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천 BGM: 히사이시 조 - 첫사랑
(노래랑 같이 읽으면 마지막 반전 요소에서 더 몰입될 듯!)
"그러고 보니, ㅇㅇ. 너 쟝이랑 사귄 지 얼마나 됐지?"
"60일은 넘었어. 근데 왜?"
"음.. 아니 뭔가, 너희는 사귀는 티를 잘 안 내는 것 같아서. 네가 나한테 말 안 해줬으면 아직 눈치 못 챘을 거야. 비밀 연애 때문에 겉으로만 안 친한 척 하는 거지?"
"어? 어어.. 그렇지 뭐."
네가 쟝에게 고백하여 사귄 지 벌써 60일. 너와 절친한 동기의 말대로, 쟝과 너는 병단 내에서 비밀 연애를 하고 있었지만 말로만 비밀 연애일 뿐. 둘만 있을 때도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너와 쟝의 데이트는 하루의 끝, 잠들기 전 몰래 밖에서 만나, 밤하늘을 바라보는 형태로 이루어졌고 그 순간조차도 104기 동기들과 함께일 때와는 다르게, 쟝은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아직 사귄 지 얼마 안 되었으니 괜찮겠지, 하고 넘겼지만 동기의 말을 듣고 나니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사귄 지 60일이나 되었는데 뽀뽀는 커녕, 손조차 잡아보지 못 했다니.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자, 결국 너희가 지금 이성적으로 사귀는 사이가 맞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괜히 너만 열을 내는 것 같아, 마음 한 구석에서 서러움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지만 애써 꾹 누르고는 쟝과 만나기로 한 밤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어느새 밤이 되었다.
만나자고 약속한 것은 아니었지만, 둘 사이에 암묵적인 약속처럼, 너와 쟝은 이 시간이면 복도에서 만나 함께 밖으로 나가곤 했었다.
하지만 오늘은, 아무리 기다려도 쟝이 나오지 않았다. 창틀에 기댄 채 쟝이 있는 방의 방문만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잔뜩 망설이며 쟝의 방문 앞에 서서 노크를 하기 위해 손을 들어올렸다.
주먹은 언제라도 세게 두드릴 준비가 되었다는 듯, 굳세게 움켜쥐었지만 이상하게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이 문을 두드렸다가 널 딱히 반기지 않는 쟝을 보기라도 하면, 꼭 너만이 마음이 있다는 걸 확인당하는 기분이 들 것만 같아서 다시 손을 내리고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네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네 방문 앞에 선 채, 마지막으로 쟝의 방을 슬쩍 쳐다보았고, 갑자기 속에서 울분이 치밀어 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넌 발을 세게 구르며 쟝의 방문 앞에 섰고, 한 번 심호흡을 크게 한 후, 쟝의 방문을 세차게 여러 번 두드렸다.
쾅쾅쾅 -
머지않아 방문이 열렸고, 그곳엔 무언가 잘못된 행동을 하다가 걸린 아이처럼 식은땀을 잔뜩 흘린 채 숨을 고르고 있는 쟝이 서 있었다.
"ㅇㅇ,"
"쟝, 너는..!"
쟝이 네 이름을 다 부르기도 전에 그의 말을 끊고는 네 속에 있는 감정들을 다 쏟아내기 위해 말을 시작했지만 막상 입을 떼니, 온갖 감정들이 눈물로 쏟아나와 말문이 저절로 막혀버렸다.
한 밤중에 찾아온 여자친구가 갑자기 화를 내더니 이제는 어린아이처럼 서럽게 엉엉 울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쟝도 꽤나 당황하였지만 일단 너를 달래주었다.
"ㅇㅇ, 왜 우냐.. 울지마, 응?"
"나, 너랑 사귀는 건 맞아?"
"어?"
"이게 뭐가 사귀는 거야.. 옛날에 친구였을 때가 차라리 더 나았던 것 같아. 그땐 말도 많이 했잖아."
"아니, 그게 아니라.."
"그런 게 아니라면 지금 나한테 뽀뽀해봐."
"지금? 여기서?"
"어. 왜, 못 하겠어?"
"못.. 아니다, 안 하고 싶어."
"뭐.. 뭐?"
전혀 예상하지 못 했던 답변이었다. 넌 아무 말도 하지 못 하고 눈물만 뚝뚝 흘리고 있었고, 네 앞에서 잔뜩 긴장한 채 경직되어 있던 쟝은, 그제서야 널 향해 살짝 미소를 지어 보인 후, 떨리는 손으로 주먹을 꽉 쥐고 있는 너의 손을 따스히 감싸었다.
"나, 보기보다 연애 잘 못 해."
넌 네 손을 천천히 쓸어주는 쟝의 큰 손을 바라보았다.
"생각보다 표현도 잘 못 하고."
"..."
"근데 있잖아. 그래도 나 말이야,"
쟝은 잠시 말을 끊더니, 네 손을 잡지 않은 손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는 네 볼을 감싼 채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러고는 자신을 보라는 듯, 너와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무릎을 살짝 구부린 쟝은 너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살짝 울음이 섞인 것 같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 네가 너무 좋아."
"어..?"
쟝은 너와 맞닿아 있는 손을 슬쩍 들어올렸다.
"나, 사실 지금도 엄청 떨려. 너랑 이렇게 손만 잡았는데도 말이야. 네가 보기엔 내가 너무 느리겠지만.. 나 노력하고 있어. 노력할게."
"..."
"그러니까, 그.. 조금만 기다려주면 안 되냐.."
뒷머리를 긁적이며 네 눈치를 보는 쟝은 꼭 비 맞은 강아지 같이 풀이 잔뜩 죽어있었고, 그 와중에도 귀는 거짓말은 못 한다는 듯이 화끈거리고 있었다.
넌 쟝이 네 손을 먼저 잡아줬다는 사실이 너무 설레어서 더 화를 내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그가 사실 얼마나 용기를 낸 것인지 알기에, 오늘은 여기서 봐주기로 하였다.
"... 내가 졌다, 졌어."
"맨날 이기면서."
"뭐? 더 혼날래?"
"아, 아니 그 뭐냐.. 더 좋아하는 사람이 지는 거라면ㅅ"
"푸핫"
"뭐냐."
"그건 어디서 들었어?"
"너가 그랬잖아, 고백할 때."
"그랬나? 근데 내가 맨날 이긴다는 건,"
"어. 내가 너 더 많이 좋아한다고."
갑자기 얼굴에 열이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너, 연애 고수야. 못 하긴 무슨."
"너라서 그러는 거지."
"그럼 지금까지는, 지금까지는 뭐 였는데?"
"그냥, 나 너만 보면 엄청 떨려. 말도 잘 못 하겠고 혹시나 내 마음 가는대로 손도 잡고 뽀..뽀도 했다가 너가 싫어하면 어쩌나 싶기도 하고."
"그럼 지금 해. 허락해 줄테니까."
"뽀뽀?"
"어."
"야, 우리 방금 손 잡은 거 알지? 진도가 너무 빠른 것 같은데.."
"좋아, 그럼 안아줘."
"못 하겠어.."
"그럼 나 간다?"
"아, 아니 잠깐만.."
"뭐어."
"후.. 알겠어, 이리와."
쟝은 두 팔을 크게 벌린 채 두 눈을 질끈 감았고, 너는 활짝 웃으면서 쟝을 향해 날다시피 안겼다.
"억..!"
그 바람에 중심을 잃은 쟝이 뒤로 넘어지며 방문이 열렸고, 너와 쟝은 꼭 껴안은 채, 쟝의 방의 바닥에 고꾸라졌다.
"아야야.."
"괜찮아?"
"응. 난 괜찮은데 네가..! 헐, 쟝 이게 다 뭐야?"
머리를 짚으며 일어난 네가 맞이한 건 알록달록한 종이들로 잔뜩 꾸며진 그의 방이었다.
"안돼! 지금은 보지마!!"
쟝은 황급히 네 두 눈을 가렸고, 넌 쟝의 손가락 틈 사이로 종이에 적힌 글자를 하나씩 읽어나갔다.
"ㅇ, ㅇ, 생, 일, 축, 하, 해?!"
"하.."
"뭐야.. 내 생일 준비하고 있던 거였어?"
"어. 서프라이즈였는데 누구 때문에."
"내일이 생일인지도 모르고 있었어.. 쟝!!"
넌 쟝을 향한 고마움에, 그의 목을 잔뜩 끌어안았다.
"너무 고마워.. 지금 정말 행복해."
"... 생일 축하해."
"선물은?"
"아."
"나 갖고 싶은 거 있는데."
"뭔데..? 불안한데 조금."
"오늘 여기서 자고 갈래. 아직 쑥쓰러운 쟝을 위해서~ 손만 잡고 잘게."
넌 쟝의 볼을 살짝 건드려준 후, 그의 침대 위로 풀썩 누웠다. 쟝은 붉어진 자신의 볼을 황급히 가리며, 네가 있는 침대로 향하였다.
"야, 야! 안돼, 나와."
"나 생일인데.."
"하.. 난 언제쯤 너 좀 이겨보냐."
"너 생일날?"
"알겠어. 그때 기대해."
쟝은 못 이기겠다는 듯이 고개를 좌우로 젓고는, 네가 누워있는 침대 옆에 자신도 함께 누웠다.
.
.
.
.
꽤 오랜 시간이 지나고, 새벽의 달빛이 창문 사이로 비춰올 때, 벽 쪽으로 누워있던 네가 입을 열었다.
"쟝."
"응?"
잠시 정적이 흘렀다.
"... 생일 축하해. 이제 나 그만 찾아야지, 응?"
"뭐야, 갑자기.. 오늘 네 생일이잖아."
"쟝, 쟝보야.."
"왜, 왜 또 울어.."
"이제 내 생일 그만 챙겨줘도 돼.. 나 그날 너무 행복했었어. 네가 있어줘서, 내 마지막 순간까지."
"지금 무슨 말 하는 거야.. 마지막이라니.."
"내가 지금까지 받은 선물 중에 가장 최고의 선물이었어. 나, 마지막은 네 품 속에서, 널 내 마지막 기억으로 안고 갈 수 있어서 얼마나 기뻤는데. 그러니까 이제 그만 미안해하자, 응? 제발.."
"싫어. 내가 더 잘 할게. 네가 나 안 떠나도록 이제 더 많이 표현할게."
"쟝. 나 봐."
"..."
"나도, 나도 떠나기 싫어. 너랑 이렇게 매일매일 붙어있고 싶고 그냥 너만 보면서 다시 살고 싶어. 근데 난.. 난 죽었고, 넌 네 동료들이 기다리고 있잖아.. 아직 지키지 못 한 인류가 남아있잖아.."
"몰라.. 나는 너 하나만 있으면 돼.. 인류니 뭐니 그런 거 다 필요 없다고."
"쟝, 생일 축하해. 너무 축하하는데, 나 이제 안 올거야. 네가 이렇게 그날 이후로 나만 찾아도 나 이제 모른척 할 거야. 그러니까 너도 나 잊어. 잊고 행복해져야지."
"ㅇㅇ, 제발.. 나 혼자 두지마.."
"알지, 쟝? 나 기다리는 거 엄청 잘 해. 그러니까.. 나 너 올 때까지 한 발자국도 안 움직이고 이렇게 기다릴 테니까, 우리 그때 다시 만나자."
"싫어, 싫어.. 나도 같이 가"
"쟝, 생일 축하해."
.
.
.
.
.
"헉..!"
쟝의 눈이 번쩍 떠졌다. 온 몸에는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고 눈에서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쟝이 너무나 그리던 사람.
그날 이후로 몇 년을 매일매일 찾으며 우는 날들을 보냈지만, 한 번도 얼굴 한 번 비추어주지 않던 야속한 사람이, 오늘 쟝의 꿈에 나왔다.
이제는 존재의 이유가 없어진 보잘것 없는 자신의 생일.
그 생일 날, 쟝은 자신이 온 마음을 다 바쳐 사랑했던, 그래서 차라리 자신이 대신 죽고, 그 아픔을 자신이 다 겪길 바랐던 그 사람에게서 가장 먼저 생일 축하를 받았다.
쟝은 침대에 누워 몸을 웅크린 채, 그 사람의 마지막 말만을 잊지 않으려는 듯 계속해서 되뇌였다.
'생일 축하해. 생일 축하해. 생일 축하해..'
이제는 목소리도 흐릿해져 버린 그녀가, 오늘따라 더 보고 싶었고 오늘따라 자신만 놔두고 떠나가버린 그녀가 더 미웠다.
그래도 쟝은, 너무나 미운 그녀를 딱 한 번만, 한 번만이라도 더 보고 싶을 뿐이었다.
아직도 두 손에 선명히 남아있는, 자신의 품에서 차갑게 식어가던 그녀의 몸을 어루만지던 촉감 대신, 그녀가 마지막으로 자신을 향해 힘겹게 지어보이던 미소를 기억해 내고 싶었다.
그때 울지 말 걸. 울지 말고 사랑한다는 말이라도 해줄 걸. 하다못해 생일 축하한다는 말이라도 할 걸.
죽어가는 그녀 옆에서 마지막까지, 그녀가 가장 싫어하던 우는 모습만을 보여준 게 아직도 미안하고 또 미안하였다.
'조금만 기다려줘. 그 다음은 같이 또 태어나자. 그럼.. 네 생일은 내가 먼저 챙겨줄게. 생일 축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