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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설화(雪化)

sOda |2004.03.09 13:09
조회 653 |추천 0

설화(雪化)

 

 

“세상에...! 어쩌다 여기 들어왔을까요?”

 

“큭큭... 향목냄새를 맡고 들어왔나보지. 따뜻하니까 나가는걸 잊고 졸기라도 한걸까, 이

녀석?”

 

“엄마는 어디있죠?”

 

“글쎄... 어린녀석이 이렇게 혼자 돌아다녔다면... 엄마가 없을 것 같은데...”

 

 

담이는 토끼를 건네받아 꼬옥 품었다.

 

토끼는 도망갈 기운도 없을정도로 두려움에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담이는 휘를 흘겨보았다.

 

 

“덫을 놓아서 그런거에요!”

 

“하지만 아무것도 잡힌건 없었잖아. 무언가 걸려든 흔적이라도 있었다면 난 오늘

담이에게 크게 혼났겠군. 아아... 다행이다.”

 

“이대로 풀어주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 먹이를 구하지 못하거나 큰 짐승한테 잡히고

말겠죠?”

 

“응... 그게 섭리니까.”

 

“그럼... 내가 데려가 키울래요. 괜찮을까요?”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다니... 그런짓은 하면 안되지~”

 

 

하지만 휘의 눈이 웃고 있었다.

 

둘은 휘가 끓인 뜨거운 차를 마시며 한동안 담소를 나누었다.

 

휘에게서는 후계자가 말했던 느낌은 전혀 없었다.

 

휘님은 정말로 나를 노비나 여자가 아닌 친 여동생처럼 대해주는거야...

 

담이는 한결 마음이 놓였다.

 

그런데 순간, 머리위로 무언가 거대한 것이 떨어지는 굉음이 들렸다.

 

 

“...!”

 

“헉...! 무슨소리에요?”

 

 

휘는 대답대신 땅으로 나있는 움막의 천장 문을 밀었다.

 

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뭐죠? 무슨 일이에요?”

 

“눈사태가 난 것 같아. 문이 열리지 않는군. 와서 같이 밀어줄래?”

 

“네!”

 

 

문은 들썩들썩하면서도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둘 다 죽을힘을 다 해서 한참을 씨름을 한 후에야 문이 열렸고, 엄청난 눈이 움막안으로

쏟아져 내렸다.

 

 

“내가 눈을 치울테니 넌 토끼를 잘 데리고 있어.”

 

 

휘는 한참동안 안팍을 드나들며 눈을 치워내갔다.

 

담이는 바깥상황이 궁금해져 토끼를 안고 움막 밖으로 나왔다.

 

 

“...!”

 

 

먼저 놀란 것은 눈으로 온통 뒤덮힌 절경이었다.

 

그리고 다음에 놀란 것은... 길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눈은 움막 위로도 이미 담이 허리만큼 쌓여 있었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에요?”

 

“움막이 보기보다 튼튼해서 다행이야. 하긴 내가 꾸준히 손질하고 있었으니까. 하마터면

눈에 깔려 죽을뻔했잖아~”

 

“어떻게 돌아가죠?”

 

“지금은 내려갈 수 없어. 이제 곧 해가 질텐데 얼어버린 눈을 헤치고 나가기란 거의

불가능하거든. 거기다 눈사태가 언제 날지도 모르고.”

 

“그럼 어쩌죠?”

 

“내일 해뜰때까지 기다려야지.”

 

“......”

 

 

길이 끊긴 산 속에서 휘와 단둘이 움막신세를 져야 한다니...

 

 

“담이 넌 들어가 있어. 눈사태가 다시 날지도 모르니까 대비를 좀 더 해두는게 좋겠다.”

 

“저도 거들겠어요.”

 

“들어가있어. 추워서 병나는 꼴은 보고싶지 않아.”

 

“......”

 

 

담이가 따뜻한 움막안에서 한참을 보낸후에야 휘는 온 몸이 눈과 땀투성이가 되서

들어왔다.

 

“춥지는 않니?”

 

“네...”

 

“불을 지필 마른장작이 있어 다행이다. 하지만 문을 열어둘 수가 없으니 불을 피우면

 

연기로 가득 차겠구나.”

 

“옷을 말려야 하실텐데...”

 

“괜찮아~”

 

“괜찮기는요. 저도 휘님이 추위로 병나는 꼴은 못 보겠어요. 젖은 옷은 벗으시고 여기

털을 두르세요.”

 

 

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결국 담이가 시키는 대로 했다.

 

담이는 휘의 옷을 잘 펼쳐서 마르기 쉬운 모양으로 해두었다.

 

 

“배고프지 않니?”

 

 

담이가 고개를 저었지만 휘는 몸을 비틀어 구석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먹어. 마른육포야.”

 

“쿡... 여긴 정말 없는게 없네요. 다음엔 뭐가 나올지 기대가 되요.”

 

“후후... 덫에도 걸리지 않는 토끼까지 예서(여기서) 나왔으니 할 말 다 했지 뭐.”

 

“풋...”

 

 

둘은 소리내서 한참 웃었다.

 

그리고 잠시 후 지쳐있었던 둘은 잠이 들었다.

 

......

 

먼저 눈을 뜬 것은 담이었다.

 

이미 해가져서 사방이 온통 캄캄한데, 밤의 정적을 찢고 들려오는 날카로운 소리가

담이를 자극한 것이다.  

 

 

“휘님... 휘님...!”

 

“으음...”

 

“이상한 소리가 들려요.”

 

 

휘가 가늘게 눈을 뜬 순간 다시 한번 그 소리가 들려왔다.

 

휘의 눈이 커지며 놀라는 듯 했다.

 

 

“저게 동물 소리는 아니지 않아요?”

 

“쉿!”

 

“만약 우릴 찾으러 사람들이 올라왔거나 하면...”

 

“쉿!”

 

 

휘는 몸을 날려 담이의 입을 손으로 막았다.

 

잠시 후, 움막근처를 서성이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담이는 휘의 행동이 이해가 안가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손가락으로 움막 위를 가르켰다.

 

누군가 있지 않냐는 표시였다.

 

하지만 휘는 꼼짝도 않고 담이 얼굴만 응시하고 있었다.

 

 

“...?”

 

 

순간 담이는 휘가 입을 맞출것으로 알았다.

 

담이의 입술위까지 내려온 휘의 입술은 그러나 망설이는 듯 했다.

 

안타까운 침묵이 흐르고, 바깥이 어떤 상황인지 모르는 담이는 그저 휘의 무게에 짓눌려

가만히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이윽고 발자국 소리가 사라지고, 휘도 탄식같은 한숨을 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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