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금 40대 후반 두 아이의 아빠 입니다.
제가 초등학교(당시는 국민학교라 칭함) 2학년 일 때 부모님이 이혼 하셨습니다. 아버지 라는 사람은 알콜중독에 매일 같이 가정폭력을 일삼고 저는 눈치 보느라 장난감 하나 사는 것도 혼나가면서 샀어야 했습니다. 술 쳐 먹고 맨날 집안 부수는 날이면 어머니는 저를 달래 주시느라 구멍가게에서 당시 백원에서 이백원 사이의 작은 장난감 하나 사 주시면서 달래 주시곤 했습니다 .그런 돈도 아깝다고 난리를 치는 애비라는 인간이 술로 쳐 먹는 돈은 아깝지 않았나 봅니다.
결국 이혼 후 저는 어머니와 같이 생활 했습니다. 당시 법이 워낙 엿 같아서 위자료도 하나 제데로 받지 못했습니다. 위자료를 못 받아 청구소송을 하면 애비라는 인간한테 가정법원이 연락을 줍니다그러면 당사자는 알았어 줄께 라고 하면 법원은 어머니께 준다고 하니 기다려 라는 답변 만 줄 뿐 강재력이 전혀 없는 있으나 마나 한 법 이었습니다. 지금이야 법이 더 강화되고 체계화 되어서 그런 짓거리 용납이 안되지만 당시는 아주 엿같은 상황 이었습니다.
어쨌거나 그 몇푼 안되는 육성회비도 제데로 내지 못하는 상황 많았고 중고등 학교 때 술 쳐 먹고 내 아들 내놔라 하면서 학교와서 깽판 치는 것도 부지기수 였습니다. 그 덕에 저는 학교 선생님들 한테 제데로 찍힌 녀석이 되었죠.심지어는 불량한 애들 한테 맞거나 해도 제가 그놈들 한테 뭔가 잘못 했으니 그랬다는 식으로 몰아 부치는 것은 선생님들 이었습니다 .
애비라는 놈 직업은 대학교 교수 였습니다.
저는 기를 쓰고 그놈 가만 두지 않을 생각으로 대학까지 진학 했으나 여전히 등록금은 십원도 주지 않았고 저는 이런 형편 때문에라도 지독하게 공부 해서 전체는 아니었지만 대학 다니는 중 총 3번 장학금을 받았습니다 .
참고로 저의 대학입시 때는 '면접' 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
저는 입시 당시에도 지원하는 대학에서 다른 교수님들이 너 누구 아들이구나 하는 질문을 받곤 했습니다. 그러면 그 학교는 어김없이 불합격을 받았습니다. 그 이유는 애비 라는 인간의 평소 인격이 워낙 뭐 같아서 다들 싫어 했고 그 화풀이가 저한테 온 것을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기를 쓰고 전문대 부터 입학 해서 폅입시험을 결심 했습니다. 그리고 취업 후 다시 편입을 해 야간대학을 제가 번 월급으로 충당 하면서 졸업을 했습니다 .공부를 하다 보니 유리천정 이라는 것도 실감 하여 대학원에 진학을 할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
문제는 여기서 부터 입니다. 여기저기 제가 다닐만한 학교를 찾다 보니 하필이면 그 애비라는 인간이 있는 대학의 대학원에 원서를 넣게 되었습니다 .저는 서울 캠퍼스 지원 했고 그 애비라는 사람은 당시 지방 분교의 학과장 이었습니다 .
그 이유 때문에 대학원 입학이 또 한번 취소 될 뻔 했습니다.당시 교칙상 교직원을 포함한 가족 중 누구라도 학교와 관계가 있으면 사전 통보를 해야 했는데 저는 어차피 남이 된 지 몇십년 지난 상태였기에 지원하는데 개의치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가족관계 증명서에 떡하니 그 인간 이름이 있다는 이유로 사전에 학교측에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 하나로 입학 취소가 될 것이라고 통보를 받았습니다. 그 때는 정말 저도 더 이상은 참기 힘들어서 학장님을 직접 찾아 갔습니다 .자초지종을 설명 드리고 이미 초등학교 2학년 부터 남남이었고 학교 다니는 동안 하나의 도움도 되지 않았다고 다 설명 드리고 나서 다시 담당자 회의를 거쳐서 입학이 가능 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대학원 다니던 시절에는 몇몇 여자들은 저의 애비라는 사람이 학과장 이라는 사실을 알고 일부러 접근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 마다 사실을 다 말해 주었죠.더 이상 그런 것들로 사람 인연의 상처를 받기 싫었던 것이었습니다.그 이야기를 듣고 다들 조건을 본 접근을 더 이상 하지 않았습니다 .당연하죠. 외적인 부분을 보고 접근 했으니 그게 껍데기 라는 것을 알게 된 이상 자신들에게 더 이상 이용가치가 사라졌으니까요.
직장 생활 중 만나던 여자도 몇명은 그런 조건 때문에 만남을 유지 하기 어려웠습니다. 세상 참 뭐 같더군요.어떤 면에서는 진짜 사람을 고르는데 유용한 도구가 된 것 같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면으로는 제가 싫은 사람 떨쳐 내는 도구로 사용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저의 조건이 아니라 그냥 저 자신만을 보고 결혼을 하게 된 사람이 지금 저의 아내 입니다.
지금 하려는 말은 그렇게 결혼 했다는 것이 아니라 저 하나 키우신다고 고생 하시다 결국 난소암으로 시작해 복막암 까지 전이 되어서 무려 9년 동안 암투병을 하시다 지난 2018년 돌아가신 어머니가 무척이나 그립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두 모자가 몇십년간 개고생 하면서 겨우 삶의 터전을 마련 했는데 그 애비라는 인간은 은퇴 후 몸에 힘 빠지고 간병인도 시원찮은 시골에서 겨우 연금으로 살면서 이제 죽을 때 되니 자기 거둬 달라는 겁니다. 자기 남은 거 다 줄테니 자기 도와 달라고 하는데 솔직히 괴씸합니다 .제가 받을 부분 하나도 없습니다. 이미 다른 사람들이 전부 몰래 빼 갔기 때문이죠.
저는 제가 결혼 하는 날 혹시라도 찾아와서 또 난동 부릴까봐 친구들 한테 부탁 해서 예식장에서 보이면 내 쫒아 달라고 부탁 까지 했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소식을 어떻게 알았는지 가지고 있던 재산 전부 대학에 기증 해 버렸고 이제 와서 빈털터리 된 신세고 아무도 자기 돌봐 주는 사람 없으니 자기 죽을 때 돌봐 달라고 하는데 솔직히 재산이 있는 줄도 몰랐고 어차피 남이라 생각해서 아무것도 받을 생각 전혀 없었습니다. 그랬었다면 학교 다닐 때 기를 쓰고 교육비와 위자료 양육비 등 다 받아 냈었겠죠.
그리고 저는 받을 것이 어마어마 하게 많다 해도 그 인간 거둬 줄 생각 전혀 없습니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그 힘든 세월 동안 어머니와 제가 겪은 고통에 비하면 그깟 물건이나 통장에 남은 몇십만원 안되는 돈 따위는 아무 가치 없기 때문 입니다.
저는 지금도 어머니와 말도 못하는 차별과 수모를 겪으면서 고생 한 세월을 생각 하면 그 인간 다 찢어 죽이고 그 인간 사는 집도 불태워 버리고 싶은 마음이 가장 큽니다.
이런 전후 사정 모르는 몇몇 지인들은 빌어먹을 유교문화 같은 생각으로 그래도 아버지인데 봐줘야 하지 않겠냐 하는데 솔직히 처자식 싫다고 버린 인간 이제와서 죽을 때 돌봐 달라는 거 저는 도저히 용납이 되지 않습니다.
얼마전 상황이 너무 기가 막혀서 애비라는 인간의 여동생인 저한테 고모격인 사람한테 그동안 개고생 한거 다 말해 줬고 그래서 난 솔직히 지금 돕고 싶은 마음 없다고 전했습니다. 그랬더니 애비라는 놈은 역시나 길길이 날뛰면서 없는 말 지어 내지 말라고 다 거짓말이다 라고만 하면서 현실을 부정 했습니다. 그 때 확실해 졌죠. 더 이상의 동정은 없어졌습니다.이런 인간의 자식 이라는 것이 정말 수치스럽고 그동안의 삶이 개탄스럽습니다.
지금 애비라는 인간이 계속 귀찮게 하고 제 지인들도 자식이 그러는거 아니라고 하는데 버려진 자식이 자기 부모 찾아가서 모시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이런 상황 어떻게 해야 할지 많이 고민이 됩니다. 조만간 전화 차단 하고 인연을 완전히 차단 하고 싶습니다. 솔직히 전화로 라도 저주를 퍼부어 주고 싶습니다. 다른 분들이 저라면 어떻게 하실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