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 팔로우 때문에 이별을 통보받은 남자입니다
쓰니
|2023.06.26 22:19
조회 5,130 |추천 0
제목에서도 짐작하실 수 있듯이 다 제 잘못에서 비롯된 이별입니다.하지만 너무 힘들어서 난생 처음으로 이런 곳에 조언을 구합니다.어떤 태도로 다가가야 여자친구를 다시 만날 수 있을지,아니면 재회를 바라는 것 자체가 염치 없을 정도로 제가 큰 잘못을 한 건지,다소 길더라도 이야기를 읽어보시고 객관적으로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와 여자친구는 2년이 조금 넘게 사귀었습니다.크고 작은 다툼들이야 물론 있었지만, 대체로는 정말로 사이가 좋았습니다.밖에서 티를 잘 안내서 그렇지 둘만 있었을 때를 누군가 봤다면,소위 '닭살커플'이라는 표현을 썼을만큼 죽고 못 사는 사이였습니다.
이별의 발단은 제 인스타그램이었습니다.저는 원래 인스타그램을 안 하는 사람입니다.정확히 말하자면 2년전까지는 계정을 가지고 활발하게 활동했지만,그 이후로는 계정도 삭제하고 어플도 아예 깔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러다가 몇달~1년전 쯤 계정을 하나 새로 만들었습니다.다시 인스타를 시작할 생각은 아니었고, 소식이 끊긴 친구들 근황이 궁금해서였습니다.눈팅만 하려고 했던 것이죠.하지만 어쩌다보니 친구들만 보는게 아니라 다른 여자 사진들까지도 보게 되었습니다.지인은 아니고, 많은 팔로우를 보유한 인플루언서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들 중 일부를 팔로우하였습니다.팔로우한 이유는, 변명하지 않겠습니다. 나중에 또 보고 싶어서였습니다.하지만 그렇게 팔로우만 잔뜩 해놓고, 인스타그램을 다시 켜는 일은 없었습니다.얼마 지나지 않아 저는 인스타그램을 다시 삭제했습니다.
그로부터 한참이 지나서 지난 주,저는 술에 취한 김에 오랜만에 또 한 번 친구들 근황이 궁금해졌습니다.오해하실까봐 말씀드리지만, 그 친구들이 여자를 말하는 건 아닙니다.남자들이고, 모종의 다툼 때문에 연락하지 않고 멀어진 사이의 친구들입니다.
아무튼 제가 접속한 계정은 예전에 만들어 둔 그 계정이었고,팔로우 역시 그 상태 그대로였습니다.친구 소식 말고도 피드에 뜨는 여자 사진들 역시, 솔직히 말하자면 넘기지 않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서 금요일 밤, 제가 자는 동안에 여자 친구가 집에 왔습니다.집 비밀번호를 알고 있거든요.저는 여자친구가 온 것도 모르고 자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여자친구가 저를 깨우더니대뜸 헤어지자고 하는 겁니다.
이 때 제가 대처를 잘못하기도 했습니다.그 전부터 무슨 일만 있으면 헤어지자는 소리를 자주 하던 여자친구인지라,저도 거기에 진절머리가 나서 이유도 묻지 않고 헤어지자고 맞장구 쳐버린겁니다.그랬더니 여자친구가 먼저 뭐 때문인지도 안 물어보냐고 하더군요.그제서야 제가 묻자, 제 핸드폰을 열어서 인스타그램을 봤다고 합니다.며칠전 다시 깔아둔 인스타그램을 제가 안 지웠던 거죠.
연락처 동기화 때문에 자꾸 모르는 아이디가 친구 추천에 뜨니까,혹시나하고 제 핸드폰을 뒤져봤더니 그 아이디의 주인이 저였다는 겁니다.물론 그 팔로우 목록들도 다 봤구요.저는 여자친구한테 되려 화를 냈습니다.제 핸드폰을 함부로 뒤져본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거든요.전에도 제 구글 검색기록까지 찾아보다가 무슨 오해를 한 적이 있었는데,제가 증거까지 내밀면서 해명하느라 고생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또 핸드폰을 뒤져봤다니 순간 화가 나는 겁니다.더군다나 그 아이디가 연락처 기반 추천 때문에 떴다면,제가 계정을 만든 몇 개월 전부터 계속 떴을텐데,그럼 그 동안 계속 제 핸드폰을 뒤져봤을지도 모른다는 얘기기도 했으니까요.다만 이번에 인스타그램 어플이 깔려있어서 비로소 발견했을 뿐인거구요.
그래서 저는 여자친구가 뭐 때문에 화가 났는지 알면서도,적반하장으로 내가 바람을 폈냐 뭘 했냐 하면서 같이 화를 냈습니다.실제 서러운 마음도 좀 있었습니다.주변에 여사친 하나 없고, 실제로 여자 문제 때문에 속 한번 썩인 적 없는데,인스타그램에서 여자들 좀 팔로우 했다고 헤어지자는 소리까지 듣는게 속상해서요.
그렇게 여자친구는 이별을 통보하고 돌아갔지만,저는 정말로 헤어질 마음은 추호도 없었습니다.이틀 동안 많은 생각을 하고 나서, 장문의 카톡을 보냈습니다.
카톡의 요지는그 계정이 정확히 어떻게 만들어진거고 왜 그 여자들을 팔로우 했으며,네가 자꾸 내 핸드폰을 함부로 열어보는 것은 내 입장에서 기분이 나빴고,물론 네가 기분 나쁜것 또한 이해하고 내가 미안하다.계정 삭제하고 앞으로 인스타를 안할 것은 당연한데,이게 2년 동안 잘 사귀어놓고 하루 아침에 이별할 일은 아니지 않느냐.라는 얘기였습니다.
하지만 여자친구의 대답은 간단하고 단호했습니다.저랑 다시 만날 생각이 없다는 말 뿐이었죠.진짜로 이별이 눈앞에 다가왔다고 생각하니까 잘잘못을 따질 겨를 같은 건 더 이상 없었습니다.지금은 제가 무조건 잘못했다고 빌며 용서를 구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맘같아선 하루종일 카톡 보내고 집 앞에라도 찾아가고 싶지만,그러면 더 정 떨어질까봐 마음을 꾹꾹 눌러담은 카톡 몇 개 정도만 보내고 있습니다.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걱정이 됩니다.이렇게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다가 정말 더 멀어지는 건 아닐지.
물론 '헤어질만한 일'에 절대적인 기준이 없다는 건 압니다.여자친구 입장에서 그게 그만큼 치명적인 것이었다면,저로서는 받아들이는 게 맞겠죠.하지만 솔직히 한편으로는 계속,"그렇게 행복했던 연애를 하루아침에 끝낼만큼 내가 큰 잘못을 한건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글을 남기게 되었습니다.물론 연애는 둘만의 문제이지만, 다른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어떻게 생각하는지도들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여자분들 입장에서 솔직한 느낌을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저를 아예 욕하셔도 괜찮습니다.신랄하게 욕을 먹기 전에는, "이게 그 정도의 일이야?"라는 생각을 제가 떨치지 못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전 여자친구를 정말 많이 사랑합니다.헤어지고 며칠 동안 남들 앞에서는 눈물 한 방울 안 보이고 잘 지냈지만,그 모든 게 다 무슨 의미가 있나 싶습니다.삶의 목적이 없어진 기분입니다, 그것도 너무 한심한 이유로요.
여기까지 읽어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여력이 되신다면 욕이든 조언이든,한 말씀만 하고 가주시면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