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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데, 열심히 사는 것도 아닌데 왜 생각없이 애 낳아요?

ㅇㅇ |2023.02.26 15:46
조회 1,305 |추천 6
베스트에 있는 애 셋인데 하나더 낳을지 말지 하는 글 보고 화나서 적음.

나 장녀고, 판에서 보이는 전형적인 시댁 등쌀에 못이겨서 아들낳으려고 만들어진 딸딸아들 남매임. 근데 엄마 원망 안함. 우리 엄마 진짜 우리 셋 열심히 키우고 차별안하고 딸들이 최고라고 하면서 친구들이랑 외갓집 친척들한테 인생 최고의 보물이 큰딸 작은딸이라고 하면서 웃는 사람임. 남동생도 지금 중2인데 순하고 누나들이랑 노는거 제일 좋아하고 엄마한테 혼나면 누나들한테 와서 궁시렁거리다가 셋이서 떡볶이 시켜먹으면서 깔깔거리는 그런 애임.

난 가난한거랑 비교적 풍족한거랑 둘 다 겪어봤는데, 네이트판에 주기적으로 올라오는 ‘저희는 빠듯하긴 해도 화목해요’ 이런거 없음.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빠가 회사 사업 해보겠다고 회사 그만뒀는데, 사업으로 버는 돈이 진짜 적었고, 아빠 11to4함. 오전 11시에 나가서 오후4시에 들어옴. 건강문제 있거나 그런거 아님. 엄마는 전업인데 생활비라도 벌어야한다고 부업함. 우리집 그때 진짜로 휘청했고, 엄마 학자금 대출도 안받아본 사람이었는데 나랑 여동생 수학 학원비에 피아노 학원, 막내 유치원비까지 아슬아슬한 상황 오니까 자기 이름으로 된 보험에서 대출받아서 학원비 결제해줌. 우리 영어를 그때까지 엄마가 직접 다 가르치고 있었는데, 아는 아줌마가 자기 딸 과외 부탁해서 엄마 경력단절 11년만에 영어과외 시작함. 우리 엄마는 집안일 전부+애 셋 캐어+영어 과외 5개 이 생활을 2년동안 함. 엄마가 과외로 벼랑 끝에 있던 우리집 겨우 살린거임. 엄마가 과외하다가 제대로 학원 차릴때까지 아빠 사업 잘 안됐음.

우리집 객관적으로 가난했음. 이차성장 하면서 몸이 컸는데, 초5때 패딩 못사서 동생이랑 서로 번갈아 입음. 5학년때부터 발 안커서 중1때까지 운동화 하나로 신었음. 용돈도 한달에 이천원씩. 과일? 사과, 배, 감 이런거그냥 사치품이었음. 유행하는 간식같은 것도 엄마가 과외하던 애 중에 좀 잘사는 애 집에서 매일 주고 그랬는데, 엄마 그거 하나도 안먹고 다 가져왔음. 젤리, 초콜릿 이런거였는데 우리 셋은 그런거 잘 못먹으니까 엄마가 가져올때마다 환장하고 달려들었음.

중학교 올라가면서 롱패딩 유행했는데, 애들이 입고오는 브랜드 롱패딩보고 와서 나도 갖고싶다고 졸라서 사러갔다가 가격보고 포기함. 엄마가 나 달래고 달래서 기성복 파는 매장에서 천으로 된 안에 털도 없는 얇은 긴 패딩 샀는데 어린마음에 부끄러워서 안입는다고 왜 사라고 하냐고 난리치다가 집 와서 울고 다음날 그거 안입고 학교 갔다오니까 엄마가 그거 환불하고 최대한 내가 원하는 모양 찾다가 행텐꺼 롱패딩 사다놨었음. 나 아직도 롱패딩만 보면 그때 생각나고 엄마한테 미안함.

학교도 그냥 평범한 동네 평범한 학교였는데 거기서도 애들 용돈이나 돈쓰는거 신기해보이고 부러웠음. 학교 끝나고 편의점 가서 불닭먹는 거 보고 나도 먹고 싶어서 집었다가 내 용돈 절반 넘는 돈이라 내려놨고, 컵라면 같이 먹을 때도 너무 배불러서 큰거 못먹겠다 이런 거짓말 하면서 작은컵 먹음. 학원 올때 애들이 들고오는 학원 밑 청자다방 음료수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음. 애들도 다 나 돈없는거 알거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이었고, 매일 빨리 고등학생 돼서 알바하고싶다는 생각만 했음.

이때 우리집 맨날 나랑 동생이 용돈 올려주라고 조르고, 엄마는 학교 갔다 학원갔다 집 와서 밥먹는데 용돈이 왜 더 필요하냐고 하다가 한달 있다가 올려주겠다고 하면서 미루고, 옆에 있던 아빠가 갑자기 껴서 그럴거면 용돈 다 내놓으라고 소리지르는 거 반복이었음. 화목? 가족 구성원 전부 공자 맹자같은 성인이면 이럴때도 화목하겠지. 근데 그런 가족이 열 가족중에 몇 가족이나 있을까. 화목 발끝에도 못미친 이 생활이라도 유지할 수 있었던건 엄마가 자기를 갈아넣은 결과였음.


이 상황에서 엄마가 과외하다 학원 차리고, 11시에 퇴근하고 그랬음. 그러다가 학원이 나 중2 올라가는 겨울부터 갑자기 잘돼서 점점 집안 형편이 폈음. 난 그걸 못느끼고 있다가,
겨울방학 때 엄마 한숨소리 듣고 아빠 악쓰는 소리 들을 각오 하고 저녁 먹으면서 엄마한테 운동화가 다 헤졌다고, 새로 사달라고 했음. 역시나 아빠가 또 시작하길래 그냥 가만히 밥만 먹었는데, 엄마가 내일 사러 가자고함. 너무 좋아서 다음날 아침에 웃으면서 엄마 차 탔는데 항상 가던 아울렛 방향이 아니고 다른 길로 가는거임. 처음 가보는 건물 지하 주차장에 주차하길래 아울렛도 못 갈만큼 형편이 안좋아졌나 싶었음. 근데 그날이 내 인생 처음으로 백화점 가본 날임.

엄마가 나이키 매장 데려가서 사고 싶은 거 고르라고 했는데, 내가 또 가격표 보고있는거 엄마가 보고 직원한테 학생들한테 제일 많이 나가는거 보여달라고 해서 그걸로 사줌. 나이키 코르테즈였는데, 난 그 운동화 아직도 잊어버릴 수가 없음. 그렇게 행복할수가 없었음. 그러고 이제 집 가나 했는데 엄마가 아무 말 없이 디스커버리 데리고 가서 나랑 동생한테 롱패딩을 새로 사줌.. 애들이 입고다니는 거 보고 진짜 갖고싶다고 생각했었는데 나랑 동생 각각 하나씩 사줌. 양손에 쇼핑백 들고 둘다 입 찢어져라 웃고있는데 엄마가 지하로 내려가서 난생 처음보는 음식들을 사서 먹고 가자고 함. 지금 생각하면 유부초밥이랑 딸기 크레페 같은 별거 아닌 음식인데.. 너무 행복했음. 이게 그냥 기억도 안날 때부터 일상인 애들도 있겠지만 나는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기억 중 하나임.

이후로 형편이 많이 좋아져서 고등학생 때 엄마 차도 벤츠s클래스로 바꾸고, 좋은 아파트로 이사도 갔음. 나 재수하고 올해 대학가는데 서울에 오피스텔 얻어주고 생활비도 되게 넉넉하게 받음. 엄마 방학 기간이나 연휴 기간에 돈 걱정 안하고 다같이 여행도 가고 좋은 호텔 가고, 새로 나온 영화 있으면 불법 사이트에 올라올 때까지 안 기다리고 영화관 가서 보고, 4DX, SCREENX 이런 상영관에서 하는 영화도 봄. 내 상황이 나아지니까 다른 애들도 눈에 들어와서 조금씩 조금씩 후원도 하고있음.

이렇게 집 형편이 나아지니까 동생들이랑 사이도 더 좋아지고 엄마랑 우리랑 사이도 엄청 좋음. 엄마가 차 바꾼 거 빼고는 자기한테는 돈 거의 안 쓰고 다 우리한테 퍼주는 듯이 해줘서 우리 셋 다 엄마 엄청 챙기고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있음.

진짜 아빠 없으면 집에서 웃는 소리밖에 안남. 아빠는 사업 시작했을때부터 지금까지 엄마한테 생활비 일체 안줌. 모든 교육비도 다 엄마가 냄. 이래놓고 자기가 아직도 가장인줄 알고 온 가족한테 소리나 지르고 엄마한테 집에서 살림하는 전업주부 역할까지 강요하고 있음. 맨날 하는말이 키워준 값 해라, 너네 다 나한테 용돈 3년은 주고 시집장가 가라 이런 말임. 이제는 그냥 엄마부터 우리까지 싹 다 헛웃음도 안짓고 무시함.

우리 엄마는 객관적으로 남들이 봐도 열심히 살고 있음. 오후2시에 출근해서 11시 넘어서 들어오고, 집에 와서까지 전화로 학부모랑 상담하고 그러고 나서 수업준비함. 그러고 아침에 일어나서 동생들 깨워서 아침 먹이고 학교 데려다줌. 이렇게 십년 가까이 살면서 한번도 그만두고 싶다, 그만해야겠다 한적 없음. 항상 돈 열심히 벌어서 자식들이랑 쓰고 싶다, 너네한테 건물 하나씩 주는게 인생 목표다 이렇게 말함. 그래서 우리 삼남매 정말 엄마 거의 신격화함.
나랑 내 동생은 엄마처럼 못해줄 것 같아서 애 못낳겠다고 할 정도임.

이렇게 길게 엄마자랑같은 글 쓰는 이유가 뭐냐면, 우리 엄마처럼 열심히 살거 아니면 가난하면 애 낳지 말라고. 가난한데, 열심히 안 살면 자식 앞길 막는 부모 될 확률이 큼. 내가 살아본 바로는 돈 없어도 사랑으로 애들이 크긴 함. 난 엄마가 저때 날 사랑한다고 느낀 적이 많았고, 행복하기도 했음. 근데 돈이 없어서 생기는 상황들이 점점 쌓이면 사랑으로 극복이 안됨. 그니까 제발 애 낳는거 신중히 생각하고 낳았으면 열심히 살아서 자식한테 짐이라도 되지 말아야함.

추천수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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