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1학년, 특별한 거 하나 없던 선선한 가을1교시에 들은 수학 수행평가 준비를 위해 평소보다 조금 이른 시간에 등교를 했었어이제 막 가을이 된 거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선선한 가을 바람에 조금 빠른 걸음을 하고 있는데운동장에서 들리는 작은 기합 소리 .교문 쪽에서 바라봤을 때 가장 먼 곳에 위치한 운동장 한 구석에서 육상부 애들이 몸을 풀고 있더라고, 교실로 갈 수 있는 가장 빠른 문이 그 쪽에 있어서 되게 부지런하다고 생각하면서 열심히 가고 있는데 너무 뚫어져라 쳐다봤는지 눈이 마주쳐 버렸어. 아직도 그 순간을 기억해. 뇌리에 강렬하게 박힌 게 기억인지 너인지 다 잊는다고 해도 그 날은 잊을 수가 없어 육상부는 머리가 짧다는 얇은 고정관념을 찢고 들어온 남자아이 치고는 살짝 긴 머리, 옆으로 찢어진 눈, 깨끗한 피부, 마주친 네 눈동자 속에 있던 나.눈이 마주쳐서 당황하는 바람에 걸음을 빨리 옮겼던 게 그 날 하루 종일 후회가 되더라첫눈에 반했다 이런 건 아니었고.. 그냥 잘생긴 얼굴 조금 더 볼 걸 그런 장난 섞인 후회. 시간이 지나 네가 거의 잊혀졌을 때 교문 위 플랜카드에 적혀있던 국내 학년 별 육상 대회 1학년 1등이었던 너. 사실 네 이름도 몰랐는데 우연히 같이 등교하던 애들 사이에서 유난히 잘생겼던 너와 옆에 있던 네 친구의 대화를 듣고 그게 너였고 네 이름이 뭔지 알게 되었어. 그 날 친구들한테 네 이름을 알려주며 너를 아냐고 물었는데 너 입학 첫 날부터 유명했더라.. 그 때부터 너를 좋아했던 건 아니었고 그냥 여전히 가끔 생각나는 얼굴의 잘생긴 아이. 고등학교 1학년 종업식, 마지막 날이라 서프라이즈를 준비하기 위해 이른 등교를 하고 있는데 복도에서 마주친 너. 아침부터 운이 좋다고 생각하고 지나가려 했는데 네가 물어왔었지. "저기, 너 혹시 현금 있어?" ... 어이가 없어서 똥 씹은 표정을 하고 멍해 있었는데 뒤이어 매점에 카드 계산이 안돼서 현금이 있으면 계좌 이체를 해줄 테니 한 번만 도와달라던 네 말.너는 이후에 무슨 생각을 그렇게 했냐고 했지? 사실 별 생각 안 했어. 목소리가 좋다던가, 매점에서 카드 계산이 안되면 오늘 하루 불편하겠다거나, 역시 좀 춥다, 현금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잡다한 생각들. 바로 계좌로 돈을 줬음에도 불구하고 고맙다며 번호를 달라는 네 말에 조금 들떴어.어쩌면 너와 조금 친해질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주어진 기회를 놓치는 편도 아니고 네가 꽤 마음에 들었어서 그 날을 계기로 너와 조금씩 친해졌어. 고등학교 2학년 같은 반이 된 이후로 더욱 친해졌지 그 중 내가 널 좋아한다고 깨달은 날은 아마 그 날 일거야. 소설 같은 짝사랑이었지만 소설처럼 옆자리에 앉았던 건 아니었고.. 6교시 국어 시간에 점심 먹고 다들 조금씩 졸고 있었는데 이상하게 잠이 안 와서 운동장을 멍하니 보고 있었는데 문득 네가 뭐 하고 있는 지 궁금해져서 눈을 돌렸을 때 턱을 괴고 졸고 있던 너.홀린 듯이 계속 보고 있었는데 시선이 따가웠는지 금방 눈을 뜨곤 입 모양으로 왜? 왜 보고 있었어? 라며 눈 웃음을 짓는 너. 그때부터 좋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처음 알기는 했어 너를 좋아하고, 조금 오래 갈 거 같다고. 주어진 기회를 놓치는 편은 아니지만 기회를 만드는 편은 또 아니라 별 소득 없이 고등학교 3학년이 됐고 같은 반도 아니었으며, 사적으로 만나는 사이도 아니었고 수능 준비로 많이 바빠서 3학년 땐 별 얘기도 못 했던 거 같네 졸업식 날 사람들한테 둘러싸인 너와 인사를 하고 금방 자리를 빠져나와 처음 만났던 날을 아련하게 상상하고 있었는데 너는 내게 기회를 줬었지 "우리 계속 연락하고 지낼 수 있을까?" 환한 눈 웃음을 하며 물어보는 너한테 내가 다른 말이나 할 수 있었을까? 그럴 생각도 없었지만.가끔 대학교 근처에서 술을 마시기도 했고, 시험 기간이 겹치면 같이 공부도 할 만큼 너와 친해졌을 때 많이 힘들었어. 좋아하는데 말도 못하는 내가 바보 같았고, 그래서 조금 조급하게 전했던 것 같아. 널 처음 만났던 그 가을에 어디었는지 기억도 안 나는 길에서. 네가 아닌 네 뒤에 있던 나무를 보며 엉성하게 한 고백. 조금 후회가 돼. 참을 걸 그냥 묻어둘 걸. 하지만 다시 그 때로 돌아간다 해도 너에게 고백을 하긴 했을 것 같아. 그때는 네 눈을 보며 했지 않을까.
지금은 취직도 하고 그럭저럭 살고 있어. 연애도 몇 번 했어. 헤어지고 나면 너인지 네 얼굴인지 네 생각이 났지만, 그래도 잘 살고 있어. 네 소식 들었어. 조금 많이 멋진 여자와 결혼 한다고. 축하해. 너무 잘 됐어. 너한텐 내 기억이 남아있을 지도 잘 모르겠어. 많은 시간이..? 지났으니까. 축하해 잘 살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와서 너무 다행이야. 너 운동 그만 뒀다는 소식 들었을 때 많이 걱정했어. 사실 잘 모르겠어 너를 여전히 사랑하는 거 같아.시간이 지나면 잊혀지고 희미해 질 줄 알았어. 근데 오히려 진하고 깊어진 거 같아.너를 사랑하는 거 같아. 사실 잘 모르겠어 미련인지 사랑인지 모르겠어. 가을만 되면 네가 생각나.사실 잘 모르겠어 예고도 없이 네가 생각나 그 날 하루를 망쳐.
음 다 적고 보니 조금 민망하네요. 어떤가요 되게 소설 같지 않나요?^^ 당연함 소설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