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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만나고 싶습니다.

영자 |2022.07.02 01:52
조회 473 |추천 0
우연함이 연속되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혼인신고 서류를 떼러 주민센터에 간날.두가지중 어떤걸 뗄거냐고 묻는 직원에게. 네? 그게 뭔가요? 했던 저는 그때 직원이 2장 다 떼어드릴께요. 라며 준 그 종이에서 30여년간 몰랐던 친엄마의 이름과 나이를 알게 되었어요.태어나면서부터 엄마라는 존재가 없다고 생각했기에,,새어머니는 알지만 처가에는 저라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숨기고 재혼한 아빠이기에 항상 저는 나서면 안되고 숨어야했고 뭔가를 하면 안될것 같은 나였습니다. 그래서 할머니와 평생 살면서 엄마를 찾아야겠다라는, 생각조차 하지않고 살아왔던것 같습니다. 어떤 큰일을 만들면 안될것 같았거든요...할머니와 살면서 동네 남자들의 비밀스런 성추행에도 저는 조용히 지내야했습니다.매일 술먹고 들어와 유리창깨고 밤새 소란을 피우며 겁을 주고 발에 박힌 유리 조각을 밤새 빼라고 협박하던 삼촌으로 밤새 두려움에 떨어도 도움을 요청할수도 없고 저는 그저 조용히 지냈습니다.
그런 제가 친엄마 이름을 알게 되었어요.그 이름 세글자만으로도 저는 손발이 떨리고 주민센터 의자에 쓰러지듯 앉아버렸어요.들고있는 제 손이 부들 떨리는게 느껴지고 그러면서 막 기쁨이 차올랐습니다.엄마 이름이라도 알게 됐구나. 참... 다행이다..... 나도 엄마이름을 알게 됐구나...
그후 저는 엄마의 주민번호로 모 홈쇼핑의 아이디를 알게 되었고그 아이디를 유추해 싸이월드를 찾았어요.그리고 처음으로 본 친엄마의 얼굴.제가 키가 170이 넘는데 저희 엄마도 키가 크시더라구요.쌍가풀없이 작은 눈, 엄마구나... 이 사람이 내 엄마구나..기분이 묘하면서 좋았어요. 정말 좋았어요.
엄마라는 울타리안에 살아본적이 없는 저이지만 그냥 엄마라는 존재가 있구나 라는 생각만으로도 든든하더라구요.
엄마는 아빠랑 이혼하시고 두 딸이 있는 분과 재혼을 하셨고행복하게 살고 계시더라구요.첫 딸은 저보다 한살 아래인데 파도타기를 하다 우연히 딸의 번호가 적힌 글도 찾았습니다.
그리곤 삶이 지쳐 너무 힘든데 도저히 버틸수없다고 생각한 어느 날.아마 새벽 2시쯤이였을꺼예요.저는 엄마의 첫째딸...에게 전화를 걸어 OOO선생님이시냐고 제자인데 찾고 있었다고 이야기를 했어요. 엄마 딸인데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쪽사정을 모르기에 학교선생님이셨던걸 알아 이렇게 이야기를 했죠 .엄마는 아프셔서 통화가 어렵다며 번호를 전달하겠다 하고 끊었습니다.
그리고 며칠후,저희 지역 번호로 전화가 옵니다.강원도의 작은 도시였는데 지역번호로 오니 누구지 싶어 받았더니제 친이모더라구요.아마도 엄마가 너인것 같다면서 아직은 통화하기가 좀 그래서 이모가 한다면서 하셨네요.저는 결혼하고 신랑을 따라온지라 이곳은 연고가 없는데 이모는 저랑 같은 지역. 것도 같은 동네 바로 옆 아파트에서 살고 계셨더라구요.아직 그 두딸은 너라는 존재를 몰라서 제가 기억나기로는 아마 두 딸이 엄마가 본인들을 낳은걸로 알고 있는것 같았어요.  
어떻게 통화를 했는지도 모르게 통화를 끊고나서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나도 이모. 라는 사람이 있구나.평생 나는 살면서 이모라는 말을 해본적이 없는데, 동네분들 다 고모라고 불렀지 이모라고 불러본적이 없는 제가 이모라는 말을 처음으로 해봤습니다.
그리고 얼마후동네에 아주 작은 목욕탕이 있어요.샤워를 하려고 서있는데 누가 탕속에서 저를 보며입모양으로 제 이름을 말하며. OO니? 라고 묻네요.전화통화한 이모를 그렇게 대중목욕탕에서 우연히 만났습니다.옆에 외숙모라는 분도 있었고 얘가 OO야. 라며 반갑게 인사해주시고짧은 대화였지만 가족들끼리 왕래도 좋고 얼마후 남이섬으로 모든 가족이 모이기로 했는데 너도 왔으면 좋았을껄, 이라는 말씀이 듣기만 해도 좋았습니다.엄마와 가까워지는 느낌.엄마를 곧 만날수도 있겠구나.. 라는 기대..
그리고 2년여가 지나가도 엄마는 단 한번도 전화가 없었어요.한번은,, 한번쯤은 전화를 해줄줄알았거든요.나도. 진정 엄마라는 말을 해보고싶었습니다.기다리다보니 나중에는 화가 나더라구요.딸이 이렇게라도 엄마를 찾아왔는데....
두 아이를 제왕절개로 낳고 보니임신중독증이 심해 제왕절개로 저를 낳았다던 엄마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그 자국만 봐도 내가 아이를 낳았구나. 기분이 묘한데엄마는 그 자국을 볼때마다 내 생각을 한번도 안했을까.
엄마가 돼보니 엄마가 더 이해가 되지않았습니다.아무리 아빠와 사이가 좋지않았어도 어떻게 저를 한번도 찾지않았을까요.저한테 전화한 이모가 저희 할머니집에서 100미터도 되지않는 곳에서 슈퍼를 하셨다네요. 동네 제가 자주 다니던 시장입구에서 포목점도 했었구요.
삶이 고달파 어쩔수없는것도 아니였습니다.친엄마의 친정은 그때 정치쪽으로도 높은 자리에 계신분이 있어 나름 윤택한 삶을 사셨던것 같아요. 그때 싸이에서도 유럽등 여행다니며 찍은 사진들도 있었구요.
보기에는 저희집도 나름 윤택했습니다. 모두 공무원이신 우리 가족들,하지만 저는 아니였어요.
제가 필요할때 저는 도움을 청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할머니는 저를 키워주신 아주 고마우신 분이시지만 보듬어 주시고 안아주시는 분은 아니셨어요.  팔이 부러지셨어도 나는 자식들 차는 안타고 다닌다며 혼자 택시를 타고 병원에 다니시는 그런 분이셨어요. 무뚝뚝하시고 고집이 있으셨던 우리 할머니.

정말 멋진 신랑을 만났지만시댁식구들과 힘들때도 있고 경제적으로 둘다 좋지못한 상황이였기에 어려움에 닥칠때도 누군가와 의논하고 싶은데,누군가에게 속상하다고 말하고 싶은데진심으로 이야기하고싶은데 엄마를 찾고보니 더더욱 엄마에게 이야기하고위로받고싶고 투정부리고 싶었는데엄마는 나서지않아주시더라구요.사정이 좋지않아 3년전부터 입은 내복이 짧아지고 작아져 더이상은 안들어간다고 입을수가 없다고 미안해하며 이야기하는 초등학생 딸을 보면 더 못해줘 미안한 마음에 눈물이 나는데,,
학교가야하는데 옷이 별로 없어 제가 예전에 입던 옷의 밑단을 잘라 길이를 맞춰 입혀보내는 지금의 상황에 너무나도 미안하고 눈물나는데,나를 낳은 엄마는 나에 대한 어떠한 미안함도 느껴지지않는걸까요..
그래서 또 우연이라는 힘을 빌어봅니다.
서울에 살고있다고 들었어요.아주 가끔 서울에 오는 저는 내일까지 서울에 있어요.서울에 있는 동안 혹시라도 엄마를 만나지않을까,핏줄을 땡긴다는데 엄마가 나를 알아보지않을까,엄마또래 분들이 지나가면 얼굴을 꼭 쳐다봅니다. 마음같아서는 엄마 이름을 외치며 다니고 싶어요.
그 두딸만 생각지말고배아파 낳은 나도 좀 봐달라고나도 힘들때 좀 안아주고 내 말좀 들어달라고그냥 힘들때 엄마 하고 부르고 울게만 해달라고 힘들때 혼자 꾹꾹 참고싶지않다고, 사람들에게 자로 재임을 당할까봐 무서워 아무것도 못하는게 아니라 그냥 내편에서 누군가가 있어만 달라고, 엄마가 있으니까 괜찮아 라고 한번만 이야기 해주길..제발 우연히 엄마가 혹은 저를 아는 엄마의 가족중 누군가가 이 글을 보고 저인걸 알기를 바라고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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