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터지기 직전 미국으로 건너가 그대를 보고 꼭 2년하고 6개월만에 다시 만난 그대.
일이 잘 풀리지 않아 빚을 2천만원을 지게 됐고 자세히 얘기하지 않아 내 사정을 잘 몰랐던 그대.
그저 보고싶다는 한마디에 계획을 수정해서 일단 날아온 우리.
그래서 그렇게 내가 미웠던가.
빚이 있어서.
당황스러울 정도로 한 번을 고운 시선으로 봐주지 않고 그저 미워서 그저 원망스러워서 어쩔 줄 모르는 그녀.
그 와중에 내 남편은 이쁘고 가여운지 끊임없이 챙긴다.
안다.
사위라서, 내 남편이라서 잘봐달라고 챙겨준다는 것을.
하지만 어쩔 땐 그냥 제멋대로다.
이번에 그 억지스러움의 끝을 본 거 같다.
내가 아무리 잘해도 그건 당연한 거고 고마워 하질 않는다.
나도 성인되기 전부터 모든 것에 감사하고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데.
왜 악만 남고 고집만 남은 건지.
성격이 정말 이상해졌다.
그러면서 나보고 이상하다고 한다.
말대꾸를 했기 때문에.
그리고 맞는 말이기 때문에.
어떨 땐 한없이 연약함을 드러내며 자책하는 척을 한다.
이제 자신은 노망이 난 것 같다며, 떨리는 손을 애써 감추며.
마음이 너무 아프고 슬프다.
하지만 나는 안다.
결정적일 때가 되면 모든 잘못을 나에게 뒤집어 씌운다는 것.
잘해도 더 잘하지 못한 것을 책망.
그리고 당연시.
뭐하나 놓치면 물고 뜯고 아주 난리가 난다.
왜 본인 성질 못이기는 것을 내가 묵묵히 감내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
이럴 때 보면 언니가 엄마 성격을 빼다 박은 게 보인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모든 것을 토해내고 받아 주길 바라는 억지스러운 마음.
이제는 알겠다.
내가 어리석었다.
내가 그들에게 너무 똑똑하고 따지고 드는 성가신 존재인 것이다.
문제의 근본을 바꾸고자 했던 내 노력은 예민한 성격이 되었고,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나는 눈물만 흘릴 줄 아는 세상 물정도 모르는 멍청이가 되었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적지도 그렇다고 많지도 않은 돈 2000만원.
갚아 달라고 한 적도 죽는다는 소리를 한 적도 없다.
쉽지 않다는 건 안다.
그렇다고 좌절할 정도는 아니다.
능력과 의지가 없는 것도 아닌데 그저 자신의 기준으로 잣대로 평가하고 폄훼하고.
늘 말한다.
나는 본인을 짜증나게 한다고.
상황을 돌이켜 보자.
퇴근 시 전화가 왔기에 물어봤다.
저녁식사를 드시겠냐고.
먹지 않는다 한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쌀을 씻어 놓았다.
집에 오니 언제 그랬냐는 듯, “밥해, 국 끓여” 명령이다.
이런 하대에 익숙하지 않고 익숙해질 마음도 없지만 딸이라는 명목으로 감내한다.
누군가를 짓밟고 통제하고 명령하고 싶어하는 욕구가 드러나는 부분이다.
묵묵히 밥을 하고 테이핑을 하고 안마를 하고 풀코스로 보살폈다.
고맙다는 소린 당연히 없다.
돈 버는 자의 당연한 권리인가?
그렇다면 두고 보자.
안마가 끝나고 밥 달라 하기에 대령했다.
남편도 찌개 냄새에 군침이 도는지 한 그릇 들고 온다.
엄마, 흐뭇한 표정이다.
아니 제가 끓인 찌개인데요.
남편은 맛있었는지 한 그릇 더 퍼온다.
그와중 엄마의 관심이 지대하다.
많이 먹네 늦게 먹네 어쩌네 소리 한마디 없다.
그저 이뻐 죽을 뿐.
남편이 하도 맛있게 먹어 나도 한 숟가락 뺏어 먹었다.
한 솥 끓이고 밥 이랑 처음 먹어보니 정말 맛있긴 했다.
냄비 밑바닥에 조금 남아서 내 몫으로 싹싹 긁어왔다.
대뜸 날카로운 소리가 터져 나온다.
“너는 왜 먹어?”
좋게 해석될 리 만무하다.
억울했다.
저번에도, 그 전에도 끓이고도 못 먹고 이번이 처음 내 몫으로 퍼온 찌개였다.
마음이 상했다.
한번을 좋게 말하려 노력하지 않았으면서.
순간 울컥해서 나는 왜 먹으면 안 되느냐고 대꾸했다.
나 더러 예민하다 한다.
이래서 내가 저녁에 다같이 먹을 때 아니면 안 먹으려 한다.
매번 싫은 소리를 농담 인양 얘기한다.
“지금 왜 먹어.”
“살찌게 왜 먹어.”
“얼마 없는데 왜 먹어.”
내가 끓인 찌개에 소유권이 있는 줄은 몰랐는데.
잠시 언쟁이 오간다.
왜 말을 항상 그런 식으로 하느냐고, 그러니 나도 참지 못하고 울컥한다 하니
전매특허 모르는 척 잡아떼기 시전하신다.
“내가 언제? 몰라.”
세상에서 자신이 아는 단어 중, 어휘 중, 가장 상대의 마음을 후벼 파는 말을 하고 저 한마디면 본인은 면죄부가 된다.
기억이 안 난다고 잡아떼고 실제로 잊어버리면 없는 일이 되는 거니까.
기억력이 좋은 사람만 평생 상처가 되고 입밖으로 낸다 하더라도 본인에게는 없는 기억이니 피해자만 바보가 되고 예민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평생을 언니와 비교하며 나에게는 단 것, 언니에게는 쓴 것만 주어 몰랐다.
언젠가는 나에게도 남과 비교하며 쓴 것만 줄 거라는 것을 예상 했어야 했는데.
내가 안일했다.
내가 멍청했다.
아직도 생각한다.
내가 알던 그 멋진 엄마는 어디 갔을까.
아니면 기억이 왜곡된 것일까.
좋은 것만 아름답게 기억하려는 뇌의 작용일까.
내가 알던 엄마는 그 누구보다 현명하고 강단 있고 멋있었다.
욱하는 성격은 그때도 있었지만 사과할 때를 알고 감사할 때를 아는,
본받을 것이 참 많은 어른이었다.
지금은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다.
언제 어느때 본인의 감정이 뒤틀려 꼬투리 잡을지 모르기 때문에.
내 나이가 어느덧 30대 중반이다.
클만큼 큰 머리는 합당하지 않은 상황을 쉬이 넘기지 못한다.
하지만 엄마는 여전히 10대의 어린 나로 생각하며 전혀 존중해 주지 않는다.
여전히 통제하려 들고 내리찍어 누르려고 하지만 쉽지 않은 상황에 온갖 짜증과 꼬투리를 잡는다.
언제나 감사의 삶을 살고 있다고 한다.
이 나이에도 일하게 해주심에 감사하고, 건강하고 기타 등등.
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감사해 하지 않는다.
원망, 짜증, 분노...
그중 가장 두드러진 감정은 원망이다.
“너 때문에 내 잔고가 이것 밖에 안 남았어.”
“너 때문에 내가 갚아야 할 카드 빚이 이만큼 이나 늘었어.”
“너 때문에 자유롭게 어디 가지도 못하고.”
“너 때문에 ...”
미안하다 했다.
수십 번을 미안하다 했다.
후회도, 자책도, 끝도 없이 했다.
그리고 우리의 가능성에 대해 하나하나 짚어가며 설명해줬다.
걱정하지 말라고.
큰일이 아니며 충분히 해결하고도 남는다고.
의도한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엄마가 나의 빚 일부를 갚아주겠다 하였고,
오는 도움 거절하는 성격은 아니기에 감사히 받았다.
하지만 그 결과가 이런 감정 쓰레기통 역할 일줄 알았다면 받지 않았을 것이다.
한날은 그랬다.
그저 욕하고 싶으니까 닥치고 들으라고.
내 귀를 의심했다.
그리고 돌이켜 보면 이렇게 선명한 진심은 처음인 듯 싶었다.
반평생을 남편 뒷바라지, 이혼하고는 딸 뒷바라지.
억울할 법도 하다.
이해한다.
하지만 보상을 요구하듯 감정을 닥치는 대로 토해내는 것에 대한 면책부는 될 수 없다.
세상에서 가장 아까운 보물이라며.
거짓말.
당신에게는 그저 흘러가 버린 인생에 대한 원망을 토해낼 대상이 필요한 것 뿐이다.
내가 얼마나 하찮게 보였으면 나 스스로 남편에게 을이 되라고 요구할까.
그렇지 않으면 버림 받을 거라는 이야기까지 서슴치 않고 한다.
왜 딸인 나보다 사위의 끼니를 걱정하며 차려주지 않으면 한소리 들어야 하는지.
한국인도 아닌 외국인 서방을 왜 고리타분한 한국의 이상한 정서로 대하려고 할까.
매번 우리 모두 불편한 것을 본인의 욕심에 따라, 본인 판단에 따라 요구한다. 하라고 한다.
누구에게 보여주고 싶은 걸까.
10년지기 친구이자 연인이었던 우리 부부.
서로 알고 맞춰간 세월이 10년.
이제 본지 한달여 남짓한 시간에 그대가 어째서 나보다 남편을 더 이해한다는 듯 구는 것인지.
이래해라, 저래해라.
지나친 간섭이라고 생각지도 않고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남의 부부 사이에 끼어들어 조종하려 하고 나서려 하고.
내가 어느 날 이혼을 한다면 그것은 당신 탓이 클 것이다.
당신 때문에 날카로워진 내가 남편과 자주 부딪히게 된 것을 당신은 알지 못할 테니까.
지금도 남편과 나는 당신이 집에 있으면 죽은 듯이 있는다.
애처가 남편이니 당연히 나를 우선 시 할 것인데, 왜 당신은 그에게만 잘 보이려고 애 쓰는지.
내 남편이 원하는 것은 오로지 나의 안위와 행복 뿐인 것이 이해가 안되는가 보다.
그러니 내가 기대고 의지하는 것은 "가족"이 아닌
내가 만든 가족,
말이 통하고 날 이해해 주는 남편인 것이 당연하다.
그것에 또 질투하고 질책하는 당신들.
"남편 너무 믿지 말아라."
"가족 얘기하지 말아라."
"그래도 남이다."
지긋지긋하다.
당신들이 행복하지 않은 이유를 나에게서 찾는 건 너무 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내가 당신들보다 행복해 보여서?
나는 절대 행복하기만 한 것이 아니다.
그저 가진 것에 만족할 줄 알고 비교하지 않으니 자연스레 불만이 줄어든 것뿐이다.
실수를 하되 멈추지 않고 돌파구를 찾아낼 줄 아는 정신력이 있을 뿐이다.
이렇듯 나의 가족들은 늘 나에게 크나큰 가르침을 선사한다.
이렇게 되지 말아야지 라는..
그래서 더욱더 멈추지 않고 발악하게 하는 것들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