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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 싫다

LISSI |2023.03.19 00:48
조회 102 |추천 0
< 자유, 평등, 정의: 아침이 싫다 >

아침이 싫다.
어제 새벽 5시에 겨우 잠이 들었다. 자고 일어나고 나면 등이 너무나도 아프다. 정신과에서 주는 약이 없으면 잠을 잘 수가 없다.
눈을 뜨면 나도 모르게 신음소리가 터져 나온다. 온몸이 무거운 갑옷을 입은 것처럼 힘들다. 약을 먹고 자도 이런 갑옷은 구속복처럼 매일 아침마다 나에게 입혀져 있다. 이 갑옷을 벗으려면 아침마다 30분을 멍하니 있어야 한다. 이런 시간 들이 벌써 3년이 다 되어간다.

자꾸 쉬어지는 한숨들... 오늘은 판결을 들으러 간다. 나를 이토록 힘들게 했던 그 사람의 마지막 결론을 들으러가기 위해 나는 어제 수면제를 먹지 않았다.

7시, 비명소리 처럼 들리는 알람 소리가 경끼를 일으키게 했다. 심장소리가 내 귓가에 너무 크게 들린다. 온 몸 여기저기가 울룩불룩 튀는 느낌이었다. 너무나도 불쾌한 이 기분은 수치스러운 생각들이 떠오르게 만든다. 내 심장에 꽂았던 가해자 변호사들이 했던 말들이 내 심장 소리와 함께 점점 더 크게 들린다.

그래도 오늘은 끝날 거라는 생각에 희망을 품고 마지막 공판을 간다. 이제 나를 감싸는 구속복을 벗을 때 가 온 것 같아 분주한 아침을 맞이했다.

어제부터 무슨 옷을 입을지 생각을 많이 했다. 자유를 얻는 날이니깐 밝은색을 입고 싶었지만, 막상 선택한 옷은 검은색 원피스... 슬픔과 우울함이 어딘지 모르게 내 모습에 묻어 있다. 밝아지려고 노력했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
내 차를 오빠가 운전해 주기로 했다. 1시간 20분거리지만 차가 막힐것 같아 2시간 전에 출발 했다. 요즘 아침은 제법 겨울이 많이 사라졌는데, 나에겐 아직 봄이 오지 않는 느낌이라 조금 두렵다. 추워서 또 배탈이 나고 감기에 걸리면 어떻하지? 좀 더 따뜻한 옷으로 바꿔 입고 출발해야 되나? 라는 걱정을 하게 만든다.

차안에서는 찬양을 들으며 오빠랑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과 앞으로 해야 될 일들을 같이 이야기 했다. 그리고 히터를 껐다 켰다를 반복하며 고속도로를 달렸다. 안전하게 달려갔다. 봄이 오는 것 마냥 조심스럽게 천천히 갔다. 봄이 올까?

대법원 입구, 장황하고 굵은 글씨로 쓰여져 있는 자유, 평등, 정의 나에게 눈물 나도록 그리고 수없이 소리치며 갖고 싶었던 저 말들이 이제는 너무나도 진부한 단어처럼 보인다. 내 인생에 없었던 말들이 지금은 차 안에서 쉽게 보이는 저 문구가 마음 한구석을 꽉 막아서서 아프다. 누구의 자유, 누구의 평등, 누구의 정의였을까?

어린 시절 아파했던 나에게 이야기해주고 싶다. “자유, 평등, 정의...” 하지만 말해주면 더 아프지 않을까? 내 것이 아니었던 그 순간들이 너무나도 아프지 않을까?

대법원에 일찍 도착해서 20분간 기다렸다. 가슴이 꽉 막힌 느낌이 들었다. 꽉 찬 뭔가가 나를 토하게 만들고 힘들게 했다. 토하기 전 침이 올라오는 것 마냥 침이 자꾸 입에 차오른다. 오빠가 내가 힘들어하는 것을 보고 차에 내려서 좀 걷자고 했는데 부슬비가 내려서 싫다고 했다. 나 또한 차 안에 있는 게 힘들었다.

제2호 법정 9시 55분에 갔다. 우리랑 함께해주는 기반센(기독교 반 성폭련 센터)에 서 오신다고 해서 찾았는데 아직 보이지 않았다. 내가 두리번거리니깐 오빠는 내가 불안해 보였는지 손을 잡아주며 같이 걸어가 주었다. 재판을 안내하는 분이 나와 민사 판결을 하고 형사 판결을 해야 한다고 공지했다. “민사를 기다려야 되네..” 라는 생각이 드는 그때 나처럼 슬픔과 우울함이 묻어있는 여자를 보았다. 그녀의 초조한 모습에서 나처럼 아픈 마음이 느껴졌다.

재판장에 들어갔다 안내하는 분이 주의 사항을 말해주시고 주변에는 경찰처럼 보이는 사람이 6명 정도 있었다. 그들이 위협적이라기보다 보호해주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판결은 정말 10초도 안되는 시간 동안 판사가 가해자의 이름을 부르며 “상고를 기각한다”라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듣고 2분 있다가 오빠가 손을 잡아 당겨 나오게 되었다.
그리고 오빠는 화가난 목소리로 말했다. “왜 2차가해를 인정해주지 않았지? 형이 더 높아지지 않았지?”라며 씩씩 거렸다. 오빠의 그 말에 또 가슴이 내려 앉잤다. 아까 대법원 앞에 있던 자유, 평등, 정의라는 글자가 자꾸 나를 아프게 하는 것 같았다.

나오는 길에 그 문구 한번 더 봤는데 이 건물의 입구는 왠지 나 같은 사람은 들어오지 말라는 문구처럼 보였다. 그 문구가, 이 건물이 나를 사람을 조롱하는 것 같았다. 아직도 입에는 침이 고였다. 매스껍다.

집에 오는 길이 너무나도 힘들었다. 꽉 막힌 가슴이 나를 힘들게 했다. 오빠에게 말했다. “휴게소에서 쉬었다 가면 안될까?” 잠시 휴식 시간을 가졌다. 오빠와 함께 차 안에서 눈을 감고 쉬었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내게 희망과 봄이 왔나? 내게 자유, 평등, 정의가 이루어졌나?” 눈을 감고 있는데 눈물이 왈칵났다. 그리고 차안에서 소리지르며 울었다. 한없이 울었다. 마구마구 울었다. 15분잤을까? 오빠가 잘 잤다며 개운하다며 운전을 다시 시작했다.

나는 아직 너무나도 피곤한데 그래도 하나 알았다. 내가 잠을 못 자는 건 아마도 한없는 꿈에서 울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 그 사람을 감옥에 보내고 나니 알게 되었다. 나를 수치스럽게 만들던 그 변호사들 그리고 나에게 상처 주고 몰아갔던 아동센터 직원들 그리고 거짓증인들 하나하나 다 감옥에 보내고 싶다. 그럼 내게도 봄이 오고 희망이 생기고 자유와 평등과 정의가 생기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이런 희망을 가지며 오늘도 나아가려 한다.

여기까지 정말 나는 혼자서는 못 왔다. 특히 기반센 선생님들, 정의를 가르쳐준 구권효, 구본호 기자님, 자기 일처럼 도와주신 민우회 분들, 법정에서 열변을 토해주신 변호사님, 우리 편에 서주신 교회 담임목사님까지.. 거론하기 힘든 수 많은 귀한 사람이 내게 있었다. 그들이 있어 나는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을 안다.

나와 같은 피해자를 찾아서 말해주고 싶다. “숨어있으면 희망도 정의도 평등도 자유도 그리고 따뜻한 봄날도 없어, 내가 같이 싸워 줄게 나랑 같이 나가자, 나도 내가 혼자인 줄 알았어, 내가 이길 거라고 생각 하지 못했어, 하지만 같이 싸우면 이길 수 있어 제발... 숨지마” 라고 이런 말을 할 때가 되면 내 입에 구역질 날 것 같은 침이 좀 사라질 것 같다. 이제 나와 같은 피해자들이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나를 감싸고 있는 구속복을 벗어 던지고 수치와 아픔에서 벗어나도록 같이 싸워줄 거다.

이제 나는 하나 끝냈다. 그리고 이제 하나 시작했을 뿐이다. 앞으로 할 것이 더 많다. 더 이상 2차 피해를 가하는 변호사들이 있어서는 안된다. 더 이상 그런 변호사들에게 아픔 당하는 피해자가 있으면 안 된다. 그리고 거짓말을 일삼는 침례교 교단은 분명 강한 대처와 충분한 사과를 해야 한다. 내가 직접 침례 교단에 나아가 내 목소리를 내도 그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었다. 침례 교단이 나에게 했던 말들, 기자들에게 했던 말들을, 나는 믿지 않는다. 단지 그들은 자신의 입지만을 챙기는 거짓말쟁이 교단이다.

2차가해 변호사와 침례 교단은 나의 희망과 봄을 빼앗아 갔다. 아니, 아직도 빼앗아 가고있는 중이다. 그들은 여전히 내게 자유, 평등, 정의는 너의 것이 아니라 강한자들의 것이라고 이야기 한다. 그들의 침묵은 내게 고함과도 같다.
나는 여전히 아침이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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