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 둬야하나 진지하게 고민중입니다
급여도 복지도 근무환경과 심지어 동료들까지도
평생 저에게 이런 좋은 직장 다시는 없을만큼
무서울정도로 완벽하게 좋은데
문제는 제가 전화공포증이 있어요
하루에 적으면 70콜
많으면 200콜 가까이 받아요
제가 신입이라 아무도 콜수로 압박 안주고
오히려 많이 안받아도 된다 할수 있는만큼만 해라 해주시고
압박하는 분위기도 전혀 없어요
다만 남한테 민폐 끼치기 싫어하는 성격에
뺀질 거리는 스타일도 아니라 엄청 열심히 하게 돼요
열심히 해야하는 약간의 완벽 주의자 성향이 있는데다가
전화공포증이 같이 있으니 저도 참 환장할 노릇이네요
사실 전화공포증이 있다는걸 모르고 입사했어요
배달 어플 생기기전에 전화로 음식 주문했잖아요?
그거 잘 못해서 종이에 할말 써놓고 전화하거나
아니면 부모님이 해주셨고
친구랑도 전화보다는 문자로 수다 떠는게 즐거웠긴 해요
그래도 공포증까지는 아니었는데
콜센터 일하면서 공포증이 심해진거 같아요
이제는 전화 밸소리만 들려도 심장이 쿵 내려앉고
얼굴 한쪽이 벌벌 떨려요
근데도 제 손은 착실하게 전화받기를 누르고
제 입은 착실하게 상담사 누구라고 소개하고 있어요
그래서 대본을 항상 써놓고 전화를 받아요
민원인이 할말까지 다 매모장에 써놓고
민원인이 1번으로 말하면 저도 1번으로 안내
2번을 물어보면 2번으로 안내
수십가지의 경우의 수 까지 쫙 다 써놓고 그걸 그대로 보고 읽어요
근데 아시다시피 사람 상대하는 일이 늘 정해진대로만 흘러갈 수는 없잖아요
도로에 보도블럭이 튀어나와 있어서 거기에 걸려 넘어졌다고 당장 나와서 책임지고 무릎꿇고 사과하라고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사람
재난지원금을 늦게 지급한다는 이유로, 전화로 앵무새처럼 같은말만 반복하는 저같이 쓸모없는 것들은 죽어야 한다고 죽이러 가겠다고 살인 협박 하는 사람
자기는 월1000만원 밖에 못 버는 가난한 서민인데(월 천만원이 서민..?) 재난지원금 왜 안주냐고 저한테 열내는 사람
다른 지역 업무를 물어보길래 정중하게 그 지역 콜센터 번호를 안내했더니 저보고 직접 그 지역 콜센터에 전화해서 자기가 궁금한 사항 물어보고 자기한테 다시 전화해서 안내하라며 저를 무슨 개인 비서쯤으로 여기는 사람
시장 바꾸라고 안바꾸면 저부터 가만 안두겠다고 난리치는 사람,
매일 반말로 전화하는 시의원
병원에서 간호사들이 자기한테 치킨 안나눠주고 자기 뒷담화를 했다며 당장 나와서 간호사들을 자르고 혼내달라고 욕하는 사람
기초생활수급자인데 좋은 복지나 바우처 나오면 자기한테 전화해서 알려주라고 하는 사람(선생님께서 자주 복지로 들여다보고 행정복지센터 직원한테 여쭈셔야한다고 해도 그쪽은 불친절해서 싫으니 저보고 알아서 수급자가 받을 수 있는 모든 지원 알려달라고 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한테는 대본이 통하지를 않아요
앵무새처럼
도움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선생님 마음에 깊이 공감합니다, 얘기를 전해듣는 저도 참 답답하고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죄송합니다, 요즘 해당 부서가 어떤 업무로 바빠 전화 연결이 지연되고 있어 제가 직접 연결해 선생님께 오전 중으로 연락 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양해부탁드립니다 등등
사과도 대본으로 써놨어요
사과도 대충 하면 대충 한다고 난리나기 때문에 최대한 처절하고 납작 무릎 꿇는듯한 모습으로 사과하면 그나마 화가 누그러드시고 뒤늦게 본인이 심한 말 해서 미안하다 사과하며 끊는 분도 계시거든요
제가 잘못한거면 당연히 사과드리지만 99.999% 이상은 제가 잘못하지 않은 일로 욕을 먹고 고개를 숙여요
그 와중에 시의원, 공무원들한테도 굽신 거려야하네요
민원인 전화 연결 한번 할때마다 죄인 되는 기분이고 콜센터 상담원이 답변할 수 없는 분야라 연결한건데 주무관님들은 전화받기 싫으니 또 상담원에게 짜증 내시거든요
업무도 계속 늘어서 대본이 벌써 수십장 나와있어요
코로나 관련 상담부터 재난지원금,백신예약,상수도,자동차세,버스및택시 민원접수,복지 상담,그외 시민들의 궁금한 모든 사항과 불편 사항을 상담원이 들어야하니 전화공포증이 생기는건 어쩌면 당연한게 아닐까 싶기도 해요
선배님들 보면 전화받는 자신과, 평소의 자신을 분리시켜놓고 어떤 욕설을 들어도 초연하시던데 저는 심장이 두근거리고 눈이랑 입가가 덜덜 떨려요
선배님들도 처음부터 다 잘하지는 않으셨겠지만 저는 언제쯤 그 경지에 오를까, 그때까지 과연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매일같이 1시간씩 일찍 출근, 1시간씩 늦게 퇴근하며 그날 있었던 콜 들어보며 제가 부족한게 뭔지 반성하고 다음날을 대비해서 대본 적어요
대본을 적고 적고 적어도 늘 불안해요
물론 극소수지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주시는 분들도 계시고 선배님들도 저를 예뻐해주세요
전 회사에서는 텃세 때문에 힘들어서 퇴사했었거든요
지금은 그에 비하면 동료들도 다 잘해주고 동기들도 있고 맛있는 간식도 매일 나오고 월급도 만족스럽고 오후에 30분이지만 낮잠 시간도 있고 장점도 정말 많이 있거든요
참 다 좋은데 전화공포증... 극복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퇴근 후에도 전화 못받은지 제법 됐네요 전화 소리만 들려도 숨이 턱 막히고 심장이 미친듯이 뛰어서 가족들 전화도 안받은지 반년이 넘었어요
24시간 내내 무음 상태네요
이걸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