처럼 하지 않는다. 서로가 서로의 말을 하기 바쁜 세상이다. 모두가 자신의 불만족에 대해 누군가 알아봐주길 기대한다. 결핍과 결핍에 대결은 더 큰 결핍을 양산한다. 그렇기에 더더욱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진 사람의 희소가치는 올라간다. 집단적 사회성이 전반적으로 떨어진 사회에서는 상대와 공감하기 위해 그다지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 않다. SNS를 통해 과시욕과 표현욕을 배출하고 모바일 속 메신저 속 글자와 이모티콘으로 대화가 주로 이루어지는 지금의 사회에서는 역설적으로 사람들의 대화력과 공감능력이 매우 낮다.
지하철에 들어서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휴대폰의 액정화면에 몰두하고 있다. 매우 몰입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의 입에는 하고 싶은 말들이 많이 고여있다.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 공감받기를 원하지만, 그게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인간의 내면을 다룬 드라마를 통해 그 느낌을 간접적으로 해소한다. 몇 번의 가벼운 인사와 몇 십번의 호응 그리고 이어 까페 속 조용한 자리가 마련되면 사람들은 자신의 고민을 그에게 상세하게도 털어놓는다. 몇 자 안되는 조언에도 큰 위로를 받는다. 베스트셀러 순위에 위로의 에세이가 점령한 까닭은 현실에서 이 같은 역할을 수행해줄 존재가 그만큼 희소해졌기 때문이다.
십 년전만 하더라도 위로에는 자격이 필요했다. 그래서 어린 사람은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어른에게서 위로를 받았으며, 공신력있는 누군가의 말을 들으며 위로를 얻었다. 위로받는 일에는 자존심이 개입되는 경향이 있었다. 위로를 받는다는 사실 자체가 자신의 나약함을 어느정도 드러내는 일이라 여겨졌다. 그러다 몇 년 뒤부터 갑자기 ‘힐링’이라는 단어가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그만큼 개인의 삶의 불만족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제는 맛있는 음식을 통해 위로를 얻고, 사치를 통해, 유튜브를 통해, 고양이 영상을 통해, 캠핑을 통해, 영상 속 아이의 순수함을 통해, ASMR을 통해, 먹방을 통해 힐링받는다. 그리고 힐링받았다고 표현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또 실제의 만남에서 상대방의 고민을 듣기가 이토록 쉬운 시대와 세대가 없었다. 분주한 입을 잠시 닫고 의식적으로 귀를 여는 습관만 들여도 많은 사람이 자신에게 의지하게 됨을 경험할 것이다. 우리는 지금 공감의 효율이 가장 높은 시대를 살고 있다. 결핍으로 가득찬 사회에서 누릴 수 있는 시대적 특권이다. 이 시대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가꾸는 방법에 대해 알아보자.
- 1단계 : 인사
자신의 존재가 인정받고 지지받는다는 느낌 그것이 바로 공감이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첫 번째로 그 사람의 존재 자체를 알아봐주어야 한다. 자신이 등장했을 때 반가움을 담아 인사하는 사람이 좀처럼 드물어지고 있다. 심리적 여유가 없기에 그저 형식적으로 인사할 뿐이다. 심지어는 누군가를 보고도 본 채 만 채 하는 상황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공감의 효율이 높은 시대이기에 누군가에게 미소를 머금은 채 아는 체만 해도 그들은 쉽게 마음을 연다. 그런 경험이 익숙치 않거나 양가형 애착 성향이 발달되어 있기에 첫 번의 인사에 겸연쩍게 혹은 약간 냉담하게 반응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들의 속마음은 자신의 존재를 알아차려 주었다는 사실 자체로 크나큰 안정감을 느낀다. 이러한 인사들이 누적될수록 그들은 상대에게 신뢰를 느끼고 호의적인 감정을 품게 된다. 모든 공감의 출발은 인사와 환영에서 출발한다. 인사의 목적은 그들의 존재 자체를 알아차려주는 것에 있다.
- 2 단계 : 반응과 호응
대학로 소극장 한산한 객석에 중년의 남자 한 명 그리고 구석 자리에서 오붓한 시간을 보내러 온 커플 이렇게 총 세 명이 앉아있다. 무대에는 햄릿 역할을 맡은 볼이 움푹 패인 삼십대 중반의 남성이 바깥의 단란한 오후 햇살과 대조적인 무거운 중세 갑옷을 걸친 채 음울한 표정으로 독백을 이어가고 있다. 그런 와중에도 구석 자리의 둘은 서로간 귓속말로 사랑의 밀어를 나누기에 분주하다. 갑옷같은 정장에 넥타이를 걸치고 점심시간에 짬을 내어 극장을 찾은 중년의 남성은 배우와 혼연일체가 된 듯 연극 속으로 깊숙이 빠져들었다. 배우가 내뱉는 단어들을 나직이 곱씹으며, 햄릿의 고뇌를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의 표정은 슬프기도 하고 아련하기도 하다가 잠시간 해소되었다가 이내 다시 슬픔으로 빠져든다. 무역회사 부장인 그의 예전 꿈은 연극 배우였다. 그래서 무대 위 그의 모습에 자신의 모습이 비춰보인 것이다.
한산한 무대 위 배우는 매순간 고독했었다. 현실적인 압박이 오래간 그를 짓눌러 왔다.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황량한 사막을 홀로 걷고 있다는 기분을 자주 느꼈다. 그의 예술혼을 정처없이 갈 길을 잃었었다. 그러다 자신에게 집중하고 있는 중앙의 중년 남성을 보게 되었다. 배우는 다소 과장되어 보일지언정 수 년만에 자신을 오롯이 바라보아 주는 그 한 사람을 위해 자신이 가진 예술혼 모두를 짜내어 무대 위로 쏟아부었다. 배우는 자신의 몸짓을 쫓아오는 그의 눈동자를 의지하며 무대를 후회없이 끝 마칠 수 있었다. 중년 남자가 그에게 해주었던 일이라곤 반응 그것 하나뿐이었다. 반응과 호응은 그의 움직임에 의미를 부여해주고, 진정성을 이끌어냈다.
주변에 보이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한 번쯤 무명 배우가 느끼는 기분을 종종 느낀다. 내가 원하는 호응 그 이상의 호응을 세상은 좀처럼 자신에게 주지 않는다. 좀 더 적나라하게 말해 그 반절에 해당하는 호응도 내게는 주어지지 않는다. 그럴수록 호응에 개의치 않고 내면에 몰두하고 고독과 친해지는 습관을 길러야 그게 쉽지 않다. 우리는 잘 때조차 메신저와 온라인 환경에 ‘접속’되어있기 때문이다. 그 관성을 끊어내기 위한 노력을 할 동인조차 스스로 찾아내지 못한다. 매일매일이 허우적대는 일상의 연속이다.
그런 헤엄 속에서 자신의 말에 반응해주고, 호응해주는 소수의 존재는 오롯이 쉴 수 있는 안식처가 되어준다. 사실 반응과 호응에는 별다른 심리학적 기술이 필요하지 않다. 그저 그의 말한 마디 한 마디에 호기심을 가져주는 것 그것뿐이다. 타인에 대한 호기심이 있다면 말과 행동, 표정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사람들은 자신의 결핍을 채우려 사람을 대하기에 이에 미숙한 것이다. 타인에 대한 호기심과 그에 수반된 행동 그것이 그의 마음을 얻기 위한 가장 간편하고 효율적인 방법이다. 그리고 갈등과 결핍이 심화된 사회를 살고 있을수록 이에 비례해 반응과 호응이라는 간편한 방법의 효과는 배가 된다. 타인에 대한 호기심은 자신의 내면이 평온해진 상태에서 찾아온다. 그래서 타인에 앞서 먼저 자신을 다스려야 한다.
타인에 대한 호기심이 상실된 시대를 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그 호기심을 대면한 적 없는 영상 속 사람들을 통해 충족시키고 있다. 현실의 공간에서 관심과 호응을 주는 사람의 존재는 지금 더할나위 없이 귀하다. 사람들은 호기심을 보이는 타인에게 쉽게 기대고, 자신의 것들을 기꺼이 내어준다. 귀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삶으로 편입시킬만큼 매력을 보이는 상대가 아니라면 그들에게 베푸는 공감은 여기까지로도 족하다. 충분할뿐 아니라 오히려 넘친다. 어느 조직에 속하건 습관화된 호응은 해당 개인의 인격으로 포장되어 자신의 존재를 귀하고 우월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마음을 얻고 싶은 타인과의 대화에 있어 필요한 것은 정리도 판단도 해결책도 아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그저 자신에 대한 호기심뿐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3 단계 : 유사성 도출
상담 심리학에서 상담자가 내담자의 내면을 들여보기 위해 가장 우선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는 ‘라포’ 형성이다. 라포는 마음이 서로 통한다 느끼는 상호신뢰관계를 나타내는 심리학 용어이다. 상담자는 라포형성을 위해 페이싱, 백트래킹, 미러링 등의 심리적 테크닉을 활용한다. 페이싱은 내담자의 말의 템포, 목소리의 크기, 분위기 등을 유사하게 연출하는 것을 뜻한다. 백트래킹은 내담자가 했던 표현을 그대로 활용하여 맞장구를 쳐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상대가 “오늘 비가 와서 컨디션이 좋지 않네. 예전에 무릎 수술을 한 적이 있어서 비가 오면 거기가 쑤셔서 컨디션이 다운돼.”라고 말을 하면 “그래서 수술을 해서 비가 오면 컨디션이 좋지 않겠네.”라고 조용히 답해주는 식이다. 그저 상대가 했던 말을 재정리하는 수준이지만 대게 상대는 “응응. 그래서~~”라는 식으로 신이 나서 다음 말을 이어간다. 미러링은 거울처럼 그렇지만 티나지않게 은밀하게 상대의 행동을 따라하는 기술이다. 상대가 다리를 꼰다면 은근슬쩍 같이 다리를 꼬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모금 들이킨다면 뒤이어 자신도 들이키고, 머리를 메만질 때 같이 메만지는 식이다. 이들 세 가지 전략의 가장 근본적인 공통점은 상대를 흉내내는 것이다. 이를 통해 자신과 상대가 유사성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무의식에 주입시켜 빠른 시간에 상대와의 친밀감을 올릴 수 있게 된다. 라포 형성을 통해 내담자는 자신의 존재가 동조받는다는 인상을 가지게 되고, 마음을 활짝 열게 된다.
이성과의 관계에서도 취향이 겹치는 것만큼 이 둘을 단시간 내에 가깝게 만들어줄 수 있는 요소가 없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신과 유사한 사람에게 끌린다. 상대와의 유사성은 자신의 특별함이 지지받는다는 느낌을 강하게 제공한다. 나와 비슷한 존재가 세상 먼 곳이 아닌 바로 눈 앞에 있다는 사실이 주는 심적 위안은 상대가 결핍이 많을수록 크게 작용한다. 그렇기에 각자 색이 다른 온라인 커뮤니티에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결집되어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며 의지하는 것이다. 자신과 유사한 사람들끼리 소규모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것은 본능에 가깝다. 사회와 국가는 그렇게 형성되었다. 같은 역사를 공유하고, 같은 영토에 살며, 비슷한 피부색을 가졌다는 사실이 주는 유대감은 사회와 국가를 지탱하는 가장 큰 힘이다. 실제로 정신의학의 관점에서 인간에게는 ‘거울 신경 체계’라는 것이 존재해 상대가 자신과 동일한 행동을 수행하는 것을 관찰할 때 이 영역이 활성화된다.
스웨덴의 심리학자 딤버그는 뇌의 거울 신경 체계를 증명하는 실험을 했는데, 실험 참가자들에게 다양한 표정의 사진을 보여주며 최대한 무표정을 유지하게 했다. 그럼에도 0.03초라는 짧은 시간에 웃는 표정의 사진을 본 사람들의 얼굴에는 웃는 근육이 반응했다. 찡그린 표정도 마찬가지였다. 제대로 인지할 수 없는 찰나의 시간이지만 참가자들은 무의식적으로 사진 속 표정들에 반응했던 것이다. 심지어는 악취를 맡고 불쾌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진을 보았을 뿐인데도 실제 악취를 맡은 것처럼 악취를 맡았을 때 반응하는 뇌 영역이 활성화되는 결과를 보여주기도 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타인과 유사하게 행동하고 느끼는 공감 본능이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자신의 유일성만 인정받으려는 아집 때문에 이 공감능력은 제대로 발현되지 못한 채 퇴화되고 있다. 처음에는 잘 느끼지 못하지만 각자가 다른 경험들을 겪어왔음에도 그 속에서 공통분모를 발굴해나가는 재미가 분명 있다. 그리고 내가 먼저 공감을 쌓기 위해 유사점을 도출을 주도하게 되면 상대는 그 즉시 표정과 말투로 이에 대한 보상을 제공한다. 이 과정이 일종의 게임처럼 즐겁게 작용할 때가 있으며, 이러한 호의적인 반응이 쌓이게 되면 이는 사람 관계에 있어서의 자신감으로 내면화되어 무엇보다 본인에게 긍정적인 작용으로 돌아오게 된다. 유사성 도출 단계에서의 핵심은 너도 특별하고, 나도 특별한 존재이지만 우리는 이러한 특별한 부분들을 ‘공유’하고 있구나라는 마음으로 대화를 전개해나가는 것이다. 상대방 또한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맥락을 이해할 때 친밀감은 기하급수적으로 증폭된다.
흔히들 서로 반대의 성향에 끌린다고 말을 한다. 운동선수들은 학업에 자질을 보이는 누군가에게 매력을 느끼고, 반대의 경우도 비일비재하게 발생한다. 그럼에도 그들의 합이 맞은 것은 반대의 면모에 끌리는 성격적 특성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둘은 반대의 매력에 끌리는 유사점이 있는 것이다. 외계에서 온 사람처럼 혼자만의 유일성을 극단적으로 추구하는 사람에게는 외모적으로 극도로 우월하지 않는 한 좀처럼 매력을 느끼기 힘들다. 이성이든 동성이든 거시적 차원에서 공유되는 부분이 있을 때 그것이 관계를 지탱하는 관성이 된다. 학창 시절의 친구들이 각별하게 여겨지는 것은 삼 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공유하는 장소, 기억, 시간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들이 놀랍도록 유사하기에 더욱 각별하게 느껴지고, 삶이 힘들때면 그들을 찾는 것이다. 반대로 세월이 흘러 그들의 지내는 환경과 나의 환경의 격차가 커질 때 애석함을 느낀다. 공유되었던 부분들이 희석되는 것만 같은 감상에 빠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사회적 매력이 뛰어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가진 공통점 중 하나는 상대방의 사고 방식을 이해하고, 그들이 사용되는 언어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의식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태도들이 몸에 베어있다. 사촌 조카들을 만날 때면 그들이 좋아할법한 유머와 표현을 곁들여 빠른 시간 안에 친근하게 다가가고, 나이가 지긋한 어른을 만날 때면 그들이 주로 사용하는 온화하고, 정결한 언어로 반응한다. 그리고 또 사회적 지위를 막론하고 고향 친구들가 만날 때면 그들을 허물없이 대한다. 상황과 맥락에 맞게 자신을 조정하는 것은 그들이 가진 좋은 습관에 가깝다. 그들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아집을 내세우지 않음으로서 쉽게 관계의 우위를 점한다. 관계에서 자신을 비울수록 더욱 많이 채워지는 것이다.
- 4 단계 : 고민 들어주기
사람은 누구나 가슴 속에 고민을 안고 살아간다. 그 고민은 높은 확률로 이 세 가지 중에 속하게 된다. [ 1. 대인 관계에 대한 고민, 2. 진로에 대한 고민, 3. 경제적 고민 ]이 그것이다. 누군가의 고민을 들어본 기억들을 떠올려보라. 아마 이 셋 중 하나에 속하거나 이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고민일 것이다. 각자가 가진 고민들을 쉽게도 배출하는 솔직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살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가 나에게 고민을 뱉는 것은 나에 대한 인간적 호감과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친밀함이 없고, 한 공간에 있는 것이 어색한 상대에게 인간은 절대 자신의 고민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리고 누군가가 자신에게 고민을 털어놓는다면 라포 형성이 상당부분 진전되었구나 하고 자신해도 좋다.
고민을 들어줌에 있어 우리가 중점을 두어야 할 부분은 상대가 자신의 고민을 충분히 표현했다고 생각이 들 때까지 맥락을 끊지 않는 것이다. 상대는 고민에 대한 해결책을 들어주는 것에서 위안을 얻기보다 고민을 배출하는 과정 그 자체에서 큰 위안을 얻는다. 그래서 점도가 짙은 고민을 안고 가는 사람은 대화에 앞서 “어떻게 생각하세요?”가 아닌 “제 얘기 좀 들어주실래요?”라고 말문을 여는 것이다. 자살방지 센터의 상담원들이 제일 먼저하는 일은 “00씨의 얘기가 궁금해요. 들려줄래요?”라고 물으며 상대가 미련 한 점 남기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까지 재촉하지 않으며 호응하고 반응해준다. 그리고 벼랑 끝에 선 많은 사람들은 그 과정 자체로 마음의 포만감을 느끼고 삶을 이어갈 동인을 찾게 된다.
나는 20대 초반부터 특발성 두드러기라는 질환을 앓고 있어 매일 같이 오래간 항히스타민제를 복용해왔다. 이러한 고민을 누군가에게 털어놓으면 그들 중 대다수는 기름진 음식을 줄이고, 밀가루 음식을 줄이고, 술담배를 끊으라는 식으로 빠르게 조언했다. 사실 그 사실 자체는 인터넷으로 스스로의 병명에 대해 누구보다 조사를 많이 한 내가 잘 알고 있었다. 그저 내가 원했던 것은 ‘정말 힘들겠구나..’, ‘걱정이 많겠네.’하는 식의 공감이었다. 그럴 때마다 사막 한 가운데에 혼자 서있는 것만 같은 서늘한 고독감이 나를 덮치곤 했다.
그러다 사회성이 높은 누군가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빠르게 결론내리기보다는 나의 말을 묵묵히 들어주었다. 그 뒤 자신의 경험에 대해 이야기했다. 별로 길지도 않은 말이었다. 자신도 회계사 시험을 준비할 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그런지 성인 아토피를 겪었다고, 남들은 몰라주는 데 혼자만 앓는 그 기분이 뭔지 알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또, 회계사 시험은 떨어졌는데 이 성인아토피는 아직까지 완전히 떨어지질 않는다고 좋은 것 있으면 같이 공구해서 먹자고 자조하듯 농담조로 말했다. 그 짧은 말 몇 마디에 나는 더할 나위 없는 위안을 느꼈다.
인류는 많은 문제들을 해결해오면서 진화해왔다. 식량의 문제, 애정의 문제, 자원의 문제, 영토 분쟁 등등 셀 수도 없이 많은 문제들을 접하며 이에 굴하지 않고 씩씩하게 이 문제들을 명석하게 해결하며 문명을 진보시켰다. 그래서인지 문제를 발견하면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본능을 타고났다. 그리고 이에 대한 해결책을 제공한다는 사실 자체에서 우월감을 느끼고 존재 가치를 찾기도 한다. 망치를 든 사람에게는 못 밖에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배출된 고민에 망치를 들고서 두드리려 조급하게 시도한다. 사실 그들도 안다. 고민을 해결할 주체는 자기 자신뿐이라는 사실을. 고민을 표현하는 누군가와 형성해온 라포를 망치로 깨드리고 싶지 않다면 우리가 할 일은 그저 반응하고 들어주는 일이다. 기대든 욕심이든 조급함이든 뭐든 비워야 관계는 풍요롭게 채워진다.
- 5단계 : 지지하기
공감의 마지막 단계는 바로 지지하고 응원하는 것이다. 지지는 관계가 갖는 궁극적인 목적에 가깝다.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는 목적을 평생 내 편을 만들기 위함이라고 정의내리는 사람이 많다. 삶이 혼란할수록 지지할 무언가가 필요하고, 우직하게 느티나무처럼 곁에서 나를 지지해주는 존재는 삶을 더할나위 없이 풍요롭게 만들어준다. 현재 그러한 존재가 없더라도 언젠간 생길 거라는 기대와 환상 자체로 혹은 그런 낭만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여럿 존재한다. 안정적인 가정환경에서 자라온 사람들이 갖는 가장 큰 유리점은 삶에 이러한 지지점이 존재한다는 위안감이다. 이러한 위안감이 역설적으로 타인에게 갈구하지 않으며, 불건전한 관계를 단칼해 차단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다준다.
삶에 지지대가 불명확하다면 제일 먼저 할 일은 자신이 인간적인 호감을 갖는 사람들을 지지해주는 일이다. 먼저 베푼 지지는 그 자신의 주변으로 쉽게 전염되어, 종국에는 부메랑처럼 돌아와 나를 지지하는 버팀목이 되어준다. ‘먼저’ 지지해주어야 지지받을 수 있는 것이다. 한 가닥의 얇은 나뭇가지는 쉽게도 부러지지만 이 나뭇가지들이 덧대여 하나가 되었을 때 그 곱절로 단단하고 강해진다. 그래서 내면이 유약하면 유약할수록 먼저 지지를 베풀어야 한다.
평범한 수준의 인성을 갖춘 대다수는 받는만큼 주고 싶어 한다. 그리고 주는만큼 오게되어있다는 간명한 진리도 스스로 깨우치고 있다. 다만, 줄 수 있는 능력이 없기에 부정을 저지르거나 회피하는 것이다. 수 만 년전 우리의 선조들은 자신이 힘들게 잡은 사냥감을 서로에게 베풀었다. 오늘은 자신이 사냥감을 잡았지만, 다른 날에는 자신이 굶고 다른 사람이 사냥감을 잡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배려와 상생을 발전시켜왔다. 양가형 애착 성향과 회피형 애착 성향이 강해 타인을 자신의 결핍을 해소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여기는 존재는 기본적인 공감과 배려를 받을 자격이 없다. 그들은 받는만큼 주고 싶어하는 본능을 스스로 거세시켰기 때문이다. 그게 아닌 누군가라면 목적 없는 지지를 받을 자격이 충분하고, 이는 곧 자신에게로 돌아올 것이다.
지지는 두 가지 차원으로 이루어진다. 첫 번째는 상황이 현재 좋지 않지만 흐린 날씨에 좋은 날이 오는 것처럼 곧 좋게 변할 것이라고 낙관적인 전망을 제공해주는 것이다. 상황이 급작스럽게 동굴처럼 어둡게 변화하면 당사자들은 빛의 존재와 빛의 감각을 잊어버리고 만다. 이들에게 밝은 미래에 대해 확언해줌으로서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상상을 할 수 있도록 독려해주는 것이다. 두 번째는 너가 쌓아온 자질이 안 좋은 상황을 극복할 수 있을만큼 충만하다고, 혹은 너니까 잘 헤쳐나갈 수 있다고 확언해주는 것이다. 내면이 단단하지 못한 사람들은 자신감의 기복이 심하다. 그래서 바깥의 상황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며 자신감을 금세 잃는다. 그런 이들에게 그동안 잘 해왔으니 앞으로도 잘 해쳐나갈 수 있을 것이라 자신감을 불어넣어주어야 한다. 정리해서 곧 좋아질 거라고 그리고 더더욱 너라서 더 좋아질 거라고 지지해주는 것이다.
이 응원과 지지는 가장 높은 차원의 공감이다. 그리고 한 사람의 생을 바꾸어줄 수 있을만큼의 파급력을 가지고 있다. 스티브 모리스라는 눈이 보이지 않는 한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에게는 모든 세상이 암흑이었다. 하루는 학교 실험실에서 쥐가 도망다녀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 때 선생님은 아이에게 ‘자. 다들 조용하고 스티브한테 도와달라고 하자. 스티브는 소리에 예민하니까 알 수 있지?’라 말했다. 선생은 스티브의 남다른 청력에 주목했고, 그에게 역할을 부여함으로서 그를 응원했다. 스티브는 그 날 이후 남들과 다른 자신만의 색을 깨닫게 되었다. 또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게 있다고 믿게 되었다. 그 후 얼마 뒤 스티브는 평생을 음악의 길을 걷기로 다짐했다. 그 아이는 훗날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Isn`t she lovely’를 만든 팝의 거장 스티비 원더가 되었다. 유년기에 지지를 받지 못한 아이일수록 타인을 지배하려는 성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이러한 시도들은 번번히 실패한다. 그들은 인간이기에 당연히 보유하고 있는 자신의 잠재력을 인지하지 못한 채 낙담 속에서 성장기를 보낸다. 혹은 청년 시절 지속된 실패로 자신 안의 잠재력을 도외시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들에게는 주기적이고 안정적인 지지가 필요했던 것이다. 사실 지지가 필요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글을 쓰고 있는 나도 마찬가지이다. 한 개인의 재산과 명예가 얼마나 됬던 간에 인간은 누구나 유약하고 부러지기 쉽다. 삶의 질곡에서 자신이 지지받다면 먼저 자격을 갖춘 이들에게 지지를 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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