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빠는 12남매의 막내였다
그중 3형제는 전쟁 등의 이유로 아기 때 사망하고, 9남매의 막내로 자랐다
젖도 나오지 않는 늙은 노모에게 태어나
형제들 다들 건장한데
아빠만 작고 왜소했다
조카와는 단 한 살 차이
그 시절 아빠네 집은 부유해 형제들은 다들 교육 다 마치고
번듯한 직장 생활하며 한 살 어린 조카는 대학교까지 졸업할 때
아빠는 태어나고 곧 아빠의 아빠도 돌아가시고
막내의 사랑보다는 방임과 함께 자랐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아빠는 정을 고파하기도 하고, 유달리 정이 많았던 것 같다
자유로운 성격 탓에 가정적이진 않았다 친구를 더 좋아했었지
내가 아주 어릴 땐 마당 있는 넓은 집에 꽤 괜찮게 살았다
뭐 근데 오래 유지하진 못했지
그래도 아빠는 내 동생이 태어나고 술도 끊고 직장도 다니며 열심히 살았다
엄마 아빠는 밤이고 낮이고 정말 열심히 살았다
그런데 우리 집은 가난했다
그렇지만 나는 가난을 잘 느끼진 못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집엔 컴퓨터가 있었고
중 1 반에 한두 명 있을까 한 핸드폰, 그 한두 명이 나였다
그땐 몰랐는데.. 지금 생각하니 엄마 아빠는 핸드폰이 없었다 그 후로도 한참.
심지어 아빠는 돌아가실 때까지 2g 폴더폰이었네
난 mp3며 전자사전이며 새로 나오는 신문물은 다 사달라고 졸라댔다
엄만 다 사줬다
종합학원이니 단과학원이니 보내달라고 조르기도 했었다
엄만 곤란해하는 눈치였지만 내 징징거림에 결국 보내주었다
반찬은 항상 동생과 내가 좋아하는 고기반찬.
우리 집 형편에, 엄마 아빠 벌이에,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나이 들어 이제서야 내 스스로 밥벌이하고 사니 깨달았다
사춘기 때는 아빠가 너무 싫었다
술 먹고 들어올 때면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고
아빠가 사라졌으면 하고 기도한 적도 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지금은 아빠가 너무 그립다
아플 때 아빠가 죽을 끓여줬던 적이 있다
그 따뜻함을 잊지 못해
나는 아빠를 영원히 사랑할 것 같다
우리 아빠는 돌아가실 때까지 2g 폰을 썼다
비가 오면 비닐봉지에 핸드폰을 넣어 다녔다
난 6개월이면 갈아치우던 핸드폰을 아빠는 평생 썼다
하루 용돈 5천 원으로 담배 한 갑 살 수 있으면 그만인 사람
그냥 엄마가 시장통에서 아무거나 사다 주면 그대로 입는 사람
시장표 지갑을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십 년이 넘도록 쓰는 사람
신혼여행에서 돌아올 때
나름 좋은 지갑을 선물해 드렸는데
아빠는 십 년이 넘은 너덜너덜한 지갑만 쓰다가
군대 가 있는 동생이 제대하니 새 지갑은 동생에게 주더라.
내가 아는 사람 통틀어
제일로 허세가 없는 사람
그렇지만 마음은 누구보다 풍요로웠던 사람
우리 아빠.
사실 오늘 판에서 자식을 위해 목숨을 내놓는 게 가능하냐는 글을 읽었다
댓글은 잘 안 쓰는데 나도 모르게 장문의 댓글을 쓰고 있더라
그런데 문득 아빠 생각이 났다
아빠는 1년간 투병하다 하늘나라로 갔기에
아파하던 모습만 자꾸 생각나서
아빠 생각하는 게 나 참 힘들었거든
그런데.. 아빠도.. 내가 내 아이한테서 받는 이 행복감처럼..
나란 존재로 인해서 분명 기쁜 순간이 있었겠지?
아빠도 마냥 힘들기만 하다가 떠난 삶은 아니었겠지?
이런 생각을 하며 위안 아닌 위안을 받고
아빠 생각하는 게 조금은 덜 힘들더라고.
나는 따뜻한 사람을 만나고
또 아기를 낳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며 잘 살고 있어.
아빠 아들도 번듯한 직장 다니고.
엄청 풍족하진 않지만 그래도 다들 많이 여유로워졌어.
사실 멀지도 않은 곳에 아빠가 있는데..
자주 찾아가지도 않고, 제사도 안 지내고.
그래도 너무 섭섭해하지 마.
늘 그리워하고 있으니까..
제사 안 지내는 것도 너무 노여워말구.
난 아빠가 귀신으로 와서 제삿밥 먹는 것보다
분명 어느 부~~잣집의 아주 귀~~한 외동아들로 태어나
귀한 대접 받으며 잘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할거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