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중학교 2학년 때 어이없는 이유로 잠시 학교폭력을 당했었다
지금은 솔직히 ‘그랬었다’하고 좀 아릴 뿐이지만, 좁은 화장실에서 이름도 기억나지않는 5-6명의 동급생들을 방패로 세워두고 저 혼자 나의 오른쪽 뺨만 약 30회 이상 때렸던 그 아이는 기억에 선하다.
이유란, 그저 지가 훔친 가방을 내 친구가 목격하고 담임 선생님께 말씀드렸었는데, 목격한 걸 선생님께 전했단 내 친구가 ‘내가 꼰질렀다’고 지목해서.
나보다 한참 체구가 작았고, 당시 이모부가 합기도를 가르쳐주셔서 당장에라도 때려눕힐 수 있었는데 발가락 하나도 움직이지 못할만큼 공기는 날 눌렀고 그렇게 얼어붙은 채 맞기만 했다.
그 날 저녁 부은 뺨으로 하교하고 엄마 앞에 마주했을 때 동그래진 엄마 눈을 보고 그저 ‘싸웠다, 나도 쥐어박았다. 걱정마라’ 거짓말을 하곤 겨울 방학 내내 악몽에 자살까지 검색했던 나였다. 참 어리고 불쌍한 나였다.
개학이 일주일즈음 남았을까. 여지없이 나를 눕혀두고 침을 뱉던 그 얼굴들을 마주한 악몽에서 깼을 때, 발악하듯 아침을 차리고 있던 엄마와 뉴스를 보던 아빠 앞으로 달려나가 엉엉 울며 학교 가기싫다 떼썼다. 제주도답지 않게 눈이 내리고 하얬던 겨울인게 기억난다.
자초지종을 들은 부모님은 당장 담임 선생님께 연락을 해 만나고 싶다 상담을 요청했지만 담임은 멍청하게도 ‘네, 아버님 날짜를 잡죠!’라 대답했더랬지.
화가나도 티내지 않는 무서운 얼굴을 한 우리 아버지는 ‘그럼 교장선생님과 면담하겠습니다’ 라고 했으며 정신없이 바로 학교에서 담임과의 상담이 이루어졌다.
사건 경위를 거의 다 작성해갈때 그 아이가 왔고 뒤 이어 깡마른 아저씨가 문을 박차고는 빠른 걸음으로 내 앞에 달려와 쾅 소리나게 무릎을 소리나게 꿇었다. 자기 탓이란다.
알콜 중독자였던 그 아이의 아버지, 생계를 책임지는 어머니가 뒤이어 오고. 우리집은 평범하고 부족한 것없이 화목한 가족.
누가 잘못인거지 라는 엉뚱한 생각이 잠깐 스쳤고 웃기게도 그 아이를 잠깐 동정했었다.
그 뒤의 이야기도 좀 더 남아있지만
결국 나는 어찌되었든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갔고 지금 이 순간 그 아이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이상하게도 폭력의 순간 그 옆에 있던 다른 가해자의 이름은 선명하네 민주야.
제주도 제주시 ㅅ중학교. 2학년, 제일 안쪽 교실. 우리는 남녀 분반이라 짝수는 여자 홀수는 남자반이던가.
나를 배신했던 친구 ㅎㅇ이는 상담에 오지도 않았다 그게 제일 아팠다. 그 친구를 지키려고, 걱정돼 담임한테 전날 따로 전화까지 걸었던 난데.
‘더 글로리’를 보니 나는 약과인가 싶을 정도로 잔혹했다. 저런 아이들이 어떻게 세상에 나왔다 부정하고 싶었다. 그럼에도 내 경험을 견주어, 보기 힘들다거나 하는 정도는 아니였지만(내가 트라우마를 극복해서일까) 다른 피해학생들은 어떨까 맘이 아리고 너는 어떨까 하고 궁금하기도 했다.
니 이름은, 이글을 쓰는 지금 기억나지 않지만 외국에 살고 있는 내가 한국 본가에 가서 졸업 앨범만 뒤져봐도 확인할 수 있겠지? 왜 기억이 안날까.. 드라마 보는 내내 니 이름 기억해내려고 애썼거든..
강씨였다는 것만 기억이나. 키가 큰 남자친구를 늘 방패 삼아 웃긴 키스놀이를 했던 것도.
난 잘살아. 너도 그러겠지만, 그러길 바라지 않는것도 아니지만, 넌 기억해야겠지? 나쁜 짓을 하면 안된다는거. ‘학교폭력’이란 말에 매번 고통스럽길 바래. 부끄럽고 지우고싶을 만큼. 그 무엇보다 너의 삶이 부끄러웠길 바래. 너의 멍청한 어린 시절과 친구들을.
처음 써보는 판 글은 생각보다 많은 고민이 필요했다. 누가 읽긴할까? 그보다 이게 무슨 뒤늦은 한풀인가 하고.. 무엇보다 난 더 글로리를 보며 니 생각은 했는데
동은이처럼 널 증오하며 살진 않았으니까.
그저, 같은 연진이를 증오하고 있을 누군가를 위해, 그만 아파하고.. 다른 연진이가 나타나질않게, 세상도 변해가고 있으니 연진이들이 무서워할 수 있는 세상이길..
제발 너희들이 이글을 봤으면 좋겠다. 민주, 너, ㅎㅇ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