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저는 29살 직장인 3년차 성인 남자입니다.
오늘 부모님과의 일로 기분이 너무 싱숭생숭한데 주변에 말할 곳도 없고 해서인스타에서 많이 보던 네이트판에 글을 남겨봐요
94년생인 저는 그때 누구나 그랬겠지만 IMF때 가세가 꽤 많이 기울었어요방 네칸에 남 부러울 것 없던 아파트에서 저기 시골 판잣집으로 이사를 갈 정도였으니까요
2000년대~2010년대 초반까지는 10대의 나이에 가난한 집안에 자존심은 센 아이였어서상처를 참 많이 받았어요
초등학교 때 남들 다 하는 우유 급식도 못해보고 급식비를 밀리면 선생님이 교무실로 부르거든요?근데 그걸 다른 학생이 말해줄 때 저도 속으로는 어떤 이유로 부르는지 다 알았어요그래도 태연한 척 담담한 척 가서 부모님께 말씀드린다고 하고 넘어갔죠..
중학교 땐 남들 다 다니는 학원이라고 부모님 형편에 맞지도 않게 다니게 하다가 학원비 밀려서 쫒겨난 적도 있었고 그럴 때마다 너무 슬프고 친구들도 다들 눈치는 채고 있는게 뻔하니 정말 죽고싶더라구요.학원건물 옥상, 저희 동네 고층아파트 옥상에 올라가서 뛰어내려볼까 생각도 여러번 했었어요다행히 겁이 많아서 항상 옥상에 앉아서 한참을 울다가 집에 다시 갔지만요
그래도 1년에 며칠 안되던 행복한 날이 소풍가는 날이었어요.아빠는 집에서 매일 술만 드시고 엄마는 밤에 식당에 가서 설거지를 하시면서 정말 찢어지게 가난했지만 아들 소풍간다고 옷 한벌 살돈이랑 소풍 당일에 용돈하라고 3만원씩 꼭 쥐어주셨거든요
그리고 시간이 흘러서 고2때쯤? 2011년으로 기억해요. 아버지가 다시 일을 시작하셨어요. IMF 이전에 일하던 직원들과 다시 사업을 시작하시고 어머니도 식당을 개업하셨어요.그때부터 수업료도 제때 내보고 우유급식도 해보고 부모님께 처음으로 용돈이라는 걸 받아봤어요.
2013년에 대학에 들어가고는 부모님 사업이 더 잘풀리셨어요.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아파트로 이사도 가고 수입도 동년배 분들 보다는 꽤 잘버시는 것으로 알고 있고 지금도 현역에 계셔요.
저는 대학교 때 부모님이 그동안 잘 못해주신 뒷바라지 몰아서 해준다고 생각하셨는지 용돈도 많이 받고 전역 후에는 자동차도 사주셔서 행복한 대학생활을 즐겼어요.
그러다 20년 초에 코로나가 터지기 직전 공공기관 사무직으로 취업해서 현재까지 재직하며 잘 살고 있습니다.
근데 오늘 오전에 엄마한테 전화가 오더라구요. 신이 나신 목소리로"아들, 엄마 친구들이랑 2박3일로 여행 가고 있어~ 찬조하려면 해~ " 하시더라구요
엄마 기분이 너무 좋으신 것 같아서 20만원 보태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고 보내려고 뱅킹앱을 켰는데 제 월급일이 20일이거든요, 그래서 제 수중에 현찰이 30만원 조금 넘게 있었어요그래서 남은 며칠 이 돈으로 잘 버틸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어릴 때 소풍가던 날이 생각났어요분명히 아빠는 일을 안하고 엄마는 밤에 식당 몇시간 일을 했었고 쌀도 살 돈이 없어서 슈퍼에 외상을 자주 달았던 우리집에서 3만원은 꽤 큰 돈이었을건데 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아서 얼른 용돈 보내드리고 몰래 화장실 가서 눈 감고있어요 ㅎㅎ
분명 그때의 부모님보다 여유있었던 나는 지금 이렇게 망설였는데 우리 부모님은 그때 어린 제가 소풍간다고 용돈을 주실 때 어떤 마음이었을까요?돈없다고 비관하고 비참해하던 저보다 그 상황을 바라볼 수 밖에 없던 부모님의 마음은 어땠을까요?제가 살면서 그 마음을 다 이해는 할 수 있을까요?
직장잡고 명절이나 기념일에 가끔 용돈을 드려도 단지 뿌듯하고 기뻣을 뿐인데 오늘은 왠지 옛날 생각이 나면서 슬프고 그런데 기쁘고 그래요이 글을 쓰는 지금도 정말 입은 웃고 있는데 눈물은 계속 나네요
엄마 아빠 너무 사랑하고 가난하고 힘들었을 때도 나 포기 안해줘서 너무 고마워그리고 너무 늦게 그걸 조금씩 깨닫고 있어서 미안해앞으로 50년 100년 진짜 우리 행복하게 열심히 사랑하면서 살자 효도할게 아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