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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여든 팔십이 먹었을지라도 ...

snstop |2023.09.14 16:43
조회 42 |추천 0

사람은 여든 팔십이 먹었을지라도 

자기의 삶에 대해서 전혀 모르다가 가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이사를 갔습니다. 

그런데 주인이 하는 말이 

“못 같은 것을 박지 마시오. 1년 살다 가면서 못을 있는 대로 때려 박으면 아주 흉측합니다. 그러니 제발 못은 박지 마십시오. 못을 박으려거든 아주 들어올 생각도 마십시오” 

했습니다. 

그 전에 살던 사람이 

못을 있는 대로 때려 박아놓고서 살았는데, 

그 사람을 내보내고는 

다시는 접방살이를 안주겠다고 하면서, 

제발 못은 박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전에 박은 못은 사람 데려다가 다 빼버리고, 

옷을 걸을 만한 것으로 몇 개만 남겨놓았다고 했습니다. 

그 사람은 들어올 때 그런 소리를 들었기 때문에, 

두어 군데만 남겨놓은 줄 알고서 두어 곳만 사용했습니다. 옷을 걸려고 해도 너무 못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사 나오려고 이삿짐을 챙기다 보니 

사방에 못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주인이 상당히 인격적이구먼. 

나는 그것도 모르고 그 동안 사용하지 못했네’ 했습니다. 

그 전에는 주인만 보면 항상 

‘에휴. 자기야 농이 있어서 넣으면 되지만, 나는 농도 없는데.... 접방살이가 서럽구먼. 

그래도 못을 몇 개씩은 박아 놨어야지’ 

라고 했었습니다. 

‘에휴. 못도 안 박아 놓고서 세를 놓아!’ 했습니다. 

주인이 무슨 얘기를 해도 그렇게만 생각했습니다. 

“오늘 교회 가십니까?”

물어도 간다고 하고 나서는 

‘이 주인아! 못을 몇 개 박아놓지. 못도 못 때려 박으면서 무슨 주인이야? 나는 앞으로 집을 크게 지으면 못을 많이 때려 박아 놓을 것이다. ’ 했습니다. 

같이 밥을 먹으면서도 

‘어이쿠. 못도 안 때려 박아놓고서’ 했었는데 

어느 날 보니까 못이 많았습니다. 

못의 숫자가 자기 옷을 걸고서도 충분히 남을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사람이 모르는 것은 

여든 팔십까지 모르다가 간다는 것입니다. 

그래놓고서도 오해를 합니다. 

오해는 오히려 자기에게 해가 되는 것입니다. 

자꾸 오해를 해버릇하면 오히려 본인에게 해가 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러셨습니다. 

예수님께 성전 세를 받으러 왔습니다. 

예수님이야 만왕의 왕, 만주의 주였습니다. 

그러니까 회사를 운영하는 사장에게 돈을 내놓으라고 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또 친구 10명이 있었는데, 그 중 한사람의 생일이 돌아와서 선물을 해주기로 했는데 생일을 당한 사람에게까지 가서 돈 내라고 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돈 1만원만 내라. 생일 잔치를 하려고 한다” 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그런 경우는 본인은 빼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기는 하지만, 오히려 해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여보, 빨리 가서 주머니의 쌈짓돈이라도 꺼내서 갖다 주시오”해서 갖다 주었습니다. 

그 돈까지 합해서 생일 선물을 하고는 큰소리 빵빵 칩니다. “이것은 우리 포켓 돈을 털어서 산 것이니 정성스럽게 받아”합니다. 마치 자기들 돈이 100% 들어간 것처럼 생각하는데, 

거기서 “친구 그것이 아니네. 나도 돈 냈어”라는 얘기를 하겠습니까? 안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격입니다. 

꼭 하고싶은 얘기지만 안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말이란 해야 될 것이 있고, 안 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도 세금 내라고 쫓아다니는 유대인들에게, 베드로에게 얘기하셨습니다. “어떤 임금이 있는데 아들에게 세금을 받겠느냐, 타인에게냐?”하니 “당연히 백성에게 받아야지, 임금이 아들에게 세금을 받습니까?”했습니다. 

“너는 이제 알았구나. 그럴지라도 너는 바다에 가서 고기를 낚으면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너와 나를 위해서 세금을 내라”하셨습니다. 오히려 해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러신 것입니다. 

그것은 생일날 생일 당한 사람에게까지 돈 거두는 것과 똑같은 얘기입니다. 그럴지라도 내라고 했습니다. 

물론 예수님을 주님인 줄 모르고서 세금 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 것이 많습니다. 

세금 한가지만 갖고서 얘기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런 입장에 있었던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모세의 경우도 이방의 여자를 취했다고 누나인 미리암이 그러면 되겠느냐고 했습니다. 

그때는 모세가 걸렸기에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인법으로는 걸려도 

천법에는 안 걸리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많습니다. 

사도 바울도 종교문제로는 유대 종교에게는 걸렸었습니다. 그러나 로마 나라로 가서는 그것으로 안 걸립니다. 

그래서 원국으로 가고 싶다고 바울이 원했고, 

결국 로마에 가서는 안 걸렸습니다. 

그러나 유대인에게는 걸렸습니다. 그런 것이 많습니다. 

하늘 나라로 볼 때는 안 걸리고, 세상으로는 걸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아시고 나서셨습니다. 

모세가 입장 곤란하게 되니까 하나님이 나서셔서 “너는 종이고, 얘는 내 앞에 충성된 세운 자가 아니냐? 너는 꿈으로 보여주고, 이에게는 실체로 보여준다. 그러니 얼마나 차이가 많겠느냐? 그 잘못한 것으로 인해서 밖에 나가 있다가 와라”하여서 “하나님께서 누나에게 나갔다 오라고 합니다”하여서 나갔을 때 문둥병이 발했습니다. 

문둥병 있는 사람은 나을 때까지 성안에 못 들어가게 되어있었습니다. 

그런 것과 비슷한 법들이 많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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