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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요 과연 진실인가

완소혜교 |2006.11.16 11:37
조회 66 |추천 0

삼국사기삼국유사에서는 무왕을 법왕의 아들이라고 적고 있지만, 북사와 수서에서는 무왕을 위덕왕의 아들이라고 적고 있다. 삼국유사는 삼국사기를 기초로 만들어졌고, 수서는 북사를 기초로 만들어진 책이기 때문에 삼국사기와 북사의 두 기록 중 하나를 진실로 봐야한다.

 

법왕은 정적들에 의해 살해된 것으로 보이는데, 그 정적들이란 것은 위덕왕 또는 아좌태자의 측근들일 것이다. 위덕왕은 성왕의 장남으로 왕위를 이었고 수나라, 왜와 협공으로 고구려를 치려고 태자가 왜에 가있는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래서 늙은 동생(혜왕)이 비어있는 왕좌를 차지하고 왜에서 돌아온 조카(아좌태자)를 죽이게 된 것이다. 그 결과 백제의 왕위는 혜왕, 그리고 그의 아들 법왕이 차지하게 된다.

 

그리고 혜왕은 노환으로 죽었다고 하지만 법왕은 즉위한지 겨우 5개월만에 사망한다. 즉 조카로 부터 빼앗은 왕위를 2년도 채 되기 전에 다시 빼앗긴 것이다. 그 결과 신하들의 추대로 서동이 왕위에 오르니 그가 바로 무왕이다. 그런데 무왕의 생활과정을 보면 어렸을 적 부터 홀어머니 밑에서 마를 캐는 아이였다고 하니 원래부터 왕족은 아니었다는 결론이 된다. 아무리 왕의 사생아라고 해도 이렇게 완전히 버려질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45년이나 되는 위덕왕의 왕권이 말년에 흔들려 왕위를 빼앗겼지만 그 기간이 2년도 안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선화공주. 삼국유사에는 진평왕의 딸이라고 서동과 혼인하였다고 기록이 있지만, 삼국사기와 화랑세기에는 진평왕의 딸은 천명공주와 덕만공주(선덕여왕) 밖에 없다고 기록되어 있다. 화랑세기는 풍월주와 왕실의 딸들에 대한 기록이 세세한 편인데 선화공주라는 이름 자체가 없다. 그리고 진평왕은 사위에게 왕위를 넘기지 않고 딸에게 주었다. 신라는 아들이 없을 경우 사위에게 왕위를 잇게하는 것이 원칙이었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그것으로 볼 때 선화공주는 신라의 공주가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리고 서동요 내용에 따라 신라와 백제가 사돈집안이라면 양국 간에 동맹이 이루어져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무왕 즉위 후 신라와 백제의 관계는 안그래도 안좋던 관계가 더욱 악화된다. 무왕이 적극적으로 신라를 공격해 수많은 성을 장악했으며 성주의 목을 직접 베기까지 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면 선화공주는 신라의 공주는 아닌 것이 확실하다. 그렇다면 완전한 가공의 인물이라는 말인가? 하지만 삼국유사의 미륵사 창건 설화에도 무왕과 선화공주가 나오는 것을 봤을 때 완전한 가공의 인물은 아니고 실재했던 인물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면 선화공주는 백제의 공주는 아닐까? 무왕이 위덕왕의 서자 혹은 손자로 조선의 철종처럼 평민의 생활을 하고 있다가 법왕의 딸과 결혼을 했다가 법왕이 제거되자 가장 근친이자 유명무실한 왕으로 신하들의 옹립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 그 이야기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면서 변형되어 신라와의 결혼동맹이라는 드라마가 되었던 것이다.

 

 

출처 : 네이버 오픈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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